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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192화 (203/361)

192화

무슨 얘길 할지 뻔했기에 그다지 끌리는 제안은 아니었다.

"중요한 얘기가 아니면 나중에 하 고 싶은데요. 저희 팀끼리 토의 중 이어서.''

문 안쪽을 가리키며 답하자, 필립 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환하게 웃 었다.

"팀원들 전부 다 있어? 잘됐네! 다 같이 들으면 좋은 얘긴데."

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사교 성이 좋은 것과 무례한 건 한 끗 차이다.

그리고 그는 무례했고.

나는 방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 는 필립을 가로막았다.

" 오."

그가 항복하는 것처럼 두 손을 들 고 살짝 뒤로 빠졌다.

"실례했군."

싸늘하게 얼어붙은 내 표정을 보

고 나서야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단 걸 시인한다.

"들뜬 마음에 그만. 고의는 아니었 어."

그러면서 슬쩍 내 어깨에 손을 올 리려 하길래 탁, 쳐냈다.

허공에 내쳐진 손에 필립도 입꼬 리가 살짝 굳었다.

"돌아가세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탁!

문을 닫으려는데 문틈으로 발을 끼워 넣는다. 제정신인가?

헌터의 근력이면 이 발을 문으로 으스러뜨리고도 남는단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외교 문제로 번질까 봐 조심하고 있는 걸 이렇게 이용하나.'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그들이 나 지막하게 읊조렸다.

"이래도 되나? 고작해야 네 명이 면서."

"그러게 말이야. 게이트 안에서 무 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 는다.

"저것들이……!"

정로운이 울컥하길래 손바닥을 펼 쳐 그를 가로막았다.

"실력이 부족해 끼리끼리 붙어먹 는 주제에 혓바닥이 기네."

내가 비꼬는 말을 내뱉자 그들도 기분이 상했는지 허, 하며 헛웃음을 친다.

"누구 실력이 부족해?"

"맞잖아. 혼자 힘으로 우승할 자신 이 없으니, 밤마다 쥐새끼처럼 돌아 다니면서 이딴 싸구려 구인구직 광 고글이나 뿌려대는 거 아닌가?"

나는 하도 쌓여 바닥에 굴러다니 는 종이쪽지를 발로 툭 쳤다.

얼마나 우릴 초대하고 싶었으면 문지방이 닳도록 쪽지를 보냈겠는 가.

"이봐. 게이트가 좀 많이 열렸다고 이름깨나 날리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필립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런 같잖은 수가 너희 나라에선 통했을지 몰라도 세계에선 안 통 해."

누가 할 소릴.

"당신들이야말로 행동 똑바로 해."

그들이 한 말처럼, 게이트엔 보는 눈이 없으니까.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그들은 두고 보자며, 3류 악당 같 은 대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쾅! 드디어 문이 닫혔다.

"게이트 들어가자마자 저놈들부터 죽여버릴까요?"

류라임이 위험하게 눈을 번뜩였다. 아직은 한 번씩 이렇게 과격하게 나올 때가 있다.

"굳이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죠.

찾아오면 상대해줍시다."

굳이 찾아갈 것까진 없지.

어차피 이번 게이트의 목적은 우 리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누가 먼 저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기여도 1 순위를 가져가느냐다.

"저놈들 연합 규모가 꽤나 크던 데."

"얼마나 크길래 그래요?"

신도아에게 묻자, 그녀가 자신도 잘은 모르지만 저번에 떠드는 걸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게이트에 참가하는 30개국

의 헌터팀 중, 25개국."

뭐?

"우리를 포함해 다섯 팀을 빼고 전부 저들 연합에 붙었다더군."

"아니. 비르디아 교섭권을 어떻게 상의하려고 그렇게 많이 모였대 요?"

정로운이 기겁을 하며 묻자, 신도 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더 탐나는 걸 제공했겠지. 비르디 아가 귀한 신물이긴 해도, 당장 급 한 건 아니니까."

잘은 몰라도, 저 칠링이란 팀은 다

른 아이템보다 비르디아 교섭권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말이 되지.'

비르디아에 관심이 없는 팀은 차 라리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저들에게 붙는 거다.

'윈윈이지. 팀 칠링은 혼자 우승하 는 것보다 비르디아 교섭권을 차지 할 확률이 높고, 나머지 팀들도 각 각 싸우는 것보다 연합하는 게 아 이템 하나라도 더 분배받을 가능성 이 높으니.'

30개 중 25개라. 말만 소규모 연 합이지,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다.

'하지만 반대로 돌려 말하면, 우리 의 진짜 적은 그 남은 4개 팀에 있 다고 할 수도 있지.'

저마다 자기 나라에선 이름 있는 헌터겠지만, 나라마다 헌터 인재풀 의 수준이 조금씩 다르긴 하니까.

저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들은 자 신의 힘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알짜배기들인 거 다.

"괜찮을까요? 내일 그 많은 사람 들이 전부 적으로 돌변하면 꽤 위 험할 것 같은데요."

정로운이 걱정 어린 얼굴을 했다.

"처음 시작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뒤로 갈수록 우리한테 유리할걸요."

" 왜요?"

"그야. 저런 오합지졸 연합이 얼마 나 오래가겠어요."

말하지 않았는가. 최상위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협력을 잘 못 한다고.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확 실하죠. 아마 중간부터는 3~4개의 그룹으로 쪼개져서 활동할 겁니다."

나라별로 어느 정도 경향성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경향성이 유사한 이들끼리 어울리겠지.

"초반만 좀 조심하죠. 물론 외교 문제가 있으니 저들도 대놓고 공격 해오진 않겠지만……

나는 닫힌 문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이미 척을 진 것 같으 니까."

* * *

저마다 보급품을 들고 일렬로 섰 다. 게이트가 열리기 일보 직전이었 다.

"곧 열립니다! 5!"

나는 가방을 단단히 메고, 주변에 있는 부대원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4!"

탁!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대려 하길 래 바로 쳐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이라 기감이 예민해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였다.

레게머리를 한 남자. 필립이었다.

"3!"

"무슨 짓이지?"

내가 묻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 마. 친구."

누가 네 친구야, 라는 말이 턱 끝 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삼켜냈다.

'곧 게이트 입장이야. 상대할 시간 도 없어.'

그대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2!"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있었 다.

"이따가 보자."

내 등 뒤에 대고 속삭인다.

"그때 가서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진 말고. 징징거리는 여자는 매력 없거든."

소름끼치는 어투였다.

"1!"

그리고 익숙한 알림이 울렸다.

[알림: 게이트에 입장하셨습니다.]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개체 '한서하(각성자)'를 확인했습 니다.]

[시스템에 접속합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였다.

뒤이어 울리는 알림만 빼면.

[알림: 스테이지(구름 아래 숲)에 입장하셨습니다.]

뭐? 스테이지라고?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스테이지형 게이트인 줄은 몰랐는 데……

눈을 뜨자마자 필립 패거리들과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줄 알았건만. 이렇게 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푸르른 녹음이 날 둘러싸고 있었 다. 어렴풋이 새 지저귀는 소리가 울리고, 풀벌레들이 저마다 목소리 를 높였다.

'이름 그대로. 숲이네.'

구름 아래 숲이라는 이름답게 말 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기도 하 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내리

자 가벼운 옷차림을 한 내가 보였 다.

마치 풀잎을 엮어 만든 것 같은 신발과, 나무껍질로 만든 화살통을 등에 멨다.

'활? 잠깐만. 나 여기서 레인저 야?'

내 손에 들려있는 활을 보니 그런 모양이다. 말이 되는가.

'레인저 시늉을 하는 건 가짜 이운 우를 만났던 때 이후론 처음인 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 다.

"재스퍼!"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 날 부르 는 건가?

"재스퍼! 거긴 어때?"

"괜찮아! 너는?"

뭘 묻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대 충 대답했다.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 리가 들리더니, 수풀 사이로 누군가 가 튀어나왔다.

"내 쪽도 안 보여."

엷은 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 자가 빛났다. 눈에 띄는 미남이다.

그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날렵하

게 뻗은 귀였다.

' 엘프!'

그 보기 드물다는 엘프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긴 귀가 특징인 이 이종족은 톨룩 내에서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다.

나 역시 전쟁 중에 엘프를 몇 보 긴 했지만 정말 드문 일이었다.

'엘프들은 종교상의 이유로 살생을 꺼리니까.'

전쟁에 참여하는 엘프는 그들 중 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는 다크엘프 거나, 신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엘프 전사였다.

[알림: 주요인물(샤노테)을 만났습 니다.]

이 엘프 사내의 이름이 샤노테인 모양이다.

"아직 어린 애가 혼자서 이것보다 더 멀리 갔을 리가 없어!"

그가 섬세한 조각상 같은 얼굴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또야. 이번 달만 대체 몇 번째 지?"

"진정해, 샤노테."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그가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답지 않게 무척 분개하며 대답했다.

"인간들이 납치해 간 게 틀림없 어!"

그 외침에는 나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숲의 주인이시여. 불쌍한 숲의 자녀를 굽어살펴주세요……

샤노테가 신 비슷한 것을 찾으며 간절하게 속삭였다.

'어린애가 실종된 모양이야. 이번

달만 몇 번째냐고 묻는 걸 보면, 드문 일은 아닌 것 같고.'

스테이지형 게이트가 톨룩의 과거 사건들을 토대로 재구성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톨룩의 역사 중 하나일 것이다.

"후우……. 일단 돌아가자. 이 소 식을 어서 촌장님께 알려야겠어."

"응. 그러자."

뭔진 모르지만 수긍했다. 나랑 저 엘프는 같은 마을에서 지내는 모양 이다.

'촌장이라. 소규모 촌락 단위인 가?'

휘익!

샤노테가 가볍게 몸을 놀려 나무 위로 훌쩍 뛰어올라갔다.

'저게 가능해?'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를 따라 뛰 었다.

휘이익!

'몸이 가벼워!'

놀라우리만치 쉽게 나도 나무 위 를 달릴 수 있었다.

'뭐지? 몸이 너무 가벼워. 평소보 다 훨씬!'

게다가 숲의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 있을 정도로 동체 시력이 좋았 고, 작은 소리 하나하나 예민하게 들렸다.

그건 놀라운 감각이었다.

'이 게이트의 특징인가? 갑자기 이 렇게 신체 능력이 향상된 이유가 뭘까.'

숲을 한참 달리자, 눈앞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안 멈추는 건가?'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샤노테는 펄 쩍 뛰어 호수 위로 날아들었다.

찰박.

야트막한 수심이 발바닥에서 찰랑 거렸다.

'호수 밑에 바위들이 깔려 있잖 아.'

겉보기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고요한 수면에 사방의 모습이 반사 되어 호수도 숲 속처럼 보였던 탓 이다.

호수 위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 도 모르게 호수를 들여다봤다.

' 아!'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 지를 뻔한

것을 겨우 삼켜냈다.

황급히 손을 들어 내 귓가를 매만 졌다. 뭉뚝한 귓바퀴 대신, 톡 튀어 나온 것이 만져졌다.

'그래. 이거면 모든 게 설명되지.'

갑자기 날래게 움직이는 몸, 좋은 동체 시력에 숲속을 뛰어다닐 때 느껴지던 청량한 공기까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야. 엘프들은 배타적인데, 인간을 수용할 리가 없 잖아.'

샤노테가 내 앞에서 인간의 짓이 라며 화를 내던 걸 생각하면 더더 욱 그렇다.

그런데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 다.

여러 스테이지형 게이트를 다녀왔 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가 엘프가 된 거야?'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기다란 귀 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엘프가 된 것이다!

엘프, '재스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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