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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4화 (4/361)

4 화

그러나 바닥에 엎어져 있는 그가 다음 공격을 피하긴 어려워 보였다. 송곳벌이 제 침을 빙글빙글 돌리며 들이대려는 그 순간,푹!

공간 간섭으로 다가가 침에 식칼 을 꽂아 넣었다. 송곳벌의 침은 강 력한 만큼 신경다발이 집중된 곳이다. 예민한 곳에 공격을 받은 송곳 벌은 몇 초 더 쇼크로 바르작거렸 다. 우드득, 강제로 식칼을 더 쑤셔 넣었다.

털썩, 송곳벌의 시체가 바닥에 널 브러졌다. 하필 엎드려 있던 김태병 의 위로 떨어져 그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억……헉……

"수고했어요."

"가, 감사함다. 흐읍, 덕분에 살았 습니다...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했 다. 송곳벌의 체액을 뒤집어써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체액을 닦아내고 마트에서 주운 옷으로 갈아입게 시킨 다음 다시 출발했다. 송곳벌이 죽은 직후라 근 방에 몬스터는 없었다. 서둘러 그 근처를 빠져나온 뒤에야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후……

"이 근처에서 오늘 밤을 지낼까 요?"

"그러는 게 좋겠네요……

"그럽시다."

성민의 물음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답했다. 통조림 외 에 썩기 쉬운 식재료를 챙겨온 것 이 있어 그것들로 저녁거리를 만들 기 시작했다. 나는 설민준과 함께 주변을 정찰하고 왔고, 근처에 몬스 터가 없음을 확인했다.

"여기요."

송다정이 내 몫을 덜어와 건넸다. 뜻밖의 호의에 고개를 꾸벅했다.

"많이 힘들죠?"

상냥한 어조였다. 아하. 나는 권성 민이 여태 나를 리더처럼 취급해서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나, 지금 어리지. 송다정이 내 멘탈을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갑자기 이렇게 돼서…… 저도 많 이 혼란스러운데, 서하 씨는 훨씬 침착해 보이니까. 대단하다고 생각 해요."

갑자기 넋두리를 시작한다. 나는 대충 먹을 것들을 넣고 끓인 죽 같 은 것을 입에 집어넣었다. 조리기구 가 형편없긴 해도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이것도 신선한 재료가 있는 때에나 먹을 수 있을 테니 많이 먹 어두는 게 좋다.

"저, 이거…… 나올 때 챙겨왔던 건데, 서하 씨 줄게요."

송다정이 슬그머니 내게 잭나이프 를 건넸다. 식칼보다 길이는 짧지만 견고하고 날카롭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날카로운 잭나이프〉

등급: F

공격력: 10~20

설명: 날이 잘 선 잭나이프다. 깊 게 찌르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F등급이지만 치명타 보정이 들어

갔다. 극히 낮은 확률로 크리티컬을 터뜨리는 옵션은, 확률은 희박해도 그 자체에 제법 의미가 있다. 식칼 보다 나은 무기였다.

"……괜찮겠어요? 그럼 당신이 무 기가 없을 텐데요. 이 상황에서 무 기가 여벌의 목숨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테고……

"그 식칼, 곧 부러지죠?"

나는 놀란 눈을 하고 송다정을 바 라봤다. 어떻게 알았지? 내 식칼은 이미 두 번이나 몬스터를 가격하면 서 내구도가 상당히 닳았다. 겉보기 엔 몰라도, 아이템 정보를 열람하면이렇게 뜬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허름한 식칼〉

등급: F

공격력: 9

설명: 날이 무뎌지고 이가 빠진 식칼이다. 곧 부러질 것 같다.

"어떻게 알았어요?"

"자세히 보면 알죠. 저, 주방 보조 로 오래 일해서 식칼 상태는 잘 보

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거 잘하면, 후천적으로 고유 스 킬 '대장장이의 손길'을 개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무기로 취급되는 식칼의 상태를 이렇게 정확히 진단하는 건 분명 그것과 관련된 재능이 있다는 뜻이 다.

"어차피 제가 휘둘러봤자 큰 의미 도 없을 거예요. 근력은 높아도 민 첩이 엄청 떨어지거든요, 저."

"……일단 감사히 받을게요. 대신

이 식칼은 챙겨둬요. 위급할 때 한 방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잭나이프와 식칼을 교환했다. 일방 적으로 내게 이득인 거래였지만, 송 다정은 그걸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 다.

"여기 있었네!"

"찾았슴다!"

이찬송과 김태병이 끼어들었다. 나 는 잭나이프를 품에 숨기며 되물었 다.

"절 찾았어요?"

"네! 찾았슴다!"

김태병이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일이지?

"저 갑자기 알람이 떴슴다. 스탯이 오른다는 말이랑 같이 방어력이랑 끈기가 1 올랐는데, 이럴 수도 있 는 겁니까?"

방어력과 끈기가 둘 다? 그건 꽤 나 큰 이득이다. 목숨을 걸고 몬스 터와 맞서 싸운 것이 이렇게 돌아 오나.

"네. 몬스터를 해치우는 기여도와 방향성에 따라 능력치가 오르기도 해요."

"하지만 스탯 보정은 보통 아이템

으로만 가능한 거 아니었슴까? 아 니면 마력석이나, 강화석으로……

"효율이 낮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실전에서 오르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고작해야 1, 2씩 오르는 데 다 목숨을 걸어야 하니 거의 사용 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게이트에서 생존하 는 헌터들의 능력치가 까마득한 데 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이템과 마력석의 몫도 있겠지만, 전투 중에 오르는 능력치도 쏠쏠했을 거다.

"하지만 전혀 들은 적이 없는걸요.

그런 방법……

"그러겠죠. 일반인이 따라하면 개 죽음이니까."

고의로 감췄다고 보는 게 맞을 거 다. 국가공인 헌터적성검사를 시행 한 이후 무작정 게이트로 들어가 헌터가 되겠다며 달려드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지만, 이렇게 게이트를 통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사 실이 알려지면 또 득달같이 달려들 사람이 많으니까.

"그럼…… 서하 씨는 어떻게 아는 검까?"

김태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금기를 건드리는 것처럼. 옆에 있던 이찬송과 송다정도 은근히 기 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 는 정체를 숨긴 헌터나 헌터지망생, 뭐 그런 게 아니다. 정부 고위 간 부직의 외동딸 같은 것도 아니다.

"말했잖아요. 게이트에 관심이 많 다고."

"그런 말로 넘기기엔, 지나치게 익 숙해 보이던데?"

이찬송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땅장군 약점도 알고 있었고, 뭔진 모르겠지만 고유 스킬도 자유자재

로 쓰고. 몬스터도 빠삭하게 아는 것 같고…… 일반인이라 하기엔 지 나치게 침착하고."

이렇게 나열하니 내가 수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대체 정체가 뭐야?"

"그게 중요해요?"

평범한 학생이라고 말해봤자 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뻔뻔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게 제일 급 하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따르기엔 부담이 크지."

"불만이 있으면 따로 움직여요."

딱 잘라 말하자 이찬송이 깨갱 하 는 표정을 지었다. 반반한 얼굴을 이용해서 제법 뺀질거린다.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고

"거기. 시답잖은 소리 할 시간에 텐트 설치나 돕지?"

뾰족하게 날 선 목소리가 끼어들 었다. 동그란 안경을 고쳐 쓰며 설 민준이 다가왔다.

"누군 정찰 다녀왔다가 밥 먹고 설거지하고 텐트 설치 돕는데, 바로

앞에서 땡땡이야?"

"아차. 미안, 미안. 몰랐네."

"죄송함다! 얼른 돕겠습니다."

모여 있던 인원이 순식간에 흩어 졌다. 나도 먹은 식기를 들고 일어 났다. 안경을 치켜세우며 옆을 지나 가는 설민준을 힐끗 바라봤다. 얼굴 에 그다지 티가 나진 않는데, 도와 준 건가?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텐 트 설치를 돕고 있었기 때문에 굳 이 말을 걸진 않았다.

* * *

조심스럽게 이동하다 보니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여러 몬스터들이 우릴 스쳐 지나갔고, 겨우 숨죽이며 지나갈 수 있었다. 땅장군의 사체 때문이지 뭔 지, 몬스터들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 었다.

애초에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 에 우리는 금방 다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저게......

"원래 물 색깔이 저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이 멀쩡하진 않았다. 오는 길에 사막화가 진행되 는 지역이 보일 정도였다. 게이트 안에서 자연환경은 끊임없이 변화 한다. 마냥 아스팔트 도로만 나오는 건 아니란 의미다. 하물며 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구름무늬기름고래가 사나 보네 요."

내 말에 다들 어떻게 아냐는 얼굴 을 했다.

"수면 위에 기름띠가 생기는 게 서식지 특징이에요."

"고래 말씀이심까? 이 강에 말입

니까?"

김태병이 되물었다. 그럴 만하지. 으레 고래라 함은 거대한 몸집에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를 말할 테니 까. 하지만 그건 동물 고래를 말하 는 거고, 몬스터 고래는 그 생김새 가 닮았을 뿐 완전히 다른 생명체 다.

"진짜 고래가 아니니까요. 아무튼 조심해요. 저 기름막은 마비 효과가 있어서 물에 빠지자마자 저항도 못 하게 될 거예요."

그 말에 다들 긴장하며 고개를 끄 덕였다. 언제나 선두는 설민준이다.

그가 이젠 너덜너덜해진 안경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멀찍이 내다봤다.

고유 스킬, '정찰'.

나는 갖지 못한 스킬이지만 레인 저나 어쌔신 계열 헌터가 사용하는 걸 본 적은 많다. 내 공간 간섭의 처음과 유사하다. 이 인근의 정보를 모조리 뇌리에 때려박고 그 안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걸러내는 작업. 그 과정의 숙련도에 따라 정찰 스킬의 유용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곤 했다.

'초보자인 설민준에게 그 이상을 바라면 안 되겠지만.'

대충 트랩이 없는지, 지반이 약해 지진 않았는지 정도만 파악해도 충 분히 이득이다. 최악의 경우는 다리 가 무너져 어떻게 손써보지도 못하 고 강에 빠져 몬스터들의 먹잇감이 되는 거다.

"크게 문제 될 건 없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내가 선두로 나서서 걸었다. 겉보기엔 군데군데 파손되어 위태롭지만, 정찰 스킬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다. 설민준이 이 제 와서 날 배신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다들 나를 따라 숨죽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비린내가 심하게 올라 오고 역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다리 상태는 충분히 살폈다. 다리 건너편이 안개 때문에 흐려 확인하 지 못했으니, 그것이 유일한 변수였 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드디어 안개 너머가 눈에 보였다.

나는 곧장 주먹을 쥐고 높이 들어 올렸다.

뒤따라오던 걸음들이 순식간에 멈 춘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구름무늬기름고래가…… 물 밖에

나와 있었다.

'기름고래가 종종 물 밖에 나오는 건 알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길 바라는 게 사 람의 심리 아니겠는가. 당혹스러움 이 일었지만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 다.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는 건 언제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에 혼 들릴 순 없다. 중요한 건, 이 눈앞 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바로 그거다.

기름고래는 퇴화된 눈을 갖고 있 다. 생명체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 응하며, 시각이나 청각은 거의 없는수준이다.

아직 이쪽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 으니 조심히 움직이면 되돌아갈 수 있겠지만…….

'이쪽에 기름고래가 있는 것처럼, 이제는 저 반대편에 어떤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거지.'

그러니 섣부른 후퇴는 금물이다.

다행인 점은, 물 밖에 나온 녀석이 혼자라는 거다.

"김태병 씨."

"네, 넵?"

"방어력이 몇이나 된다 했죠?"

"16 임다."

16이라. 구름무늬기름고래도 어차 피 본신의 힘은 강하지 않다. 서식 지에 풀어둔 기름띠와, 마비성분이 잔뜩 들어간 점액질을 온몸에 두른 것만 빼면 공격력 자체는 평범한 수준이다. 오히려 땅장군의 파괴력 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언랭크가 아니라 도등급 인 이유는 저 마비독 때문인데

"민첩 제일 높으신 분은 누구죠?"

" 나야."

설민준이 나섰다. 정찰에 민첩 특 화라. 잘 키우면 좋은 레인저나 어 쌔신이 될 거다.

"근력은?"

"8."

평균보다 조금 낮다. 저 정도 수치 면 나나 김태병을 들고 뛰기는 어 렵겠어. 몇 가지 상황이 겹치니 방 향성이 명확해졌다.

"……혹시 불 무서워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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