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챕터: 게이트 출입 자격시험
병실 안으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얼 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상태를 체크했다. 복부의 붕대를 풀고 소독 한 뒤 다시 감았다. 불편한 점은 없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답했다.
따분한 병실에서는 TV 보는 것
말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TV를 틀면 온통 게이트에 대한 얘기뿐이 라서 오래 보고 싶지가 않았다.
이윽고, 시간이 되면 날 보러 오는 손님들이 있다.
"서하야〜 언니 왔다!"
혜원 언니가 발랄하게 문을 열며 들어왔다. 그 뒤를 조연호가 따르고 있었다. 입원한 지 벌써 세 달이 지났는데도 틈만 나면 찾아와 말동 무를 해주곤 하니, 고마울 따름이 다.
"혜원 언니. 저 어차피 며칠 뒤면 퇴원이니까 안 찾아오셔도 돼요. 요
즘 많이 바쁘잖아요."
"아냐아냐〜 내가 너 찾아올 여유 하나 없겠니? 일도 잘 마무리되고 있어!"
역천은 지금, 홍염과 법적 분쟁 중 에 있었다. 이유는 그야, 당연히 S 급 성물인〈성배〉때문이다. 해당 히든 게이트에는 혜원 언니와 나도 참여했으니까. 혜원 언니는 역천도 성배에 지분이 있음을 주장했 고…… 그 비율을 정확히 하기 위 한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게 연호야, 너까지 들어왔으 면 딱 홍염 세 명에 그 외 사람들
세 명이라 질질 끌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했잖아요……. 힐러는 못 들어 가는 구조였다니까요."
"알아. 그래도 아깝다 그 말이지. 걱정 마, 서하야. 언니가 서하 몫까 지 제대로 챙겨줄 테니까."
조연호가 억울하다는 듯이 툴툴댔 다. 어차피 정말 3대3으로 들어갔 어도 어떻게든 비율을 높이고 싶다 면 법적 공방은 어쩔 수 없는 수순 이었을 거다.
"하여튼. 이제는 '홍염' 이름만 들 어도 진저리가 난다니까."
혜원 언니가 내 침대 난간을 사라 락 쓸며 중얼거렸다.
"언니. 그때 일은 저도 동의한 거 였다고 분명……
"그래! 그게 문제야, 이 순딩아! 그 위험한 걸 그렇게 생각도 없이 '네, 알겠습니다.' 하면 어떡하니? 저번에 홍염이 처음 찾아왔을 때도 그냥 괜찮다고 할 때부터 내가 알 아봤어야 했는데! 그 개자식들이 애를 꼬셔서 험한 꼴을 보게 해?"
혜원 언니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 다. 조연호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였다. 나는 어색하게 하하,웃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러운 게이트 클리어 소식, 그리고 직후에 엉망이었던 내 모습 에 크게 충격을 받은 혜원 언니는 홍염 길드장의 멱살까지 잡았다고 한다. 나는 수술실에 있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김기택도 기절 중 이었고 전청운도 부상이 적지 않았 으니 그들도 병원으로 실려 갔겠지. 순하랑 멱살을 잡을 순 없으니 그 쪽을 잡은 것 같은데…….
참 무모한 일이다. 홍염도 이 일이 언론에 밝혀지면 좋은 꼴 못 볼 걸 알아서 조용히 넘어갔으니 망정이 지, 그런 대형 길드에게 중소길드가덤비는 건 사회적 죽음과 다를 바 없다.
뭐. 어찌 됐든 지금 난 겨우 스무 살이니, 그런 날 이용해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긴 했다. 그 과정이 다소 거칠 기도 했고.
"이따가 헌터관리국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지?"
"네. 이제 곧 퇴원이니까요."
그동안 기다린 것도 대단한 일이 다. 당시 내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 에 양해해준 거겠지.
연화도 게이트의 기여도 1등은 나
다.
공식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으나, 홍 염 쪽 관계자 일부와 정부 측 일부 만 알고 있는 상태다.
나 역시 괜히 시끄럽게 만들고 싶 진 않고…… 기여도 1등이 아니라, 던전 클리어에 기여도가 있다는 사 실만으로도 온갖 곳에서 연락이 와 휴대폰을 꺼둘 정도니 말이다. 정부 측에서도 쓸모 있는 인재는 국가에 귀속시키고 싶어 한다.
군부는 언제나 열악하지만, 동시에 안정적이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지 다.
"아카데미도 제안할 것 같은데 잘 생각해보고."
"그럴게요."
나는 슬며시 웃었다. 누군가의 걱 정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니까. 혜원 언니는 한동안 그렇게 떠들다가, 조연호가 '이제 슬슬 가셔야 해요, 길드장님.' 하고 말을 꺼내자 헐레벌떡 사라졌다. 언 제나 그렇지만, 참 사랑스러운 사람 이었다.
내가 지켜낸 사람이고.
혜원 언니의 말처럼, 오늘은 헌터 관리국 사람이 오기로 한 날이다.
기본적으로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각성자가 된 사람들은 그 위기 속 에서 살아남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지금 은 아마 드물게도 루키들의 대호황 시대일 거다.
그 속에서 국가는 아카데미를 권 유하거나, 예비헌터에게 의무교육을 제공한다.
모든 각성자가 헌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 하니까.
"안녕하세요, 한서하 씨. 헌터관리 국에서 온 신동운이라고 합니다."
샐러리맨 느낌이 나는 남자가 웃 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저 양복 아래 단련된 육체 가 숨어있을 것이다. 헌터관리국은 헌터와 육체적인 다툼을 벌일 때도 투입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현직 또는 전직 헌터다.
"아마 대부분 아시는 얘기겠지만,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서하 씨의 경우, 실내체육관의 생존 자분들 인터뷰나 역천과 홍염 분들 의 말을 종합해봤을 때 상당한 잠 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국립헌터아카데미를 권유해드 리고 싶은데, 혹시 생각해본 적 있
으십니까?"
매년 국가 공립 헌터 적성 검사를 통해서도, 불시에 열린 게이트를 통 해서도. 수없이 공급되는 것이 각성 자다. 그렇다면 길드들은 자신의 신 입들을 어디서 구할까? 물론 영화 처럼, 우연히 들어간 게이트에서 능 력 있는 신입을 발견해 데려오면 좋겠지만.
그 별처럼 많은 헌터 지망생들 사 이에서 어떻게 유망주들을 골라낸 단 말인가.
그래서 도입된 것이 바로 아카데 미 제도다. 일종의 엘리트 코스로,대형 길드들은 아카데미 졸업생들 을 주로 채용해간다. 3년의 교육과 정과 실습을 걸쳐 나오는 이른바 '경력 있는 신입' 같은 느낌으로, 보다 잘 제련된 신규 헌터들이다.
"죄송하지만 아카데미에 들어갈 생각은 없어요."
"그거 아쉽군요..... 혹시라도 생 각이 달라지신다면 연락주세요."
그가 명함을 건넸다. 적당히 챙기 는 시늉을 했다.
"헌터로 활동할 생각이 없으신 겁 니까?"
"그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바로 '게이트 출입 자격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시군요."
신동운이 챙겨온 서류를 내 앞에 늘어놓았다.
"서하 씨의 퇴원 일정을 고려하면, 2주 뒤에 있을 자격시험이 가장 적 합해 보입니다. 아시겠지만 이 교육 과정은 게이트 출입 자격을 테스트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응시할 경우 크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각성자들이 아카데미에 들어 갈 순 없다. 아카데미는 매년 그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그렇다고 최소한의 능력도 없는 이들을 무작정 게이트에 입장하게 해 줄 수는 없 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신규 헌터가 되려는 각성자들이 필수로 통과해 야 하는 의무 시험, '게이트 출입 자격시험'이다.
해당 과정을 통과한 이들이 비로 소 게이트에 들어갈 자격을 쥐는 거다. 물론 일반적인 신입이 자력으 로 통과하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여타 길드들이 운영하는 사 설 아카데미나 전직 헌터들이 모여 운영하는 헌터 아카데미 출신들이 주로 합격한다.
"신청 서류도 혹시 몰라 준비해왔 으니 두고 가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홍염 길드 쪽에서 서하 씨와 접촉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셨 습니다.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았으니 서하 씨의 허가가 없으면 출입이 통제됩 니 다만, 만나보시 겠습니 까?"
"이름을 알 수 있나요?"
"김기택 헌터, 전청운 헌터 그리고 순하랑 헌터입니다."
"……나중에, 제가 직접 찾아가겠 다고만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홍염은 다시 만나기 좀 껄끄러웠 다. 지금 혜원 언니와 사이가 나쁘 기도 하고…… 게이트에서 나온 이 상, 거대 길드와 얽혀서 좋을 일은 없다.
'아마 스카우트 제의를 다시 하겠 지.'
하지만, 내가 홍염에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다. 36번 정도 더 회귀한다 면 모를까.
"그리고…… 일부 관계자들만 아 는 사실이긴 합니다만. 한서하 씨가 이번 게이트 클리어의 기여도 1둥 이라는 건 들었습니다. 아직 해당
습득물을 신고하지 않으셨던데, 게 이트 종료 후 3개월 안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될 수 있 으니 조속한 처리 부탁드립니다."
"아, 네. 잊고 있었네요."
나도 모르게 침대 옆을 훑었다. 지 독히도 익숙한 것이 손끝에 걸렸다.
"그게 그 아이템입니까? 이번 게 이트 클리어 보상인?"
신동운이 흥미롭다는 어투로 말했 다. 그야, 누구나 눈이 돌아갈 거 다. 이번 게이트의 보상이 어마어마 했다는 건 홍염의 습득물 신고를 통해 알고 있겠지. 기여도 2등이나3등에게 어떤 아이템이 돌아가는지 는 잘 모르지만.
이전에도 나와 함께했었고, 이번에 도 내 옆을 지키는 내 동반자.
내 소울메이트.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자 실린더 가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돌았다. 회전 실린더가 특징인 총기, 리볼버 였다.
"총기라……
물론 겉모습만 총기고 실제 총알 이 든 것은 아니다.
안에 담아서 쏘는 것은 어디까지
나 마나 또는 마력석이다. 텅 빈 실린더를 보여주자 신동운도 조금 안심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이런 시대라지만, 총기는 다소 위협감을 줘서 말이죠. 아직까 지는 소지 허가에 좀 보수적인 편 입니다. 평상시에는 사용이 금지될 가능성도 있으니 미리 알아두시는 편이 좋겠네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게이트 외의 공간에서 총집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금지했으니까. 애초에 게이 트가 아니면 꺼낼 일이 별로 없어 서 크게 상관은 없었다. 저 규제도 톨룩의 침입이 본격화되면서 죄다무너졌고.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 험 신청 서류랑 게이트 습득물 신 고 서류 작성해서 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신동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 를 건넸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병실에는 나 와 아이템만이 남았다.
살살 총신을 쓰다듬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흑색 리볼버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 숨겨진 힘은 단순히 그것 뿐만이 아니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노이트 리볼버(귀속)〉
등급: SSS(잠금)
설명: 마력을 탄환 삼아 쏘는 리 볼버입니다. 소유자의 영혼에 귀속 되며 주인과 함께 성장합니다. 일반 탄환은 무제한, 특수 탄환은 하루 최대 6번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 수 탄환은 1회 사용 후 재장전까지 5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부가효과: 특수 탄환의 효과는 아 래와 같습니다.
1. 아늑한 바람: 탄환에 적중당한 대상은 일정 시간 대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숙련도에 영향을 받습니 다.(30s)
2. (잠금)
3. (잠금)
4. (잠금)
5. (잠금)
6. (잠금)
그래. 돈 주고도 못 사는 무기다. 소유자에게 귀속되어 함께 성장하 는 '에고'를 가진 무기 말이다!
아직은 대부분의 기능이 잠겨있고, 숙련도도 낮지만 차근차근 함께 성 장해나갈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근거리, 원거리 둘 다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 딱 맞는 무기다. 내 사격 실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음, 사실 돌이켜보니 그냥 머리에 대고 총을 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 다. 근접 무기에 가깝다고 해야 할 지도.
당연히 단검이나 다른 서브 무기 를 함께 써야겠지만, 시간이 흐를수 록 내게 꼭 맞는 능력들이 진화해 갈 것이다.
노이트를 한참 응시하며 우리 둘 이 나눴던 추억들을 떠올리다가 신 동운이 두고 간 서류들이 눈에 들 어와 차근차근 작성했다.
2주 뒤에 있을 '게이트 출입 자격 시험'만 통과하면 일단 헌터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니 급한 불은 끈 것이다. 게이트가 이전보다 훨씬 일 찍 클리어됐으니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 다.
톨룩의 침입까지 앞으로 5년이다. 단순히 회귀하기 전을 기준으로 생 각했을 때의 계산법이니, 더 이르거 나 늦을 수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 놈들을 이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게이트에 출입하게 되면 내가 얻 을 이득이 하나 더 있었다. 이계의 배신자, '테오'가 남긴 안배들.
그것들을 먼저 찾아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