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팟!
내가 공간 간섭으로 김기택의 뒤 를 점하려고 하면.
타악!
김기택도 똑같이 공간 간섭으로 피한다. 이 끊이지 않는 술래잡기 속에서 첨예한 긴장감이 이어지고있었다.
'실수로 상대를 놓치면 바로 공격 당한다.'
그 명확한 전제 아래, 우리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도 공 간 간섭을 계속 펼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끝이 안 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져 갔다. 지금 이 순간도 쌍둥이들은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미세한 컨트롤은 내가 더 우위 야.'
아무리 내 능력을 가져갔다 하더
라도 내 숙련도까지 가져갈 순 없 으니, 섬세한 컨트롤은 내가 훨씬 우위다. 그걸 이용한다면 아주 잠깐 이나마 뒤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뒤를 점해도……
철컥, 탕!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시 점엔 김기택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애꿎은 바닥만 잔뜩 패었다.
'어떡하지? 범위 공격도 못 쓰고, 섣불리 접촉했다가 김기택이 공간 간섭을 쓰면 그대로 갈려나갈 수도 있어.'
그것 때문에 김기택에게 함부로
달려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챠가가각!
잠깐 딴생각을 하면 곧장 눈앞에 서 사라진다.
김기택이 내 등 뒤로 등장해 검을 휘두른다. 예측된 움직임이라 노이 트로 막아냈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리고 직후에 김기택이 그 자리 에서 사라진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이었다.
'……그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김기택이 내 능력을 가져갔을 때 부터 은연중에 떠오르던 방법이었 다. 김기택의 컨트롤이 서투르다면 더더욱 잘 먹힐 방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무고한 희생자들.'
이름 모를 목숨 하나가 스러져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나까지 이런 술수를 쓴다는 게 마 음에 걸리지만, 다른 방법이 떠오르 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쌍둥이들이 어 떻게 되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자꾸만 초조해졌다. 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팟! 타닥!
탕 탕!
그래. 결단의 순간이었다.
'공간 간섭'
능력으로 빠르게 김기택의 뒤를 점한다. 김기택이 곧장 피하려 했지 만, 이번엔 총구를 겨누려고 한 게 아니었다.
불쑥. 김기택을 방어해야 한다는 명령을 따르려고 근처에 있던 사내 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툭. 내 가 한 일은 그 사내를 살짝 뒤로 민 것뿐이었다.
김기택에게 닿도록.
"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은 벌어 졌다.
콰드드득!
아.
핏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시야가 온통 붉은색이었다.
"이, 이게…… 갑자기……
김기택이 말을 더듬었다.
그는 붉은 물감을 뒤집어쓴 듯 나 보다 더 끔찍한 몰골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공간 관련 능력자들이 반드 시 지켜야 하는 수칙. 몰랐나요?"
어쩐지 김기택의 표정이 멍했다.
"생명체와 함께 공간의 틈에 들어 가지 말 것……
공간 관련 능력자들이 철저하게 교육 받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되 는 수칙이었다.
'김기택이 알았을 리 없지.'
그는 애초에 공간 관련 능력자가 아니니까.
그런 수칙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았을지 몰라도, 몸에 생명체가 닿자 마자 능력 발동이 멈출 순 없었을 거다.
'태생적인 공간 능력자가 아닌 이 상 어려웠을 거야.'
이 수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피해자의 몰골이 끔찍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트라우마로 두 번 다시 능력을 쓰
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까.'
귀한 공간 능력자들을 헛되이 잃 지 않기 위해서다.
확실히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했 다.
전쟁터를 구르며 온갖 종류의 죽 음을 다 목격한 나지만, 이번만큼은 속이 역할 정도였다.
겉으로 보는 나도 이러니 김기택 은 더 심각할 거다.
자신이 펼친 공간 간섭 아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끔찍하게 뭉개지는 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욱여넣어졌을 테니까.
"웁! 우욱…… 커헙!"
아니나 다를까. 김기택이 바닥에 토악질을 했다.
"허억...... 허억……I"
철컥.
그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이 이후 김기택이 일상을 살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아니. 이 경우엔 이게 더 잘 먹히 겠지.'
총을 거두고 김기택의 어깨에 차 분히 손을 얹었다.
"쌍둥이들. 어디로 데려갔어요?"
"한서하 씨……. 내 꼴을 보고도 잘도 손을 얹는군요."
이대로 그가 공간 간섭을 사용하 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런 걱정이 라도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걱 정은 할 필요 없다.
"두 공간 능력자가 같은 능력을 펼치면 숙련도가 우월한 쪽이 주도 권을 가져가요."
".…"하하......
"당신이 제일 잘 알겠죠. 지금 능 력을 발동하면.... 어떤 최후를 맞
이하게 되는지."
김기택은 잠시 침묵하다 날 바라 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한서하 씨는 우리 편에 서 는 편이 더 어울렸을 텐데."
"딴소리 하지 말고. 장소나 말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김기 택은 허탈하게 웃었다.
"얼음고성 던전."
나는 무너지려는 얼굴 표정을 겨 우 관리했다. 거기라면.
'가짜 이운우가 있던 곳이잖아. 백 목련이 의심할 때 거긴 아니라고했었는데……
"그곳에 쌍둥이들이 있습니다."
탁! 그대로 그를 뿌리쳤다. 당장 그곳으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이 운우에게 다시 연락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조심하세요."
김기택이 툭 내뱉었다. 웃기지도 않은 걱정이었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요."
"그렇죠. 교주님이…… 교주님이 당신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할 말이 그게 전부라면, 더 나눌 대화는 없었다.
탕!
"아아아악!"
김기택의 팔을 총으로 쐈다. 극심 한 고통에 그가 비명을 지른다.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있어요."
이걸로 그가 뒤따라 와 다시 방해 할 일은 없겠지. 깔끔한 뒤처리에 김기택이 땀을 흘리면서도 실실 웃 었다.
내 눈에 푸른빛이 스며들고. 또 한 번, 공간 간섭이 발동된다.
"역시 당신은…… 우리랑 같다니 까요...
팟!
김기택이 작게 중얼거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를 지나쳐 사라 졌다.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운우에 게 연락했다. 전화벨이 두 번도 채 울리지 않고 통화가 연결됐다.
-너 어디야?
"이운우. 장소가 바뀌었어."
-무슨 소리야. 너 어디냐니까? 진 짜 혼자 간 건 아니지? 앞으로 30 분 뒤면 도착인데, 사람들 모아오고 길드장님께 허가를 받느라 조금 시 간이 걸렸…….
"얼음고성 던전으로 와!"
-잠깐만. 끊지 말……!
이운우의 간절한 외침을 무시하고 통화를 끊었다.
'공간 간섭을 너무 남발해서 마나 가 바닥이야.'
얼음고성 던전까지 가는 동안 연
락을 돌릴 곳이 많았다.
'전청운은…… 믿을 수 있을까.'
김기택은 새하나교의 끄나풀이었 다. 그와 함께 다녔던 전청운은?
'……아니. 전청운도 관계자였다면 아까 만났겠지.'
새하나교의 첩자라 해도 상관없다.
김기택의 목숨을 끊지 않고 나온 이상, 내 행선지가 어디인지 놈들이 다 알고 있다 생각하는 편이 맞았 다.
-한서하? 네가 내게 연락을 하다 니. 무슨 일이지?
전청운이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놀라움을 표했다. 이렇게 사적으로 연락하긴 처음이었으니까.
"새하나교가 움직였어요."
-……그래서?
"도울 생각이 있으면 얼음고성 던 전으로 와요. 데려올 다른 병력이 더 있으면 좋고요."
-지금 당장 말인가?
"네. 지금 당장."
전화 너머에서 전청운은 잠시 시 간을 가늠하는 것 같더니, 이내 바 로 대답했다.
-1시간 정도 걸린다.
뚝. 그대로 끝이었다. 전청운다운 반응이었다. 1시간이나 걸린다면, 다른 이들도 데려오겠단 소리겠지.
'그 다음엔……
내 협력자. 새하나교를 쫓는 데 큰 도움을 준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서하 씨?
"백목련 씨. 정부에 정식 보고를 올릴 수 있습니까? 새하나교가 헌 터들을 납치했고, 그 본부가 어딘지 알 것 같다고요."
내 물음에 백목련은 빠르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 가능하지만…… 알다시피, 정부 는 새하나교와 결탁해 있을 확률이 높아요.
"알아요. 그래도 공식적으로 보고 가 올라가면 시늉이라도 하겠죠."
내 목소리가 꽤 간절했다. 그래. 나는 지금 누구라도 날 도와줬으면 했다.
공간 간섭도 바닥난 내가 얼음고 성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이렇게 전화를 돌리는 심정을 누가 알까.
- ……일단 해볼게요.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고마워요."
- 저기요. 한서하 씨. 목소리가 많 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요?
그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무슨 일이 있었냐……. 많이 있었지만 적 어도 지금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할 말은 아니었다.
"얘기가 길어요. 나중에 다시 연락 할게요."
뚝. 백목련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더 전화할 곳이 있나? 내게 도움
을 줄 수 있는..
그 순간, 당연하게도.
'……혜원 언니.'
그 사람이 머릿속을 스쳤다. 휴대 폰에서 최신 통화 목록에 그 이름 이 있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대로 통화 가 가능했다.
그런데 어쩐지. 어쩐지…… 그 버 튼을 도저히 누를 수가 없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혜원 언니를 의심한 주제에 이제 와서 도움을 청하다니.'
그런 죄책감과.
'이런 위험한 일에 끼어들게 해도 되는 걸까? 그냥…… 이대로 지나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걱정과.
'……내가 아까 했던 선택을 언니 가 알게 되면. 이전처럼 날 대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그런 두려움이 밀 려들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 화할 수도 없었다. 내가 한 선택이, 새하나교에 있는 이들과 다른 게있을까?
'새하나교는 인류를 위해 일부 헌 터를 희생시키고. 나는 그걸 막기 위해 헌터 한 명을 희생시켰지.'
줄줄이 이어지는 이 죄악의 연결 고리 속에서 나는 도저히 당당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혜원 언니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조차도 내가 실망스러운데.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이 통화 하나가 뭐라고.
수많은 생각들과 번뇌가 스쳐지나 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린 결론 으뒤로 가기를 누르는 것이었다.
'통화할 수가 없어.'
이 연락 이후 찾아올 여러 가지 연쇄적인 작용이 두려웠다. 싸움의 과정에서 추악해질 내 모습을 보여 주기가 두려웠고, 이런 진흙탕싸움 에 굳이 참여하라고 권유하고 싶지 도 않았다.
'나중에. 모든 일이 해결된 다음 에…… 그때 알리자.'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휴대폰 액 정 속 '혜원 언니'라는 글자를 모르 는 척했다.
그러나 얼음고성 던전 앞에 도착 했을 때, 혜원 언니가 그곳에 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