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죽었……다고요?"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누군 가에게 말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다 죽었다니?
류라임이 직접 죽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었다. 내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 라보자, 류라임이 태연하게 말을 이 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안 놀라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은 데요."
"그치만.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인 건, 서하 님이시잖아요."
" 예?"
내가?
나 자신을 가리키면서 되묻자 류 라임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제가, 언제요?"
나는 이유 없는 살인을 좋아하지 않아서, 직접 손으로 죽인 이가 많 지 않을 텐데.
톨룩인 말고 지구인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내가 혼란스러워하자 류라임이 생 긋 웃으며 대답했다.
"새하나교. 기억나시죠?"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 몰랐기 에 나는 흠칫 놀랐다.
"저는 아니었고, 제게 조금이나마 온정을 나눠줬던 분이 그 종교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요."
"류라임 씨……
"뻔한 이야기죠. 저는 제물처럼 그 곳에 바쳐졌어요."
청사나 홍염 같은 곳에 몸담고 있 는 헌터도 빼내가는 이들이었으니, 하류 헌터였던 류라임을 납치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으리라.
"끔찍한 일들을 겪었죠. 제대로 알 아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지만, 그 사람들은 제 고유 스킬을 탐내는 것 같았어요."
새하나교 입장에선 꽤나 군침이 도는 이야기였을 거다. 타인의 능력을 '흡수'하는 고유 스킬이라니.
영혼을 흡수하고, 아이템에 융합하 던 그자들에게 류라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였을 거다.
류라임의 능력만 어떻게든 빼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겠지.
"늘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고통조 차 의미를 잃고, 저는 말라가는 식 물처럼 그저 견뎌내고 있을 뿐이었 죠."
그 일상에 변화를 준 건 아마도 나였을 거다.
"제가…… 새하나교의 연구원들을 죽였죠."
"맞아요."
류라임이 활짝 웃었다.
"밖이 너무 시끄러워서 깼는데, 그 날따라 절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어 요. 제가 잠을 잘 때도 늘 뭔갈 기 록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류라임은 마치 동화책을 읽는 것 처럼 속삭였다.
"그래서 몰래 빠져나왔는데, 제 바 로 앞에 글쎄…… 누가 있었는지 알아요?"
류라임이 재밌어 죽겠다는 듯 중 얼거렸다.
"그 사람이었어요. 늘 높은 곳에서 절 내려다보던. 그 노인이, 반쯤 죽 어가는 모습으로 저한테 살려달라 고 빌더라니까요?"
-흐흐흐……. 이대로 끝낼 순 없 지.
기억났다.
그 탐욕스러운 미소를 짓던 이. 다 끝나가던 전투에 불을 지피고, 안유 수를 죽음까지 몰고 간 장본인.
나중에 조사해보니 시신으로 발견
됐다고 들었는데.
그 마지막을 본 게, 류라임이었던 건가.
류라임이 입가가 찢어질 것처럼 크게 미소 지었다.
"어찌나 황홀하던지……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 노인은 끊임없이 서하 님의 이름을 부르짖었어요. 서하 님 때문 에 모든 걸 망쳤다고. 모든 게 끝 장이 났다고. 그러면서 제 눈앞에서 서서히 죽어갔죠."
보지 않아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선했다. 바르작거리는 노인과 그것 을 내려다보는 류라임이.
아마 지금처럼, 안광을 빛내며 미 소 짓고 있었겠지.
"그리고 끝이었어요."
류라임이 갑자기 무표정으로 돌아 섰다.
"저는 구조됐고, 신원을 확인하고, 몇 가지 조사를 받고, 재판에도 참 석했어요."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그때 처음으로 서하 님을 마주했 었는데. 기억나지 않나요?"
"……저랑요?"
"네. 저는 피해자 신분이었고, 서 하 님은 참고인이었지만요. 아마 저 말고도 구조된 사람들이 많아서 잘 기억나지 않으실 거예요."
아마 피해자가 류라임 한 명뿐이 었더라도 기억하지 못했을 거다.
그때 난 안유수의 죽음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거의 산송장처럼 지냈 으니까.
그 재판에서 참고인 역할을 어떻 게 해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는 멀리서 지켜만 봤는 데……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 어서 정말 기뻐요."
류라임이 내 손을 들어 자신의 뺨 에 가져다 댔다.
어린 짐승이 하는 것처럼 뺨을 부 빈다.
"서하 님이 아니었다면 전 어떤 방식으로든 죽었을 거예요. 제 손으 로 목숨을 끊든, 그 미친 과학자들 때문에 죽든 간에요."
"류라임 씨……
"그러니 제 목숨은 온전히 서하
님의 것이에요. 서하 님께서 살리셨 으니까요."
류라임이 내 손등에 뺨을 부비며 말갛게 웃었다. 그것이 진리라고 믿 어 의심치 않는 얼굴이었다.
"제 모든 것을 다 드릴게요. 그러 니 부디, 서하 님의 것은 아끼세요. 네?"
"저는, 저는 류라임 씨를 구한 게 아닙니다."
"구하셨어요."
"저는 다른 이를 구하러 그곳에 들어갔던 겁니다. 그리고, 끝내 구 해내지 못했고요."
아직도 안유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영원토록 시간이 멈춰 영원히 그 때 머물러있는 이가 있으니까.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류라임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와 눈 을 맞추며, 밝게 웃는다.
"하지만 전 구해내셨어요."
나는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
"서하 님이 의도하지 않으셨다 하 더라도. 저는 서하 님께 구원받았는 걸요."
류라임은 알까.
그 말이 내 죄책감을 얼마나 덜어 냈는지.
내가 모두를 구하진 못했지만, 그 래도 잃기만 한 것은 아니란 걸 이 제야 알았다.
* * *
탁.
병실을 빠져나와 밖으로 향했다. 류라임은 연신 자신의 목숨이라도 좋으니 사용해달라 말했고, 그런 그 녀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녀를 달래고 밖으로 나오니 어 느덧 깜깜한 밤이었다.
"늦었네."
기다리고 있던 이가 툭 내뱉는다. 우리는 한밤중에 휴게실에서 만났 다.
"이운우."
"아까 그 여자는 대체 뭐야? 갑자 기 폭탄으로 협박하고. 정신에 좀 이상이 있는 거 아니야?"
"……위험하지 않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네."
류라임이 내게 충성을 다하는 것
과는 별개로 위험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도 컨트롤할 수 있어. 걱정하 지 마."
"널 끔찍이 아끼는 것 같긴 하더 라."
"그래. 그리고 잔소리할 거면 짧게 해줘. 충분히 들었으니까."
총사령부 대신이라곤 하지만 결국 은 내 개인행동에 대한 질책일 것 이 뻔했다.
이미 하루 종일 부대원들에게 시 달린 후라 더 들어줄 여력이 얼마 없었다.
이운우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지 쯧, 혀를 찼다.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도저히 두 고 올 수가 없었어? 그도 아니 면..
이운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부터?"
나는 말없이 웃었다.
"처음부터 표연원 헌터를 두고 올 생각이 없었던 거네."
"개인행동 해서 미안해. 내 나름대 로 근거가 있었어. 벨제부브를 상대 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근
거가. 그러니까 혜원 언니도 따라줬 던 거고."
"그 근거가 뭔데. 지금 난 청사 길 드장이 아니라, 이운우로서 물어보 는 거야."
나는 잠시 갈등했다.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나만 연관된 게 아니라 지금 말 하긴 어려워."
적어도 이걸 밝히려면 혜원 언니 에게도 물어봐야 했다. 이 사실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면 벨제부브 토벌에 혜원 언니가 개처럼 끌려 다닐 테니까.
"좋아. 그건 일단 그렇다 치자고."
이운우는 여전히 의심이 그득하게 쌓인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네 돌발 행동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번 일도 그래, 어찌 됐든 살아 돌아왔으니까. 그렇게 넘길 수 있어."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넘길 수 있다고 연신 다짐한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부탁하는 데."
그가 잠시 숨을 골랐다.
"……적어도 귀띔이라도 해줘. 내 가 놀라지 않게."
"하지만,"
"아니.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말 리지도 않을 거고. 네가 말린다고 들어먹을지도 모르겠지만."
꽤나 자조적인 어투였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말린다고 해서 그 만둘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을 거다.
"나도 못 들은 척할 테니까. 그 냥…… 그냥 이러다간 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그래."
"……명심할게."
"알면 제발 몸 좀 사려."
이운우는 어쩐지 낡고 지친 표정 이었다.
"너야말로 몸은 좀 어떤데. 마력통 로 과부하가 아직도 자국이 남아있 네."
그의 뺨에 크게 붙인 거즈 위로 슬쩍 거미줄 같은 문양이 보였다. 마력통로 과부하의 흔적이었다.
"그렇게 방대한 양의 마력을 다룬 건 처음이었으니까. 아프진 않아."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였다.
"이렇게 과부하를 겪을수록 마력 통로가 넓어지기도 하고."
"죽을 만큼 아프지만."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 법은 아니지."
그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은 당 사자면서 태연하게 말한다.
"나한텐 익숙해. 어린 시절부터 이 방법으로 훈련을 했으니까."
" 뭐?"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긴데. 어린 시 절이라고?
"왜 그렇게 놀라.
"아니…… 네 입으로 그랬잖아. 일 반적으로 쓰이는 방법은 아니라고."
"내가 일반적인 마법사는 아니잖 아."
재수 없는 소리지만 사실이었다.
그는 전서호가 은퇴한 지금 현존 하는 최고의 마법사였으니까.
어린아이가 겪기엔 너무 잔혹한 고통이었을 텐데. 이운우는 언제나 처럼 생긋 웃을 뿐이었다.
"난 절박했거든."
대체 무엇이 그 어린아이를 그리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뭐라도 해내야 했고, 지름길을 택 한 것뿐이야."
"……전서호 전 길드장님은 아시 는 거야?"
이운우의 어린 시절이면 전서호가 그를 기르던 때일 텐데.
이운우를 아들처럼 아끼는 그가 그 꼴을 그냥 두고 봤단 말인가.
"어렴풋이 눈치는 채셨을지도 모 르지. 하지만 그분은 영원히 날 이 해하지 못하실걸."
이운우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 라봤다. 아득히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분을 못 뵌 것 같 네. 이미 돌아가신 거야?"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가셨어. 다 른 사람들이 볼까 두렵다면서."
"그분답네."
그는 다정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친절해서 간혹 그것이 매섭게 다가 올 때가 있었다.
전서호는 이운우를 위해 청사에서 물러났고 완전히 은퇴했지만, 이운 우에게 필요한 게 정말 그것이었을 까.
불현듯 처음 이운우를 만났을 적 이 떠올랐다.
여왕개미의 방에 갇힌 그 순간에 도, 자신은 어떻게든 시험을 통과해 야 한다며 악을 쓰던 모습이 말이 다.
그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 았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니, 말 돌리지 마. 한서하. 결과 는 좋았지만 네 단독행동은 분명 징계감이야.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 라고."
"징계 내리라고 해. 날 게이트에 참전하지 못하게 할 것도 아닌데."
"그야, 그렇겠지만……
그것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헌터 한 명 한 명이 귀한 지금 날 전투에서 배제할 리도 없고.
13부대가 거둬들이고 있는 성과도 상당하고 말이다.
"조심해. 전쟁이 언제까지고 계속 되진 않을 테니까."
"……그럴까?"
"그게 언제가 될진 몰라도, 결국 전쟁은 끝나게 되어 있어."
이운우의 말이 나는 너무도 막연 하게 느껴졌다. 회귀 전까지 합치면나는 10년도 넘게 이 전쟁에 얽매 여 있었으니까.
전쟁이 끝나면 내가 토사구팽 당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이운우 의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질 정도였 다.
"그때가……
이 전쟁의 끝이 도래하면, 나는 어 떤 얼굴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