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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15화 (115/361)

115화

똑똑.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하 얀색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어? 언니 왔다!"

반가운 외침과 함께, 안유라가 도 도도 달려와 내게 안겼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이운우도 한마디 얹었다. 가끔씩 안유라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몸은 좀 어때?"

"멀쩡하지. 난 아직도 내가 왜 여 기 입원한 건지 이해가 안 가. 너 무 과보호라니까."

안유라가 조잘조잘 떠들었다. 사건 이 끝난 지 거의 3달이 다 되어가 는 때였다.

나와 이운우는 가볍게 눈빛을 교 환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안유라는 아직도 기억을 잃은 채다.

'기억이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0%. 지금쯤 퇴원 얘기가 오가고 있겠지.'

인체실험을 위해 납치되었던 만큼 혹여나 그 후유증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결정된 입원이었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이게 육 신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아챘겠지.

"뭐…… 이상한 사이비한테 납치 당했었으니까."

"난 기억도 거의 안 난다니까 그 러네. 이러다 활 쏘는 것도 까먹겠 어."

탁!

안유라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허공에서 활이 생겨났다.

" 안유라."

이운우가 작게 경고했다. 병원 안 에서 활을 휘두를 생각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네, 네〜. 알겠다고요."

안유라는 과장되게 활발하게 굴고 있었다.

'눈치챈 거겠지. 자길 보러 오는 사람들이 묘하게 침울해한다는 걸.'

기억을 잃었다고 눈치까지 사라지

는 건 아니니까.

안유라는 영영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없겠지만, 그 결과는 유추할 수 있는 법이었다.

'본인은 멀쩡해 보이네.'

정작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안 유라를 보면 안유수가 생각나 가슴 이 철렁해지는데.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렀지.'

상주가 없는 장례식은 청사에서 주관하여 조용히 치렀다.

살아있는 안유라를 위해, 죽은 안 유수를 조용히 묻을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퇴원할 거야. 마지막으로 뇌검사 한 번만 더 받고."

"금방 보겠네."

"얼른 나가고 싶어 죽겠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슬며시 웃는 안유 라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이거면 된 거겠지.

병실 밖으로 나오자 이운우도 따 라 나왔다.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보여 자리를 옮겼다.

"한서하. 전부터 얘기하고 싶었는 데."

"뭔데?"

"안유라에게 안유수의 존재를 계 속 숨기는 게 맞는 일이라 생각 해?"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차피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야. 안유라가 계속 병실에만 있을 거 아니잖아. 언젠가는 쟤도 눈치챌 거라고. 자기한테 쌍둥이가 있었다는 걸."

그럴지도 모르지.

안유라, 안유수 쌍둥이는 매스컴에 도 자주 출연했으니, 안유수의 사망소식은 꽤 뜨거운 감자였다.

'암묵적인 합의 하에 헌터의 사망 소식은 대놓고 떠들지 않기로 했으 니, 대부분은 쉬쉬하고 있겠지만.'

사회적인 약속이었다.

잇따른 사망 소식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인 보도 를 제재하고 있었다.

그래도 뒤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 은 넘쳐났다.

"어차피 사람들은 한 달만 지나면 다 잊어. 새로운 헌터는 계속 나오 고, 죽는 헌터도 언제나 있으니까. 지금도 봐. 이제 와서 안유수를 애

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 래?"

사람들의 관심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하다. 매력적인 헌터는 언제나 넘쳐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쌍둥이들이 가장 잘 따랐 던 게 너고, 유가족이 없으니 네 의견을 우선시하고 있지만…… 이 게 정말 안유라를 위한 길인지 모 르겠다."

이운우도 생각이 복잡한 얼굴을 했다.

"입원, 조금만 더 오래 끌어줘. 안 유수에 대한 뉴스가 완전히 묻힐

때까지."

내 부탁에 이운우는 질린다는 표 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비정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뒤돌아 나서는 내 등에 대고 이운 우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안유라는 네 생각만큼 약하지 않 아. 그 애도 견뎌낼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다. 내가 피하는 건, 안유라가 무너질까 봐서가 아니다.

그 애는 어차피 안유수를 잊었는 데.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안유라의 슬픔이 될 수 있을까.

"그 반대야."

이운우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난, 안유라가, 안유수의 사망 소 식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 할 게 두려워."

그걸 보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

톨룩과의 전쟁을 대비한 회의는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익숙한 회의장에 들어서면서 전서 호에게 눈인사를 했다.

'저번에 빚을 졌어.'

새하나교 사건 때 그가 시선을 끌 어주고 앞에서 버텨준 덕분에 군헌 터를 상대하지 않으면 새하나교에 침입할 수 있었다.

'안씨 쌍둥이들과 관련된 일이었다 곤 해도, 원칙적으로 전서호가 힘을 빌려줄 필요는 없었으니까.'

홍염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모르 는 체할 수도 있었다.

'윤강백. 홍염의 길드장. 그는 사람

은 보냈으나 결국 나타나지 않았 지.'

전청운이 이끌고 온 이들이 있긴 했지만 청사에 비하면 규모도 작았 다.

"제18회 비공식 길드 연합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번에 올라온 안건은, 최근 게이트에서 발견된 석판입니 다."

석판. 내가 제출한 것이다.

'좋아. 여기까지 안건이 올라왔군.'

삐빅. PPT가 넘어가면서 석판의 모습이 드러났다.

톨룩에서 넘어온 것처럼, 아주 그 럴듯한 분위기가 흘렀다.

"새겨진 것은 톨룩의 언어로 추정 됩니다. 완전히 해독할 순 없었지 만, 해독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PPT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해 석본이 눈에 들어왔다.

「황제께서 용맹한 군사를 보내 지구를 토벌해야 할 것이나, 마땅한 이가 없어 고민이라 하셨다.」

"지구를 토벌……?"

심상치 않은 내용에 누군가 중얼

거렸다.

'■충성을 의심받은 이가 스스로 나서길,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승리를 쟁취하겠노라 하였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다.'

r그러나 군사(軍士)가 아니라 군 사(軍師)가 가게 되었으니 웃지 못 할 일이니라.J군졸이 아니라, 군의 책사가 오게 되었으니 웃지 못할 일이다…….

"……이건……

"곧 침략이 시작된다는……?"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아니어

도, 조만간 일이 생길 거란 얘기 같군요."

제각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 작했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긴 이들도 있었고, 제 추측을 늘 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한 복선이지.'

테오도르를 훌륭한 '군인'이라 말 하기엔 큰 어폐가 있다. 오히려 두 뇌파에 가깝지.

'충성을 의심당해, 졸지에 전쟁터 에 떠밀린 책사라.'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란 말인가.

'정보를 불게 하는 데 딱이지. 안 그래?'

말없이 가만히 있는 이들은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 다.

섣불리 말로 꺼내지 못할 뿐.

[알림: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개체 '한서하(각성자)'를 확인했습

니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약속된 날이 왔다.

눈을 뜨자 필드형 게이트의 낯익 은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서식지는 파악했는데 어떤 몬스 터인지는 모르겠다고 해요."

혜원 언니와 조연호가 빠르게 정 보를 주고받았다.

"다른 팀들은."

"금방 뒤따라오겠답니다."

"조심하자. 이번엔 심상치 않은 녀 석일 것 같으니까."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그래. 오 늘이었다.

'석판에 적힌, 톨룩의 군사가 나타 나는 날이.'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그 군 사일 것이라고 다들 예측하고 있었 다. 그 때문에 이 정도 난이도에 이렇게 많은 길드들이 참여하고 있 는 거였다.

"반드시 생포해야 해. 게이트가 좀

늦게 클리어되는 한이 있더라도, 얻 을 정보는 다 얻어야지."

뭐. 그런 이유로, 다들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저 성 꼭대기에 있단 말이지

아득히 멀리서 높이 솟은 첨탑이 보였다. 저 꼭대기에 테오도르가 대 기하고 있었다.

'내가 적어준 대본 제대로 기억하 고 있겠지?'

그런 걱정을 하면서, 성을 향해 전 진했다.

♦ ♦ ♦

성 앞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 있 는 다른 길드들과 마주했다.

'홍염, 청사, 적멸에 다른 길드들까 지...

고루고루 왔다. 이 관객들 앞에서 연극을 펼칠 생각을 하니, 살짝 긴 장되는 것도 같았다.

"역천입니다. 보스 몬스터가 어떤 종류인지 확인된 게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성에서 뭔가 마력이 느껴지는데 정확히 어떤 종 류인지는……

이거 눈치가 빠르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일을 시작할 수밖에.

딱!

손가락이 부딪히면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과과과광!

쿠웅! 쿠구구구구구!

"진영을 갖춰 수비하라!"

첨탑의 중간 부분에서 거대한 폭 발이 일었다.

"으윽! 무너집니다!"

"피해! 후퇴! 후퇴하라!"

성의 중간 아랫부분이 기우뚱, 하 더니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편이 튀 면서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렸 다.

"탑의 꼭대기가……!"

"공중에 떠 있잖아!"

제법 괜찮은 연출 아닌가. 폭발로 사방이 벌겋게 물들고 정신이 없는 데, 하늘에 우뚝 솟은 첨탑이라니.

'아랫부분을 잃고도 멀쩡하단 점이 공포감을 조성하지.'

현실적으로 가능할 리가 없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면 다들 흥분하기 마련이다.

'좋은 연출이야. 차준.'

-아아……. 제대로 됐나요?

차준이 귀에 꽂힌 무전기로 슬그 머니 물었다. 대답하긴 어려워 톡 톡, 무전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웅 답해주었다.

'아직 차준은 헌터가 아니라 게이 트에 들어올 순 없겠지만…… 타이 밍만 잘 맞춰서 준비한 걸 터뜨린 다면 문제는 없지.'

테오도르가 준비된 물품을 지정된 장소에 부착하고, 조작은 외부에서 차준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하야!"

"네. 제가 올라가 볼게요!"

"나도 뒤따라갈게!"

허공에 떠 있는 탑에 빠르게 올라 갈 수 있는 인물은? 적어도 이곳에 선 나뿐이다.

'테오도르와 맞서 싸울 인물도 나 라는 거지!'

지금까진 정해진 대로였다!

'공간 간섭'

눈을 감았다 뜨자, 익숙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곱슬곱슬한 진녹색 머리카락에 익 숙한 외모지만 크기가 완전히 달랐 다.

'……사람 크기잖아.'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테오도르가 그동안 작은 모습을 하고 있던 건 기술력의 한계 때문 이었으니, 이젠 그 모습을 할 필요 가 없다.

'알고 있었지. 회귀 전에도 멀찍이 서 본 적은 있고.'

그런데…… 직접 보니 또 새삼 신 기했다.

"응? 왜 그러느냐? 내 행색이 좀 과했느냐?"

"아니. 딱 적당해. 마왕의 부하 같 고."

"칭찬인지 욕인지 잘 모르겠구나."

일단은 칭찬이었다. 위압감을 주는 게 중요하니까.

"연습한 대로만 해. 알겠지?"

"걱정 말거라. 그렇게 훈련했는데 못 할 리가 있겠느냐."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더 불

안해졌다.

"나 떨어지면 곧장 시작해. 차준, 너도 타이밍 초 단위로 맞추고!"

"알겠느니라!"

-네, 넵!

신신당부를 하고 첨탑의 창문에 몸을 반쯤 기댔다. 내 모습을 봤는 지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 다.

탕, 탕!

총알을 몇 발 허공에 발사하고, 테 오도르와 싸우는 것처럼 헛발질도 몇 번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휘이익!

갑자기 부는 돌풍에 몸이 휘청였 다. 아슬아슬한 장면에 아래서도 이 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균형을 다시 잡아가던 차에.

탁!

테오도르가 내 어깨를 밀었다.

후우우우욱!

귓가에 바람이 스친다. 오싹한 감 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겨우 붙잡았어.'

창틀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공간 간섭으로 다시 이동해도 되지만, 극적인 연출을 위 해서다.

"서하야아!"

혜원 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직전.

탁.

"아…… 안 돼."

약속된 대사를 중얼거렸다.

촤르륵! 망토가 바람에 휘날리고, 어두운 색으로 차려입은 제복이 드러났다.

가슴팍에 단 훈장과 정복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누가 봐도 군 고 위직으로 보였다.

테오도르가 등장했다. 창틀에 매달 린 내 손등을 짓밟으면서.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시끄럽구나

묵직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아주 권위적인 느낌을 줬다.

우드득!

" O O으I

준비된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테 오도르가 짓밟은 내 손이 자비 없 이 아스라진 것처럼.

'움직일 순 없어. 테오도르와 닿아 있으니까. 공간 간섭이 사전에 차단 된 거야.'

그런 설정이었다.

-후후후…… 후후후후……! 버러 지 같은 네놈들을 모두 죽이고, 내 충성심을 확인받아야겠다!

사악하게 입꼬리를 비틀며 웃는다. 연습시킨 보람이 있었다.

-우선은 네 녀석부터다!

탁! 테오도르가 내 손을 짓밟다 못해, 옆으로 차 떨어뜨렸다.

"어어......?"

순식간에 나는 허공으로 내던져졌 다.

후우우욱!

바람이 날카롭게 귓가를 스쳤다.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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