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그렇게 말한 다음 그는 캐스팅을 하려는지 눈을 감았다.
나는 한 손에 노이트를, 한 손에는 카람빗을 쥐었다. 여왕개미가 너무 높이 올라가 있었다 공간 간섭으로 여왕개미의 뒤를 잡을 순 있어도, 떨어지면 나 역시 중상이다. 대미지 감소 탄환은 낙뢰가 내릴 때 써야하니 지금은 쓸 수 없다. 그렇다 면…….
스킬을 발동하자, 마나가 발끝부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공간 간섭'
눈을 뜨자 나는 여왕개미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키에에엑! 키에엑!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여왕개미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놈에게서 가 장 연약한 부위일 날개를 움켜쥐었 다.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부 위이므로 필연적으로 얇고 가벼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촤악!
카람빗으로 날개 한쪽을 잘라냈다. 곧바로 균형을 잃고 여왕개미가 추 락하기 시작했다. 땅에 닿기 직전, 나는 인큐베이터 위로 이동했다.
풍덩, 인큐베이터 안에 가라앉았 다. 이제는 주인을 잃은 그곳이 침 입자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충격 은 거의 없었다. 힘겹게 뭍으로 올 라오니 여왕개미가 바닥에서 바르 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점액질을 다 닦아내 기도 전에 놈은 몸을 일으켰다.
어그로가 이운우에게 끌리기 전에 서둘러 노이트를 겨눴다.
탕, 탕!
물론 거리가 꽤 멀어 제대로 맞은 건 없었다. 그래도 놈의 이목을 끌 기엔 충분했다. 날개를 잘라낸 내가 눈에 들어오자 놈이 광분하며 내게 달려왔다.
' 빨라!'
민첩에 치중됐을 줄은 알았지 만…… 생각보다 더 빨랐다. 게다가나는 점액질 때문에 몸이 평소보다 배로 무거운 상태였다.
피할 수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고 얌전히 맞 아주는 것은 헌터가 할 만한 대응 이 아니다. 헌터란 자고로, 이런 위 험한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직업이니까.
여왕개미가 공격을 가할 만한 부 위는 저 주둥이다. 톱니처럼 뾰족하 고 날카로운 입! 저것만 피하면, 다 른 피해는 그럭저럭 맞아도 괜찮다.
-키기긱!
노이트를 놈의 주둥이에 쑤셔 넣
었다. sss급 리볼버다. 부서질 리가 없다.
동시에 인간의 것처럼 생긴 팔다 리가 달라붙어왔다. 내 목을 조르 고, 팔을 비튼다. 그러나.
탕!
-키에에에엑!
총에 마나를 담자, 기색을 느낀 놈 이 빠르게 입을 빼냈다. 아쉽게도, 총알은 빗나갔다.
'외골격의 내구도가 태산개미와 격 이 다를 정도로 딱딱하진 않아. 그 러니까, 뚫어낼 수 있어. 노이트로!'
확신이 들었다. 할 만했다.
욱신. 여왕개미와 아주 잠깐 접촉 했던 팔꿈치가 격통을 토해냈지만, 어차피 저 정도 속도면 총알이 닿 는 것보다 녀석이 피하는 게 더 빠 르다. 근접 거리에서 방아쇠를 당길 수만 있다면……. 그래도 생각보다 완력이 강하니 너무 가까운 접촉은 피해야 했다.
'붙잡아야 해. 어떻게?'
뭔가를 생각해내기도 전에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운우에게!
어그로가 풀렸나? 어쩔 수 없었다. 내어주고 싶진 않았지만…… 로얄젤리를 절반으로 갈랐다.
-키이익?
반응이 왔다. 놈은 아주 배고픈 상 태일 거다. 개미들이 이 주변을 얼 씬도 않았던 건, 아마도 부화한 직 후에 여왕개미가 편안하게 로얄젤 리를 먹으며 회복할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함이었을 텐데. 우리가 난입 해 놈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먹 지도 못했으니.
로얄젤리는 여왕개미를 위해 맞춤 형으로 제작된 특식이다. 이걸 먹고 기력을 회복하면 골치 아프지만 선 택지가 없었다.
"먹고 싶지?"
내가 손으로 휘휘 로얄젤리를 흔 들자 그에 따라 시선이 움직인다.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로얄젤리를 뒤에 있는 인큐베이터 속으로 던졌다.
후욱! 빠르게 뭔가 스쳐지나가는 감각과 함께. 옆을 돌아보니 놈이 인큐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 캐스팅은!"
"끝났어!"
동시에, 마법진이 허공을 수놓았 다.
인큐베이터 바로 위에서 낙뢰가 내리꽂혔다.
점액질이 무슨 성분인지 모르니 일종의 도박이었다. 전기가 통하는 성분이었을까?
슬쩍 들여다보니……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어렴풋 이 먹다 남은 로얄젤리가 반쯤 손 에 쥐여 있는 게 보였다.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준비 해줘."
내 말에 이운우가 고개를 끄덕였 다. 안색이 꽤 창백했다. 아까 여왕 개미에게 노려져서 그런 건지, 과도한 마나 사용 때문인지. 그 이유를 알 순 없지만 그것에 신경 쓸 때도 아니었다.
놈이 미약하게 움직였다.
살아있었다!
"다음 캐스팅까지 얼마나 걸려!"
"앞으로…… 3분!"
생각보다 길다. 놈이 움찔대는 빈 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 끝을 까딱, 움직이더니 이윽고 번쩍 눈을 떴다. 우적우적, 먹다 남은 로 얄젤리를 마저 먹어치운다.
탕!
총질을 해보지만, 아까는 우리 편 이었던 점액질이 이번엔 놈의 편이 었다. 총알이 제대로 박히질 않았 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2분 정도. 어 떻게 해야 놈을 붙잡아둘 수 있지?
고민은 짧았다.
"정확히 2분 뒤에 써. 알겠지? 무 슨 일이 있어도, 그때 정확히 써야 해."
그 말을 남기고 인큐베이터로 뛰 어들었다.
* * *
점액질이 얼굴에 달라붙으면서 역 한 기분이 들었지만 참아냈다. 전에 도 느꼈지만 이 안에서 약간의 저 항감만 이겨내면 눈을 뜰 수 있다.
놈이나 나나 땅을 딛고 사는 생명 체라 이 안에선 능력이 다소 반감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놈에겐 없 고 내겐 있는 게 있다.
탕!
바로 원거리 무기다. 하지만 가까 이 가면 나 역시 놈의 속도에 붙잡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타격은 주지 못했다. 이 안에서 놈에게 붙잡히면 그대로 죽음이다. 총으로 견제하면서 위로 올라가지 만 못하게 막았다.
그러자 내가 거슬렸는지 빠르게 내 쪽으로 향했다. 그래, 해보자 이 거지.
탕, 탕탕!
위협사격을 해보지만 거뜬하게 피 해냈다. 땅 위에서도 이 안에서도, 놈의 속도가 나보다 몇 수는 위다.
어차피 내 역할은 시간 벌기다. 적 당히 시간만 끌면…….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는 날 꿰 뚫어본 것처럼, 놈의 날개가 꺾인 곳에서부터 뭔가 변이가 시작됐다. 저게 돌연변이들의 짜증 나는 점이 다! 곧이어 날개가 채찍처럼 변해 내 쪽으로 향했다. 날 붙들고 끌고 가려는 의도가 명확한 움직임이었 다.
저걸 다 총으로 끊어낼 순 없었다.
고민하는 사이 발목이 놈에게 붙 잡혔다. 가느다란 채찍 같은 것이 발목을 휘감고 끌어내린다. 읍! 슬 슬 숨도 막혔다.
발버둥을 치고, 끌려가면서 총으로
놈을 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소용 이 없었다. 점액질 때문에 제대로 된 화력이 나오질 않았다.
놈이 챠각챠각, 톱니바퀴 같은 주 둥이를 드러내고 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려는 순간.
철컥,
장전했다. 놈이 쏴볼 테면 쏘라는 것처럼 작게 웃는다.
하지만 종구는 놈에게 향하는 게 아니다.
-키루룩……?
내 머리로 향한다.
탕!
반투명한 구체가 내 주위를 감싸 고.
곧바로 낙뢰가 내리쳤다.
파지지직!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수면에 번쩍 이는 빛이 닿았다. 곧바로 놈이 경 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 었다. 발목을 잡아챈 것도 스르륵 놓였다.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놈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다른 한 손으로 주둥이에 총구를 들이민다.
저항하려는 것처럼 팔다리를 휘젓 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갈 리가 없 었다.
아깐 실패했지만 이번엔 틀림없었 다. 총구를 입 안 깊숙이 처박았다. 놈과 똑바로 눈을 마주치면서,방아쇠를 당겼다.
탕!
놈의 머리가 산산조각나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알림: 보스 몬스터 '돌연변이 여 왕개미'가 죽었습니다!]
[알림: 게이트가 클리어되었습니 다.]
[이미 클리어된 게이트입니다. 보 상이 감소합니다.]
[기여도를 측정합니다.]
[기여도가 8,502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기여도 그순위를 달 성하셨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이 배분됩니 다.]
아. 두루마리를 찾기 전에 게이트 가 클리어되어 버렸다.
이거, 시험 실패인가?
이걸 생각 못 했다. 낭패였다. 이 미 클리어된 게이트라지만 보스 몬 스터를 죽이면 자동으로 내부에 있 던 인원을 모조리 뱉어내는데!
제발. 다른 팀원들이 두루마리를 찾았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이거 놀랍습니다."
헌터 시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 이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을 꺼냈다.
"둘로 나뉘었지만, 각각 두루마리 를 찾고 던전 클리어를 해냈다나는 힐끗 옆을 바라봤다.
몰골이 엉망인 김주일과 민달래가 퀭한 눈으로 두루마리를 쥐고 있었 다. 그래도 탱커와 딜러의 조합이라 서 어떻게 잘 살아남았던 모양이다.
두루마리도 잘 찾았고. 다만…….
이운우는 웃는 낯이었지만,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도 꽤 긴장하 고 있다는 걸.
'두루마리 지분율은 10% 미만
……. 우리도 시험 통과일까?'
내 의문을 이운우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랑 이운우가 해낸 업적이 훨씬 크다. 보스 몬스터를, 심지어 돌연변이를 잡아냈으니까. 이운우가 회귀 전에 죽을 뻔했다고 말한 것도 이해가 간다. 저 정도 수준이면 홀로 상대하기 벅찼을 거 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시험의 기 준은 '두루마리를 찾을 것'이었다.
"우선 김주일 씨와 민달래 씨. 4명 이서 찾아야 했을 두루마리를 두 분이서 훌륭히 찾아낸 점, 높이 평
가합니다. 두 분의 공수 전환도 매 끄러웠고요. 김주일 씨는 도중에 쌍 검을 버리고 과감히 검 하나로 전 투 스타일을 바꾼 점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둘이서 함께하며 꽤 많은 일 들이 있던 모양이다. 민달래의 방패 는 거의 고철과 다름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정확한 결과는 일주일 뒤에 알려 드리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이 정도의 대답이면 사실상 합격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김주일은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운우 씨와 한서하 씨는,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나와 이운우는 잠시 눈빛을 교환 했다.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두루마리 의 지분이 낮으니 불합격이라는 얘 길 꺼내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은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안쪽 깊은 곳으로 들어갔 다. 수험생들의 대기실을 지나고 처 음에 조별로 모였던 장소를 지나, 던전 내부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모니터링룸까지 들어왔다.
수없이 많은 모니터들.
그 안에 던전들이 촬영되고 있었 다. 우리가 들어갔던 던전뿐만 아니 라 회귀 전에 눈에 익은 곳들도 보 였다.
나는 곧바로 우리가 누굴 만나러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반갑네. 젊은이들."
불 하나 켜지지 않은 방이지만 모 니터에서 나오는 불빛들로 방이 훤 했다. 그 가운데에 놓인 의자가 빙 그르르 돌아가며, 한 인물이 등장했 다.
하얗게 기른 수염에 동그랗고 작 은 선글라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옷은 정비공의 것처럼 푸른색 일체 형이었다. 호호백발의 노인이다. 이 모든 모니터들의 주인.
"최석철이라고 하네. 이제는 뒷방 늙은이지."
그러면서 책상에 놓인 콜라를 쪼 르륵 빨아 마신다.
최석철.
'천리안'의 최석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