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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64화 (275/361)

264화

챕터: 원치 않는 재회

"둘이 원래 알던 사인가? 아! 너 도 지구 출신이라 그랬지?"

이그니스가 재밌는 걸 알았다는 듯이 씨익 웃는다.

"꽤나 악연이었나 봐. 그렇지?"

나는 권성민을 힐끗 바라봤다. 어

쩌다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는진 모 르겠지만 처음 그와 만났을 땐 분 명 동료였다.

"상관하실 일은 아닙니다."

권성민이 냉담하게 받아쳤다.

"얘기나 좀 들려줘. 나도 아까운 먹잇감을 놓쳐서 아쉽단 말이야."

이그니스가 혀로 날름 입술을 훑 는다.

"너도 저번보다 더 강해져 있겠 지? 그 녀석만큼은 아니어도 어지 간한 톨룩 놈들보단 훨씬 나은데!"

말하다 보니 또 아까워졌는지 이

그니스가 울상을 지었다.

그레이트홀 아래 무릎 꿇린 채로 기회만 엿보던 나로서는 좀 어처구 니가 없었다.

두구구구구구!

그때 땅이 심상치 않게 뒤흔들렸 다. 저 멀리서부터 진동이 울린다.

나는 그 진동의 주인이 누군지 대 번에 알 수 있었다.

"온다!"

이그니스의 불꽃이 한껏 요동쳤다. 그는 흥분감 어린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며 다시금 외쳤다.

"온다, 온다고!"

쿠구구구궁!

거대한 식물 줄기가 땅을 헤집으 며 미끄러지듯이 전진해왔다. 다른 헌터가 봤으면 식물 타입의 몬스터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식물 줄기 꼭대기에 이그니스 가 기다려 마지않던 이가 서 있었 다.

'……연원아.'

멀리서 이그니스를 발견했는지 표 연원의 얼굴이 본 적 없을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약한 인간! 다시 한번 그 자식을 불러봐!"

이그니스는 폴짝폴짝 뛰어나갔다.

"그 사슴하고 다시 붙어보고 싶 어!"

"아니."

표연원의 눈동자 안에 녹색 빛이 깃들었다.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바닥에서 식물 줄기가 튀어 올라 이그니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는다.

"넌 내가 상대하겠어."

화르륵!

이그니스의 불꽃이 식물들 틈으로 피어올랐다.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전 같으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 을 텐데, 식물 줄기들이 듬성듬성 구멍이 날 뿐이었다.

"너도 재밌어졌네. 좋아, 좋다구! 네가 위험해지면 결국 그 사슴을 불러내겠지!"

콰드득!

이그니스가 넝쿨들을 손으로 뜯어 내며 외쳤다.

"날 즐겁게 해줘!"

* * *

표연원에게 시선이 쏠린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등 뒤로 무전을 이용해 빠르 게 구조 신호를 보낸 다음 노이트 를 소환했다.

권성민이 잠시 이그니스의 불꽃에 시선이 팔린 순간.

'공간 간섭!'

철컥.

그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민다.

아주 잠깐. 그 찰나에 권성민이 눈 동자를 굴려 내 쪽을 바라본다.

허공에서 눈빛이 마주치고, 방아쇠 를 당기는 그 순간까지.

권성민은 미소 짓고 있었다.

탕, 탕!

탁!

본능적으로 이 탄환이 들어먹지 않으리라는 게 느껴졌다. 공격한 뒤 재빨리 몸을 뒤로 빼냈다.

"이것 참……

주르륵.

뒤통수에 뚫린 구멍을 타고 핏물 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뿐.

권성민은 아주 태연해 보였다.

"네 공격이 이토록 가소롭게 느껴 질 줄이야."

권성민이 피식, 한쪽 입꼬리를 비 틀어 올린다.

"좀 더 분발해보는 게 어때. 이제 그 정도로는 날 죽일 수 없거든."

그의 말처럼 뒤통수에 났던 바람 구멍이 벌써 아물고 있었다.

뿔 주변을 아른거리는 연기가 구

멍으로 스며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 아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회복 능 력이 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 라."

권성민이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 다.

"네가 내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발버둥치는 이 순간을 말이야!"

쿠우웅!

쾅, 쾅, 쾅!

권성민의 손짓을 따라 바닥이 날

카롭게 솟아올랐다. 나는 공간 간섭 으로 그 공격들을 황급히 피해냈다.

"이것도 어디 피해보시지!"

휙, 쿠구구구궁!

그가 손날을 가볍게 휘두르자 바 닥이 쩌적 하고 갈라졌다.

하마터면 그 사이로 빠질 뻔하다 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공간 간섭!'

허공을 빙글 돌아 권성민의 뒤를 노린다.

일반 탄환은 먹히지도 않았으니 특수 탄환이 필요하다!

'관통하는 철화!'

우우우웅!

총구 앞에 마력이 응집되기 시작 했다.

인내할수록 위력은 올라가겠지만 그걸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 었다.

우우우우웅!

타앙, 탕!

관통하는 철화가 권성민을 향해 날아든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고 개를 옆으로 꺾어 총알을 피해냈다.

그가 여유롭게 미소 짓는 찰나, 총

알 하나가 뒤이어 그의 뿔을 가격 한다.

지이이잉.

"으으윽!"

관통하는 철화는 응집된 마력 탓 에 꽤나 요란해서 뒤이어 따라붙는 총알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들어준 다.

"총성은 두 번이었거든."

정확한 예측샷.

노련한 경험이 권성민과 나를 비 등비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힘의 원천인 뿔을 공격한 내 선택

이 옳았던 모양이다. 그는 머리를 공격당했을 때보다 훨씬 동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같잖은 잔재주를!"

콰앙!

"커헉……

그가 매섭게 노려보자 미처 대웅 할 새도 없이 몸이 부웅 떴다가 바 닥에 내리꽂혔다.

충격에 내장이 흔들리며 절로 헛 구역질이 나왔다.

쾅, 쾅, 쾅!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벌어

진 일이었다. 공간 간섭을 발동하려 고 해도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 다.

"헉, 허억……

여러 번 충격을 받은 탓에 머리에 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자꾸만 몽롱해졌다.

"마지막까지 짜증 나게 구네. 이만 순순히 죽어줘야겠어."

눈을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지만 노이트를 손에 꼬옥 쥐었다.

'조금만 더.'

놈이 더 가까이 오면.

바로잡는 창천으로 녀석을 쏴버릴 작정이었다.

저벅, 저벅.

권성민이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 졌다.

"드디어, 내 손으로……!"

그 역시 환희에 가득 차 제대로 된 사고가 어려워 보였다.

'조금만 더!'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나의 승리였다.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 때.

콰과과과과광!

갑자기 나와 권성민 사이 바닥에 서 식물 줄기가 솟아나 떨어지는 누군가를 받쳤다.

" 연원아!"

표연원이 화상을 잔뜩 입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아, 미안. 거기까지 날아갈 줄은 몰랐네."

이그니스가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사과를 건넸다.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에 불쾌할 새도 없이 표연원이 고통스러워하 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쉬워. 조금만 더 경험을 쌓았다 면 나랑 잠깐이나마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이그니스가 표연원을 내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너무 일찍 만나버렸네."

"이그니스 님. 저 헌터에게 용건이 있으면 따로 해결하시죠."

권성민은 자신의 승리가 망쳐진 것처럼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

"여긴 제 싸움입니다."

"끼어들어서 미안하다니까."

이그니스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물었다.

"근데 혹시 사슴을 소환하는 데 특별한 조건이라도 필요한가? 왜 아직까지 버티고 있지? 거기 인간, 너. 너는 뭐 아는 거 없어?"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할 뿐 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표연원이나 나 둘 중 하나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저번처럼 널 좀 공격하면 되려 나?"

이그니스가 한쪽 손에 화염을 머 금자 권성민이 그를 막아섰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이마에 돋은 뿔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렸다.

"저건 제 몫입니다."

파지직! 파직!

마력의 과부하로 그의 뿔 사이에 정전기 같은 것이 튀었다.

그 모습에 이그니스도 지지 않고 불꽃을 키웠다.

"그래서? 나랑 싸우기라도 하려 고'?"

마왕이기에 오만하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었다.

"베아트리스도 아니고. 겨우 그 심 복인 네가?"

"못할 것도 없죠."

"물러서. 괜히 장난감을 망가뜨렸 다고 베아트리스한테 원망받고 싶 진 않거든."

이그니스의 황금색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그의 몸에서 피어난 불꽃 때문에

사방이 열기로 가득 찰 지경이었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머저리가 감 히 내 앞을 가로막아?"

이그니스의 기세에 권성민이 멈칫 했다.

그는 나와 이그니스를 번갈아 살 피다가 끝내 한 발자국 뒤로 물러 났다.

"그래. 그래야지."

이그니스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 를 끄덕였다.

"아주 멍청하진 않네."

반면에 권성민의 얼굴은 미약하게

일그러졌다. 겨우 평정심을 유지하 려 노력하는 듯 보였으나 꽉 쥔 주 먹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어디 그럼 시험해볼까? 널 죽일 때까지, 그 사슴이 나올지 안 나올 지!"

이그니스가 해맑게 웃었다. 난 조 금도 웃기지 않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도 같았다. 비 틀대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컥.

노이트를 장전하자 이그니스가 홍 미롭다는 듯 날 바라본다.

"소용없어."

안다. 맞아봤자 금방 회복해내겠 지. 마족들의 자가 회복 능력은 짜 중 날 정도니까.

하지만 대상은 이그니스가 아니다.

나는 총구를 서서히 들어올려 내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협박이라도 하는 거야?"

"아니."

"그럼? 그냥 자살?"

그럴 리가.

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잘 살아남아 봐."

탕!

'아늑한 바람!'

반투명한 막이 나를 감싸고, 나는 재빨리 공간 간섭을 이용해 표연원 을 감싸 안았다.

그들이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앙 !

쿠웅! 콰과과과광!

눈이 멀 것 같은 섬광과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이 동시에 울려 퍼 졌다!

일순 하늘과 땅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하얀 빛에 둘러싸였 다.

그 안에서 나는 오로지 촉감에 의 지해 표연원을 꼭 안았다.

부디,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내가 방 패막이 되길 바라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체감상 몇 시간은 될 것 같은 시 간들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사방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온통 엉망이었다.

표연원이 만든 식물 넝쿨들이 아

니었으면 깊은 구덩이에 처박혀 있 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가 죽 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 마치 미사 일이 날아와 이곳을 가격한 것처럼 단숨에 지형이 변화해있었다.

'생각보다 더하잖아.'

테오도르 그 녀석, 대체 어떤 폭탄 을 만들어낸 건지!

아직도 먹먹한 귀를 뚫고 무언가 희미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가 또렷해

졌다.

"서하 님, 서하 님!"

익숙한 목소리다. 나는 이때만큼 그 목소리가 반가운 적이 없었다.

희뿌연 연기와 흙먼지들 사이로 귀여운 인상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 왔다.

내가 표연원을 끌어안은 것을 보 고 잠시 표정을 일그러뜨리다가, 눈 한번 깜빡할 사이 감쪽같이 변해있 다.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은 으레 내가 아는 류라임이었다.

"서하 님! 어땠어요? 저 잘했어 요?"

덕분에 위기에서 잠시 벗어났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류라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어요. 고마워요."

"헤헤헤. 구조 신호 오자마자 다 같이 바로 달려왔어요! 이 폭탄은 시험작이라 그랬는데 효과가 생각 보다 더 좋네요!"

그래, 팀.

이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바로

이들의 존재 아닐까.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다른 문제 를 모두 뒤로한 채 달려와주는 이 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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