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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화 (17/361)

17화

두 남자 옆에서 로브를 뒤집어쓰 고 있던 작은 인영이 입을 연 것이 었다. 키 작은 사람인가보다, 했는 데 어린아이였나. 아이가 쓰고 있던 로브를 내렸다.

그 움직임을 따라 스태프에 달려 있는 보석이 차르륵 소리를 냈다.

"이 안에서 그런 건 의미가 없으

니까요."

냉담한 어조였다. 고작해야 열몇 살짜리 아이가 내뱉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말이었고. 게이트에 입장 하는 헌터는 나이 제한이 있다. 그 러니 아주 앳된 외모긴 하지만…… 아무리 어려도 중학교 2학년일 거 다. 나이로 따지면 15세. 안씨 쌍둥 이들보다도 3살이나 어리다.

하지만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됐 고, 게이트에 처음 들어온 초보는 아닌 것 같으니 저 애는 최소 16살 은 될 거다. 그렇다 해도 중학교 3 학년 아이가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 드는 게이트에 들어와 있는 게 정상은 아니다.

주변에서 놀란 듯이 숨을 들이켜 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합법이라 해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부모는 제 아이를 게 이트에 떠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 마…… 뭔가 사연이 있겠지.

"최대한 빨리 보스 몬스터를 제거 해야 더 많은 생존자들이 이 고통 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다. 혜원 언 니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 었다. 무슨 말을 내뱉더라도, 저 아 이에게 모욕일 테니까. 목숨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진부한 정의관 따 위는 이 게이트에서 의미가 없다. 노련한 헌터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겠지.

그저, 내가 혜원 언니의 동생과 비 숫한 또래라서. 그리고 함께하는 동 안 정이 들어 그럴 거다.

"전 괜찮아요."

"서하야!"

"맞는 말이니까요."

혜원 언니가 날 팔아넘기게 하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

무장한 헌터들을 피해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 이들은 정찰팀과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 나겠지. 자칫하면 도망치려다가, 또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이해가 빨라서 좋군요."

남자가 뱀처럼 속살거렸다.

"안에서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 * *

내 옆자리에 혜원 언니가 앉았다. 멋모르는 애한테 얼토당토않은 조 건을 내걸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는 김기택이라고 합니다."

자기 이름을 밝힌 남자가 담백하 게 악수를 했다. 사르륵 접히는 눈 매가 간사하다.

"우선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할게 요."

김기택의 좌우로 전청운과 로브를 다시 뒤집어쓴 아이가 앉았다. 방금 까지 병동으로 썼던 천막이라 소독 약 냄새가 가득했다.

"우선. 이 게이트의 보스몹과 언제 처음 접촉했습니까?"

벨제부브를 말하는 거다. 역시 그 게 목적이었군.

"……제가 있던 곳 근처에 케르베 로스에게 쫓겨 도망치다 다쳐서 돌 아온 정찰대원이 있었어요. 그래서 곧장 토벌대를 꾸려서 나갔죠."

"케르베로스를 상대로요?"

"네."

"무모했네요."

김기택이 단정 지었다. 그렇게 생 각할 법도 하지. 자살행위처럼 보일거다.

"아마도요. 흔적을 쫓아가다가 중 간에 텐트를 쳤는데…… 저와 다른 동료 한 명이 문득 정신을 차려보 니 놈의 결계 안에 들어가 있었어 요."

"……몬스터에 대해서 잘 아시는 군요?"

보통 케르베로스에 대해 알아도 그 고유 능력까지는 모를 테니까. 하지만 난 10년도 넘은 베테랑 헌 터다. 지금은 게이트 덕후인 척할 테지만.

"관심이 많아서요."

"뭐, 새하나교, 그런 겁니까?"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악명 높은 사이비 단체를 갖다 대니 기분이 영 나빴다. 물론 지금은 과격화되기 전이니 그냥 자기들끼리 게이트가 신벌이니 어쩌니 하고 있을 뿐이겠 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아무튼 그 케 르베로스는 저한테 전할 말이 있다 고 했어요. 자기 주인이 보냈다고 요. 저보고 자길 찾아오라는 내용이 었는데...

"찾아오라 했다고?"

혜원 언니가 다급하게 물었다.

"널 찾아온다는 얘긴 없었어?"

테이블의 시선이 모조리 내게 꽂 혔다. 아, 이게 본론이겠지. 물론.

"그런 얘기는 없었어요. 뭐라 했더 라……. 태양이 뜨고 지는 곳? 그 곳에 있겠다고 했어요."

"태양이 뜨고 지는 곳……

김기택이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 다. 하지만 정찰팀도 아닌 이들이 그런 곳을 알 리가 없다. 혜원 언 니가 혹시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다른 정찰팀에게 물어보겠다면서 자리를 떴다. 나가기 전에 김기택에 게 허튼짓 할 생각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꽤나 보호받고 있네요."

김기택은 어쩐지 즐거운 기색이었 다.

"그러고 나서는요?"

"그 이후는 혜원 언니에게 듣지 않았나요?"

내 말에 그가 멈칫했다.

"몬스터를 보내 날 위협했죠. '선 물이 좋았냐'고 물으면서."

다시 생각해도 빌어먹을 자식이다.

"당신들은 내 신병을 확보하기 위 해 온 거죠?"

"맞습니다. 이해가 빠르군요."

그렇다면 나 역시 제시할 것이 있 었다.

"원하는 조건 대부분은 수용할 수 있어요. 대신, 나도 조건이 있죠."

"어떤 겁니까?"

"역천 사람들과 따로 움직일 것."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떠 나야 했다.

"그게 내 조건이에요."

그는 진심을 가늠하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기를 잠시, 이 내 헛웃음 치며 상체를 뒤로 쭉 뺐다. 다리를 꼬면서 두 손을 깍지 껴 자연스럽게 앞에 둔다. 거만한 자세였다.

"이거…… 아주 유감이군요. 역천 은 꽤나 당신을 아끼는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이 협상 테이블 위에서 입을 열 자격이 없 습니다."

급격한 태세 전환이었다. 아까의 그 정중한 사내가 맞나 싶을 정도 다.

"당신은 말하자면, 그래요. 이리저 리 휩쓸리는 낙엽 같은 존재인 거 죠. 낙엽이 바람을 거스를 수 있습

니까? 아니죠. 그런 것처럼 당신도 지금 우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뼈아프게도 맞는 말이다. 내 협조 를 구하기 위해 약간의 편의는 봐 주겠지만, 그들과 내가 동등하게 조 건을 제시할 수는 없다.

"우린 홍염입니다."

그가 자신의 가슴팍에 붙은 마크 를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조무래기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 재수가 없어서 뭐라 말을 꺼낼 수도 없었 다.

"말이 좀 심했나요? 죄송합니다. 상황 파악을 좀 하셔야 할 것 같아 서. 우리가 역천과 따로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모르시겠지만, 클리어팀은 전투요원만 데리고 오 기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은 정찰팀 의 도움을 받아야 하거든요. 이 구 역의 담당은 역천이고, 우린 그들과 함께 있죠."

그는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진실을 짧게 덧붙였다.

"지금 그들을 거부하고 다른 정찰 팀을 찾겠다고 하면, 이들은 큰 모 욕감을 느낄 겁니다. 그건 면전에 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약하다'고

말하는 꼴이거든요. 우린 역천과 등 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길드 간의 관계 때문이 란 거다. 짜증 나는 서두로 시작한 것치고는 이유가 합리적이라 더 허 탈했다. 차라리 어쭙잖은 사유였으 면 거대 길드 소속이라 억지를 부 린다고 속으로 비웃었을 텐데.

그때 천막이 열리면서 혜원 언니 가 돌아왔다.

"연락 다 돌려봤는데 딱히 짐작 가는 데는 없다네. 혹시 발견하면 알려주기로 했어."

그녀는 싸늘한 내부 공기에, 조금

날카롭게 물었다.

"너네 무슨 얘기 했어?"

"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와 김기택의 말이 겹쳤다. 그는 생긋 웃었지만, 나는 영문 모를 불 쾌감에 치를 떨었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우리의 협상이 결렬되고 나서 그 들은 돌아가며 내 호위를 섰다. 역천은 밖을 정찰하며 생존자를 찾고, 홍염은 오롯이 내 주변을 지켰다. 정확히 말하면 날 지킨 건 아니다. 벨제부브가 내게 보낼 메시지를 놓 치지 않기 위해 감시할 뿐이었으니 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에서 다시 한번 벨제부브 가 장난을 치며 몬스터를 보내면 혜원 언니가 또 위험해진다. 한 번 더 허망하게 언니를 잃을 순 없었 다. 다시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볼 줄 몰랐는데, 매정하게도 꿈에서조 차 뒷모습만 보여주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위험에 빠뜨리겠는가.

"음식이 식는다."

담당으로 붙어 있던 전청운이 툭 내뱉었다. 생각에 잠기면서 숟가락 질이 멈췄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본래 처음으로 이 게이트에 투입 되는 클리어팀은…… 전멸했을 거 다.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져서 실종으로 처리됐지.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 전청운 이 끼어 있을 리가 없다.

'다른 게이트 클리어하면서 분명 마주쳤으니까.'

이 게이트 클리어팀으로 들어갔다 면, 그 이후 나랑 마주칠 리가 없 지 않은가. 게다가 그는 랭킹도 상 당히 높은 헌터로 이름을 날렸었다. 길드장들을 제외하면 제일 랭킹이 높았으니, 사실상 게이트 클리어에 투입될 수 있는 가장 실력 있는 헌 터였다.

"전청운 씨."

내가 부르자 그가 날 쳐다봤다. 왜 불렀냐는 물음을 담은 표정으로. 아 니, 사실 무표정해서 잘 모르겠지만그런 느낌인 것 같다. 아마도.

"이 게이트에 왜 들어왔어요?"

"클리어하기 위해서다."

아니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여긴 위험하잖아요. 역대 최대 규 모라고 하고."

"게이트는 항상 위험하다."

벽을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다. 회 귀 후 게이트에 처음 떨어졌을 때 의 나도 이만큼 의사소통 능력이 심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도리어 그는 왜 당연한 것 을 묻느냐는 듯,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다. 됐어요."

대화를 포기하고 숟가락질이나 다 시 시작했다. 그러자 그도 더 묻지 않고 그릇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남자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기는 어 려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고도로 지능화된 거절이 아니었을까? 그렇 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태연한 낯빛 이었지만.

'벨제부브에게 이것만 쓸 수 있으 면 될 텐데.'

품 안의 돌을 슬쩍 매만졌다. 케르 베로스가 죽은 뒤 나온 아이템.

'케르베로스의 맹약'.

여기에 대고 혜원 언니를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만 있다 면, 모든 것이 해결이다.

'하지만 발동 조건은, 반드시 면대 면으로 마주할 것. 서로 동의한 내 용일 것. 돌에 손을 겹쳐 올리고 음성으로 맹약 내용을 말할 것. 이 렇게 3가지로 꽤 까다로운 편에 속 해.'

날치기로 몰래 맹약을 맺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무조건 상호 동의하 에 맹약을 체결해야 한다.

나는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

를 썼다. 내게는 10년 가까이 지난 옛날 일이라…… 완벽하게 기억날 리 없었다. 그래도 벨제부브와 관련 된 기억들을 하나라도 더 떠올리려 고 노력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벨제부브와 계약한 흑마법사를 전쟁터에서 만 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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