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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4화 (34/361)

34화

그 이후로도 3일 내리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몬 스터가 나타났다는 소리만 들으면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가야 했다. 몇 번이고 합을 맞추는 과정에서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쿠웅.

태산개미의 거대한 몸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민달래가 퀭한 얼굴로 제 방패를 만지작거렸다.

"젠장.…"

드물게도 거친 소리를 했다. 때아 닌 철야에 몬스터들과 수십 번 부 딪쳤으니, 체력 소모가 가장 클 거 다. 모두들 지쳐있었다.

'……공격력이 아니라, 생존력과 지구력 테스트인가.'

헌터들의 가장 기본기라고 할 수 있으니. 평가요소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태산개미를 해치운 뒤 다들 말없 이 자리에 앉았다. 몬스터를 죽일 때마다 힌트가 함께 왔으나 이젠 힌트에 기뻐할 여력도 없는 것 같 았다.

'나야 익숙한 일이지만, 나머지는 많이 힘들어 보이네.'

그래도 제법 잘 버텨주고 있었다. 힘들다고 뻗댈 법도 한데, 인내심 좋게 이 강행군을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나와 이운우의 기준은 여타 지망생들보다 높은 편이라, 우리의 하루 이동 거리는 일반 정찰 헌터 들보다 조금 뒤떨어지는 정도였다.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지망생치곤 대단한 거지.'

특히나 민달래와 김주일이 별말 없이 따라오는 게 꽤나 의외였다.

'몇 가지 고칠 부분을 내가 충고해 주긴 했지만.'

그 이후로 기가 좀 죽은 것 같기 도 하고. 뭐, 다소 생각 없이 말하 는 경향이 있지만 20대 초반에 사 회 경험 없는 아이들이니 어쩔 수 없는 것도 같다. 나쁜 애들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좀 철이 없을 뿐이 겠지.

연화도 게이트 안에서도 혼자 움

직이기도 했던 나다. 며칠 철야하는 것 정도는 익숙하다. 힘 빠진 이들 을 뒤로하고 내가 태산개미의 배를 갈랐다.

"……아래?"

쪽지에는 분명 '그 아래'라고 적혀 있었다. 동서남북도, 좌우도 아니고 '아래'라고? 대체 무슨…….

" 아."

어쩐지 태산개미가 갈수록 많아지 는 것 같더라니. 나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부드러운 흙바닥이 었다.

당연하게도, 개미들은 개미굴을 지

어 생활한다. 태산개미도 비슷한 습 성을 갖고 있었다.

'개미굴 안에, 두루마리가 있다?'

* * *

"으으……. 이게 맞나?"

파스스……. 흙이 자꾸만 미끄러져 흘렀다. 개미들이 다니는 입구니 인 간이 내려가기엔 불편한 구조일 수 밖에 없었다. 워낙 덩치 큰 놈들이 라 개미집보단 지하로 나 있는 거 대한 동굴에 가까웠다.

"조심해요."

발 한번 삐끗하면 저 아래로 떨어 질 수도 있으니. 내 말에 다들 고 개를 끄덕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안에 있는 게 맞겠지?"

"아마도요. 아래라고 했으니, 여기 가 맞겠죠."

"그치만…… 여왕개미는 원래 보 스 몬스터였잖아. 우리가 상대할 만 한 몬스터가 아닌데……

그 말도 맞다. 고작해야 초보 헌터 4명이 상대할 몬스터는 아니지. 그 러니 시험관들도 우리가 여왕개미를 직접 상대하도록 두진 않을 거 다.

'고작해야 여왕개미의 방에서 몰래 가져오거나, 경비가 삼엄한 개미알 방에 다녀오거나. 그 정도겠지.'

"걱정 마세요. 제가 전에 왔을 때 들었는데, 여왕개미는 10년을 주기 로 태어난다고 했어요. 저번 여왕개 미가 죽은 지 6년밖에 안 됐으니 아직 여왕개미는 없을 거예요."

이운우가 웃으며 덧붙였다. 과연. 그렇다면 여왕개미의 방에 두루마 리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빈 방이 라 해도 자기들 우두머리의 방이니철저히 관리할 거다. 어떻게든 들어 가서 두루마리를 빼돌려야 할 텐 데…….

"쉿!"

-키 루루.키 룩...

우리가 숨죽인 사이, 태산개미 다 섯 마리가 스쳐 지나갔다. 한 걸음 만 더 나갔으면 우릴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들을 지날 때마다 어디서 개미가 나타날 지 모르니 긴장의 연속이었다.

가뜩이나 지친 이들은 체력의 한 계를 시험하는 기분일 거다. 끝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은 정신적인피로도 상당하다. 온통 흙벽에 흙바 닥뿐이라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여기 아까 왔던 데 아냐?"

"아닌 것 같은데……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겹 치면서, 급속도로 지쳐갔다.

배려와 상냥한 어투는 여유에서 나오기 마련. 조금씩 예민해지는 말 들 사이사이 가시가 돋쳐 있었다.

"아까 왼쪽으로 가야 했다니 까……

"다 같이 합의해서 오른쪽으로 갔

잖아요."

"나 빼고 너희끼리 오른쪽으로 가 자 하니까……! 휴…… 됐다. 말을 말자."

좋은 신호는 아니지만, 흔히 있는 일이었다.

프로 헌터들도 게이트 안에서 크 게 싸우고 갈라져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좀 더 경험을 쌓으면 고작 기분 때문에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는 법을 배우겠지만.

"……여기만 홁 색이 달라요."

이운우가 작게 속삭였다. 다들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갈색 흙이 아니라, 적색 흙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였지?

아닌 척했지만 나도 집중력이 크 게 떨어진 상태였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아요……

"함정일까?"

"그럴지도요."

나랑 이운우만 적색 흙 위에 서 있었다. 우리가 손짓하자 민달래와 김주일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갈 색 흙 위는 그나마 안전하겠지.

"……천천히 움직여볼까요?"

"제가 먼저 움직여볼게요."

나는 떨어진다 해도 공간 간섭으 로 빠져나올 수 있겠지만…… 이운 우는 아닐 거다.

"하나……둘……

작게 숫자를 세는데, 달갑지 않은 소리가 울렸다.

달칵.

고개를 드니, 김주일이 창백한 낯 을 하고 서 있었다. 그의 발밑, 흙 더미 사이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드러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도…… 이 함정의…….

쿠구구구구궁!

흙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쓸려 내 려가기 시작했다. 젠장!

이윽고 몸의 균형을 잃고, 우리는 분명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발 에 닿는 것 없이 허무한 감각에 등 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나도 모 르게 스킬을 쓰려고 감각을 끌어올 리고 있는데,

"꽉 잡아요!"

이운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생명체와 같이 이동할 순 없어!'

본능적인 거부감이 스킬 발동을 끊어냈다. 단 한 번도, 나는 생명체와 함께 공간 이동을 한 적이 없 다. 아주 잠깐의 실수로 해당 생명 체가 산산조각날 수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된 사항이었다.

"떨어지고 나서, 우리가 뭉치지 못 하면 금방 죽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까 내 손 꽉 잡아요!"

합리적인 말이긴 했으나, 내게 도 움이 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입을 다물고 이운우의 손 을 마주 잡았다.

허공에서 그와 시선이 뒤섞였다. 유약한 인상과 다르게, 아주 올곧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풍덩

"으븝......!"

기나긴 통로를 지나, 우리는 웬 연 못 같은 곳에 빠졌다. 연못이라 해 도 좋을까? 물 같은 액체가 아니라 점성이 있었다. 적당히 폭신하고 끈 적끈적한 것이 추락의 대미지를 대 부분 흡수했으나…… 몸에 달라붙 는 감각이 아주 끔찍했다.

으욱..."

겨우 밖으로 기어 나왔다. 달라붙 는 점액질 때문에 몸이 아주 무거 웠다. 가뜩이나 지쳐있던 육신이 이 제 쉬게 해달라며 비명을 지르는것 같았다.

"이봐요. 살아있죠?"

내 옆에서 이운우도 비슷한 몰골 이었다. 마법사인 그의 체력이 나보 다 높을 리는 없으니, 그는 아마 나보다 딱 두 배 정도 더 죽고 싶 을 거다.

단 둘이서 떨어져버렸으니, 당장 이 일을 어떡할지 고민이 들었다.

" 여긴......

주변을 둘러보자, 여태까지 지나왔 던 통로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넓다 는 걸 알 수 있었다. 통로를 지나 면서 먹이창고 같은 곳들은 스쳐지나가긴 했는데…… 여긴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목소리가 웅웅 울릴 정도로 드높은 천장에, 사방에 문은 없고 우리가 떨어진 하늘 위 구멍 이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였다.

곤란한걸……. 인간이 저 높이를 기어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 외에 우리가 빠졌던 호수 비슷 한 것이나, 이 규모. 무엇보다 근처 에 차곡차곡 쌓인…… 로얄젤리. 아 마 맞을 것이다. 황금색으로 투명하 게 빛나는, 사람 팔뚝만 한 길이의 원통형 캡슐 같은 모양새.

갓 태어난 여왕에게 줄 로얄젤리

다.

그러니까 이 방은, 개미굴의 가장 안쪽인 '여왕개미의 방'인 거다.

"으윽.…"

이운우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일단 짐을 확인했다. 각자 자신의 짐은 자기가 챙기고 있었으니 여기 서도 야영 준비를 하기는 어렵지 않다. 허기지면 저 로얄젤리를 좀 훔쳐 먹으면 될 거다. 영양만점이라 고 하니까. 마실 물이 걱정인데

'저건 안 되겠지.'

우리가 빠졌던…… 저 점액질 호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옅은 녹색 을 띤 호수 제일 안쪽에 덩어리진 뭔가가 보였다.

아직 부화하지 않은 여왕개미다.

'앞으로 4년 뒤에 부화라고 했지. 그러니까 이건 따지자면 인큐베이 터인가.'

여왕개미의 인큐베이터라…….

아무래도 불길한 생각밖에 안 든 다. 이운우가 죽을 뻔했다던 게 혹 시 이것 때문인가? 이 여왕, 혹시 좀 일찍 부화하는 건가? 그런 생각 에 인큐베이터 속 여왕으로 추정되는 개체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전 혀 미동도 없었다.

'크기도 한참 작고…… 아직 부화 까지는 먼 것 같은데.'

태산개미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크기였다. 4년은 더 지나야 하니 당연히 작겠지.

어찌 됐든 피할 길은 없었다. 당장 하늘을 날아 저 멀리 날아갈 수 있 는 것도 아니고, 이운우를 두고 혼 자 탈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뛰어난 마법사에 훌륭한 전략가 다. 인류에게 필요한 인재야.'

개인적인 감정도 섞여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미운 정도 정이니 까,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버리고 가고 싶진 않았다.

아직도 바닥에 널브러져 정신을 못 차리는 이운우를 내버려두고 누 울 곳부터 마련했다. 하루 지내고 나면 개미들이 얼마나 자주 이곳을 들락거리는지 알게 될 거다. 물론 우린 개미가 아니니 벽에 붙어 저 꼭대기까지 들락날락하는 재주는 없지만. 일단 들키지 않고 몰래 이 곳에 빌붙어 생존하는 것이 목표였 다.

* * *

"으음.…" 여긴.…"?"

이운우가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 침…… 정도일 거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인큐베이터에 빠지고 난 뒤 시계도 영 먹통이라서 말이 다.

"여왕개미의 방이요."

"여……여왕개미?!"

그가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그제 서야 자신이 잘 차려진 잠자리 위 에서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는지주변을 살피다가 나를 바라봤다. 그 야, 이곳에 그와 나 둘뿐이니 내가 해준 거다.

"걱정 마요. 부화까지는 한참 남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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