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화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흰 눈도깨비의 이마에 적중했다. 푸욱!
키에에엑! 키긱, 키이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안유라가 화살 을 쏘았다. 터럭벌레였다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두 번째 화살도 그대 로 허용했겠지만, 놈은 달랐다.
'피했어!'
흰눈도깨비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안유라의 화살을 피해냈다. 거기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달려나 갔다.
안유라가 올라타 있던 나무가 거 세게 흔들렸다. 놈이 나무 기등에 몸통을 들이박고 있었다.
"뭐, 뭐야!"
"기다려! 내가 유인할 테니까
안유수가 활시위를 당겨보지만 소
용없었다. 안유라를 타깃으로 삼았 는지 화살 두어 방으로는 꿈쩍도 않았다. 그사이 안유라가 탄 나무가 슬슬 기울고 있었다. 저대로 떨어지 면 최소 낙상에 흰눈도깨비에게 더 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안유수가 해결할 수 있을까?'
힐끗 바라보니, 패닉에 빠져 어떡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 이었다.
'이 정도가 최선인가.'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해야 했다.
따로 움직이는 것까진 나름대로 괜찮은 전략이었지만…… 첫째로,화살을 날린 후 장소를 바꿔야 했 다. 한번 화살을 날린 곳은 위치가 공개된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둘째로 안유라에게 이목이 집중됐 다면, 그 순간부터 둘은 역할을 분 담해 수행해야 했다. 안유라는 최대 한 더 시간을 끌면서 탱커와 유사 한 역할을 맡아야 했고, 그 동안 안유수는 메인 딜러로 많은 공격을 퍼붓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 거다.
'하다못해 눈을 공격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텐데.'
눈은 모든 몬스터의 공통적인 약 점이니 말이다. 실제로 흰눈도깨비공략법은 저 눈을 후벼 파는 것이 다.
"으아아악!"
안유라의 비명 소리를 배경으로, 익숙한 감각을 일깨웠다.
'공간 간섭'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그 짧은 순간. 그 찰나의 시간 사이로,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개중 내게 필 요한 정보를 골라냈다. 예를 들 면…….
'흰눈도깨비의 머리 위 좌표 같은 것.'
슈욱!
귓가에 바람소리가 났다. 허공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나를 보며 놈이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키에엑! 그 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내 다리를 공격하려 들었으나. 내가 더 빨랐 다.
촤악!
키에에에에! 케겍, 케에에에!
카람빗이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며 한쪽 눈을 갈라냈다. 참을 수 없는 통증에 놈이 두어 발자국 뒤로 물 러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악수였다.
"안유수!"
내 외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화살이 날아들었다.
파박!
케에엑!
반대쪽 눈에는 화살이 틀어박히자, 놈은 양쪽 시력을 모두 잃고 허우 적거 렸다.
"유라 먼저 구해!"
"알겠어!"
안유수가 안유라를 구하는 동안 나는 놈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시 력을 잃고 당황한 것도 잠시. 놈이코를 두어 번 킁킁대더니 내 쪽으 로 고개를 돌린다. 카람빗에 배어있 는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후욱!
놈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이 었지만, 그보다 내가 더 우위였다. 한 번 더 고유 스킬을 발동하자, 시야 가득 푸른 하늘이 들어찼다.
고개를 꺾어 바닥을 보니 바로 아 래 놈이 있었다. 공중에서 가볍게 한 바퀴 돌고 체중을 실어 낙하한 다.
콰득!
카람빗은 꿰뚫기보단 베는 데 특
화되어 있지만 무게를 실어 쑤셔 넣는 것도 못 할 건 없었다. 쑤욱, 카람빗과 더불어 깊숙하게 파고들 었던 한쪽 팔을 빼냈다. 털썩, 흰눈 도깨비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지금처럼……
뒤돌아서니 쌍둥이들이 멍하니 날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를 쓸 줄 아는 몬스터를 만 나면, 너희처럼 단순하기만 한 전투 방식은 허점투성이라 쉽게 무너져. 나 없이 일반 정찰조에서 마주쳤으 면 인명피해가 클 뻔했어. 이건 돌 아가서 내가 보고할 테니까, 너희는
방금 전투에서 너희가 어떻게 싸워 야 했을지 고민해 봐."
"웅……
"알겠어."
둘은 조금 멍해 보였다. 아무래도 천재로 추앙받다 보니 이런 격차를 느껴본 적이 없었을 거다.
'그런데 흰눈도깨비가 왜 여기까지 나타난 거지?'
이전에 내가 실내체육관에 있었을 적엔 터럭벌레와 일부 하급 몬스터 를 제외하곤 이 주변에 얼씬거리는 몬스터가 별로 없었다. 흰눈도깨비 같은 게 출몰했다면 모를 수가 없었을 텐데.
'……일단은 보고를 올리고, 주변 정찰을 강화하자고 말해봐야겠어.'
돌아가는 동안 쌍둥이들은 말이 없었다. 어쩐지 무언가를 골똘히 고 민하는 것 같기도 했다.
둥, 두둥!
입구 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 다. 기름 먹인 천을 말려서 두드리 는 것이었다. 정찰조가 돌아왔다는신호다.
사람들의 이목이 문으로 쏠렸다. 정찰조가 오늘은 무사히 다녀왔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나 역시 신 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몬스터 체액 특유의 역한 냄새가 확 풍겼다. 오늘 정찰은 B조. 설민 준이 이끄는 팀이다. 선두에서 걸어 오는 설민준은 팔뚝에 할퀸 자국인 난 것 말곤 멀쩡해 보였다. 뒤이어 하나둘, 몬스터를 끌고 오는 사람들 이 모습을 보였고……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 러하듯이. 하나, 둘, 셋, 넷, 다 섯…….
그리고 여섯, 일곱.
맨 마지막에 한 명이 거의 곤죽이 되어 업혀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마 죽을 것이다. 환자를 다른 천막에 넣어두고 설민준이 최 우도에게 향했다. 가는 길에 내게 턱짓했다. 나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 란 뜻이었다.
"뛰고 있어."
"헉, 허억……넹……
"빨리……흡, 다녀와……
오늘도 기초훈련 탓에 바닥을 기 다시피 하는 쌍둥이들을 뒤로하고최우도에게 향했다.
* * *
"어어, 설민준이……. 고생 많았네. 오늘은 어땠나?"
"한 명이 부상을 크게 입었어요."
내가 뒤따라 들어가자 최우도가 눈인사를 건넸다.
"상태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저런......
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갈 일은 늘어만 가는데, 인간의 육신은 연약해서 자꾸만 다치고 죽어갔다. 채워지는 생존자 수는 그보다 적고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골치가 아프 다. 적당히 처리하면 몬스터가 꼬이 기 때문이다.
"그리고?"
"터럭벌레가 서식지를 옮기려는 게 확실해요."
"크홈......
최우도가 안경을 살짝 내리며 설 민준을 응시했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설민준이 지도 가까이에선다.
"처음에만 해도 여기서, 여기까지 터럭벌레가 두루 나왔는데…… 오 늘 여기까지 가는 길에 단 한 마리 도 보이지 않았어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걸 보니 상 황이 심각하다. 터럭벌레는 서식지 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애초 에 강한 몬스터가 아니고 무리지어 사냥하는 게 전부인 놈들이니까. 그 런데 자기 구역에서 그렇게까지 안 보이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 이다.
'흰눈도깨비가 갑작스럽게 터럭벌
레의 서식지에 나타난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최근에 뭔가 달라진 점이라곤 그 것뿐이었다.
"결국 그렇게 됐나……
"자꾸 사냥하니 도망치는 거겠죠."
"그럼 어떤 몬스터를 만났길래 그 렇게 다친 건가?"
그 말에 설민준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정찰 스킬을 사용하니 보이더군 요. 터럭벌레는 도급 몬스터였는데, 그놈은……
정찰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 몬스 터의 이름까진 몰라도 등급은 눈에 보이게 된 모양이지.
"……D 급이었어요."
덜컹!
최우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인의 힘이라고 믿기지 않으리만 치 빠르게 설민준의 팔뚝을 붙잡았 다. 그리고 신중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확실한가……?"
"네. 겨우 도망쳐 나왔어요. 그 과 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한 거고요."
터럭벌레가 도망치는 이유가 있었 던 거다. D급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으니, 꽁지 빠지게 달아날 수밖 에. 흰눈도깨비도 그놈에게 쫓긴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처가 이곳에 있는 우리 는 도망칠 수 없다. 터럭벌레가 도 망쳤으니 음식 수급에도 문제가 생 길 테고…….
회귀 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D급 몬스터의 출현이라 니, 들은 적도 없다. 만약 회귀 전 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이 시기에 모조리 휩쓸려 나갔을 텐데. 내가 이것저것 바꾸기 시작한 게 뭔가영향을 주었을까? 지금 실내체육관 인원은 그때보다 2배가량 많다. 때 문에 물자가 더 많이 필요해 터럭 벌레를 배로 사냥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일까? 알 수가 없었다.
"그 몬스터, 어떻게 생겼어?"
설명을 들으면 어떤 녀석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덩치가 크진 않았어. 너무 빨라서 잘 보진 못했는데, 개처럼 생겼고 검은색에…… 머리가 세 개 달려있 었어."
케르베로스!
아주 유명한 전설 속 동물 아니던
가. 하지만 애석하게도 게이트 안에 서는 현실이다. 케르베로스는 얼굴 이 3개인 특징을 잡아 붙인 이름이 지만, 개처럼 생겼다고 지능까지 개 인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간단 한 대화가 통할 정도로 지능이 높 은 편에 속한다.
"까다롭네……. 케르베로스는 단순 무식한 몬스터들과 다르게 머리 세 개로 자기들끼리 토의를 하거든. 몰 이사냥을 하기도 하고, 함정을 파놓 기도 할 정도로 똑똑한 놈이야."
그렇다면 안씨 쌍둥이에게도 치명 적인 상대다. 녀석들은 생각할 줄 아는 상대에 취약하니까. 내가 대련을 해주면서 좀 나아지고 있긴 하 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거리가 좀 있으니 다행이지만, 조 만간 대책을 세워야겠네요."
내 말에 최우도가 고개를 끄덕였 다. 토벌대를 짜야 했다.
"어? 서하야!"
고개를 돌리니 송다정이 서 있었 다. 흙구덩이에서 뒹군 것 같은 차림이 었다.
"옷차림이 왜 그래?"
"어어, 나무를 베느라."
배시시 웃는 얼굴이 상황에 맞지 않게 해맑았다. 전투 인원……이라 고 말하기엔 애매한 위치지만, 장작 패기도 근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 니 꾸준히 하면 변화가 있겠지.
"우도 선생님이랑 무슨 얘기 했 어?"
"별 얘기 안 했어. 오늘 정찰조 보 고하는 거나 들었지."
그 말에 송다정이 살짝 얼굴을 굳
혔다.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겠 지. 심각한 상태로 돌아온 부상자는 끝내 사망했다. 시신을 화장하기 위 해 송다정이 장작을 패고 있었을 거다.
"오늘 정찰조 민준이가 다녀왔지? 걔도 많이 힘들어해?"
"그런 것 같진 않던데……
설민준에게서 동료를 잃어 슬픈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감정 표현이 드문 편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불만이나 까탈스러움은 선 택적으로 표현해도 슬픔이나 환희 같은 개인적인 감정은 곧잘 숨기는편이다.
"티는 안 나도 걔도 많이 힘들 거 야. 네가 잘 위로해줘."
아닐 것 같은데…….
"왜 다정 언니가 안 하고, 내가?"
슬쩍 장난 어린 어조로 묻자 송다 정의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달아 올랐다. 알기 쉬운 편이라니까, 정 말.
"내, 내, 내가 왜? 난 그다지 친하 지도 않은데……
"그래도 설민준이 초창기 멤버들 좀 애틋하게 생각하긴 하잖아."
내색은 안 하지만, 이따금 우리를 배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는 하 니까.
하지만 송다정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모르 면 말고.
" 데 어
앗에".
시간 안에 다 끝내야 하는 . 서하야, 나 이만 가봐야겠
"그래, 언니도 할 일이 많은데 내 가 붙잡아뒀네."
"이따가 봐!"
송다정이 후다닥 뛰어갔다.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지난 한 달 동안 나이만 먹 은 건 아니다. 내 끔찍했던 커뮤니 케이션 능력도 그나마 봐줄 만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 달 동안 얼 굴 마주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싸가지 없는 애'에서 '친해지면 괜 찮은 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지 않 았을까?
"다정 누나도 참 눈치 없어〜."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걸음이 들렸 다.
"이찬송."
"다정 누나는 언닌데, 왜 나는 이
찬송이야? 너무하네."
짐짓 우는 시늉을 하는 게 아주 능청맞다. 이찬송도 오늘 설민준과 함께 정찰을 나갔다 왔으니 피곤할 텐데. 옷도 안 갈아입고 내게 찾아 온 걸 보면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