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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296화 (307/361)

296화

나는 카뤼센을 안쪽 방까지 옮긴 다음 테토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그 잠깐 남은 시간 동안, 베아트리 스와 잠시나마 이야길 나눌 수 있 었다.

"두렵지 않아?"

"뭐가요?"

"네 계획대로면…… 너까지 목숨 을 잃는 거잖아."

그러자 베아트리스가 유순하게 웃 었다. 릴리스와 다르게 웃을 때면 눈매가 아래로 내려간다.

"오랜 시간 이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어요. 죽는 것보다도 이 이상 제가 원하지 않는 피해를 남들에게 미치는 게 더 두려워요."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 었다.

베아트리스와 릴리스가 한 몸을 두고 다툰 게 적어도 몇백 년은 될 텐데, 그동안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베아트리스가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마지막에 벨제를 보지 못하고 가 는 건 좀 아쉽지만요."

"에드문드는?"

"에드도 물론 보고 싶죠! 걔는 툭 하면 다른 애들하고 시비가 붙어서 엉엉 울면서 저한테 달려오곤 했는 데."

과거를 회상하는 듯 목소리가 꿈 결을 거닌다.

"그 긴 시간 동안 그래도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렇게 곱 씹을 수 있는 추억이 있었기 때문 이에요."

베아트리스가 무릎을 끌어안고 작 게 중얼거렸다.

"그러니 이만 여기서 사라져 주는 게, 저를 위해서도…… 그 애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겠죠."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원한다면 전해주지."

"으음,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고민되는 듯 턱을 괴고 한참을 신 음했다.

"으으으음.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또 지나치게 가볍지 않았으면 좋겠 는데."

그러더니 이내 씨익 웃으면서 내 게 작게 속삭인다.

"……라고 전해줘요."

"다른 할 말은 없고?"

"그거면 충분해요."

내가 재차 물었지만 베아트리스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뒤로도 베아트리스는 시시콜콜 한 이야기들을 늘어놨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이 마왕성에 서 둘과 어떻게 뛰어놀았는지에 관 한 것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에드문드가 어릴 적

에 의외로 울보였다는 것과, 벨제부 브는 샌님이었다는 걸 알게 됐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시간을 알렸다.

퐁당!

"테토가 왔어요! 지금으로부터 정 확히 8초 뒤라고 하셨어요!"

똑딱, 똑딱.

시계 초침은 속절없이 흘렀다.

5초, 4초, 3초.

철컥.

나는 베아트리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고통은 없을 거야."

" 괜찮아요."

2초.

베아트리스는 눈을 감고, 노래하듯 이 웅얼거렸다.

1 초.

"이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탕!

핏물이 사방으로 번졌다.

나는 베아트리스의 시신 위로 겉 옷을 덮었다.

망자에게 치러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였다.

벨제부브가 깨어났을 때, 그는 베 아트리스의 시신을 보고도 별말이 없었다.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 채 그녀의 시신을 한동안 내려다보았을 뿐이 다.

베아트리스가 사망하자 카뤼센의 세뇌도 풀렸고, 그녀에게 충성했던많은 마족들이 이젠 승리자를 섬겼 다.

벨제부브 말이다.

그는 다른 성에서 온 마족들을 돌 려보내고 후에 정식으로 마왕 후계 자를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 없이 나와 에드 문드만 참석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 렀다.

"……베아트리스."

에드문드 또한 자세한 내막은 몰 라도 대충 설명은 들은 뒤였다.

베아트리스가 뭔지 모를 악령 같

은 것에 지배를 당해서 이 모든 일 이 벌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관을 닫기 직전까지도 에드문드는 베아트리스의 손을 놓 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그녀가 살아 돌아오기 라도 할 것처럼 절절하게 매달린다.

"에드문드."

벨제부브가 그런 그의 어깨에 손 을 얹었다.

"이만 돌아가지."

관을 닫고 베아트리스를 보내줄 시간이라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그 말에 에드문드도 발갛게 부어 오른 눈가를 소매로 슥슥 닦아냈다.

화르륵!

베아트리스의 시신은 불에 타 재 로 변했고, 마왕성 끝에 있는 절벽 에 뿌려졌다.

결국 모든 일의 시작이 베아트리 스였지만, 마지막에 스스로의 목숨 을 바치면서 마무리됐으니…….

둘에게 아마 잊지 못할 일이긴 했 으리라.

"이, 이이…… 벨제부브 개자식 아!"

대뜸 에드문드가 멱살잡이를 했다.

카뤼센이 매서운 눈빛으로 한 걸 음 다가오려는 걸 벨제부브가 손짓 으로 제지한다.

"왜 말을 안 한 건데! 왜! 처음부 터 말을 했으면 좋았잖아!"

둘 사이의 골이 깊어진 데는 벨제 부브의 침묵이 한몫했다.

"너와 베아트리스를 분리해야 했 으니까."

"그니까 왜 내 의견도 안 물어보 고 그딴 결정을 내리냐고! 어? 난…… 너한테 배신당한 줄 알고,

그동안 널 원망하면서 지냈는 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아니라고!"

에드문드가 흔들흔들 멱살을 털어 댔다.

"내 시간들이 전부 허무해졌잖아! 난 그럼 왜 그토록 고통받았고, 배 신감에 휩싸였던 건데? 전부 네 독 단 때문에!"

훌쩍, 에드문드가 감정이 격해지자 눈물이 핑 도는지 반쯤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한테 말이라도 꺼냈으면……!"

" 했다."

벨제부브가 탁, 에드문드의 손을 쳐냈다.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나. 베아트리스가 요즘 이상한 것 같다 고."

그러자 에드문드도 멈칫했다.

"그때마다 네가 뭐라고 대답했지? 그럴 리가 없다고. 우리라도 베아트 리스의 편에 서줘야 하지 않느냐고. 그러지 않았나."

" 그건.

아마 둘의 유대감이 상당히 끈끈 했을 거다.

벨제부브의 말 시중 상대로 들어 와, 갖가지 핍박을 받았다고 했으니 까.

벨제부브는 모르는 둘만의 애환도 있었겠지.

"난, 그냥 헛소문인 줄 알았어

"그런 네게 내가 뭘 더 어떻게 했 어야 했단 말이냐. 괜히 위로해준답 시고 붙어있다가 릴리스에게 해라 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 다."

에드문드도 부정할 수 없는지 푹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그가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벨제부브가 놀라서 되묻기도 전에, 에드문드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미안하다고! 그건 내가 잘못했 네!"

"아니…… 나야말로."

떠밀리듯이 대꾸한 다음, 벨제부브 가 진중한 태도로 뒷말을 덧붙였다.

"나도 지난 일을 사과하고 싶다."

"그래. 넌 양심이 있으면 그래야 지."

에드문드가 일부러 더 틱틱대며 어색함을 해소하려 애를 썼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나는 마 지막에야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죽기 직전에 베아트리스가 남긴 말이 있어요."

그 말에 에드문드가 획 뒤돌아봤 다.

"베, 흡, 베아트리, 흡, 스가…… 남긴 말?"

"둘에게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내 말에 두 남자가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런 게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고마워'라고."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는 베아트 리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딱 그 한 마디만 했어요."

둘도 아마 나와 다르지 않은 걸 떠올린 모양이다.

에드문드가 축축하게 젖은 소매에 한 번 더 얼굴을 파묻었다.

벨제부브도 티 나진 않았지만 살 짝 무표정이 일그러졌다.

* * *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사실 챙겨 온 것도 별로 없긴 하 지만. 벨제부브나 에드문드가 답례 로 준 것들이 있어서 짐이 올 때보 다 더 늘었다.

'에드문드가 준 것들을 테오도르한 테 보여주면 눈을 빛낼 것 같은데.'

둘이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가 상 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천천히 발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작별 인사 같은 건 필요 없겠지.

퐁당!

"벌써 가시는 건가요?"

철컥.

"히 이익!"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테토에게 노이트를 겨눴다.

"뭐야. 테토잖아."

"무, 무서운 인간!"

하마터면 진짜로 쏠 뻔했다. 나는 노이트를 거둬들였다.

"그런데…… 뭐야, 그 배지는? 못 보던 건데."

"호오! 이걸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좋군요!"

아니. 누가 봐도 눈에 띄지 않는 가.

허름한 로브 위에 번쩍번쩍 빛나 는 고급스러운 배지가 달려있으면, 누구라도 물어볼 것이다.

테토는 잔뜩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대꾸했다.

"이번 일로 테토도 승진을 했거든 요! 이제 벨제부브 님의 직속 하인 이랍니다!"

"좋은 거야?"

"아주 영광스러운 자리라고요! 원 래라면 저 같은 마물 출신 하급 마 족은 꿈도 못 꾸는 자리! 그야말로 특급 승진이에요!"

뭔진 몰라도 높은 직책에 오른 모 양이지. 이번 일에는 테토의 공이 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림자를 오가는 능력은 여러모로 유용하기도 하고.

"잘됐네. 축하해."

"홈홈. 무서운 인간님이 테토의 능 력을 높이 사고 잘 활용해준 덕도 있고요."

그렇게 말해준다니 나도 고맙네.

"아 참! 이걸 말하러 온 게 아니 죠!"

"그럼?"

"벨제부브 님의 전언이에요! '떠나 기 전에 잠깐 시간이 되나?'라고 하셨어요!"

"없다고 전해."

나는 그대로 테토를 뒤로하고 걸

어갔다.

내가 이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 지 테토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빠르게 내 그림자를 통해 따라붙는 다.

"이대로 그냥 갈 거예요? 정말 로?"

"딱히 할 말 없다고 전해."

"아, 안 돼요! 승진하고 첫 임무인 데 이렇게 망칠 순 없다고요오 오……

테토가 거의 내 바짓가랑이를 붙 잡듯이 매달렸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벨제부브를 만 날 생각은 없었다.

"난 갈 거야. 이거 놔."

"그렇게 애원하는데 얘기 좀 들어 주지?"

"맞아요! 저를 봐서라도 어떻 게……. 응?"

테토가 소리가 난 쪽으로 휙 뒤돌 았다.

혼자 무채색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내. 에드문드였다.

그는 이곳에 오자 붕대를 풀어내 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덕에 볼때마다 낯설었다.

"에드문드. 이 시간엔 어쩐 일로?"

"네가 말없이 떠날 것 같다고 벨 제 녀석이 그러기에 설마 싶었는데, 진짜였네."

도망치다 걸린 사람 취급이다.

나도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찔렸 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오겠죠."

"아니, 걔 집무실 봤으면서 그래? 지금 마왕성 둘이 비었는데 일하는 건 걔 하나라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서류 처리하는 거 알잖아."

한바탕 뒤집어진 다음이라 내부 수습하느라 바빠 두문불출한 지 좀 됐다곤 들었다.

"마지막인데 잠깐만 얼굴 보고 가 자. 웅'?"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 다.

에드문드는 어쩐지 사람을 무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 다.

"오래는 시간 못 내요. 오늘까지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요."

이사벨라와 약속한 시간이 딱 오 늘까지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제 시간에 도착할 터다.

"감사합니다, 에드문드 님! 감사합 니다!"

"가자, 얼른."

테토가 에드문드의 뒤를 졸졸 쫓 아다니며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에드문드가 씩 웃으며 앞장서 가 기에,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벨제부브는 몰라도 에드문드를 생 각해서라도 얼굴만 비치고 가야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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