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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86화 (197/361)

186화

챕터: 킹메이커

"오염은 얼마나 침투해있죠?"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어. 황제라 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나도는 얘기로는…… 앞 으로 20년 내로 완전히 끝장날 수 도 있다, 정도고."

앞으로 20년이라.

톨룩의 입장에선 얼마 남지 않은 거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선 지극히 길다.

'여차하면 20년 동안 전쟁을 길게 끌기만 해도, 우리가 승리할 수도 있단 거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 다.

정확한 기간도 알 수 없고, 게이트 는 톨룩이나 지구와 별개의 공간이 니 게이트로 옮겨 전쟁을 치르면 또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아마도 그러겠지. 20년 뒤에 과연 지구의 땅 중 몇 퍼센트나 게이트 에 잠식당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또 끔찍하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 라."

이사벨라가 진지한 얼굴로 속삭였 다.

"얼마 남지 않았거든."

" 뭐가요?"

"황태자 즉위식이."

뭐?

아직 황태자가 안 정해졌단 말이 야?

'그러고 보니…… 황태자 얘기가 안 나오긴 했지.'

지금까지 본 황자는 5황자가 전부 였다.

다른 황족을 본 적이 없으니, 막연 히 황태자도 어딘가 있겠거니 했는 데.

'그 싸가지가 지금은 일반 황자란 말이지……?'

처음 그를 볼 때부터 황태자였기 에 태어날 적부터 황태자인 줄 알았는데.

"땅의 가호가 황태자에게 넘어갈 까요?"

"아마도. 제국 역사상 황태자에게 힘을 넘겨준 다음 살해당한 황제는 꽤 있었으니까."

그러면서 이사벨라는 여태까지 황 제들이 암살당한 전적이 있어서 신 의 가호니 뭐니 하는 것도 다 헛소 리인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종류의 힘이든, 누군가에게 넘겨줄 때 모든 게 약화되기 마련 이다.

'황태자에게 넘어갈 때, 가호가 황

제에게서 빠져나와 황태자에게 넘 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둘 다 죽일 수 있다면?'

길을 잃은 가호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즉위식이 얼마나 남았다고요?"

"1년 정도."

이사벨라가 말을 덧붙였다.

"유력한 황위계승권 후보가 모두 만 18세가 되는 해, 푸른 달 르웨 카와 붉은 달 카나리아가 동시에 뜨는 날. 그때가 바로 황태자의 즉

위식이 열리는 날이야."

르웨카고 카나리아고 뭔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1년은 족히 남았단 소리였다.

"유력한 황위계승권 후보라고 하 면?"

"지금은 3황자와 1황녀지. 1황녀 가 아직 어려서 기다리고 있는 거 고."

그렇단 말이지.

"좋아요. 그럼 그 기간 동안 준비 할 게 있어요."

"뭔데'?"

간단하다.

"5황자를 황태자 유력 후보로 만 들어줘요."

"뭐? 하지만 3황자랑 1황녀가 이 미……

"알아요. 후보 안에 들어가기만 하 면 돼요."

그 즉위식 안에 5황자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 어떻게든 상황을 만들면 되니까.

"가능하겠어요? 5황자 현재 상태 가 어떻죠?"

"5황자…… 지지 세력이 없는 건 아닌데 미약하고, 5황자가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아서 세력을 끌어 모 으기 쉽지 않은데."

"전쟁영웅이 되면요?"

"그 5황자가?"

뭐, 겉으로 보이기에 5황자는 지금 연전연패 중이겠지.

내가 손을 써서 조금 그럴싸하게 보였던 4차 게이트 사건도 결과론 적으로 보면 참패하고 혼자 살아 돌아온 셈이니까 말이다.

"다시 물을게요. 5황자가 전쟁터에

서 공을 세우면, 가능하겠어요?"

"전시 상황에서 그것만큼 좋은 반 전도 없지."

이사벨라가 살풋 웃었다. 귀족적인 미소였다.

그렇다면 계획은 간단해진다.

"앞으로 5황자가 공을 세우면 그 걸 기반으로 지지 세력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줘요. 뒤로는 혁명군을 훈련시키고, 사생아들 섭렵하는 거 잊지 말고요."

"물론이지. 참, 그런데……

이사벨라가 작게 운을 띄웠다.

"이 톨룩에 배신자가 나 혼자는 아니겠지?"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이사벨라 가 뒷말을 이었다.

"다른 정보원도 있는 눈치인데. 5 황자의 지지세력을 만들라고 하는 걸 보면…… 군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일 테고."

다니엘에 대한 추측이 줄줄 이어 졌다.

"어차피 같은 목적을 갖고 있을 텐데. 굳이 불편하게 널 통해서 말

을 할 이유도 없지 않나?"

5황자에 대한 군사 정보를 미리 파악하면 자기들도 대응하기 편하 니 바로 정보를 얻고 싶단 얘기였 다.

"혁명군의 존재는 아는 사람이 적 을수록 좋을 텐데요."

"상대도 톨룩을 배신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피차일반일 텐데, 뭘."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 문 제는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었 다.

'다니엘의 의사도 물어봐야 하고.'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며 넘겼다.

"그럼, 뭐. 다음에 또 보자고."

이사벨라도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 다.

다니엘은 대뜸 내게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제정신인데요."

"제정신이면 그딴 소릴 할 수 있

을 리가 없지. 5황자라니."

다니엘의 반대가 생각보다 극심했 다.

"특별한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5황자가 한국으로 파견가게끔 도와 달라는 겁니다."

"한국은 전략적 요충지인데 그런 곳에 5황자를 다시 보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고. 그걸 내가 제 안하면, 황제 폐하께서 날 어떻게 보시겠어?"

이것 참. 겉으로 보기엔 그러겠지.

하지만 다니엘이 대놓고 싫다고 얘기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을거다.

나는 결국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니엘이 원하는 말을 내뱉었다.

"원하는 게 뭔데요?"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다니엘이 눈을 반짝였다.

"우리 가문이 멸문당할 때, 가문의 재산은 죄다 국가에 몰수당했지."

또 멸문한 로스 가문의 얘긴가. 대 체 나 없으면 서러워서 어떻게 살 았으려나.

"모든 것을 빼앗겨서 내게 남은

건 하나도 없어. 그래도 한 가 지…… 되찾고 싶은 게 있거든."

꽈악, 주먹을 틀어쥔다.

나는 모를 무언가를 꿈결처럼 그 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무엇을 떠올 리고 있을까.

'멸망한 자신의 가문에 대한 애환? 황제에 대한 복수심?'

어느 쪽이 더 큰 감정일까.

"그걸 찾아와준다고 하면, 황제 페 하께 멍청이로 보일 것을 무릅쓰고 말씀을 올려볼 순 있지."

"좋아요. 대신, 지금 당장은 안 돼

요."

내 말에 다니엘이 눈썹을 삐뚜름 히 올렸다.

"저번엔 제가 먼저 정보를 가져왔 지 않나요? 이번엔 당신 차례예 요."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가 보 지'?"

"당신이야말로,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나 요?"

내 말에 그도 할 말이 없는지 입 을 다물었다.

"뭔진 몰라도 그 귀한 물건 되찾 고 싶으면, 먼저 성의를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다니엘은 이를 아드득 갈 았다.

"이래서…… 위아래도 모르는 놈 들하곤 어울리는 게 아닌데."

아직도 내가 신분 없는 세상에서 온 게 마땅찮은 모양이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가문이 멸 문했으니 이젠 평민과 다를 바 없 는데, 다른 곳에서도 그런 말을 하 고 다닙니까?"

"난 기사 작위를 받았으니 준귀족 이거든. 황제 폐하의 호위 기사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얼간이는 별로 없는 편이지."

그러셔. 웃기는 일이다.

'귀족 출신인 다니엘은 표면상 평 민이고, 평민 출신인 이사벨라는 표 면상 귀족이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겠는가.

'역시 이사벨라에겐 안 된다고 말 해야겠어.'

다니엘이 이사벨라의 사상에 동의 할 리도 없고, 도리어 그런 무뢰배들이 판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 조하고 싶지 않다면서 협력을 거부 할 수도 있었다.

'되도록이면 이사벨라와 다니엘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로 지나가면 좋겠네.'

다니엘도 물론 평민에 대한 거부 감보다 황제에 대한 적개심이 더 강하니 지금 나랑 손잡고 있는 거 겠지만.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 동의할지는…… 좀 의문이라서.'

힐끗 다니엘을 바라보자 그는 잠 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좋아. 조만간 황제 폐하께 말 씀 올리도록 하지. 성과가 나타나 면, 너도 거래에 응해야 할 거야."

"물론이죠."

서슬 퍼렇게 얘기하지만 결국 이 것도 거래의 일환이었다.

그는 내게 5황자를 제공하고, 나는 그에게 내 노동력을 제공하는 거래 말이다.

'이제 5황자를 전쟁 영웅으로 만들 어주기만 하면 되겠어.'

다니엘이 성공한다면 5황자는 한 국으로 발령 날 것이고, 그 이후에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면 더할 나 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까진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번쩍이는 샹들리에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전쟁 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 로 호화스러운 파티였다.

"3황자 저하의 승리를 축하드리며,

3황자 저하의 역사 스승으로 계시 는 로드리히 후작님이 축사를……

드레스 자락이 살랑거리고 술잔을 챙챙 여러 번 부딪힌다.

귀족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모였다 흩어지고 있었다. 그들을 높은 곳에 서 내려다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 지루하구나."

적포도주가 담긴 잔을 흔들면서 황제가 중얼거렸다.

"내려가 보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널 기다리는 이들이 한가득인데."

황제가 자신의 옆에 앉은 3황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야 아바마마의 옆에 있는 것이 더 큰 행복인걸요."

"아부 떠는 놈은 싫다."

"저 밑에 가면 피라냐 떼들이 몰 려들어서 싫습니다."

황제가 작게 타박하니 3황자가 곧 장 말을 바꾼다.

그 뻔뻔스러운 대응에 황제가 픽 코웃음을 쳤다.

톨룩의 태양, 이 세계 모든 땅의 주인. 모든 것의 위에 군림하는 살 아있는 신.

황제, 카를로스.

그리고 그를 가장 빼닮았다고 알 려진 3황자, 빈센트였다.

"네가 안 가면 언제까지고 저 꼴 을 봐야 하지 않느냐."

"간만이니 좀 즐겨보시는 것도 좋 지 않습니까."

"건방지게 굴지 마라."

카를로스의 핀잔에도 빈센트는 능 청맞게 웃었다.

"주변에 쓸모 있는 놈들이 적어 고민이 많은데, 너는 그래도 사람 노릇을 해 다행이구나."

"그러게 왜 시온을 보내셨습니 까'?"

시온. 5황자의 이름이 나오자 카를 로스는 더욱 짙게 인상을 찌푸렸다.

"싹이 좀 보이는 줄 알았거든."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하셨습니까? 그 애는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못 난 놈이었는걸요."

"동생에게 평가가 박하다."

카를로스를 그렇게 평하고는 뒤늦 게 말을 이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

다.

카를로스는 안 그래도 최근, 대패 하고 돌아온 5황자 시온 때문에 생 각이 많았다.

"뭔가, 그 안에 반짝이는 것이 숨 어 있는 줄 알았는데……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했던 그것 을 드디어 발견한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참패한 시온을 보니 영 확신이 없 었다.

"글쎄요. 아바마마께서 무엇을 보 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아 는 그 애는……

"오랜 시간 백치인 척하면서 우릴 속였다면?"

카를로스의 말에 빈센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두각을 드러낸단 말입니까?"

"뻔하지. 4황자, 그 녀석이 사라지 지 않았느냐. 그러니 황위 계승권에 서 완전히 밀려났던 것이 좀 나아 졌지."

4황자 얘길 하자 카를로스는 절로 이가 아드득 갈렸다.

그 배은망덕한 녀석.

"그렇네요. 그 녀석이 사라졌죠." 빈센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4황자…… 테오도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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