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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52화 (52/361)

52화

-서하야! 뭐 하고 있어?

-잠깐 딴생각했어요?

환상이 더욱 강력해진다.

목소리와 함께 실루엣만 얼핏 보 이던 두 사람이 이젠 진짜처럼 생 생해졌다.

혜원 언니가 걱정 어린 얼굴을 하

고서 내 뺨을 쓰다듬는 게 느껴졌 다.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멍한 기 분이 들었다. 아니, 그냥 화학 작용 때문에 멍한 건가.

-얼른 먹어요. 식겠어요.

-맞아. 연원이가 한 볶음밥 좋아 했잖아. 아니야?

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어 느새 내 앞에는 볶음밥이 놓여 있 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숟가락을 집었다. 노릇노릇하게 김이 올라오 고 먹음직스러운 기름 향이 물씬 풍겼다.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니 내가 아는 그 맛이었다.

-맛이 어때요?

"맛있네……

나도 모르게 환상에게 대답하고는 흠칫 놀랐다.

정신 차려야 했다.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하지만 내 정신은 이미 환 상 속에 갇혔는지 혜원 언니와 표 연원이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갑 자기 먹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두 리번거리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 서하야?

"이건 전부 환상이야."

-서하야, 왜 그래?

"그러니까 저것도 가짜다."

노이트를 쥐고 겨누려 했지만 헛 손질만 했다. 없었다. 허리춤에 항 상 있었는데!

'이것까지 지배당한 건가?'

소름이 끼쳤다. 카람빗도 노이트도 없었다. 내 무기를 전부 앗아갔다.

혜원 언니가 내 이마를 짚으며 열 을 재려고 하는 것도 탁, 거세게 뿌리쳤다. 손대지 말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환상과 말을 섞는 것 자체 가 어리석은 짓이다.

진정하자. 이건 전부 환상이다.

그러니 노이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졌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평 소에 하던 것처럼 허리춤에서 노이 트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허공을 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 다.

'하지만 분명 있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

'내게 대답해.'

마음속으로 외쳤다. 노이트는 '에 고'를 지닌 무기다. 나의 의지에 대 답하고, 내 영혼과 감응한다.

'난 아직 쓰러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 역시 꺾이지 않았다.

'노이트!'

탕!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방아쇠를 당겼을 때,

총성과 함께 거짓된 환상이 사라 졌다.

촤자자작!

"하아.…"

하늘로 쏘아 보낸 총알 한 발이 빈 공간을 가르고 날아 끝내는 총알비가 되어 쏟아졌다.

파스스스!

꽤 볼 만한 장관이었다. 온통 까만 공간에서 홀로 불꽃놀이를 하는 것 처럼, 붉은 빛깔을 흩뿌리며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나를 중심으로 하여 총알들이 꿈반딧불이들을 박살낸다.

몇 개는 내 피부에 스치면서 상처 를 냈지만 이미 꿈반딧불이들이 들 러붙어 엉망인 상태였기에 그다지 다를 건 없었다. 하나둘, 놈들이 스 러지고. 이윽고 총알비가 멎었다.

"하……하하……

피에 젖은 손아귀 안에 노이트가

있었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의 잠금이 해제됩니다.]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노이트 리볼버(귀속)〉

등급: SSS(잠금)

설명: 마력을 탄환 삼아 쏘는 리 볼버입니다. 소유자의 영혼에 귀속 되며 주인과 함께 성장하는 무기입 니다. 일반 탄환은 무제한, 특수 탄 환은 하루 최대 6번 사용할 수 있 습니다. 특수 탄환은 1회 사용 후재장전까지 5분의 시간이 소요됩니 다.

부가효과: 특수 탄환의 효과는 아 래와 같습니다.

1. 아늑한 바람: 탄환에 적중 당한 대상은 일정 시간 대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숙련도에 영향을 받습니 다 (40s).

2. 쏟아지는 불꽃: 쏘아올린 탄환 이 다수가 되어 일정 범위 안에 대 미지를 입힙니다. 숙련도에 영향을 받습니다(3m, 30s).

3. (잠금)

4. (잠금)

5. (잠금)

6. (잠금)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는 사이 시야에 반가운 소식이 보였다.

'쏟아지는 불꽃.'

회귀하기 전에도 나와 함께했던 특수 탄환이었다. 총과 단검을 사용 하는 내게 다수의 적은 카운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그 약점을 보완 해주는 특수 효과였다.

내 주변에 빛을 잃은 꿈반딧불이 의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을 살피는 데 문제는 없었다. 몬스터에게 붙들려 쓰러진 사람들 이 근처에 많았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것처럼 누워있는 이들 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이 꿈반딧불 이들을 떼어 줘야 할까?

한 마리 떼어내 봤으나 누워있는 사람은 별 반응이 없었다. 깨어날 기미도 없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 몸에 부상과 정 신적 피로까지 겹치니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 누워서 한숨 자면 소원이 없겠지만, 꾸물거 리면 이 빌어먹을 꿈반딧불이들이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 뻔하 다.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그때 바닥에 어렴풋한 표식이 보 였다. 아무것도 없는 암혹 속에서, 희미한 회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따라오라고 안내하는 것처럼.

'함정?'

너무 뻔하게 사람을 유혹하고 있 었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게 썩 내키지 않지만, 지금 마땅히 다른 행동을 할 근거가 있지도 않 았다. 눈앞에 보이는 가장 명백한단서를 쫓는 게 현명하겠지. 함정이 곧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니까.

지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었 다. 눈앞이 온통 새까매 시간 감각 도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장식처럼 흩뿌려진 쓰러진 사람들만이 내가 길을 걷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얼마나 걸었을까.

더 이상 걷는 것도 하고 싶지 않 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때, 드디어 내 눈앞에 뭔가가 나타 났다.

'……까만 집.'

말 그대로.

벽도 지붕도 문도 온통 새까만 색 을 한 집이었다.

* * ♦

끼이 익-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손에는 노이트를 쥔 채였다.

이런 곳에 집의 형상을 하고 있는 장소라면 정체는 뻔하다. 보스 몬스 터의 서식지인 거다.

'테오도르한테서 보스몹 얘기까지 는 듣지 못했어.'

정확히 어떤 종류의 몬스터일지는 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집 안은 휑 한 느낌이 들었다. 중세의 일반 집 이 이렇게 생겼을까. 벽난로가 타오 르고, 장작 위에 커다란 솥이 끓고 있었다.

타다닥-

발걸음 소리에 돌아보니 검은 고 양이였다. 앍, 하고 '야옹'과는 거리 가 먼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훌쩍 달려 사라졌다.

'고양이라고?'

보스 몬스터 서식지에 무슨 고양

oj 7}.

"네로라고 해."

탕!

뒤쪽에서 들리는 음성에 반사적으 로 총을 쐈다. 여자였다. 보라색 머 리카락을 발끝까지 드리운.

'마녀, 레태흐태드!'

아는 여자였다. 왜 모르겠는가.

꿈과 환상의 마녀. 이 여자에게 걸 리면 제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 이라도 그 달콤한 꿈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정신계 특화 마녀다.

전쟁터에서 가장 위험한 족속은

불덩이를 하늘에 흩뿌리는 마법사 가 아니다. 혼을 빼먹는 이 마녀들 이지.

"귀엽지? 내 고양이야."

어느새 검은 고양이는 레태흐태드 의 발치에 가서 몸을 부비고 있었 다.

"손님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이 거 준비한 게 없어서 어떡하지?"

탕!

다시 한번 총으로 쏴봤으나 효과 는 없었다. 환상이다.

총알이 닿는 부분만 기이하게 일

그러졌다가 총알이 지나가자 회복 된다. 총알은 자연스레 그녀를 통과 해 뒤편에 박혔다. 본체는 다른 곳 에 계신단 소리겠다?

"난…… 그래, '레태'라고 부르면 되겠다. 난 전부터 애칭을 만들고 싶었거든."

같잖은 소릴 하는군.

'마녀'는 마법사와 다른 존재다.

마법사가 마력을 섬세하게 조각해 마법을 완성하는 장인이라면, 마녀 는 흑마법사에 가까운 계열이다. 다 만 마녀가 계약하는 것은 몬스터나 마왕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을 향한 악의', 그 사념체다.

마녀가 됐다는 것은 인간을 뼈저 리게 증오해 자신의 영혼까지 바쳤 다는 뜻이다. 그런데 뭐? 애칭? 웃 기지도 않았다.

"넌? 이름이 뭐니?"

"한서하."

"뭐라고 부르면 될까? 한서? 한?"

"서하 쪽이 이름이야."

지구에 대해선 무지한가 본데.

뻔한 이야기다. 제아무리 마녀라 할지라도 생존을 위해선 별수 없었 겠지. 죽도록 미운 인간과 손을 잡아 다른 세계의 인간을 죽이는 일 인데, 뭐 조금 다를 뿐이지 않겠나.

"아주……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더 얘기하고 싶은데."

탕!

"넌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당연한 소리다. 거절의 말 대신 총 알을 먹여주자 생긋 웃으면서 잘도 말을 이었다.

"알고 있잖아? 이건 어차피 환상 이란 걸."

"하지만 네 본체도 이 어딘가에 있겠지."

"그럴까?"

떠드는 것을 무시하고 2층으로 향 했다. 1층은 뭔가를 숨길 공간이 없어 보였다.

2층으로 올라서자 복도를 따라 방 3개가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첫 번째 방을 벌컥 열었다.

"여긴 내 침실인데. 한숨 자고 갈 래?"

없다.

두 번째 방.

"드레스룸 구경도 재밌지. 원하는 게 있으면 입어봐도 돼."

뭔갈 숨길 구석은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방.

"안 들어가는 게 좋을 텐데. 연구 실이라 좀 위험하거든."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환영이 이 정도로 생생하게 보일 때는 당연히 본체도 주변에 있어야 한다. 나는 레태흐태드에게 손을 뻗었다.

"무례하네."

당연하게도 손은 레태흐태드를 통 과했다. 빈 공간을 어루만지는 느낌 이었다. 분명 환영이란 소린데. 대체 본체를 어디에 숨긴 거지?

"쥐새끼처럼 잘도 숨었어."

"말이 험한걸."

"서로 예의 차릴 필요 있나? 어차 피 적인데."

"넌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자긴 아니라는 말투다. 눈썹 한쪽 을 찡그리며 바라보자 슬며시 웃어 보인다.

"숨바꼭질이라도 할까?"

"내가 널 찾는?"

"그런 거지. 못 찾으면 영원히 여 길 헤매는 거고. 재밌을 거야, 그

치?"

취향 한번 고약하다. 내가 미쳐가 는 걸 구경하고 싶단 소리다.

"자신만만하네. 내가 못 찾을 줄 알고."

"그럼. 재밌는 구경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댔다. 사 람 기분 상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 이 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레태흐태드를 상대하지 않고 저택 안을 샅샅이 살피기 시 작했다.

화장실 안, 부글부글 끓는 솥, 심

지어 벽난로 안쪽까지.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라색 머리카 락 한 을 찾지 못했다. 그야말로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지?'

본체가 없을 리는 없다.

모든 게이트에는 해법이 존재한다. 이 대명제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클리어할 수 없는 게이트는 인과율 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포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니 야?"

레태흐태드는 허공에 등등 떠서 반쯤 엎드려 턱을 괴고 있었다. 지 루한 TV 프로그램이라도 보는 것 같은 태도다.

"좀 쉬는 건 어때?"

"뭘 원하는 거지?"

대체 나한테 뭘 원하길래 끝없이 말을 건단 말인가? 어차피 환영이 라 서로 물리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겠지만, 이 마녀는 꿈과 환상의 마녀가 아닌가. 정신적인 틈새를 파 고들 수 있을 텐데.

"이제야 돌아보는구나."

"레태흐태드."

"레태라고 불러."

몸이 빙그르르 돌더니 허리를 세 우고 곧게 섰다. 그와 동시에 보라 색 보석이 달린 목걸이가 차르륵 소리를 냈다.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됐니?"

"아니."

탕!

레태흐태드의 이마에 대고 총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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