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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75화 (286/361)

275화

"윤강백 길드장님은 손이석 대장 장이님 제자기도 하지 않습니까."

"부덕한 제자 놈이지. 늙은 스승을 부려먹을 생각만 하는."

"손이석 대장장이만큼 훌륭한 대 장장이가 또 없으니 그러는 것 아 니겠어요."

"뭐,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러게 송 다정 고 녀석을 얼른 마저 다듬어 줘야 하는데. 속세에 물들더니 올라 올 생각을 안 하니, 원."

과연 그게 속세 때문일지, 손이석 의 교육 커리큘럼 때문일지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앞으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네 장례식까지 진행되던 터였다. 근데 더 기다려야 했단 거냐."

그렇게 말하는 손이석의 말투는 제법 씁쓸하게 들렸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나 역시 수

많은 제자들을 떠나보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공식 제자는 둘 뿐이다. 전서호 그리고 윤강백.

듣기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제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뺀질거리는 놈도 있었고, 감탄할 정도로 성실한 녀석도 있었지. 사람 대 사람으로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 고 느낀 제자 놈도 있었다."

그는 아득한 과거를 떠올리는 것 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타닥, 타닥.

파이로의 불씨가 바람을 타고 아 름답게 나부낀다.

"그런데 하나같이 스승보다 일찍 가는 배은망덕한 놈들이었어."

탓하는 어조지만 원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뒤섞여 알 수 없는 내음이 났다.

"이렇게 살다 가려고 했다. 아무것 도 모른 채로 그냥, 쇳덩이나 두드 리면서 말이다. 난 너무 지쳐있었으 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도 마음 안

에 들이지 않으면 마음 썩힐 일도 없었겠지.

"그 모진 현실에서 눈 돌려 산으 로 들어왔는데. 그런 날 끌어낸 게 네놈 아니더냐."

"그랬죠."

"처음부터 연을 맺지 말았어야 했 거늘……. 쯧."

그는 또 속세와 연을 맺어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 못내 후회되는 것 같았다.

"끝내 네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한 번 더 욕심냈던 것이 내 실수라 고 생각했다."

그의 정식 제자는 아닐지언정 꽉 닫혀있던 그의 마음을 울린 것이 나였으니까.

그런 나마저 잘못됐다고 들었을 때 그가 느꼈을 허탈함을 내가 어 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걱정 마세요."

나는 파이로의 턱을 살살 쓰다듬 었다. 뜨거운 화염이 내겐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다.

"이렇게 다시 돌아왔잖아요."

"……그렇지."

손이석이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었다.

"누가 저 죽었다고 말해도 믿지 마세요. 장례식까지 했다가 돌아와 서 행정 절차 밟느라 고생했거든 요."

"너 같은 녀석은 또 없을 거다. 그 렇게 감쪽같이 사라졌다 돌아오다 니."

"그러니까 저 사라져도 최소한 반 년은 더 기다려보세요."

나는 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다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요."

내 말에 손이석은 잠시 침묵을 지 켰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 많은 것 들이 스쳐 지나갔겠지.

그리고 끝내 그가 입을 열었을 땐 속 보이는 타박이 가득했다.

"날 반년이나 기다리게 할 셈이 야? 더 일찍 일찍 다녀야지!"

그가 소리치자 파이로가 눈을 번 뜩 떴다.

-삐이 이익!

"파이로! 네 주인이라고 아끼는 게 냐? 널 지금까지 돌봐주고 키워준 게 누군데!"

-삑삑! 삐이익!

파이로와 손이석이 투닥투닥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 다.

나 없는 사이에 둘이 정말 친해진 모양이다.

파이로는 제 불꽃에 손이석이 다 칠까 봐 날개는 뒤로 뺀 채 부리로 만 콕콕 쪼아댔고, 손이석도 이리저 리 피해 다니며 장난을 쳤다.

-삐익! 삐비빅! 삑!

"그만! 그만! 알겠다!"

파이로의 쪼기 공격이 멈추질 않

자 손이석은 결국 항복의 사인을 보냈다.

* * *

퀭한 눈빛,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 거기다 손에 들린 진한 커피 까지.

야근을 하는 연구원의 모습을 완 벽하게 갖춘 박노아가 날 보며 힘 없이 웃었다.

''아.  오셨군요.."

"……박노아 씨. 괜찮으신 건가

요'?"

"네...? 물론이죠... 소장님께 서 기다리고 계시니…… 안으로 오 시죠............

비틀비틀 앞서 가는 모습이 영 불 안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 단 말인가. 나는 두려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레이트홀 파동 분석 완료했습 니다. 기존 게이트 파동과 비교 분 석한 데이터도 보냈어요."

"경기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이상 파동 감지됐습니다. 게이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다른 데이터와 대조 중입니다!"

"아까 분석 맡긴 건 다 끝났나 요?"

"아직입니다! 죄송합니다. 37분 정 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연구소 안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늘 늦은 저녁에나 와서 백목련과 박노아밖에 못 봤는데, 새삼 다른 연구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백목련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 안에 자료 분석해서 상부에 보고해야 합니다. 다 못 끝내면 집

에 못 갈 줄 아세요."

"소장님! 벌써 2주째 집에 못 갔 습니다!"

"이러다 이혼당할 것 같아요!"

"침대에서 자고 싶습니다……!"

야근 선언에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백목련은 단호했다.

"다 끝내기 전엔, 퇴근 못 합니 다."

"아아아악!"

"흑흑흑……. 차라리 죽여주세

요……

연구원들이 반쯤 정신을 놓은 상

태로 일하는 걸 보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헌터인 게 다행인 건가.'

표연원이 연구원이 됐으면 이렇게 일했으리란 생각이 드니. 헌터가 된 게 차라리 나은 건가 싶기도 했다.

헌터로 싸우다 죽는 것보다 연구 원이 과로사하는 게 더 빠를 것 같 다.

"오셨네요."

"네. 방금 왔습니다. 그런데……

백목련이 날 응시하는 시선이 좀 이상하다.

묘하게 초점이 흐릿했다.

"마지막으로 편히 쉰 게 언제죠?"

"2주 전쯤에 세 시간 잤으니 괜찮 아요."

"백목련 씨는 헌터가 아니라 연구 원인 줄 알았는데요."

헌터들 중에서도 잠입에 특출한 헌터만 감당할 수 있을 법한 강행 군이었다.

일반 헌터들도 나가떨어질 텐데. 헌터도 아닌 백목련이 무슨 수로 이러고 있단 말인가!

"걱정 마세요. 약간의 카페인과 각

성제만 있으면 충분하니까요."

그러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를 가리키는데, 커피에 대체 뭘 탄 건지 냄새가 오묘했다.

마약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 스러울 지경이었다.

"몸에 해로운 건 아닙니까?"

"장기 복용하면 여러 부작용이 있 긴 하겠죠."

"예를 들면요?"

"간이 망가지겠죠."

"그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죽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 무감각한 말에 나도 모르게 입 이 떡 벌어졌다.

"……박노아 씨는요?"

"저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아요. 나흘 전쯤에 두 시간 더 자서……

"자라고 둔 게 아닌데 졸다가 나 한테 걸린 거겠죠."

"하하. 그렇긴 해요."

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자 백목 련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본론 부터 꺼냈다.

"안으로 들어가죠. 여기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으니까."

백목련이 안으로 들어간단 말을 꺼내자마자 다른 연구원들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누군가는 부스럭거리며 침낭을 매 만졌다.

소리 없이 만세를 외치는 그들을 보자니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끼익, 탁.

"해석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어떻 게든 밤새 진행하곤 있지만, 이번에 그레이트홀도 그렇고 사건들이 많 아서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요."

"중간 과정이라도 좀 살펴보고 싶

어서요. 뭔가 새로운 힌트라도 나온 게 없습니까?"

내 물음에 백목련이 손가락을 까 딱했다.

그러자 박노아가 백목련에게 서류 봉투를 집어 건넨다.

"앞부분 해석에 따르면 이 '신의 조각'이 지구에 있다는 걸 암시하 는 내용이 있긴 했어요."

"가설 중 하나가 맞아떨어졌네요."

"맞아요. 오염을 되돌리는 아이템 이 지구에 있어서 지구가 침략 대 상으로 선정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템의 존재 때문에 거리낌 없이

오염을 침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 이 두 가지 가설이 그럴듯해졌 죠."

백목련이 내게 서류를 건넸다.

나는 서류 봉투를 열어 안을 살펴 봤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몇 없었다.

"……톨룩어 맞아요?"

나도 톨룩어에 까막눈은 아닌데 한글로 번역된 내용도 제대로 알아 먹기가 어려웠다.

"고대 톨룩어라서요. 같은 글자여 도 수십, 수백 가지로 뜻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걸 해석하는 게 가능합니까?"

"그 수십, 수백 가지 뜻을 낱낱이 대조하면 문법적으로도 문맥적으로 도 완벽히 맞아 떨어질 때가 있으 니까요.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 에요."

백목련이 처음엔 족히 3달이 걸린 다 했던 덴 이유가 있었던 것 같 다.

"이 뒷부분은 게다가 지구에서도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것 같은 데…… 은유적인 표현이 맞아서 많 이 헤매고 있고요."

"아, 그 뒷부분을 지금 제가 해석

하고 있는데요."

박노아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는 곧 죽을 것처럼 안색이 안 좋았지만 용케 두 발로 서 있었다.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어요. 이 부 분이요."

그가 커다란 화면에 가득 고대 톨 룩어를 띄우고 특정 부분을 확대했 다.

"이 ■■■을 '이중 맹검'으로 보 고 ■■을 '헤르메티카', ■■을 '수 생 식물'로 해석하면......

"이거, 정말 재밌네."

미안하지만 난 하나도 이해를 못 했다.

그런데 백목련과 박노아는 서로 마주 보며 아주 흥미롭다며 맞장구 를 치고 있어서 도무지 끼어들 수 가 없었다.

"■■■■을 그럼 아까 ■■이랑 같은 단어라고 보면?"

"그렇게 되면 해석이 훨씬 매끄러 워지겠네요! 그럼 ■■■도 ■■■ ■으로 두고..

"그럼 가리키는 건 한 가지뿐인 데."

"그렇죠? 이보다 명확할 수가 없 죠!"

둘만의 세계에 빠져들길래 나는 살짝 손을 들었다.

"죄송한데, 좀 물어봐도 될까요."

" 뭘요?"

"그래서 뭐가 명확해졌단 겁니 까?"

"네?"

" 으음?"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 본다.

"딴생각 했어요?"

"너무해요. 집중 좀 해주세요."

아니. 집중했는데 못 알아들은 거 다.

하지만 둘은 절대 이걸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 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를 기준으로 보 면..

"아뇨. 결론만 얘기해주시죠."

그 과정을 설명하는 건 말해봤자 못 알아들을 테니까.

백목련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날

보더니 결국 무척 축약된 결론을 말해줬다.

"이 아이템은 톨룩에서 지구로 향 하는 길을 뚫었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단 얘깁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요?"

내가 되묻자 백목련은 고개를 끄 덕였다.

"톨룩과 지구 사이의 통로가 나라 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건 익 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거리가 멀수 록 게이트를 여는 데 부담이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죠."

그걸 묻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알기

로 지구와 톨룩 사이의 최단 거리 에 위치한 나라는…….

"그러니까, 바로 여기죠."

그녀가 바닥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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