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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76화 (176/361)

176화

챕터: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해

내가 알기로 류라임이 흡수한 능 력은 마녀에게서 빼앗은 공중 부양 과 폭탄을 터뜨려 얻은 대량의 스 탯들이었다.

'그런데 방금은 뭐였지?'

허공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는데.

'설마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

그런 의심이 살짝 피어났다. 류라 임을 자세히 살폈다. 평소와 다른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야. 능력을 노렸으면 하찮은 능력들이 아니라 강한 한 방을 갖 고 있었겠지.'

아마도 폭탄을 터뜨렸을 때 괜찮 아 보이는 능력을 조금씩 수집한 모양이다.

헌터의 능력을 여럿 모은 거라면 갑자기 살해된 헌터들 이야기가 내귀에 들렸어야 한다. 최근에는 헌터 실종 사건도 없었기에 의심을 접었 다.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어.'

섣불리 다가섰다가 또 폭탄세례를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 원거리 딜 러거든!'

철컥, 탕! 탕!

"으아아, 너무해요! 진짜로 총을 쏘다니!"

"류라임 씨도 폭탄 터뜨렸잖아요."

"그렇긴 하죠!"

류라임이 휙휙 총알을 피하면서 징징대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피하 는 솜씨가 꽤 능숙하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가가야지.'

공간 간섭!

눈을 뜨자 내 앞에 류라임의 뒤통 수가 보였다. 철컥, 총구가 겨눠지 는 그 순간.

비릿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 아까부터 폭발할 때 마다 나고 있어.'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뒤로 훅 물

러났다.

콰아앙!

역시나.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난 다.

"에이. 아쉬워라."

작동 원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 만 냄새가 기폭제 역할을 하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번엔 제 차례네요! 얍, 얍!"

류라임이 허공에 구슬을 던진다.

한 번 더 거리를 벌려서 폭발을 피하려고 하는데, 예상 못 한 상황 이 벌어졌다.

휘이익!

' 따라오잖아?'

거듭해서 공간 간섭을 사용해보지 만 그때마다 폭탄 구슬이 따라붙었 다.

탕, 탕탕!

총으로 구슬을 맞히자 두어 개 터 지긴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다.

"꺄하■하! 어때요? 저도 이제 제법 쓸 만하죠!"

그래. 그건 인정해줘야겠군.

'하지만 나한텐 통하지 않는 방법 들이지.'

여러 번 공간 간섭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숨통을 조이듯이 류라임에 게 다가간다.

그녀가 뭔가 눈치챘을 땐 이미 늦 었다.

"어라?"

비릿한 내음이 흐른다. 동시에 날 쫓아오던 폭탄 구슬들이 지척에 다 가왔다.

"터뜨릴 수 있겠어요?"

여기서 폭탄이 터지면 저 수많은 구슬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할 거다.

류라임도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

내 말에 류라임이 주춤 멈췄다.

"하지만 뒤에……!"

그래. 구슬들이 내 뒤꽁무니를 따 라오는 건 달라지지 않지.

'도중에 멈출 순 없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철컥.

총구를 겨눈다. 내 관자놀이에.

탕!

'아늑한 바람.'

그대로 류라임을 꼭 끌어안았다.

"어어어어?"

당황하는 류라임을 무시했다. 이윽 고,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광!

쿠구구구구!

연속적인 폭발이 일어나면서 살벌 한 소음이 일었다. 우리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만.

잔해들이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바닥의 흙먼지가 위로 솟아오르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철컥.

다시금 총구를 겨눴다. 이번엔 류

라임의 뒤통수였다.

"류라임 씨. 아웃이에요."

"네에에……

류라임은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패배했다는 게 속상한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낫의 뒤편에 앉아 아래로 내려가 자,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우릴 맞 이했다.

"류라임 씨! 대단했어요!"

"헤헤, 뭘요."

정로운이 칭찬하자 류라임이 부끄 럽다는 듯이 웃었다.

"많이 늘었군."

신도아도 무심하게 류라임의 성장 을 평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대장은 못 이기겠어요. 언제 쯤 저도 그렇게 강해질까요……

"규격 외의 것과 스스로를 비교하 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정로운의 투정에 신도아가 타박을 더했다.

'규격 외의 것이라니. 사람도 아닌 것 같잖아.'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가볍게 실력을 테스트할 겸 대련 을 해보았는데, 부대원들의 실력이 꽤 괜찮았다.

'애초에 나는 일 대 다수에 특화된 전투 스타일이고, 기동성도 좋으니 잡기 쉽지 않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대응을 잘 해줬 다. 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 껴질 정도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드디어 내일, 5차 게이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 혜원 언니 그리고 표연원까지. 셋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저녁 시간에 다 같이 모였다.

우리 셋 다 각기 다른 게이트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혹시라도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까 봐, 우리는 서로 불안감을 느꼈다.

"연원아, 무전기 여분 챙겼지? 국 가에서 주는 것도 있지만 게이트에 서 무전기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으 니까. 하나 더 챙겨가는 것도……

"챙겼어, 누나. 걱정하지 마."

혜원 언니가 특히 안절부절못했다.

이해는 간다. 나야 처음부터 게이 트에서 만났고, 내 실력을 언니도 눈으로 본 바가 있지만 표연원은 마냥 어린애처럼 보일 테지.

"두렵지 않아?"

내가 묻자, 표연원은 담담한 눈빛 으로 답했다.

"떨리긴 해도 두렵진 않아요."

그래. 그 정도면 됐지. 헌터로서 훌륭한 자세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

부터 봐서 그런가.'

새삼스럽게 뿌듯했다. 꼭 내 자식 이 잘 자란 것처럼.

'처음 봤을 땐 학생이었고, 그 다 음엔 게이트에 휘말린 일반인이었 는데.'

이제 표연원은 아카데미생들 중에 서 독보적으로 뛰어난 실력의 프로 헌터가 되어 있었다.

"서하야. 연원아."

혜원 언니가 조용히 우릴 불렀다.

"어쩌다 보니 너희 둘 다 이렇게 게이트를 누비는 직업을 갖게 됐네.

너희 주변에 마땅한 어른이 나뿐이 어서 그랬을까?"

그래. 나보다도 혜원 언니가 더 감 회가 새롭겠지.

언니는 우리가 이런 길로 들어선 것에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안타깝 게 생각하는 듯했다.

"너희가 선택한 길이니까, 부디 후 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헌터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진득한 후회가 남거든, 혜원 언니는 감정을 내리누르는 어조로 덧붙였다.

폭풍전야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알림: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개체 '한서하(각성자)'를 확인했습 니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익숙한 알림이 울리고, 눈을 뜨자 마자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온통 하얀색이었다.

' 설원?'

휘몰아치는 바람에 하얀 눈이 서 려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송이들이 소복하게 쌓여, 마치 횐 도화지 위 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우와!"

"눈이네요. 예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었다. 후후,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뽀얀 김이 올라왔다.

"냉기에 내성이 약하거나, 전투복 에 방한 기능이 없는 분 있습니

까?"

내 물음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 래. 방한 기능 없는 전투복이 어디 있겠는가.

"이 게이트는 5-9 전쟁게이트로, 규모가 크지 않아 우리 부대에 단 독으로 맡겨진 곳입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이미 검은 화산 게이트 를 빼앗긴 만큼, 정찰병을 투입할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정찰팀으로 사전 답사를 나간 다 음 클리어팀을 투입하는 것이 현대 의 시스템으로 고착화된 만큼, 정찰 없는 클리어는 모두에게 낯선 상황이었다.

'물론 나만 빼고.'

회귀 전엔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찰병 역할도 수준급 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우린 4차 게 이트를 클리어했잖아요? 그때를 생 각해보면 됩니다."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잠 시 말하는 사이에 눈이 머리 위로 쌓이고 있었다.

툭툭, 털어내고 하늘을 날았다.

"적들도 이 안 어딘가에 있을 거

예요."

"알겠습니다, 대장! 수색할게요!"

나는 막 앞서 나가려는 정로운을 막았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신도아 가 대신 답변을 했다.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조난 될 확률을 배제할 수 없어."

"아!"

그래. 눈보라가 치고 있는 이곳은 지금까지 거친 게이트와 다르다.

시야가 좁아지면 광활한 하늘 속 에서 서로를 찾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 붙어서 가야 합니다."

따로 찢어졌다가 한 명이라도 실 종되면 피해가 막심하다.

4명 중 1명이 사라지면 전력의 25%를 잃는 셈이니까.

'게다가 이런 환경이면 류라임의 폭탄 위력이 대폭 감소한다.'

반면에 얼음을 다루는 정로운의 힘은 배로 강성해지겠지만.

"파이로."

-삐이이!

내 부름에 파이로가 나타났다. 온 통 하얀 눈밭에서 붉은 불꽃을 두르고, 그 거대한 몸체를 과시하면서 말이다.

"그새 많이 컸네. 손이석 씨가 잘 챙겨주나 봐."

-삐이 이 이!

즐거운 목소리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파이로의 화염에 주변에 쌓인 눈 이 사르르 녹고 있었다.

"따뜻해……!"

"우와."

거대한 화염은 존재 그 자체만으 로도 주변 환경을 뒤바꾸는 힘이있었다.

"제 주변으로 날면 파이로가 눈보 라를 비바람으로 바꿔줄 거예요. 눈 보다는 비가 시야 확보에 더 낫겠 죠."

나는 간만에 파이로의 등에 올라 탔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가에 울 렸다.

♦ ♦ ♦

표연원은 아득히 먼 곳을 바라봤 다.

잠시 멍하니 있는 그에게 경진아 가 말을 걸어왔다.

"연원아. 왜 그래?"

"응? 아니, 그냥."

수풀이 우거진 곳을 지나가느라 다들 땀범벅이었다. 날이 무덥고 습 해서 체력을 자꾸 갉아먹는다.

"긴장했어?"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표연원은 제 손아귀를 내려다봤다.

"그냥, 아카데미나 훈련소에선 몬 스터를 상대하거나 사람하고 대련 만 해봤잖아. 이제 사람하고 실전을 할 걸 생각하니까 조금, 기분이 이 상해서."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사실 몬스 터랑 크게 다를 것도 없잖아?"

경진아가 냉담한 소릴 했다.

"감정적으로 굴지 마. 상대는 적이 고,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테 니까."

"나도 알아."

서슬 퍼런 경고에 표연원도 결국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밤을 보내기 위해 야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어? 어어?"

쿠구구……

그때였다. 야영 준비를 하던 사람 들을 향해 바닥이 움찔움찔 움직였 다.

그 밑에 뭔가 있는 것처럼.

"몬스터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바닥에서 파악! 뭔가가 튀어나왔다.

미끈한 얼굴에 뱀처럼 기다란 몸. 땅굴을 파서 생활하는 몬스터, '긴꼬리땅뱀'이었다.

"전투 준비! 탱커 앞으로 나가고, 레인저들 화살 장전! 그리고……!"

베테랑인 적멸의 헌터들이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그 외침에 겨우 정 신을 차린 신입 헌터들이 후다닥 움직인다.

경진아도 막 그들을 향해 움직이 려는데, 표연원이 괜찮다며 막아섰 다.

"왜 그래? 얼른 가야……

"괜찮다니까."

스윽, 표연원이 가볍게 손짓했다.

손등 위로 새겨진 문양이 은은하 게 빛나고, 눈동자 안쪽에서부터 연 두색 빛이 아른거렸다.

촤아악!

- 케에에에에!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수풀이 우거진 틈에서 갑자기 나 무줄기가 솟아나더니 긴꼬리땅뱀을 칭칭 감았다.

-케에! 케게게게!

몬스터가 거칠게 저항하지만 그럴 수록 가지가 여러 겹 겹치며 그를 붙잡았다.

-케엑…….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몸부림이 멈 췄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 럼 한곳을 바라봤다.

태연한 얼굴의 표연원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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