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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85화 (85/361)

85화

사태가 엉망으로 흘러가고 있었지 만, 몇 가지 명확한 것이 있었다.

이 게이트의 목적은 저 인큐베이 터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 졌다.

위잉! 위잉!

- 방어 시스템이 곧 실행됩니다.

- 방어 시스템이 곧 실행됩니다.

뻘건 불빛이 번쩍번쩍 빛나고 경 고음이 사방에 울렸다. 자고 있던 연구원들도 지금은 죄다 깨어났을 거다.

인큐베이터 반대편에 있던 남자도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방어 시스템이 발동된다면 이 근 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무사하지 못할 테니.

"으아아아아! 제발! 제발 죽어!''

깡! 깡!

댄버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댔지만, 방어 시스템이 발동되면서 인큐베 이터를 몇 겹이고 둘러싼 기계들이 철통같은 방어를 하고 있었다.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공허하게 울렸다.

- 1단계 방어 시스템 구축 완료.

- 방어 대상을 설정합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레이저 같은 빛들이 쏟아지며 방 안을 샅샅이 홀는다.

사방을 휘저으며 방 안을 파악하 더니, 이내 한곳에 집중된다.

댄버에게!

댄버의 머리와 심장에 레이저 빛 들이 모였다. 댄버가 쇠파이프를 휘 두를 때마다, 레이저들이 요동치며 다시금 심장과 머리를 찾아냈다.

- 대상을 제거합니다.

우우웅. 에너지가 모이며 불길한 소음이 일었다.

철컥, 철컥. 천장 위에 달렸던 살 벌한 기계포들이 움직이며 댄버에 게 향했다. 그럼에도 댄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정신없이 인큐베이터에 달려들고 있었다.

"댄버! 안 돼! 멈춰, 멈춰어!"

반대편에서 남자가 애달프게 소리 쳤다.

그러나 인큐베이터 건너편에 있던 그는, 인큐베이터를 감싼 방어막에 완전히 가로막혔다.

댄버는 그 간절한 외침에도 멈추 지 않았다. 까앙! 다시금 철판을 때 리는 소리가 났다.

그에 반대편의 남자는 침음성을 삼키다 뒤돌아섰다. 친우의 말로를 예측한 사람의 몸놀림이었다.

그는 그대로 뒤돌아 사라졌다.

- 대상을 제거합니다.

지금이 기회였다.

방어 시스템이 온전히 댄버에게 집중해 그를 겨눌 때. 나를 향한 규제는 한없이 약화된다.

콰직!

내가 숨어든 천장의 빈틈 바로 옆 에 있던 기계포를 잘라냈다.

방어 시스템이 이상을 감지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즈즉, 콰득!

- 기계포 16대 중 5대에 이상 발 생. 이상 발생. 원인 파악 중.

- 기계포 16대 중 6대에 이상 발 생. 이상 발생. 원인 파악 중.

- 기계포 16대 중 7대에…….

천장을 누비며 기계포들의 모가지 를 떼어낸다. 이들도 마력석을 원동 력으로 하기 때문에, 천장과 연결되 는 지점을 적당히 베어내면 그만이 었다.

"뭐, 뭐야……."

댄버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린다. 16개의 기계포 중 딱 9개째 떼어내자 방어 시스템이 날 찾아냈다.

- 방어 대상을 재설정합니다.

- 대상을 제거합니다.

- 대상을 제거합니다.

삐빅. 내 바로 앞에 있던 기계포가 그대로 방향을 틀어 나를 겨냥한다.

기계포 한가운데 에너지가 응집되 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콰득! 망설임 없이 기계포의 목을 베어냈다.

- 방어 1단계에서 2단계로 재설정 합니다.

-방어 시스템을 재구축합니다.

나는 천장에서 뛰어내려 댄버의 옆에 섰다. 그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쟈넷?"

의아하다는 목소리였다. 왜 여기 있냐고 묻는 것 같았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뒤로 피해 요."

"뭐? 아뇨, 그럴 순 없어요. 난 내 딸을 구해야……!"

"저도 그러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 요. 댄버 당신, 제대로 싸워본 적 있어요? 내게 짐이 되지 않을 수

있냐고요."

내 말에 댄버는 잠시 입을 다물었 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검이나 한번 들어봤을까 싶은 학자 타입이다.

'제대로 싸워본 적이 있을 리가 없 지. 연구원 신분으로.'

무려 차석 연구원 아니시던가.

"그래도 물러설 수 없어."

의지를 다진 눈동자가 나를 향했 다.

"자네를 온전히 신뢰할 수도 없고. 저번에 몰래 숨어들었을 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오늘도 이러는 건 매우

수상해요."

타당한 말이다. 내가 그를 돕는 이 유를 알 리 없으니, 오히려 의심스 럽기만 하겠지.

'게다가 일단은 나도 비전투요원인 연구원이니 실력도 믿기지 않을 테 고.'

나는 그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여기가 스테이지형 게이트라 내 목 표가 당신과 같다고 말할 순 없으 니까.

-2단계 방어 시스템을 가동합니 다.

잠시간의 여유가 끝났다. 나는 이

곳 시스템을 잘 모르지만, 댄버라면 알겠지. 그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2단계 방어는 1단계랑 뭐가 다르 죠'?"

"1단계는 단순히 에너지포를 사용 했다면, 2단계는…… 연구실 휘하 의 기사단을 불러 모아 대응해요."

"기사단이라. 인간인가요?"

이곳은 워낙 기계들로 가득해서, 기사단도 기계로 이루어진 건 아닐 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 대체로요."

그것 참, 불길한 대답이었다.

우웅!

굳게 잠겨있던 문이 저절로 열린 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중무장한 기 사들이었다.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처럼 보이는 연구실에 중세 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라니.

두터운 철갑옷, 얼굴을 죄다 가리 는 투구. 거기다 저마다 허리춤에는 검집을 매고 있었다.

"철혈 기사단……

"유명합니까?"

내 질문에 댄버가 이 급박한 상황 에서 농담이 나오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애석하게도 농담이 아니었지만.

"침입자들은 들어라!"

제일 선두에 서 있던 여자가 크게 외쳤다. 기사단장인지 유난히 화려 한 문장을 달고 있었다.

"금지된 구역에 발을 딛고, 반역을 꾀한 죄! 감히 황실의 비호 아래 있는 연구실을 공격한 죄는 그 목 숨으로 갚아도 모자랄 것이니!"

황실? 그것도 참 현대적이지 못한

명칭이었다.

"철혈 기사단의 이름으로 처단하 겠다!"

촤악! 선두에 선 기사가 검집에서 칼을 뽑자, 뒤에 선 기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뒤로 물러나요."

"쟈넷, 당신이 무슨 수로 저들을 막겠어요."

물론 겉보기에는 나도 댄버와 같 은 연구원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차라리 날 넘겨요."

댄버가 절망 어린 얼굴을 했다.

"나는 실패했지만, 당신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니 살아야겠죠. 나를 넘기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 을 겁니다."

"벌써 포기하는 겁니까?"

딸아이를 잡아먹은 괴물을 앞에 두고 말이다.

그는 아직까지 쥐고 있는 쇠파이 프를 내려다보았다.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더니,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내가 더 무얼 할 수 있을까 요."

쇠파이프로 손바닥이 찢어지도록 두들겼으나, 무쇠는 단단하고 무심 하기만 했으니.

"순순히 항복하겠나!"

우리가 속닥거리자 기사단장이 크 게 외쳐 물었다. 그에 댄버는 결심 한 듯했다.

그런 그를 내가 막아섰다.

"쟈넷......?"

"사실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는데 요."

"항복할 기회를 10초 주겠다! 그 안에 두 손을 들고 걸어 나온다면,

평온한 마지막을 선사하리라 약속 하마!"

10, 9, 8.

"저 여기서 연구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 예?"

뜬금없는 말을 꺼내자 댄버가 되 물었다. 아니, 정말로.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7, 6, 5.

"왜냐면."

4, 3, 2.

"전 연구원이 아니거든요."

1이 외쳐지기 전에, 흐름에 몸을 맡겼다.

'공간 간섭'

허공을 나는 기분이 상쾌했다.

"사, 사라졌다!"

나는 기사단장의 뒤를 점했다. 기 사단장의 뒤에 서 있던 자들이 날 발견하고 검을 휘두른다.

슈욱!

다시 나는 사라진다.

허깨비처럼, 신기루처럼. 허공을 가르는 칼날은 바람 소리만 남겼다.

탕!

'쏟아지는 불꽃'

기사단의 머리 위에서, 천장을 향 해 총구를 겨눴다. 내 기행에 기사 단은 어리둥절해했지만 그것도 잠 시였다.

총알비가 내렸다.

우수수, 불꽃이 튀어 오른다. 갑옷 으로 무장한 이들이기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대미지가 상당했을 것이 다.

하지만 이건 눈속임이다.

다들 허공에서 내리치는 불벼락에

놀라 시선을 빼앗겼을 때. 나는 기 사단장에게 가 있었다.

탕!

투구에 대고 총알을 쏜다.

"우욱......!"

총알이 투구에 부딪히는 충격 탓 에 뇌가 울렸는지, 기사단장이 비틀 대다가 급히 투구를 벗고 토악질을 했다.

철컥.

그녀의 드러난 머리에 총구를 들 이밀 었다.

투구를 벗느라 놓친 검은 바닥을

나뒹굴었다. 드러난 머리통에 방아 쇠를 당기면 이번엔 구토로만 끝나 지 않을 것이다.

"다들 멈춰."

일전에도 스테이지형 게이트에서 내 적성을 찾은 적이 있지.

"움직이면 쏜다."

기사단장을 일으켜 세워 내 앞에 방패로 세우고 머리엔 총구를 겨눴 다.

경악한 낯으로 날 바라보는 기사 들과 댄버의 시선을 마음껏 즐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인질범이 적

성에 맞는 것 같다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기사들은, 인질극에 개의치 않고 검을 들었다. 내 손에 저들의 단장 이 잡혀있다는 걸 아예 잊기라도 한 것처럼.

"잠깐만. 나한텐 인질이 있는데?"

"추악한 수를 쓰는군! 침입자!"

그렇게 말하니 내가 나쁜 놈 같다. 아니, 그야 내가 침입자긴 하지만.

이 연구실 자체가 지구를 침략하 는 게이트 생성기를 연구하는 곳인 데, 참 웃기는 질책이 아닌가.

"단장님도 황실을 위해 희생하시 는 것이니, 명예롭게 돌아가실 것이 다."

아주 신박한 사고방식이었다.

저딴 소릴 듣고도 내 손아귀에서 끄덕끄덕 고갯짓을 하는 이 기사단 장도 어이가 없고 말이다.

탕!

스르륵, 털썩.

인질의 가치가 없다면, 살려둘 이 유가 없지. 가차 없이 총을 쏘자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내가 자신들의 단장을 죽

이는 걸 봤음에도, 기사들의 표정엔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로 자신들의 단장이 명예롭게 죽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명예로운 죽음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데. 멍청하게.'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인데 말이 다.

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는 댄버 를 뒤에 둔 채로 기사들과 마주 섰 다.

숫자는 15명.

1대15의 상황이지만, 전혀 긴장되 지 않았다. 거듭 말하지만.

일 대 다수의 대인전은 내 전문 분야다.

푹!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목이 꿰 뚫린다. 맨 뒤에 있던 기사였다.

스틸레토의 가느다란 칼날이 꼬챙 이처럼 목을 꿰어냈다. 시신이 바닥 을 툭, 구르자 그제야 다들 뒤돌아 나를 바라본다.

공간 간섭, 그러니까 장거리로 쓰 면 텔레포트고 단거리로 쓰면 블링 크인 이 고유 스킬은. 내가 활용하 기 전까지 전투 스킬로 각광받지 못했다.

오랜 시간 산업용, 공업용으로 특 화된 스킬로 존재했다.

그러니 이들은 나처럼 신출귀몰하 고 자유분방하게 허공을 걷는 자에 게 어떻게 대항해야 할지 모른다.

'톨룩과 전쟁을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나니 하나같이 대비책을 준비해 와서 좀 짜증 났는데.'

이들에겐 아직 그런 파훼법이 없 다.

그렇기에 지금은, 온전히 내 손아 귀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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