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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30화 (241/361)

230화

챕터: 죽음, 그 이후

이운우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는 원래 바쁜 편이었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는 정말 차원이 다를 정도였다.

"최근 영국에 나타난 대규모 게이 트는 최소 B급 난도로 추측되며, 현재 클리어는……

이운우는 보고를 듣다가 시야가 까맣게 점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 다.

"길드장님?"

"어? 어어. 계속해."

이운우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대 꾸했다.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였 다.

헌터의 체력은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고 잠을 안 자도 되는 건 아니었다.

"최근에 국립 게이트 연구소에서 확인한 바로는 게이트 파장이 발견 되어 조만간 한 번 더……

"보고서 봤어. 따로 연구소에 연락 넣을 테니까 넘어가."

"네. 그리고 게이트 110b87z에 투 입된 헌터들이 모두 아직 연락두절 입니다. 무전을 받는 헌터가 없삐빅.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이운우는 대충 손을 휘휘 저었다.

최근 강행군을 벌인 그와 함께, 비 서도 최소한 3주는 낮밤을 지새웠 을 거다.

잠깐 통화한 후 비서가 수정된 내 용을 보고했다.

"정정하겠습니다. 게이트 U0b87z 클리어 완료했습니다. 대부분 생존 해서 돌아왔고, 실종자는 현재 한서 하 헌터 하나뿐인 걸로 확인됐습니 다."

"그래. 거기 말고 99sl02x 쪽도 최근에……

이운우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 을 하다 잠시 멈췄다.

방금, 뭐라 했지?

이운우는 도통 믿을 수 없는 얘길 들은 탓에 자신의 귀가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렸다.

"잠깐만. 다시. 아까 뭐라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게이트 U0b87z 클리어. 대부분 생존, 실 종자는 현재 한서하 헌터 하나뿐입 니다."

비서가 무미건조한 어투로 한 번 더 보고했다.

여전히 이상한 내용이 섞여 있어 서 이운우는 고개를 탈탈 털었다.

"아, 역시 잠을 너무 안 잤나?"

이운우가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 어내리자 비서가 빠르게 다시 보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면을 취하신 게 약 59일 전입니다. 최대 80일까진 생 명에 지장이 없지만, 적절한 수면을 취하시는 게 업무 처리 속도 측면 에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게. 진짜 잠 좀 자야겠어."

"예. 조만간 한서하 헌터 실종과

관련해 대책 회의를 준비하겠습니 다. 역천 측과 더 협의를 해야겠지 만 최대한 그 전에 수면 시간을 확 보할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운우는 느릿하게 심장이 떨어지 는 것 같았다. 벌써 세 번째다.

'내가 세 번이나 얘길 잘못 들을 확률이…… 얼마나 되지?'

차분히 확률을 계산하다 보니 소 름이 돋았다. 아주 서서히 깨달음이 번졌다.

"……대책 회의라고……

"예. 우선 최초의 독립 부대였던 13부대를 어떻게 처리할지, 테오도 르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또 손이석 대장장이님의 불꽃 역할을 하던 것도 한서하 헌터의 소환수로 추정되어 해당 부분도 현재 확인 =...해"3" .

"잠깐, 잠깐만."

지독히도 현실감이 없었다.

이운우는 피곤에 절어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니까…… 한서하가, 죽었다 고?"

"실종 상태입니다."

"죽었다고?"

"보통 게이트 내 실종 헌터는 사 망했다고 봅니다. 시신을 2차 수색 중에 있지만, 1차 수색에서 발견되 지 않았던 만큼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기계적인 보고 속에서, 이운우는 아릿한 두통을 느꼈다.

"……잠깐 나가봐."

"예? 하지만 아직 보고할 건이 8 개 더 남아 있……

"나가보라고."

이운우가 낮게 읊조리자 비서도 더 이상 토 달지 않았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 섰다. 끼익, 탁.

와장창, 콰앙!

문이 닫히자마자 거친 소음이 울 려 퍼졌다.

비서는 문을 닫은 채로 잠시 멈칫 했다가, 이내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걸어 나갔다.

촤르륵.

표연원은 커튼을 걷어냈다. 야속하 게도 따스한 햇볕이 안으로 스며든 다.

"커튼 닫아줘."

암울한 목소리가 울렸다.

"닫아줘, 연원아."

"누나. 이제 일어나야죠. 밑에 연 호 형도 와 있어요."

그 말에 표혜원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이불 뒤척이는 소리만 울릴 뿐 일어나는 이는 없 었다.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 래."

" 누나.

"미안해, 연원아. 내가 지금…… 널 배려해 줄 여유가 없어서……

표혜원은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 는 것처럼 목소리를 짓이겼다.

애써 눌러 담고 꽉 닫아도, 자꾸만 흘러나오는 것 때문에 견딜 수 없 이 힘들어 보였다.

"……너한테도, 험하게 말할까 봐……. 그러니까 이만 나가줘

"오늘 회의 있잖아요."

표연원도 애타는 마음에 애원하듯 이 말을 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결국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잖아요."

산 사람에겐 아직도 짊어질 것이 많으니까.

전쟁은 한창이고, 헌터 하나하나가 귀한 시기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 릴 시간조차 사치였다.

"난……

표혜원은 작게 중얼거렸다.

"난 아직 마주할 자신이 없어. 연

원아. 이 방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 로 나가면 그 애의 흔적이 가득한 데."

목소리에 자꾸 울음이 담겨서, 표 혜원은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이 세상은 흘러가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 애의 혼적이 점 점 지워질 테고."

"누나. 우린 헌터잖아요."

"각오한 일이었지만……

표혜원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프로 헌터답지 못한 대처라는 자 각은 있었으나, 간신히 버텨내는 것이 고작이라 멀쩡한 척할 여력이 없었다.

"……연호한테 돌아가라고 전해 줘."

쿵, 쿵, 벌컥!

"잠시만요! 이렇게 경우 없이 구시 는 게……!"

"표혜원 헌터."

다급한 발걸음, 뜯어말리는 조연호 의 목소리 끝에 누군가가 방문을 열었다.

하얀 은발과 보라색 눈동자의 마 법사. 차갑게 내려앉은 눈빛을 하고서 그가 등장했다.

이운우였다.

"역천의 길드장님께서 이번 회의 의 핵심이라 빠져선 안 되는데, 걱 정이 되어 직접 마중 나왔습니다."

"이운우……

표혜원은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청사의 길드장인 그마저도 이제는 한서하의 혼적으로 느껴졌다.

"가셔야죠."

"..저 대신 제 길드원 중 하나 가 갈 겁니다."

표혜원은 부러 딱딱하게 굳은 말 투를 사용했다. 타 길드 사람인 이 운우에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례하게 찾아오 시다니."

싸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다음부터는 연호를 통해 공식적 으로 방문해주시죠. 이번 일은, 전 대 길드장님과의 친분을 생각해 없 는 일로 치겠습니다."

표혜원은 이만 나가달라는 축객령 을 내렸다. 하지만 이운우는 나가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이번 회의는 한서하 헌터의 실종 에 대해 공식적으로 다루는 첫 회 의가 될 겁니다. 참석하시는 게 좋 을 텐데요."

"실종이요?"

표혜원은 차게 웃었다. 그 단어 선 택이 무척 공교로웠으니까.

"네. 아직 실종이죠."

"저한테 희망고문은 필요 없습니 다. 그런 얄팍한 것에 기대 살아가 고 싶지도 않고요."

"희망고문이라요."

이운우의 되묻는 말에 그제야 표

혜원은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다.

그녀를 회의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요."

표혜원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이운우 가 너무 슬픈 나머지 현실을 도피 해버린 건가 싶었다.

"이운우 헌터. 내가 1차 수색을 총 괄했습니다."

표혜원의 목소리는 반쯤 분노에 차 있었다.

"그 근방을 이 잡듯이 뒤졌어요.

나중에는 내가 밤낮없이 그곳을 헤 매고 다녔습니다."

그 목소리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었다.

"처음에는 '어딘가에 살아 있겠 지.',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찾았으 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표혜원이 짧게 눈물을 삼켜냈다.

"마지막엔, 그냥 그 애가 남긴 물 건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처참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져

이운우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 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확신하십니까? 한서하 헌터가, 정 말로 죽었다고?"

"모르는 건 아닐 텐데요. 실종 헌 터가 살아서 돌아오는 일은 극히 드물뿐더러, 게이트가 클리어된 뒤 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고의로 숨은 게 아닌 이상 불가능 한..하

"시신도 뭣도 발견되지 않았잖습 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나요? 게이트가 클리어된 뒤에도 보이지 않으면, 그

건 더 이상 실종이 아니라 사망이 라고요!"

아픈 기억을 헤집는 탓에 표혜원 도 말투가 매섭게 변했다.

표연원이 슬그머니 표혜원의 어깨 에 손을 올렸지만, 날카로운 기세는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딴 헛소리를 하려고 찾아온 거 면 돌아가시죠. 제가 정말로 이성을 잃고 검을 휘두를지도 모르니까."

"저는 시비를 걸러 온 게 아닙니 다."

"현실을 도피하는 중이겠죠."

표혜원의 차가운 비웃음에 이운우 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여유롭게 다시 웃었다.

"안 죽었습니다."

"게이트가 클리어됐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고!"

표혜원은 기어이 고함을 질렀다.

"대체 뭘 보고 그딴 소릴 지껄이 는 건데."

"원래는 공식 회의 때 밝힐 예정 이었는데…… 어쩔 수 없죠.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운우가 정말로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 당당한 태도에 표혜원도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자며 자리에 앉았 다.

"한서하 헌터의 소환수를 아실 겁 니다. 불사조처럼 생겨서, 처음엔 주먹만 했는데 점점 커졌던 그 불 꽃 말입니다."

"기억나지. 파이로."

덩치가 너무 커져서 나중엔 도저 히 집에서 키울 수 없어졌지만.

그때 손이석 대장장이에게 맡겨졌 단 얘긴 얼추 들었었다.

"소환수는 무릇 영혼에 종속되는 존재들이죠. 계약자의 영혼이 산산 조각나지 않는 이상 그 계약은 이 어지고요."

"설마..

표혜원의 눈빛에 아주 옅은 생기 가 깃들었다.

"네. 맞습니다."

이운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확인해봤습니다. 손이석 대 장장이께서 너무 깊은 산골에 사시 는 바람에 확인하는 데 다소 시간 이 걸렸지만, 확실합니다."

이운우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서하는 살아있습니다. 어딘가 에."

"그게 대체 어딘데……

"그거야 저도 모르죠. 게이트가 클 리어된 뒤에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 았으니, 스스로 모습을 감춘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스스로? 그런 낌새는 없었는데. 물론 그 애가 혼자서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검은 화산 게 이트 클리어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 은 시점이었는데 그런 건 딱히표혜원은 말을 잇다가 아, 하고 깨 달음을 얻은 얼굴을 했다.

"테오도르는?"

"테오도르의 종속의 목걸이 말입 니까? 여전히 감정 불가능한 아이 템이긴 하지만, 일단 계속 관찰한 결과 테오도르와 한서하 사이의 계 약도 깨지진 않은 것 같습니다. 하 지만 아직 더 확인이 필요한......

"아니, 그거 말고!"

표혜원은 다급하게 외쳤다.

"게이트 클리어 끝나고, 분명 테오

도르의 공방에 다녀왔어. 확실해."

이운우는 표혜원이 말하려는 바를 눈치챘다.

"스스로 모습을 감춘 거면 테오도 르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맞아! 정확해!"

"대체 무슨 짓을 꾸미길래……

이운우는 아드득 이를 갈았다. 반 쯤 생기를 되찾은 표혜원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서하가, 살아있을까?"

표혜원은 누구라도 좋으니 긍정해 주길 바라며 질문을 던졌다.

"네. 살아있을 겁니다."

이운우가 대답했다. 반쯤 이를 악 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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