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홍! 어딜!"
퐁, 퐁!
마녀가 날 보며 손짓했다. 그에 맞 춰서 풍선들이 내 앞에서 우수수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게 이런 수는 통하지 않 는다.
'공간 간섭'
철컥.
공간을 뛰어넘은 다음 곧장 총구 를 겨눴다. 놀란 얼굴의 마녀가 뒤 돌아보며 잠시 눈이 마주쳤다.
'마녀의 몸은 일반 인간과 같지.'
그리고 광범위한 스킬을 쓰는 이 마녀는 기본적으로 원거리 딜러다. 근접거리 방비책이 있을 리가!
탕!
콰아아앙!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마녀와 내 사이로 풍선이 생겨났다.
아차 하는 사이 이미 방아쇠는 당 겨졌고, 거대한 폭발이 일기 직전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하...... 하하하......
나는 약간의 그을음을 제외하곤 멀쩡했다. 재빨리 공간 간섭을 펼친 덕이었다.
반면에 마녀의 꼴은 처참하다.
"아...... 아파......!"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났다 얼 굴 절반에 큰 화상을 입고, 한쪽어깨까지 부상이 심각하다.
'그래도 살아있어.'
만약 저 마녀가 풍선을 만들지 않 았더라면. 그대로 총알을 맞고 죽었 을 거다.
'판단력이 좋다고 봐야지.'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 다.
"으…… 으윽! 저, 저 슬슬 마나가 고갈될 것 같아요……!"
정로운이 한계를 토로했다. 최대한 빨리 이 녀석을 해치워야 한다.
"아프다고……. 아프단 말이야!"
휘이이익!
마녀의 외침과 동시에 허공에서 거대한 풍선이 나타났다.
열기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 법 크다.
저게 터진다면 나랑 저 마녀는 물 론, 정로운까지 휘말릴 것이 분명했 다.
"잠깐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만류의 목 소리가 튀어나왔다.
"전부…… 전부! 죽어! 너희가 전 부! 죽었으면 좋겠어!"
인간을 향한 중오가 활활 타오르 는 외침과 함께, 거대 풍선이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 방향은?'
헌터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마법사들! 방어막을 2겹, 아니 3 겹으로!"
이런. 이번엔 내가 총을 쏴줄 수가 없다.
여기서 터지면 정로운도 위험해지 니까!
"하, 하하하! 꺄하하하하!"
그렇다고 웃음 짓고 있는 마녀를
그냥 내버려둘 만큼 자비롭진 못했 다.
철컥.
"어……?"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을 거다.
공간 간섭으로 다가간 다음, 풍선 이 끼어들 틈이 없도록 바짝 이마 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어라? 하는 사이.
탕!
쿠구구구구구궁!
총성과 함께 거대 풍선도 터져나 갔다.
마녀의 시신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차. 류라임 줘야 하는데. 아직 하나 더 남았으니까 괜찮겠지?'
오늘 마녀의 목을 하나 주지 않으 면 무고한 헌터가 변사체로 발견될 지도 모른다.
폭발이 터진 쪽을 바라보자 연기 가 자욱했다.
"크으으으! 커흡, 커어어……
"부상자들은 뒤로!"
마법사들의 부상이 심각한 모양이 다. 그렇다고 방어막을 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어어……. 우어어어어…….
-아……. 아아아…….
아직 골렘들이 방어막 주변에 몰 려있기 때문이다.
마치 좀비 떼 같다.
저 방어막이 풀리는 순간 어마어 마한 난투전이 펼쳐질 것이다.
"으윽……! 이제, 정말! 한계예요!"
"잘했어요. 이제 풀어도 돼요."
휘이이이익…… 휘익…….
눈보라가 차츰 잦아든다. 그 안에
휘말려 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비틀 비틀 허공에서 흔들렸다.
"으아……. 어지럽잖아……!"
눈앞이 핑핑 도는지 도통 균형을 못 잡는다. 허공을 이리저리 맴돌다 가 겨우 멈췄다.
" 어?"
그러다 불현듯 무언갈 깨닫는다.
"어어?"
그래. 바닥에 떨어진 제 동생의 시 신을 보는 거겠지.
"어어어어?"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머리를
부여잡는다.
주인의 슬픔에 동조하는 것처럼 골렘들이 멈칫했다.
"아……. 아아아아아악!"
마녀의 비명과 함께, 콰과과과곽! 남아있던 풍선들이 동시에 터져나 갔다.
"방어막이! 뚫렸습니다!"
"위험합니다! 몬스터가……!"
"방패병, 앞으로! 방어막을 해제하 라! 폭탄은 모두 해제됐다! 레인저 들 조준!"
밑의 병사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습이…… 바뀌었다?'
마녀의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열댓 살의 어린 소녀에 가까웠던 얼굴이 기괴하게 흘러내린다.
이건, 분명 내가 알고 있는 현상이 다.
'과부하. 자신의 그릇 이상으로 힘 을 빌려오려고 할 때 생겨나는, 육 체가 녹아내리는 현상.'
마녀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되는 일 이었다. 한번 저렇게 변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드을…… 가만두지…… 않, 겠어!"
녹아내리는 육신 사이로 강력한 힘이 샘솟고 있었다.
'골렘이 강화되고 있어.'
-우어어어어어!
수만 많을 뿐 공격력 자체는 대단 하지 않은 골렘들이, 한곳으로 모이 고 있었다.
'칼날들쥐와 비슷한 방법이다.'
하나로 뭉쳐서 거대하게 변하면 그 힘은 더욱 강대해지니까!
"허억……! 크기가!"
정로운이 옆에서 감탄사를 내뱉는 다. 그럴 만도 하지.
가히 산에 비교될 정도로 거대한 골렘이 었다.
골렘이라도 불러도 되는 걸까. 이 미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종 류의 몬스터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주욱……어어어어!"
제 주인의 외침에 응답하는 것처 럼.
-우어어어……. 아아아아아!
골렘이 힘껏 팔을 휘둘렀다.
부우웅!
거대한 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압도적인 부피와 무게는 세련된 움직임이 아니어도 충분한 파괴력 을 지니고 있었다.
"마법사는?"
"안 돼요! 이미 부상자들이 많습니 다!"
"다들 피하세요!"
콰아아아앙!
손짓 한 번에 땅이 뒤흔들렸다. 지 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착각과함께.
"아아아아악!"
"커업!"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천재지변……
그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나는 정 로운에게 물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습니까?"
"예? 아……. 어, 어떻게든 해보겠 습니다!"
저런 거대한 상대는 항상 작고 재 빠른 자들을 상대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몸체가 워낙 단단해서 보통은 날 파리 취급하면서 무시하겠지만.'
대미지가 날파리 수준이 아니면 말이 달라진다.
"버텨요!"
당황하는 정로운을 무시하고 무게 를 실었다.
내 스킬은 기본적으로 공중 부양 이 아니라 '공간 간섭'이다.
그래서 허공에 떠 있으려면 반복 해서 스킬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스킬과 겸하는 게 꽤나 비효 율적이다.
'특히나 이런 경우엔.'
우우우우웅!
에너지가 총구 앞에 모이기 시작 한다.
격렬한 에너지의 격동에 바람이 휘몰아치고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무게를 버티기 쉽지 않지.'
우우우웅!
에너지가 응축되는 과정에서 팔이 덜덜 떨려왔다. 그런데, 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팔의 부담이 전보다 적어.'
왜일까?
노이트에서 바뀐 점이라곤...... 정 령수의 감로뿐인데.
'정령수의 감로가 마력을 옹축하는 부분이라 했었지. 효율이 높아진 건 가.'
과연. 덕분에 더 빨리, 더 많이 압 축할 수 있었다!
'목표는, 골렘의 머리 위에 있 느...'
마녀 본체!
타아앙!
'관통하는 철화!'
골렘이 총알을 눈치채고 손을 들 어 막았다. 하지만, 거기에 막히면 이름값이 울 거다.
쿠우웅!
탄환은 골렘의 손을 박살내고도 계속 나아갔다.
푸욱.
마녀의 이마를 꿰뚫었지만. 마녀는 죽지 않았다.
'이미 늦었나.'
마녀의 신체가 녹아내리면서 골렘 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반쯤 합체된 상태라 마녀의 육신
이 그 의미를 잃었다.
'골렘의 움직임이 매끄러워지고 있 어.'
골렘의 가장 중요한 부분. 뇌의 역 할을 수행하는 '핵'을 마녀가 담당 하면서 훨씬 고성능으로 변한 것이 다.
"어쩔 수 없네. 골렘의 팔다리부터 망가뜨려야겠어."
"어떻게요?"
"마녀가 남긴 게 하나 더 있잖아."
나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아직도 유유히 허공을 노닐고 있
는 거대한 열기구. 그 움직이는 폭 탄을 말이다.
"그렇군요!"
"저 녀석도 지금쯤 날 인식했겠 지."
자기 손을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바라보며 광 분하고 있었다.
"마나 상태는?"
"아슬아슬해요……!"
"슬슬 밑으로 가 있어요. 갑자기 마나가 바닥나면 그대로 추락할 수 도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게도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가 있다.
한동안 보지 못했지만, 내가 필요 할 때 부르면 와주기로 했었지.
"괜찮아요. 내려가요."
나는 정로운의 손을 놓으며 외쳤 다.
"파이로!"
후우욱, 귓가로 바람이 스친다. 얼 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소리가 울 렸다.
-삐이 이 이 이!
탁. 떨어지는 날 잡아챈다.
"오랜만이야."
-삐이이!
부리 아래를 살살 쓰다듬자 기쁜 듯이 소리친다. 그래. 나도 오랜만 에 봐서 반갑다.
간만에 만난 파이로와 회포를 풀 기도 전에 공격이 쇄도해왔다.
부우웅!
거칠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났 다.
"파이로, 저쪽으로!"
-삐이이!
육중하기만 한 공격은 가뿐히 피 해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졌다 해 도 스피드 면에서 우릴 쫓아올 순 없겠지.
머리 위로 골렘의 주먹이 스친다.
'저 열기구 쪽으로 유인해야겠어.'
마녀가 흡수되면서 나름대로 사고 가 가능해진 것 같다. 너무 티 나 게 유인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겠 지.
"파이로. 부탁할게."
-삐이 이 이!
이제 파이로의 비행실력만 믿고 얌전히 매달리면 된다.
"우왁!"
파이로가 거꾸로 날 때는 많이 당 황했지만, 금방 중심을 잡을 수 있 었다.
'열기구가 근처야.'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골렘이 열기구 가까이는 접근하지 않고 있 었다.
'섬세하게 다루기 어려우면 실수로 건드릴 수도 있어서 그런 건가.'
역시 일반 골렘보다는 어느 정도
사고가 가능한 것 같다.
'그러면 억지로 건드리게 만들어줘 야지.'
파이로에게 속삭이자 알겠다는 듯 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나는 파이로의 등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중심을 잡고, 총을 겨눈다.
-으어어어어...
골렘이 아까 공격받은 것을 기억 하는지 황급히 손을 들어 방어한다.
페이크다, 이 녀석아.
'공간 간섭!'
장소를 비틀어 눈을 뜨면. 바로 앞
에 골렘의 등이 있었다.
골렘의 위로 마녀도 보였다. 육신 이 반쯤 녹아내려 이제는 그 절반 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추락하는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총을 들었다. 불안정하지만 어쩔 수 없지.
'못 해낼 정도는 아니야.'
추락하는 건 익숙하니까.
우우우웅!
에너지가 모이며 소음을 냈다.
바람의 흐름이 뒤바뀌자, 골렘도 이제야 뭔가 이상하단 걸 눈치챘다.
그러나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타앙!
탄환이 골렘의 등 한가운데를 뚫 어낸다. 그 여파로 골렘의 전신이 기우뚱, 기울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파이로가 달 려들었다.
-삐이 이 이이!
화염이 골렘의 무릎 뒤편을 가격 한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몸체가 쓰러지는 덴 꽤나 시간이 걸렸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골렘이 열기구 방향으로 넘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