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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화 (2/361)

2 화

"저기……

아까부터 귀찮게 구는 남자가 다 시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목숨 의 은인입니다."

"알면 짐이나 잘 싸요. 실내체육관

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까."

상황이 절망스러우니 말이 곱게 나가질 않았다. 사실 내 입장에서 이들은 죄다 짐덩이니까. 나 혼자라 면야, 이 마트를 거점 삼아 몬스터 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3년 이고 5년이고 살 수 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예?"

지금 한가하게 이름을 물을 땐가?

"계속 '저기'라고 부를 순 없으니 까요."

"……한서하라고 부르세요."

"전 권성민이라고 합니다."

"네, 뭐……

미리 말해두지만, 내가 회귀하기 전엔 지구가 거의 멸망하기 직전이 었던 터라 누구랑 한가하게 잡담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사회성은…… 거의 제로다! 헌터들하고 사적인 얘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었으니 까!

"혹시 고유 스킬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네."

"어떤 스킬인지는……

"그걸 말해주긴 좀 그렇죠."

사실 눈만 달렸으면 내가 공간 간 섭 능력자라는 걸 뻔히 알 거다. 하지만 이때의 공간 간섭은 거의 텔레포트, 그러니까 장거리 이동용 으로 자주 쓰였다.

전투용으로 단거리 이동인 '블링 크'의 사용법이 대두된 것은, 내가 이 빌어먹을 게이트에서 생존하면 서 단거리용 공간 간섭 능력자로 특화되면서 부터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아마도 겉보기에 나는 지금 꽤 어 릴 테고, 권성민은 적어도 20대 후 반은 되어 보이니 그가 내게 높임 말을 쓰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다.

"……그래도 될까? 서하야, 너도 말 편하게 해."

"그래."

그걸 기다렸다. 나도 곧장 말을 놓 았다. 암만 겉모습이 고등학생이라 도, 나한테 권성민은 새파란 어린애 였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고 사람

들도 많이 놀랐으니까, 여기서 하룻 밤 묵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게 어떨까? 아직 사람들이 많이 불안 해하고 있어서……

그는 내가 무리의 리더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안타깝게도 난 누군 가를 이끄는 데 흥미가 없다.

"원한다면.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무너진 벽은 임시로 비닐이라도 덮 어줄 수 있으니까."

"비닐?"

"말했잖아. 한쪽 벽이 없으면 바람 갈퀴가 들어와도 모른다고. 그걸 방 지하려면 비닐이라도 덮어둬야지.

그럼 들어올 때 소리라도 나지 않 겠어?"

그 말에 권성민이 고개를 끄덕였 다. 물론 난 기감이 예민해서 곧장 알아챌 수 있겠지만…… 오밤중에 나 혼자 설쳐대는 꼴을 또 보여주 고 싶진 않았다.

성민이 짐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내일 출발할 테니 오늘 잘 준비를 하자고 일렀다.

곧이어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조와 외벽을 수리할 조를 나눠 일을 수 행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과는 저녁에 불침번을 설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이끄는 건 권성민에게 맡겨두면 될 것 같았다. 이전에는 아마 죽었겠지만, 아카데미 입학 권 유를 받을 정도면 저 사람도 제법 쓸 만한 인재였겠지. 나 혼자 모두 를 지킬 순 없으니 권성민을 이용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나중에 간단히 몇 가지를 설명해 주면 되겠지?'

"학생."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불렀다. 내 손 목을 잡아끌었던 중년 여성이었다. 눈 밑이 조금 퀭했지만, 본래의 푸근하고 순박한 인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하 학생. 많이 고생했지? 이거 라도 먹고 있어."

나지막이 말하며 내 손에 빵조각 을 쥐여 주었다. 저녁거리를 준비하 는 조에 속한 모양이었다. 식재료를 모아둔 곳은 권성민이 출입을 통제 하고 있을 텐데. 몰래 하나 빼다 주는 게, 손녀에게 과자 쥐여 주는 할머니 같았다. 통조림보다야 훨씬 맛있을 테니 고마운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냐, 아냐. 서하 학생 아니었으

면 우리 모두 아까 큰일 났을 테니 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신들은 여 기서 죄다 죽을 운명이었으니.

"게이트화가 어디까지 진행됐을지, 혹시 예상이 가? 아니, 실은 저기 한빛 아파트에 내 아들이 있어 서…… 혹시나…… 그 애가, 그 애 도 휩쓸렸을까 봐…… 내가 걱정이 돼서……

이런. 애써 울음을 참으려는 기색 이 역력했다. 안타깝게도, 내 기억 에 한빛 아파트는…….

'게이트화 시작하자마자 땅강아지

한테 당해 무너졌을 텐데……

굳이 떠벌리진 않고 조용히 고개 를 저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미안하네, 내가 괜한 소리를 해 서. 학생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고 계실 텐데……

"아……. 네, 뭐."

나는 좀 불편한 얼굴을 했다. 숨기 기가 어려웠다.

내 부모님은 내가 5살 무렵에 게 이트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후 정부 지원금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다 가, 16살 무렵엔 아예 따로 나와살았다. 그러니까 날 걱정할 가족이 라고 부를만한 존재는 딱히 없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입 다 물겠지만.'

김정화라고 본인을 소개한 아주머 니는 금방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돌 아갔다. 인원이 40명가량이나 되니 음식 하는 것도 일이었다. 나는 뭐, 참전용사 특전 같은 느낌으로 느긋 하게 쉬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곳에 서 쓸 만한 전투 인원은 나뿐이나 마찬가지니, 되도록 체력 소모는 삼 가는 게 좋겠지.

"서하야."

"응?"

성민이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내 게 다가왔다.

"일단 스탯이 높은 사람들을 추려 왔어. 근력이나 민첩이 13보다 높 은 사람들이야."

대충 보니 남자 3명에 여자 2명이 었다.

"그리고 이분은 고유 스킬이 있으 시대."

개중 남자 한 명을 앞으로 떠밀었 다. 인상이 날카로운 남자였다. 몹 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삐쩍마른 몸에 금이 간 안경을 끼고 있 었는데, 한평생 책만 쥐고 살았을 것 같았다.

아까 권성민이 고유 스킬을 가진 사람을 찾았을 땐 몸을 숨기고 있 었단 소린데……. 일단 그 신중함은 플러스 요인이 될 만하다. 지금 와 서 숨겨봤자 나중에 개죽음으로 이 어진다는 걸 예상한 모양이지.

아마도 내일 몬스터의 습격으로 다 죽을 위기에 처하면 나는 이 남 자를 먼저 구할 거다. 쓸모 있으니 까.

"스킬이 뭔데요?"

"'정찰'이라고 되어있긴 한데……

"잘됐네요. 내일 이동할 때 저랑 같이 선두에 서시죠."

" 내가?"

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뭐, 그럴 만했다. 뜬금없이 생사의 갈림 길에 놓인 현대인이 가만히 수긍하 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사정을 봐줄 만큼 여유 있지는 않 다.

"네. 정찰은 전방에 있을 몬스터나 함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니까 요."

"부탁드려요. 민준 씨."

"하……

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알겠다 고 수긍했다. 하지만 목숨이 위험해 지면 곧장 도망칠지도 모른다고 경 고했다. 그 정도는 각오한 바였다.

"젊은 사람들이 몇 없어서 숫자는 적지만, 대충 구색은 갖출 수 있을 거야."

"그럼 여러분은 저랑 저분 뒤에 서서 따라옵니다. 민첩이 높으신 분 들 중 한 분은 맨 뒤에서 백업해 주시고요. 무슨 일 생기면 곧장 선 발대한테 알려주세요."

내 말에 다들 알겠다고 답했다. 저 녁 시간대라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좀 있는 게 다행이었다. 낮이었으면 이 사람들도 회사나 학교에 있다가 봉변을 당했겠지.

"저는 한서하라고 해요."

"전 권성민이라고 합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냅시다. 실내체육관에 는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요."

우리 둘이 소개하자 뒤이어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설민준이고, 고유 스킬 정찰을 갖 고 있어요."

"김태병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이찬송임 다."

"고해윤이요."

"저, 저는 송다정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대충 직업 계열이 눈에 보이는 사 람들이 있었다. 설민준은 정찰을 고 유 스킬로 가진 것을 보아 어쌔신 계열 특화일 것 같고, 김태병은 탱 커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기, 근데 몇 가지 물어 보고 싶

은 게 있는데요!"

송다정이 어색하게 손을 들며 물 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기분이 었다.

" 뭔데요?"

"아니, 그게, 저, 밖에도 지금 몬스 터가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닌가 요?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벽을 세 우고 버티는 게 더 낫지 않을 까…… 해서요."

"여기 몬스터 시체가 있는데 여기 서 진을 치려고요? 그다지 추천하 고 싶진 않은데요."

땅장군의 시체를 가리키자 이해된

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렇군요. 몬스터들도 피와 시체 냄새에 반응하는군요……!"

"기본적으로 그런 편이죠."

그러므로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건 하루가 최대다. 그 이후엔 저 피 냄새와 시체 썩는 악취가 다른 몬스터들을 유혹할 테니까.

"우와, 혹시 아카데미생?"

이찬송이 불쑥 끼어들며 물었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가 눈앞에서 홑 날렸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얼 굴이 제법 미끈하다. 그 속에 담긴 호기심은 질 나쁜 것 같긴 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게이트 에 관심이 좀 많았어요."

아카데미. 재능 있는 헌터 지망생 들에게 제시되는 국립 서비스. 일종 의 엘리트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졸업생은 빅5에게 오퍼 받을 확률이 더 높아지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냥 평범 한 학생일 뿐이다.

회귀하기 전에도 아카데미생이었 던 적은 없다. 게이트에서 살아 나 간 뒤 곧장 현장에서 뛰었으니까.

"정말? 헌터 지망생인 줄 알았는 데."

"그러니까 말임다. 아까는 정말 놀 랐습니다! 어떻게 순식간에 거기까 지 갑니까? 스킬인 겁니까?"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이찬송의 말 뒤에, 곧바로 순진무구한 음성이 따라붙었다. 김태병이었다. 맑은 눈 빛이 인상적인 남자다.

"자. 그러면 내일 어떤 경로로 움 직일지 미리 계획을 짜볼까요?"

내비게이션이 생활화된 지 오래긴 해도 지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 었다. 권성민이 어디선가 가져온 지 도를 꺼내 펼쳤다. 좀 옛날 지도긴 해도 필요한 건 제대로 그려져 있었다.

"여기 보시면, 대충 2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었 다. 조금 돌아가야 하지만.

다른 하나는....

"다리를 건너자고요?"

고해윤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러 나 권성민은 의견을 굽힐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쪽이 훨씬 빨라요. 돌아가면 족 히 1시간은 걸릴 거고, 그 안에 분 명 몬스터를 마주할 거예요."

"저 다리가 지금도 멀쩡할지 확실 하지 않잖아요. 수중에서 활동하는 몬스터들도 있을 텐데…… 다리 위 에선 피할 수가 없어요. 몬스터가 나오면 그대로 끝장이라고요."

타당한 의견이었다. 권성민도 그 말을 듣자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1시간 동안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다리를 지나는 모험을 할 것인가.

"서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성민의 말에 곧장 시선이 내게 쏠 렸다.

"……다리로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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