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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57화 (268/361)

257화

"역천의 길드장에, 청사의 길드장 까지 이런 일에 가담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신도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기적인 선택이겠지."

그 냉소적인 대답을 옆에서 듣고

있던 정로운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 었다.

"저어……. 끼어들어서 죄송한데 요."

둘의 시선이 순식간에 정로운에게 향했다. 정로운은 흠칫 놀라면서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이건 이기적이고 뭐 그런 문제가 아니라…… 범죄 아닌가요?"

정로운의 말에 삽시간에 주위가 싸늘해졌다.

"헉, 죄송해요! 제가 괜한 소 릴……!"

"생각해보면 범죄가 맞지."

"아니, 굳이 깊게 생각 안 해도 명 백하지 않나요? 누가 봐도 범죄인 걸요."

정로운이 정상적인 소릴 하자 다 들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왜, 왜 그러세요?"

그가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둘 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역천과 청사 길드장 둘이 동시에 범죄자가 되는 건가? 그건 좀……

"아니, 보통은 '좀 과한 애정' 정

도로 해석하곤 하니까. 그렇게 생각 하진 못했다고 할까요……

신도아와 송다정이 이상한 소릴 했다.

정로운이 자신의 현실 감각에 의 문을 느끼는 와중에, 류라임은 한서 하의 침상 옆에 쪼그려 앉았다.

수면향이 빠져나간 탓에 서서히 심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헤헤, 서하 님이다."

류라임은 조심스럽게 한서하의 머 릿결을 쓰다듬었다. 송다정이 했던 것처럼.

"류라임 씨는 생각보다 멀쩡하네 요..?*

"응? 뭐가요?"

"그야 라임 씨는 원래 대장을 잘 따랐으니까…… 대장을 이렇게 만 든 사람들한테 엄청 화를 낼 줄 알 았거든요."

정로운의 말에 류라임이 해맑게 웃었다.

"에이, 제가 왜 그러겠어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괴상한 소릴 이어서 했다.

"잠든 서하 님도 서하 님이니까.

전 아무래도 좋은걸요!"

정로운은 오소소 소름 돋는 걸 느 꼈다.

"보통은 강제로 수면 중인 사람을 좋아하진 않거든요."

"왜요? 전 서하 님 잠든 모습도 좋은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정로운은 설명하길 포기했다. 아무 래도 여기에 정상인은 자신밖에 없 는 모양이었다.

그때 누워 있던 한서하의 속눈썹 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 어, 일어나시려나 봐요!"

류라임이 호들갑을 떨었고, 이내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끔뻑, 끔뻑.

뻐근한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다음 에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 데."

* * *

"서하 니이이임!"

류라임이 울부짖었지만 어쩔 도리 가 없었다.

"이만 돌아가 줘요."

"정말 여기 남아 있겠다는 건가?"

신도아도 불퉁한 표정이었다.

"저런 수상한 자랑 같이?"

다정 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 주 매섭다.

다정 언니는 그 말에 울컥하는 표 정을 짓다가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일단은 저희끼리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다정 언니가 크게 움찔했 다.

"이만 돌아가 주세요. 내일 다시 연락드릴게요."

껌딱지처럼 내게 붙어 있으려고 하는 류라임을 떼어내면서 말하자, 신도아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 다.

"허어어엉! 연락 주셔야 해요, 서 하 님! 알겠죠! 저, 저 서하 님 없

는 동안 얌전히 잘 기다리고 있었 단 말이에요!"

탁.

류라임의 눈물 젖은 애원을 뒤로 하고 문을 닫았다.

휘이잉.

문을 닫아도 한쪽 벽이 뻥 뚫려있 어서 크게 도움은 안 됐지만 말이 다.

하아, 한숨을 내뱉은 다음 아직까 지 바짝 얼어있는 다정 언니를 바 라봤다.

"왜 언니까지 합세한 거야?"

"그게, 서하야……

다정 언니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미안해……. 네가 정말 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난 영영 널 못 볼 줄 알았어. 근데 이렇게 살아 돌아오니까. 너무 욕심이 나서

"욕심?"

"나랑 달리 넌 처음부터 뭐든 잘 했고, 항상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 람이란 거 알아. 그 모습을 동경하 기도 했고."

다정 언니가 손끝을 가만두질 못 하고 이리저리 배배 꽜다.

"그래서 난 네가 죽지도 않을 줄 알았어."

"그럴 리가 없잖아. 사람은 다 언 젠가 죽으니까."

"그치? 근데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까."

은근히 씁쓸한 어조였다.

내가 죽은 줄 알았을 때 큰 좌절 이 다정 언니를 덮쳤던 모양이다.

전보다 분위기도 꽤나 날카로워졌 다.

"그래서 좀 눈이 돌아갔나 봐. 이 번엔 어떻게든 네가 살아 돌아왔지 만, 다음에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 잖아."

혜원 언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내 말을 들을 리도 없으니 까. 어떻게든 네가 나가기 전에 시 간을 벌려고 한 거였어. 그러다 보 니 차마 널 깨울 용기가 안 나서 이렇게 길어졌지만……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법이 너무 과격했다.

나는 고작해야 게이트에 나가지

말라고 땡깡을 부리거나,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수준을 생각했는데.

수면향이라니.

혜원 언니가 그런 방법을 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웃기지만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마워."

다정 언니가 부드럽게 내 손을 붙 잡았다.

나는 양심의 가책이 상당해서 가 슴께가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진짜 죽을 뻔한 것도 아니고 톨룩 으로 넘어갔었단 걸 알면 어떻게될지.

그때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접근 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 도 알 수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었으니까.

"……혜원 언니."

허억, 헉.

가쁜 숨을 바삐 내쉰다. 멀리서부 터 황급히 달려온 기색이 역력했다.

뻥 뚫린 한쪽 벽 너머로 그 모습 이 고스란히 보였다.

혜원 언니는 깨어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다음 뻣뻣하게 굳었다.

한 박자 늦게 표연원도 도착했다. 그는 나와 혜원 언니의 묘한 대치 상황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저었다.

"서하야."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혜원 언니였 다.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 뭘요?"

"전부 다."

글쎄. 뭐라고 변명할지 너무 뻔히 보였다.

날 너무 아껴서. 날 너무 보호하고 싶어서. 뭐 그런 이야길 하겠지.

하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순 없었다. 적어도 혜원 언니만큼은.

"언니가 전에 그렇게 말했죠. 제게 보호받는 어린애가 될 순 없다고."

-착각하지 마, 한서하!

-난 네 아군이면 아군이지, 네게 보호받는 어린애가 될 순 없어.

새하나교 사건을 언니에게 숨겼을 때, 분명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와서는 그 말을 스스 로 어겼다.

"그 말대로예요. 저 역시 언니에게 보호받는 어린애로 남을 순 없거든 요."

혜원 언니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 졌다.

"……알아. 전부 변명이겠지."

순순히 시인한다.

"내가 너무…… 과했어. 인정할 게."

그리고 꾹꾹 눌러 담는 듯한 말투 로 뒷말을 잇는다.

"하지만 너도 인정해야 할 게 있 어."

다 듣지 않았는데도 벌써 양심이 찔렸다.

'독단'으로 따지면 나도 만만치 않 게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넌 너무 무리하고 있어. 쉬는 날 도 없고, 위험천만한 일에 수도 없 이 뛰어들잖아."

"……그건 저도 인정해요."

"널 옆에서 보고 있으면 심장이 수십 개여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 아."

뒤에서 표연원이 끄덕끄덕 동의를 표했다. 다정 언니도 맞는 말이라는 듯 눈빛으로 공감을 표했다.

"이번 일은 분명 내 잘못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동 참한 데는 분명 네 지분도 있어."

"나는 반대했는데……

표연원이 작게 속삭였지만 묵살당 했다.

"그러니까 너도 한 가지 약속해줘. 일주일에 하루는 쉴 것."

"하지만……

헌터는 일주일 내내 잠을 안 자도

살 수 있는 족속들인데, 일주일 중 24시간이나 쉬는 건 너무 낭비다.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혜원 언니의 눈빛이 너무 살벌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다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2주에 한 번은요?"

"고용노동부에 널 신고하기 전에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걸."

"제 고용주는 따지고 보면 언니잖 아요."

"그래. 그러니까 나 벌금 무는 거

보기 싫으면 순순히 따르란 얘기 야."

언니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차라리 내가 벌금을 내는 거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열흘에 한 번?"

"안 돼!"

도무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누가 일주일에 하루씩이나 쉬어요? 말이 돼요?"

난 할 일이 산더미란 말이다.

5황자도 왕으로 만들어야 하고, 톨 룩에서 혁명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고 또…….

"너 빼고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일 주일에 이틀은 쉬거든?"

"말도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돌려 다정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도?"

"어? 아니, 난…… 요즘 스승님께 서 파업하시면서 할당량이 늘어 서……

일주일에 이틀을 쉬진 않는단 얘 기였다.

나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처

럼 혜원 언니를 바라봤다. 그러자 언니도 어쩔 수 없었는지 잠시 고 민했다.

"……그럼, 열흘에 한 번으로."

"좋아요."

어차피 혜원 언니도 매일 집에 들 어오는 건 아니니까.

적당히 시늉만 하면 되겠지.

"나랑 연원이가 번갈아 감시할 테 니까 빼먹을 생각 하지 마!"

혜원 언니가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이번엔 연원이를 향해 고개를 돌

렸다.

"이건 반대 안 할 거야?"

그는 내게 수면향을 쓰는 계획도 반대했다는 것 같으니, 이번에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이 있었다.

그러나 표연원은 생긋 웃더니, 보 란 듯이 내 기대를 저버렸다.

"이건 저도 찬성인데요."

이럴 수가. 둘이 번갈아 날 마크한 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도 없다.

"사람이 너무 바쁘게 살면 금방 지치잖아요. 좀 쉴 때도 있어야죠."

"맞아, 맞아."

혜원 언니가 격하게 동의를 표했 다.

"몸은 좀 괜찮지? 잠든 시간이 길 지도 않고, 몸에 해롭지 않게 신경 써서 구한 거라 부작용은 없을 텐 데."

혜원 언니가 곧장 내 몸 상태부터 걱정한다. 나는 손발을 움직이며 대 꾸했다.

"당장은 멀쩡해요. 감각도 그대로 고."

"다행이네."

이런 것마저 참 혜원 언니다웠다.

"오늘 저녁은 그럼 간만에 다 같 이 먹을까?"

"볶음밥은 어때요?"

연원이표 볶음밥이면 언제든지 환 영이었다!

톨룩에 있을 때도 늘 밥이 그리웠 는데. 돌아온 뒤로 먹은 거라곤 병 원밥뿐이었다.

의식하고 나니 기분 탓인지 허기 가 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다정이도 오늘은 저녁 먹고 가 지."

"그럴까요?"

다정 언니도 연원이의 요리 솜씨 를 맛본 적 있어서 그런지 냉큼 수 락한다.

"근데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요."

표연원이 불쑥 말을 꺼냈다.

우리는 저녁 먹을 생각에 잔뜩 신 이 났다가 동시에 표연원을 바라봤 다.

그러자 그가 한쪽 벽을 손으로 가 리키면서 말했다.

"벽은 왜 이래요?"

휘이잉.

바람이 숭숭 통하고 있는 벽면을 가리키자, 나와 다정 언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말하자면 긴데."

류라임의 해맑은 미소가 환각처럼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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