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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77화 (288/361)

277화

챕터: 누군가의 함정

로랑은 신경질적으로 복도를 쓸었 다.

평소보다 유독 넓게만 느껴지는 복도가 괜스레 얄미워서, 로랑은 기 어코 빗자루를 집어 던져 버렸다.

옆에 있던 니나가 슬쩍 로랑의 눈

치를 살폈다.

로랑은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또 괜히 옆에 있던 니나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넌 자존심도 안 상하니?"

" 으응?"

니나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로 랑이 다시 물었다.

"넌 자존심도 안 상하냐구."

" 왜?"

니나가 되묻자 로랑은 답답한 듯 이 가슴을 두어 번 손으로 두드렸 다.

그러고도 모자라는지 니나의 머리 를 쥐어박기까지 했다.

이유도 모른 채 한 대 얻어맞은 니나가 울상을 짓고 로랑을 올려보 았다.

"너, 우리가 오늘 이렇게 대청소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내일모레 열릴 파티 때문이 지."

"그 파티가 누굴 위한 파틴지 알 고?"

"으웅? 그냥 으레 하는 것처럼 귀 족 나리들 사교파티 아니야?"

로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 을 푹 내쉬었다.

" 아냐?"

니나가 소심하게 덧붙였다.

"이번 파티는 다름 아니라 황태자 즉위식에 누가 참석할지 후보자들 을 발표하는 자리야."

"그으래? 근데 그게 왜?"

"몰라서 물어? 그 자리에서 황제 페하께서 5황자 저하도 후보로 임 명하실 것 같단 소문이 파다해!"

"5황자 저하를?"

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로랑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엔 목소리를 낮춰서 작게 속살거렸다.

"왜, 요즘 5황자 저하께서 일반 백 성들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계시잖 아. 백성들을 생각해주는 자비로운 황족이라고."

"으음…….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자비로운 분께서 황태자 전하가 되 는 거잖아."

"이 바보야! 우린 3황자 저하를 모시는 몸이잖아! 게다가 일반 백 성들이 뭘 알긴 하니? 5황자 저하 가 언제부터 백성을 그렇게 생각했

다고! 그냥 대외용 선전에 불과하 다니까."

거기다 로랑은 주변을 휘휘 살피 고는 작게 덧붙였다.

"게다가 그분이 뭐 할 줄 아는 게 있니? 운 좋게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긴 했지만, 평소엔 순 빈둥거릴 뿐인걸! 학식은 1황녀 저하께, 무력 과 처세는 3황자 저하께 밀리는 실 정인데."

"어, 그런가? 근데 로랑, 저기 뭔 가 이상한 게……

니나가 속삭이려 하자 로랑이 신 경질적으로 말을 끊어냈다.

"얘! 넌 대체 누구 편이니? 휴, 3 황자 저하께서 황태자 자리에 오르 셔야 우리한테도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텐데..."

로랑은 주섬주섬 던졌던 빗자루를 집어 들고 다시 복도를 쓸었다.

하지만 아까만큼의 호기로움은 보 이지 않아서, 니나는 옆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말없이 빗자루질을 마저 하던 도 중에 니나의 눈에 이상한 게 들어 왔다.

'이게 왜 여기 있지?'

니나는 정원에 심긴 여러 식물들 사이에서 이질적인 것을 찾아냈다.

그녀는 로랑의 눈치를 보다가 슬 그머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유는 몰라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다들 5황자 저하의 대외용 이미 지에 속고 있는 거라고!"

로랑의 외침에, 니나는 머릿속으로 과거에 마주했던 5황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3황자궁에 속해있긴 하지만 난 어 쩐지 5황자 저하께 더 마음이 가는

걸.'

그는 퍽 다정한 구석이 많아 시녀 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황자였 다.

어려운 3황자나 냉철한 1황녀에 비해 사람다운 구석이 있다고 말이 다.

니나는 그런 분이 황제가 되는 것 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파티는 아주 간만에 열린 자

리였다.

전쟁 중이라 사교계 모임을 자제 하고 사치를 줄이라는 황제의 명령 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귀족들은 간만에 열린 자 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두루 물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활발히 세력을 확장 중인 5황자, 시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몰려와 인사를 건 네는 귀족들 탓에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세드릭!'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세드릭을 바라보면, 그는 어쩐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시온을 응시했다.

그가 어엿한 황위 계승 후보로 이 름을 날리는 게 더없이 자랑스러운 기색이었다.

'다니엘!'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니엘을 바 라보면 그는 도리어 무엇을 원하냐 는 듯 살며시 웃어 보인다.

그 무언의 압박에 시온은 도로 고 개를 앞으로 돌리고 하하 웃었다.

"내 동생, 여기 있었구나."

그때 시온의 앞에 3황자, 빈센트가 등장했다.

한창 주가 오른 두 황자의 만남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삽시간에 회장이 고요해지고 음악 의 선율이 빈 공간을 채웠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3황자 저하."

시온이 급하게 예를 차리려고 하 자 빈센트가 그를 막았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게. 내 손 이 무안하지 않나."

빈센트가 내민 손은 분명 악수의 의미였다.

엄연히 둘은 3황자와 5황자인데, 윗사람인 3황자가 먼저 비교적 동 등한 인사인 악수를 청한 것은 무 척 너그러운 처사였다.

"아, 예. 저하. 감사합니다."

"편하게 형이라 부르거라."

"예에, 형님……

"그냥 편하게 형이라 부르라니까."

갑작스러운 빈센트의 공세에 시온 이 혼란스러운 기색을 감추질 못했 다.

그러면서도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어느새 그를 형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야. 두 분께서 이리 사이가 좋 으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 제국의 미 래를 책임질 두 분께서 형제애가 이리 돈독하시니, 신하 된 입장에서 마음이 아주 든든합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하하하하, 귀족들이 형식적인 웃음 을 내뱉었다.

노골적인 아부에 시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는 눈치였다.

"뭘. 같은 핏줄끼리 싸워 황실의 분위기를 흐려서야 되겠는가. 우리 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반면에 빈센트는 아주 능숙한 언 변으로 귀족들의 아부를 흘려보냈 다.

"어머. 두 분께서 그렇게 긴밀한 사이인 줄 미처 몰랐네요."

그때 귀족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한 여인이 등장했다.

앳된 얼굴과 다르게 우아하게 틀 어 올린 머리카락, 아름다운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가 인상적인 여인 이었다.

차분하면서 기품 있는 분위기는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다.

"샬럿! 내 친애하는 여동생. 그동 안 잘 지냈느냐."

"그럼요, 오라버니. 전부 오라버니 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죠."

1황녀, 샬럿.

어려서부터 현자들과 담론을 나눴 다는 희대의 천재 황녀.

비슷하게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던 폐황자 테오로드가 연구에 빠져 황위를 뒷전으로 한 것과 달리, 샬럿 은 황제를 따라 국무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정계에 관심이 많았다.

후보자들 중 가장 어린 나이인데 도 3황자와 비견될 정도로 큰 세력 을 갖춘 건 그 빛나는 재능이 뒷받 침됐기 때문이다.

"샬럿, 네가 제안한 조세 개정안은 잘 봤다. 꽤 재밌는 아이디어더구 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늘 제국을 위해 고민하다 보니 좋 은 생각이 떠오르지 뭐에요."

둘이 하하호호 웃으며 보이지 않

는 칼을 서로에게 겨누는 그때. 시 온은 그저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당장 실현하기 엔 어려운 구석이 많더구나. 이론에 치중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내가 네 나이 때 뭘 했는지 생각해보면, 네가 어린 나이에도 이리 훌륭한 제안을 했다는 게 참으로 대단해."

해석하자면, 실무도 모르는 주제에 이런 개정안을 발표해 사람을 귀찮 게 만드냐는 꾸중이었다.

샬럿의 유일한 단점인 어린 나이 를 꼬집으며 시비를 거는 건 덤이다.

그러나 샬럿도 그에 뒤지지 않았 다.

"가끔은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도 필요한 법이지요. 오라버니께서도 황제 폐하를 도와 국무에 많이 시 달리시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리 고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오라버니 께서 제 나이 때에 검술 실력을 인 정받아 기사단장의 애제자였단 건 익히 알려진 일 아닙니까."

고리타분한 행정 몇 번 도와봤다 고 더럽게 유세 떤다며, 그러니 네 가 발전이 없는 거라는 비꼼이었다.

거기다 이 나이 때 네가 한 건 황 제의 측근인 기사단장한테 우쭈쭈 칭찬 들은 것뿐이지 않았냐는 비웃 음도 잊지 않는다.

둘의 치열한 접전에 불이 튀는 환 각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서 시온은 그야말로 눈 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 샬럿, 간만에 보니 좋구나."

"저도요. 앞으로 자주 뵙죠."

둘 다 잔뜩 속이 뒤틀린 채로 대 화는 끝이 났다.

샬럿의 시선이 비스듬히 흘러 시

온에게 향했다.

"5황자 저하를 뵙습니다."

"편하게 해도 된다."

샬럿이 드레스 자락을 들며 예를 차리자 시온이 어색하게 대꾸했다.

시온은 샬럿을 무척 어렵게 여겼 는데, 어린 시절 샬럿이 너무 뛰어 난 나머지 항상 그 비교대상이 되 곤 했기 때문이다.

빈센트와 달리 시온은 샬럿과 겨 우 두 살 터울이라 유독 심했다.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전쟁에서 많은 공을 올리셨다는 얘기 들었어

요."

"아니. 공이랄 것까진 없지……

샬럿은 쭈뼛대는 시온을 잠시 바 라보다 이내 무난한 인사를 건네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황제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지기의 말에 회장이 조용해졌다. 황족은 귀족들의 제일 앞에 서서 황제를 맞이해야 했기 때문에 셋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때 샬럿이 시온을 스쳐지나가며 속삭였다.

"조심하세요."

시온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샬럿 이 너무 태연하게 저 멀리 걸어가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경고를 남긴 것치곤 얼굴색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의아함도 잠시. 황제가 입장한다는 소리에 시온은 서둘러 제 자리를 찾아갔다.

고개를 푹 숙이며 예를 표하자 황 제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 다.

"참석해준 모든 이들에게 우선 감 사를 표하지."

황제, 카를로스는 그러면서 옷이나 장신구에 사치를 부린 귀족은 없는 지 빠르게 훑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은 황태자 즉 위식에 설 후보자들을 발표하는 날 이네."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오늘 희대의 관심사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과연 5황자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인가?

최근 5황자의 세력이 무서운 기세 로 성장하곤 있지만 아직 3황자나 1황녀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었 다.

"난 질질 끄는 건 질색이라. 빠르 게 발표하도록 하지."

다니엘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걸 느꼈다.

그가 기울인 모든 노력이 오늘 판 가름 날 것이다.

살짝 시선을 돌려보니 이사벨라도 티 나지 않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 다.

"황태자 즉위식 후보자는……

시온은 다른 의미로 잔뜩 긴장했 다. 혹여나 정말로 자신이 후보 안 에 들어 있을까 봐 말이다.

카를로스의 날카로운 시선이 샬럿 과 빈센트를 지나 시온에게 머물렀 다.

"……3황자, 빈센트 카이사르 고 흐. 1황녀, 샬럿 카이사르 엘리자베 스."

둘의 이름이 호명되자 둘은 예를 차려 허리를 숙였다.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시온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 아 뛸 듯이 기뻤고, 다니엘과 이사 벨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 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5황자 시온 카이사르 생퀸."

시온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번쩍 들어 카를로스를 바라볼 뻔했다.

큰 무례를 저지를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이렇게 셋이 곧 있을 황태자 즉 위식에 참석할 후보자들이다."

마지막까지 '셋'이라며 확인 사살 을 하는 바람에 시온은 정말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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