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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6화 (16/361)

16화

"네. 아무래도…… 보스몹과……

어렴풋한 소리와 함께 정신이 들 었다.

"……조만간…… 네? 그건…… 어 린애한테……

무슨 얘길 하는 거지?

"……그런 방식은……. 아뇨…….

그렇다 해도……

누군가와 격한 토의를 하는 것 같 았다. 천막 너머로 들리는 소리라 희미했다. 혜원 언니 같은데…… 누 구랑 얘길 하는 거지?

서서히 정신이 들자, 아릿한 통증 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먹먹한 감각이었다. 손발이 둔탁했다.

" 깼냐?"

바로 옆에 조연호가 있었다. 뭐? 이걸 몰랐다고?

은신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닌데. 비 전투원이 옆에 있는 걸 모를 정도 로 기감이 둔해진 건 용납하기 어려웠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조연 호가 내 어깨를 지그시 내리눌렀다. 놀랍게도, 고작 그것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 다.

"진통제가 들어가서 움직이기 힘 들 거야. 마약 성분도 좀 있거든."

답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였다. 조 금 다정하게까지 들렸다면, 내 착각 일까.

아. 그래. 기억이 났다.

벨제부브 그 개자식이 선물이랍시 고 몬스터를 보냈고, 그걸 잡다가 역천이 거의 반 토막 날 뻔했다.

무기 손상이 아주 심각할 거다. 딜 러들도 수없이 다쳤을 테고. 힐러가 있다고 해도 마나가 무제한이 아닌 이상, 당분간 전력이 대폭 감소할 터였다.

그래서 마지막에 혜원 언니가 놈 의 눈을 공격한 틈을 타서 등 뒤에 올라탔고…… 곧장 꿰뚫렸지. 다리 에 구멍이 크게 났을 거다.

시트를 걷어보니 다리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수술을 해야 했을 텐 데……?

"내 힐링도 쏟아붓고, 포션도 좀 썼지. 아니었으면 다리 절단해야 했

을지도 몰라. 상처 부위 오염이 심 각했거든."

"포션을 썼다고?"

그게 얼마짜린데!

내가 갖고 있는 초급용 포션으론 턱도 없다. 이 정도 상처를 치료하 려면 거의 일반 가정의 1년 치 생 활비만큼은 써야 했을 텐데. 중소길 드 역천에 그만한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부 지원이었어. 하나밖에 없던 건데……. 뭐, 좀 아깝게 됐지."

무사히 빠져나가 되팔았으면 수익 이 짭짤했을 거다. 근데 그걸 길드원도 아닌 나한테 사용하다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말문 이 턱 막혔다.

"하……. 미안하다. 그런 일 겪게 만들어서."

조연호는 드물게도 암울한 얼굴을 했다.

"……프로 헌터인 우리가 널 지켜 주지는 못할망정, 네가 우릴 구한 꼴이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짙게 밴 자책에 숨이 막힐 지경이 었다. 힐러인 조연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그는 말 그대로, '후방지원' 헌터니까. 그럼에도 그는 연대책임인지 뭔지,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사실 그들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 들의 임무는 생존자 확인이지, 생존 을 돕는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그들은 '정찰팀'이다. 게다가 자신 들 목숨도 위험하지 않았던가. 그 상황에서 나까지 지켜달라는 건 무 리한 부탁이다.

헌터는 히어로가 아니니까.

"일단. 좀 더 쉬어. 이따 죽 갖다 줄 테니까 그때까지 한숨 더 자라."

그가 억지로 내 눈꺼풀을 가렸다. 여린 살결에 닿은 손바닥이 꽤나거칠었다.

약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벨제부브의 목에 칼을 꽂아 넣는 꿈을 꿨던 것 같기 도 하다.

꽤 과보호를 받았다.

그건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이렇게까지 보호하려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는 악에 받쳐 누가 말려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고 좀 진정했을 즈 음엔 이미 내게 대적할 헌터가 손 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나에게 쩔 쩔매는 사람들만 한가득이었다.

회귀한 뒤에도 실내체육관에 있을 때 내 위치는 한 명의 '전투인력'이 었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 남짓이긴 했지만, 나보다 더 어린 쌍둥이들도 있어 어린애 취급을 받진 않았다. 아주머니들은 날 좀 귀여워하고 싶 어 했지만 잘 다가오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완벽한 피 보호자 역할이 낯설었다. 혜원 언니 가 상냥하게 대해줄 때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회귀전에 내가 지금의 혜원 언니보다 더 나이가 많았단 걸 생각하면 조 금 얼떨떨해진다.

"자, 이걸로 끝!"

혜원 언니가 마지막 붕대를 풀었 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의 대부 분을 잠에 쏟아부어서 날짜 감각이 좀 흐렸다.

"다 치료됐다."

살살, 허벅지를 매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허벅지에는 흉터가 크게 남았다. 오염이 심각했다더니, 정말 그랬나 보다.

뚫렸던 구멍 테두리를 따라 검은

흉이 졌고, 마치 물이 사방으로 흐 르는 것처럼 흔적이 남았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바지를 입지 않는 이상 노출 될 일도 없고, 흉터보단 타투에 가 까워 보여서 신경 쓰이진 않았다.

"혹시 신경 쓰이면, 게이트를 나가 서 레이저 치료 받으면 사라질 거 야. 금액은 우리한테 청구하고."

"별로 신경 안 써요."

헌터가 흉 달고 다니는 것이 뭐 흠이라고.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기 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음…… 오늘, 손님이

좀 을 건데……

손님? 혜원 언니를 바라보니, 몹시 찔리는 것처럼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내게 뭘 속일 때 나오는 버릇인데. 뭘 감추는 거지?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을 마치고 혜원 언니는 도망 치듯 천막 밖으로 나갔다. 나도 아 주 오랜만에, 땅을 딛고 섰다. 다쳤 던 다리가 조금 어색하긴 했으나, 평소처럼 걸을 순 있었다. 뛰는 건 좀 연습해야 하려나.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왼쪽 눈 위아래로 새 흉 터가 생긴 정상준이, 처음 봤을 때 보다 험악해진 인상으로 해맑게 웃 었다.

"서하야! 치료 오늘 끝난다고는 들 었는데 벌써 걸어도 돼?"

그는 내가 천막 안에 있을 때도 종종 병문안을 왔다. 웃으면서 이제 다 나았다고 답하자 그가 정말 다 행이라며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다가오진 않았지만 한두 마디씩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떠나려고 했는데, 치료 때문

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어.'

벨제부브가 날 노리는 걸 안 이상, 이곳에 있을 순 없다. 스승님이 그 놈의 눈에 들면 또 회귀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제 몸 이 비교적 멀쩡해졌으니 적당히 떠 나야 하는데....

'헌터들 사이에서 몰래 도망치기는 어렵겠지.'

내 능력은 단거리 이동에 특화되 어 있어서, 정찰팀의 시야 밖까지 멀리 이동하긴 어려웠다.

정식으로 떠나겠다는 얘길 하고 가야 한다는 의미다. 애초에 이들과같이 움직이는 것부터가 정석적인 루트는 아니었다. 헌터들이 생존자 와 동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그러니까, 적당히 짐을 챙겨 다시 떠난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또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 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벨제부브의 장난질을 당해 내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옆 에 있으면 이번처럼 같이 휘말릴 테니까.

그때 순식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

다. 웅성웅성, 일제히 한곳을 바라 보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뭐지. 무 슨 일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들 사이로 한 무리가 걸어왔다. 역 천 사람들은 옆으로 갈라져 그들이 지나갈 길을 터주고 있었다.

정찰팀과 다르게 철저히 무장한 사람들이었다.

시커먼 제복 차림에 군화를 갖춰 신어, 군인 같은 분위기였다. 발걸 음에도 각이 잡혀 있는 것만 같다. 맨 앞에 선 남자의 가슴팍에, 타오 르는 듯한 불꽃 문양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홍염!'

국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길드였다. 이 게이트에 홍염이 참가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남자까지 왔다고?'

맨 앞에 걸어오는 남자. 무표정한 얼굴에 무심한 눈빛이 트레이드마 크인, 홍염의 에이스. 전청운. 고전 적인 동양 미인 같은 얼굴을 한 사 내였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회귀 전에는 자신의 길드를 갖지 않고 타인의 길드에 들어간 헌터들 중 가장 랭크가 높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이 토벌대에 있

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너. 한서하?"

전청운이 다가와 물었다. 부정할 이유도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미끼군."

무슨 소리지?

하지만 내가 의아함을 표할 새도 없이 우리 둘 사이에 혜원 언니가 끼어들었다.

"이런! 홍염 분들 오셨네! 생각보 다 일찍 오셔서 제가 마중도 못 나 갔네요."

하하, 어색하게 웃는다. 나랑 전청

운이 눈도 못 마주치게 하려고 나 를 등 뒤에 숨긴다. 무슨 일이람. 아까부터 영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혜원 언니가 내게 해가 될 일을 할 리는 없으니 얌전히 뒤에 숨었다.

"마중 나올 필요는 없다. 우리가 더 강하니까."

"아, 예에, 뭐, 그러시겠지마안."

천연덕스럽게 혜원 언니를 도발한 다. 딱히 무례하다는 자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한두 번이 아닌지, 옆에 서 있던 남자가 태연 하게 전청운을 무시하고 이야기를이어나갔다.

"역천의 길드장님 아니십니까. 이 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 내셨죠?"

"오랜만이네요, 기택 씨! 저야 잘 지냈죠, 하하하."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기택이라 불린 남자가 슬쩍 내 쪽을 바라봤 다. 여우처럼 길게 찢어진 눈매라 사실 분간이 잘 안 갔다.

"그나저나 설명이 제대로 안 되었 나 보네요."

".저희는 분명, 거절했는데

"정부 방침이었단 걸 아시지 않습 니까. 이거 왜 이러세요. 다 아실 만한 분이."

아하. 정부 방침. 이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혜원 언니가 하던 통화, 나랑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이유. 전청운이 내 뱉은 '미끼'에, 저 남자는 이제 정 부 방침을 운운하니 말이다.

게이트가 발발하면서 소수의 인권 까지 모두 장담하긴 어려워졌다. 현 실적으로 말이다. 국가 역시 국민의 숫자가 많아야 이득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방안에 주목하 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워진 정부 방침. '게이트 안에서'는 다수의 생명을 살릴 수 있으면 소수의 희생을 묵인해도 책 임을 묻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희생해야 할 소수 는 분명…… 나 자신이다.

이들은 보스몹을 처리하러 온 클 리어팀이고, 나는 보스몹이 주목하 는 대상이니까. 날 미끼삼아 보스몹 을 끌어내 보겠다는 심산이겠지. 보 스몹이 직접 오지 않더라도, 그 자 식이 보내는 몬스터를 붙잡아 정보만 적당히 캐내도 좋을 거다. 이러 나저러나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인 셈이다.

이 게이트의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는 건 모든 길드에서 예측하는 바 이니까.

홍염도 아마 날 채가려고 수많은 경쟁을 뚫었겠지. 이들이 내 앞에 서기까지 무엇을 희생했을까? 얼마 나 많은, 다른 이권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왔을까?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 애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고..

"게이트 안에서 나이는 무관하죠."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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