소설리스트

화산파 역대급 천재-270화 (270/288)

270화

결착(4)

-하여간 부끄러움을 모르는 늙은이로구나. 하기사······. 염치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인간이 꾸역꾸역 나이를 처먹었으니 그리되는 것도 당연하지.

혁리광과 모용준경 그리고 종화의 이야기를 듣던 파검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강소 대전은 개뿔. 그냥 지방에 문파 하나 좀 열어보려니까 토박이들이 어찌나 발악을 하든지. 거기에 욕심 드글거리던 남궁세가 놈들이 강소성을 지네 구역으로 하겠다고 궁둥이 들이밀던 거 한 번 걷어 차준 게 전부구만.

‘엉덩이를 걷어 차인 건 아니고요?’

-걷어차이기는 대체 누가 걷어 차였다고!! 1승 1패이긴 하다만, 원래 뒤에 이긴 게 진짜 이긴 거다. 게다가 애당초 첫 싸움은 내가 너무 불리했어. 이전에 잔뜩 싸워서 지치기도 했었고······. 게다가 남궁세가에서 대체 돈을 얼마나 바른 건지. 당시 그 녀석 거의 영약에 절여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그 사람이 가진 기량의 일부 아니겠습니까.’

-끄응······.

혁리광은 진심으로 검왕에게 감복한 것 같았다.

신이 나서 검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이걸 참······. 어린 시절부터 검왕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잔뜩 듣고 자란 사람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매우 난감했다.

“마지막에 걸어 가시는 모습도 참으로 비범한 것이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천무십칠성에 이름을 올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림맹주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흥, 천무십칠성에 이름을 올린 걸로 따지자면 나야말로 진짜 비범함이지. 그 놈은 솔직히 가문빨 아니었으면 올리지도 못했어. 게다가 무림맹주도 운호 너도 잘 알지 않더냐. 그거 무한에서 남들은 다 목숨 걸고 싸웠는데 혼자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고는 포장만 그럴싸하게 해서 얻어낸 거.

인세의 이치를 초월하여 선계에 오르고 그 남은 흔적 또한 검령이 되어 세상의 명리에서 초탈해지고 있는 파검이 이처럼 검왕 남궁벽의 이야기에는 이처럼 핏대를 올리는 것이 제법 재밌었다. 운호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놀림 섞인 말을 내뱉을 만큼 말이다.

‘글쎄요, 나름대로 그렇게 살아남아 자신의 자리를 쟁취하는 것도 뭐 그 나름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능력? 허, 난 그따위 게 능력이라면 난 차라리 무능력자가 좋겠구나. 애당초 그 자식은 그따위로 사니까 무공에 발전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타고난 재능과 환경이 실로 아까운 놈이라고 볼 수 있지.

운호가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을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흥분하는 파검의 말을 뒤로하고, 실제 존재하는 목의 핏대를 세워가며 검왕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혁리광을 제지했다.

“자자, 무림 맹주를 만나 흥분하신 건 알겠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그쯤 하시죠. 어차피 여기에 오늘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 그래. 그랬지. 미안하다. 내가 조금 흥분해서.”

“괜찮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누구부터?”

운호의 질문에 종화가 가장 먼저 한 걸음을 튀어나왔다.

“오늘은 긴장해야 할 거야. 평소와는 좀 다를 테니까. 네 그 요상한 검술 반드시 박살을 내줄게.”

종화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단순한 동작 한 번에도 태을의 이치가 스며든다. 지난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다섯 초절정 고수 가운데 가장 많이 발전한 이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종화였다.

기본적으로 그 시기와 환경이 그러했다. 이제 막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아직 나아갈 것이 한참 많은 상황에서 주변이 온통 보고 배울 교보재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그 압도적 재능. 마치 종이가 먹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을 받아들인다.

-이건?

태을의 검은 모든 것을 근원으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그것은 심지어 저 하늘의 별빛을 현세에 불러온 강기(罡氣)조차도 피해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태을의 검조차도 운호가 펼쳐내는 건곤검(乾坤劍) 앞에서는 무력했으니 그것은 운호가 펼쳐내는 건곤검이 일검 일검에 태산을 가를 힘이 실려 있는 검술이 아닌 그저 모든 공격을 파훼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길로 이끄는 기묘한 검술이기 때문이었다.

종화는 그 검술을 파훼하기 위하여 참으로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댔다. 자신의 사부인 벽산은 물론이고 운호를 함께 상대하는 나머지 네 사람의 초절정 고수들과도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호. 그저 운호와 검을 겨루는 것만으로도 종화는 참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금 그 결과물이 운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선이 아닌 면, 아니 면을 넘어선 공간.

태을의 기운이 그녀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저것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나는 이걸 태을경(太乙境)이라 이름 붙였어.”

운호의 건곤검이 단초가 됐다.

반경 일 장.

운호 자신의 검이 닿는 범위 내에서 그는 전지했다. 그것은 어찌 보자면 세상에서 유리된 운호 자신만의 세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 관해 조왕 주고수는 이렇게 추측을 했었다.

“어쩌면 그것이 입신경과 초절정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경험해본 바에 따르자면 마교의 대제사장도 그와 비슷한 뭔가를 했던 것 같다. 비현실적인 무언가를 현세에 구현했지. 또한 서평왕 그 작자는······.”

“직접 보진 못했으나 그 작자가 마지막에 너희를 꺾었던 수법도 공간 자체가 기묘하게 왜곡됐던 거라고 들었다. 아마 어쩌면 그 공간 자체가 그의 통제 아래에 놓였던 공간일지도 모르지. 상식적으로 그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초절정 고수 다섯의 절초를 일수에 꺾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

세계의 창조.

도를 깨달아 등선하는 것은 결국 이 세계를 떠나 선계에 다다르는 행위다. 허면 그 중간에 위치한 입신경이란 이 세계와 선계의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당사자들이 들었다면 그저 웃고 말 것 같은 가설이었지만 본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이란 그러한 법이다.

그리 넓지는 않았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한 뼘 가량?

하지만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그 공간은 운호의 저 건곤검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당장의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뭔가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은 것 같지만, 그래도 결과물은 제법 훌륭하네.”

운호의 건곤검은 자신의 감각과 인지를 극단적 좁은 범위에 한정함으로써 제한적인 전지를 손에 넣고, 그 전지를 바탕으로 터무니 없는 결과를 창출해낸다. 그리고 그 건곤검의 시점으로 바라봤을 때 종화가 펼쳐낸 저 태을경이라는 무공은 일종에 무한에 가까운 변수였다.

어마어마한 과부하가 그의 머리를 덮쳐왔다. 그것은 초절정 고수 다섯이서 그를 압박할 때보다 훨씬 더 거대한 변수였다.

운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마음이 매우 좋았다. 어째서일까? 종화의 성장이 기꺼워서일까? 아니면 드디어 건곤검의 한계를 제대로 시험해볼 상대를 만난 것이 즐거워서일까.

검을 휘둘렀다.

종화의 공간이 지상의 법칙을 해체하여 유형의 힘을 태초에 존재했던 무형으로 돌려놓았으니 그것은 단순히 진기가 만들어내는 힘을 넘어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사람의 의지와 그 의지로 이뤄내는 모든 활동까지 포함된 것이었다.

“맙소사······.”

그 비무를 지켜보던 혁리광과 모용준경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 종화는 운호의 건곤검을 상대로 팽팽하게 맞붙고 있었다.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들 가운데 일 대 일로는 아니, 이 대 일이나 삼 대 일로도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광경이었다.

싸움이 길어졌다.

사실 끝낼 방법은 많았다. 건곤이 아닌 무형이라면, 난풍이라면, 광음이라면. 아니 하다못해 자운이라도 그 압도적인 힘의 크기로 밀어버린다면 언제든지 끝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변수가 운호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것이 좋았다.

하루하루 자하기공을 익히고 자신의 무공을 해체하여 화산의 어린 제자들이 검종의 무공을 익힐 길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세 살. 처음 몽원경에 들어간 이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운호는 매일매일 목숨을 걸고 싸워왔으며 그것을 통해 성장해왔다. 한계를 시험하는 싸움. 운호는 그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쾅!!!!

운호가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뱉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종화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운호의 건곤검은 그 뇌를 지독하게 혹사시키지만 반면 그 사용하는 힘의 양은 그야말로 최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렸다. 반면 저 태을경이라는 것은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종화로서도 오래 사용하기 힘든 비기였다.

단기 결전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무공이 하루 종일도 시전할 수 있는 검술과 그저 밀리지 않고 버텨내는 수준이었으니 그 결과는 지금과 같을 수밖에 없다.

“쯧, 역시 아직 어린 계집애로구나. 경지에 올랐다 하여 대단한 뭔가라도 있겠거니 했거늘 제 역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렇게 아득바득 버티다가 스스로 쓰러지다니.”

“검왕?”

크게 변하지 않은 얼굴.

밉살스러운 말투.

검왕 남궁벽이었다.

그의 등장을 통해 운호는 건곤검의 약점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보통이라면 그가 접근하는 것을 모를리 없다. 하지만 건곤검은 그 넓은 감각과 인지를 모조리 차단함으로써 얻어지는 이능에 가까운 검술이었다. 한 가닥이라도 주변을 향한 시야를 남겨놓는다면 그와 같은 전지함은 얻을 수 없다.

“마교를 상대하기 전에 화산의 의사를 알기 위해 들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화산의 상태가 심각하더구나.”

“그렇습니까?”

“장문인의 말에 따르자면 네 녀석 정도는 참여를 할 것이라 하기에 얼굴이나 한 번 보려고 들렀다. 지난번 그 만남 이후 혹시라도 퇴보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돼서 말이다. 헌데 아무리 비무 중이었다고 해도 이리 가까이 오도록 내가 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걸 보니 쯧······.”

파검은 아마 자신에게 몸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크게 웃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단순히 검왕의 말이 우습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검왕에게 찾아올 뻔한 미래가 너무나도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야, 넌 맹주님이 오시는 거 눈치챘냐?’

‘아니, 비무에 너무 심취하느라. 너는?’

‘나도······. 헌데 단순히 그렇다고 볼 수만도 없는 게 증무 도사도 눈치를 못 챘잖아. 물론 비무 중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내가 볼 때 어쩌면 그 극광오신이라는 거. 맹주님도 포함해서 다섯인 거 아닐까?’

‘검왕 선배가?’

‘가장 젊은 나이에 천무십칠성에 올랐고, 같은 나이에 경쟁자였던 파검은 우화등선을 했잖아. 맹주님도 그만한 성취를 얻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자기들끼리는 소곤거린다고 소곤거렸겠지만, 운호의 귀에도, 남궁벽의 귀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똑똑하게 들려왔다.

남궁벽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 혁리세가의 아이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 그리고 그런 남궁벽에게 운호가 물었다.

“본래 걱정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두들겨 보는 것이지요.”

“오시죠. 그 걱정 제가 말끔하게 해소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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