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아이템을 확인합니다.]
등급: AAA
생산자: 송다정(칭호: 키클롭스의 화신)
설명: 천 번 철을 접어 만든 스틸 레토 단검입니다.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S에 근접합니다).
부가 스킬: 날카로움(패시브/치명 적인 상처를 입힐 확률이 높아집니 다).
'no.1151'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제 작 넘버인 것 같다. 천 번도 넘게 검을 만들었다니.
'과연.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초 보가 만들 수 있는 검이 아니야.'
으에 근접한 스틸레토.
꼬챙이처럼 가는 점이 특징인 스 틸레토는, 찌르기에 특화된 단검이다.
끝이 단단하고 뼈와 근육 사이를 쉽게 파고들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 처를 내기 좋다.
특히나 암살자처럼 뒤를 기습하는 내게 유용한 검이다. 스틸레토는 날 이 가늘어 소매에 숨기기 쉽고 출 혈량이 적어 뒤처리가 편하기 때문 이다.
"어때? 좀 마음에 들어?"
"당연히 마음에 들지!"
과분한 선물이었다.
'부가 스킬까지 더해져 있다니. 속
성 마법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대 장장이가 부여할 수 있는 최상위 스킬 중 하나야.'
송다정이 그냥 내다 팔려고 마음 먹었으면 집 한 채는 샀을 것이다.
"고마워, 언니. 내가 받아도 되는 지 고민되는데, 모르는 척 그냥 갖 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어."
"헤헤. 완벽한 칭찬이야!"
이런 대단한 물건을 만들고 고작 칭찬 한마디에 부끄럽다는 듯이 몸 을 꼰다.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게 성장 했다.
"나 없는 동안은 어떻게 지냈어? 그사이에 서하가 활약했을 거 생각 하니까 놓친 게 너무 아까워! 그러 니까 다 말해줘야 해?"
"알겠어. 걱정 마."
나는 작게 웃었다. 밤은 아직 기니 까. 회포를 풀기에는 충분했다.
슈욱-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빙그르르
시야가 돌아가고. 허공에서 몬스터
와 눈이 마주쳤다.
탕!
놈이 반응하기 전에 총알이 발사 됐다. 촤악! 끈적한 녹색 피가 사방 으로 튄다.
탁,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얼굴에 들러붙은 핏자국을 소매로 닦아냈 다. 으. 질척거려.
그러나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잠 시 멈췄다고 곧장 내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있었으니까.
고개를 돌리지 않고, 기척을 감지 해 총구만 등을 향하게 들어 탕! 발사했다.
-키에에엑 케엑……!
음. 적중했고.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은 사뿐히 지르밟았다.
부응,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칭호 '역천의 별' 부가효과, 하늘 의 가호 덕분이다. 땅에 발이 닿지 않을 때 일시적으로 민첩의 10% 상승효과.
'현재 내 민첩은 100에 육박하니, 10%도 상당한 보너스가 되지.'
회귀 전 민첩은 300이 넘는 수치 였으니 아직도 회복하려는 까마득하지만 말이다.
허공에서 묘기를 부리듯이 노이트 를 장전하고 총을 겨눈다.
탕!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애초에 거 리가 가까운 덕이다.
착지하기 전에 스킬을 발동한다.
'공간 간섭'
전투가 일어나는 지형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입력된다. 원하는 곳을 떠 올리자마자 나는 그곳에 있었다.
콰직!
"허억……! 살았다. 고맙네!"
중력에 가속도까지 더해 스틸레토 를 내리꽂는다. 척추 사이에 우드 득, 박아 넣자 몬스터는 그대로 꼬 꾸라졌다.
덕분에 잡아먹히기 직전에 겨우 살아난 이름 모를 헌터가 감사 인 사를 건넸다.
고개만 꾸벅하고는 다시금 스킬을 발동한다.
'공간 간섭'
전투 양상을 살피고 가장 적합한 곳으로 이동해 적을 말살한다.
탕!
우드득!
콰직!
내가 휩쓰는 곳마다 피바람이 불 었다.
전투가 마무리되는 건 금방이었다. 모처럼 날뛰고 나니 개운해서 방금 내가 쓰러뜨린 몬스터를 깔고 앉아 잠시 쉬었다.
"수고했네!"
그런 내게 진성연이 다가왔다. 찬 물을 건넨다.
"감사합니다."
"뭘. 덕분에 일이 금방 끝나겠어."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것 같았다.
"당분간 사태를 살피려고 굵직한 일정 빼곤 다 취소하고 한국에 머 무르고 있는데…… 이거 안 보는 사이 한국 헌터 시장도 많이 커졌 어."
"그렇죠. 아무래도 부산물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아니. 그 말이 아니야."
진성연이 날 보며 웃었다.
"헌터의 질이 좋아졌단 얘기지."
뼈가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용병 헌터인 진성연이 국
내보다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 유는, 외국의 헌터시장이 훨씬 크니 그곳의 페이가 더 세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곳에 인재 가 몰리는 법. 당연한 이치지.'
진성연은 불모지인 국내를 두고 꿀단지인 해외로 떠난 것이고 말이 다. 외화벌이로 쏠쏠했겠지.
"진성연 길드장님께서 나오기엔 좀 조촐한 곳 아닌가요. 직접 나오 실 줄은 몰랐습니다."
"뭐. 시시한 수준이긴 하지만, 전 쟁터를 벗어나면 좀이 쑤셔서 말이 야."
그러니 아직까지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거겠지.
"오늘 보수는 잘 계산해서 바로 주겠네. 이거, 일당백을 하니 일반 적인 시급으로 주기엔 내가 많이 찔리는군."
"네? 아뇨. 안 그러셔도 됩니다. 헌터 시급 자체가 낮은 것도 아닌 데요."
"아냐아냐. 난 이런 데 아주 날카 롭거든. 내가 일한 만큼 받으니, 남 이 일한 만큼 주는 것도 당연하지."
말린다고 들을 사람 같지 않아서 포기가 빨랐다. 음, 뭐. 더 주신다는데, 나쁠 건 없지.
개인 단위로 일하기엔 적멸만 한 곳이 없었다.
애초에 용병 길드니 소속감이 없 어 섞이기 쉽고, 지론도 지극히 간 단하다.
'일을 도운 만큼 보수를 받는다.'
얼마나 쉽고 단순한가. 저 논리 아 래 적멸의 길드원이나 외부인이나 모두 동등한 처우를 받았다.
'적멸 길드원은 보험이나 부산물 분배 측면에서 좀 더 배려받긴 하 지만.'
그렇다고 차별받는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일을 잘하면 그만큼 일당을 잘 쳐주기도 하고.
역천의 활동이 정지되면서 한동안 게이트를 안 들어갔더니 몸이 찌뿌 등해서 나온 건데. 용돈벌이까지 했 으니 일석이조다.
"자자. 빨리빨리 하고 퇴근하자 고!"
"네에에!"
"예엡
"알겠습니다요
진성연이 외치자, 자유분방한 분위
기대로 개성 넘치는 답변들이 돌아 온다.
참 여기도 여기대로 독특한 동네 다.
'일단 안면을 터놓긴 했는데......'
나는 힐끔 진성연을 살폈다. 백목 련 쪽도 전청운 쪽도 마땅한 흔적 을 찾지 못한 지금. 단순히 용돈벌 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적멸이 전쟁 때 한국에 터를 두면 큰 도움이 될 텐데.'
회귀 전 적멸은, 진성연의 의지에 따라 한국이 아닌 외국에 터를 잡 았다. 어디까지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용병답게, 한국도 그 손님들 중 하나로 취급됐다.
'진성연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기 회는 드무니, 최대한 친분을 쌓아두 는 게 좋아.'
당분간은 그 물밑 작업을 위해 이 곳에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했다.
* * *
집으로 돌아오니 다정 언니와 표 연원이 나란히 식탁에 앉아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어, 서하 왔 네!"
"응. 다녀왔어."
"와서 과일 먹어요. 사과가 달고 맛있어요."
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다정 언니는 일전에 표연원과 한번 말을 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대로, 정말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
다른 누구보다 혜원 언니가 너무 기뻐하며 다정 언니의 일시적인 합 숙을 허가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때 막 케르베로
스인지 케르베리스인지 뭔지 하는 몬스터가 나타난 거야. 다들 난리가 났지."
"케르베로스면 꽤 등급이 높은 몬 스터인데…… 괜찮았나요?"
"응. 케르베로스 토벌대를 꾸려서 나갔는데…… 다들 멀쩡히 돌아왔 고, 케르베로스도 다신 안 보였으니 까."
" 대단하네요……!"
다정 언니는 주로 연화도 게이트 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표연원에게 들려줬다.
둘 다 게이트에 휘말렸던 일반인
이기 때문일까. 대화 코드가 잘 맞 는 모양이다.
'나는 일반인이었던 적이 한참 예 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객관적인 정보는 기억난다. 내가 당시 어떤 상황이었고, 누가 어떻게 죽었고, 나는 어떻게 도망쳤는지. 그런 것들.
'하지만…… 그때 무슨 심정이었던 건지.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야.'
게이트에 휘말린 일반인이었던 나 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다 지 밝은 생각은 아니었겠지, 뭐.
"저…… 실례되는 얘기지만. 한 가
지 여쭤봐도 될까요."
"응? 뭔데?"
"다정 누나 얘길 아무리 들어 도…… 그 얘길 하지 않으셔서요."
표연원이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 다.
"눈을 잃었을 때 얘기요."
다정 언니가 잠시 멈칫했다. 이내 언니는 한쪽 머리카락을 내려 가려 둔 곳을 가볍게 손으로 짚었다.
"이건 게이트에서 생긴 상처가 아 니야."
"네? 그럼……?"
"게이트에서 나온 뒤에, 처음엔 탱 커가 되려고 했거든."
표연원은 이해하기 어렵단 표정을 했다. 그야 그렇지. 게이트에서 그 렇게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왜 다 시 게이트에 들어가는 헌터가 되려 한단 말인가.
"뭐, 나야 서하나 민준이나 그 쌍 등이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재주 였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단 강 했어. 더 튼튼했고."
과거를 더듬는 눈빛이었다.
"근데 웃긴 게 연수원까지 다녀왔 는데도 탱커가 하기 싫더라. 애매한
재능이었고, 적성에 맞지도 않았으 니까."
다정 언니는 애써 웃었다. 가볍게 던지는 문장 사이사이 고민과 좌절 의 흔적들이 배어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생각도 안 해 본 길이었는데, 서하가 제안해줘서 가게 됐어. 나도 내게 확신이 없었 는데 서하는 정말……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더라. 난 할 수 있다고. 내게 재능이 있다고."
-대장장이는 특수 직업군이잖아. 재능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무슨 재주로 그걸해……. 얘기는 고맙지만,
-재능 있다니까? 그 관찰력. 충분 히 그만한 가치가 있어.
일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부추겼었지. 그 단순한 말이 이렇게까지 훨훨 날아오르게 만들 줄도 모르고.
"뼈를 깎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어. 나는 몰라 도, 서하 말은 믿을 수 있었거든."
"그럼 그 눈은……
"한계를 마주했을 때, 내가 스스로 찔렀어."
담담한 어조였으나 내용은 그렇지 못했다.
"내 스승님은 벽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아킬레스건을 끊었대. 앉은 뱅이가 되어 죽을 때까지 망치질을 하다 절명할 생각으로, 혹시라도 스 스로 포기할까 봐 미리 다리를 못 쓰게 만들려 했대. 그런데 운이 좋 았는지 나빴는지. 한쪽만 끊었을 때 칭호를 얻은 거지."
'헤파이토스', 감히 그 신의 이름 을 말이다.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 로 강인한 정신력이 그를 인외의반열로 이끌었다.
"그래서 나는, 내 눈을 찔렀어. 이 벽을 넘을 수 없다면 차라리 시력 을 잃고 두 번 다시 풀무를 밟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죠?"
표연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정 언니는 잠시 입을 달싹였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켜내고, 말을 고 른 다음 말문을 열었다.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
나는 그 말에 숨겨진 뒷말을 읽어
냈다. '서하에게', 내게 도움이 되려 고.
"난 셰프도, 탱커도 되지 못했지 만."
내가 보기에 둘은 꽤나 닮았다. 다 정 언니와 표연원은 다른 듯 비슷 한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쓸모를 중 명하고 싶었거든."
둘 다 게이트에 휘말린 일반인이 었으며,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했다.
태도는 상냥하고 부드럽지만 그 내면에 대쪽 같은 구석이 있다.
'연원이랑 대화하고 싶다고 한 게, 이것 때문이었나.'
언니는 말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도 이렇게 이겨냈다고.
나 역시 너와 다를 것 없는 처지 였고, 수없이 방황했으나, 결국 그 모든 허물을 딛고 일어섰다고.
"내 무기가 헌터들을 보조하고, 내 가 보조한 그들이 사람들을 구해내 고, 내가 구해낸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테지. 얼마나 멋진 장면일 까."
그 무쇠와도 같은 정신에 누가 첨 언할 수 있겠는가. 표연원은 생각이많아진 얼굴을 했다.
그 자리는 그대로 파했고, 각기 다 른 생각을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연원이 침상 에서 일어났다.
"국립 헌터 아카데미에 입학하려 고."
놀란 혜원 언니에게 그는 단호하 게 선언했다.
"나. 헌터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