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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17화 (191/361)

317화

챕터: 마지막 내기

진심인가?

나도 모르게 놀란 눈으로 레태흐 태드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녀와 나는 여러 번 내 기를 해왔지만, 그때마다 그녀가 내 건 것은 내 동료의 목숨 같은 것들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피해가 갈 법한 걸 내건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자신의 목숨이라 니?

"진심이야?"

"내가 거짓을 고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어차피 여기서 널 보내주면 톨룩은 그대로 몰락할 텐데."

마치 남의 목숨을 거는 것처럼 태 연한 어조였다.

아무리 마녀라곤 하지만 본체는 인간이니 목숨은 하나일 텐데. 저태연하다 못해 여유롭기까지 한 태 도가 어쩐지 기묘했다.

"그래. 변덕이라고 해두자."

레태흐태드가 달큰하게 속삭였다.

"조건은 언제나와 같아. 네가 '제 정신으로' 탈출할 것."

불길하게도 '제정신'을 강조한다. 이번만큼은 그녀 역시 자신의 마지 막을 내걸었으니, 그 난도가 만만치 않으리라.

"그럼…… 건투를 빌게."

톡.

레태흐태드가 그녀의 이마를 내

이마에 마주 댔다.

부딪치는 순간 정신이 아득히 멀 어 졌다.

* * *

"줄리아!"

누군가의 고함에 번쩍 눈이 뜨였 다.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누워있는 날 내려다보며 걱정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 아니......

방금 '줄리아'라고 한 거, 날 부른 건가?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레태흐 태드의 술수에 놀아난 적은 많았지 만, 내가 한서하가 아닌 다른 존재 가 된 적은 없었는데.

이건 마치 스테이지형 게이트 같 았다.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여 자아이가 늦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 야 한다며 재촉했다.

얼결에 그 여자아이를 따라 서둘

렀다.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안 에는 네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 다. 이제 보니 모두 교복을 입고 있다.

'여긴 교육기관인 건가?'

앳된 얼굴들을 보니 열댓 살 언저 리로 보였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해볼까?"

다들 엄숙한 얼굴을 했다.

"줄리아 졸업 프로젝트를!"

줄리아라고 하면.. 나?

"내 졸업?"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그 러자 당연한 소릴 한다는 듯 여기 저기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올해는 꼭 졸업해야지!"

"페일, 그 자식이 이번에도 방해하 려고 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만 믿어! 어떻게든 부 장을 졸업시켜줄게!"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오래도록 졸업을 못 한 모양이다. 그 '페일' 이라는 아이의 방해 때문에.

* * *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지만 제대로 알아들은 건 별로 없었다.

아이들의 이름 정도랑 우리가 같 은 동아리에 소속됐다는 것. 그리고 그 동아리의 회장이 '줄리아'라는 것 정도다.

'아마 이건 스테이지형 게이트와 비슷한 형식인 것 같아.'

그러니 레태흐태드도 내게 제정신 으로 돌아오라고 강조했겠지.

과몰입에 대비하라는 건 스테이지

형 게이트에 입장하는 헌터가 가장 많이 듣는 주의사항이었다.

"……그럼! 다들 졸업시험 날까지 페일의 동선을 낱낱이 파악할 것!"

"오케이!"

"알겠어."

어느덧 회의가 끝난 모양이다. 저 마다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회 의실을 빠져나간다.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 다.

털난이라고 불린 여자아이와 나 단둘이 남았다.

"혹시 기분이 좀 나빴어?"

틸난이 불쑥 묻는다.

"우리가 너무 멋대로 회의를 진행 했나? 네가 별말이 없길래."

"웅? 아냐. 나야 고맙지. 내 졸업 을 위해 다들 이렇게 힘써주는데."

내 말에 틸난이 다행이라는 듯 안 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번엔 꼭 졸업해야지. 제시를 보 러 가야 한다며."

"어? 어. 그렇지."

제시가 누군데, 라고 묻고 싶었지 만 애써 참아냈다. 너무 이상하게들릴 거다.

털난과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 로 이동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몇 가지 힌트를 더 얻을 수 있었 다.

'내 동생이라……

제시라는 여자아이는 내 하나뿐인 동생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번에 꼭 졸업해야 하는 이유도 그 아이랑 연관되어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줄리아와 제 시는 나중에야 귀족가의 사생아라 는 게 밝혀져서 나이가 좀 든 뒤에 야 그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핏줄이 섞인 건 줄리아뿐 이고, 제시는 그런 줄리아가 강력히 주장해 덤으로 얹혀온 것뿐이란다.

그런데 줄리아가 여기 들어와서 몇 번이고 졸업이 무산되면서, 제시 가 집안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는 것이다.

'그래서 얼른 졸업을 해서 동생을 보러 가야 동생이 쫓겨나는 일을 막을 수 있나 보네.'

동생이 가끔씩 편지를 보낼 때마 다 괴롭고 힘들다는 이야길 써놔서 줄리아가 졸업에 더욱 목맨다고 했다.

나는 음식을 받고 자리에 앉으며 가만히 생각했다.

'이것도 스테이지형 게이트와 비슷 하다고 보면, 줄리아의 졸업을 도와 주는 게 이번 목표인 건가?'

내가 털난에게 빙의해서 줄리아를 돕는 게 아니라 줄리아 본인이 됐 다는 게 좀 다를 뿐이었다.

« o "

퉤.

나는 스테이크를 한 점 입에 넣고 씹다가 금방 뱉어냈다.

"왜 그래?"

"아니. 고기 맛이 좀 이상한 것 같 아서."

내 말에 털난은 고기 한 점을 입 에 넣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평소랑 똑같은데?"

"그래?"

아니. 그럴 리가.

일반 소고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갖가지 마물 고기도 먹어봤지만 이 런 맛은 처음이었다.

'톨룩에서만 양식하는 종의 고기인

가?'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손이 잘 가질 않아 서 나는 결국 샐러드만 뒤적거렸다.

"아까 쓰러진 것도 그렇고. 몸이 안 좋은 거 아니야?"

"그냥 입맛이 좀 없어서 그래."

틸난의 걱정 어린 말을 대충 흘려 보냈다.

'섣불리 먹지 않는 게 좋겠어.'

이 교육기관이 뭘 위한 곳인지 명 확히 알기 전까진 말이다.

나는 틸난에게 티 나지 않게 이것

저것 돌려 물어봤다.

"내일 수업은 뭐 듣더라?"

"으음. 문학사의 이해랑 예절 실 습."

과목 이름은 평범해 보였다.

"그럼 졸업시험은……

탁.

우드득!

"아, 아아아! 아파!"

등 뒤에서 접근한 녀석이 내 어깨 에 손을 올리려 하길래 반사적으로 힘줘서 잡아버렸다.

얼굴을 확인하니 처음 보는 녀석 이다. 아까 동아리 회의 할 때 못 본 녀석인데.

"페일!"

틸난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나서 야 그가 누군지 알았다.

페 일.

내 졸업을 방해하는 그 녀석이었 다.

"이거 놔!"

탁!

녀석이 팔을 뿌리치길래 순순히 놓아줬다.

'이 녀석이 방해한다고?'

그렇다고 치기엔 너무 약해 보이 는데.

아니. 졸업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 잘 모르니 섣불리 단정 지을 순 없 지.

페일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부여잡 고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씩씩거리 며 내게 소릴 질러댔다.

"너 미쳤어?! 내 손목 부러뜨리려 고?"

"페일. 엄살떨지 마. 줄리아가 무 슨 수로 네 손목을 부러뜨린다고

그래?"

틸난이 그를 책망하자 페일이 억 울하다는 듯 다리를 동동 굴렀다.

실제로 그의 손목을 부러뜨릴 뻔 했지만 모르는 척부터 시전했다.

"무슨 볼일인데?"

"허, 참! 어이가 없네. 곧 졸업시 험이라고 연습 좀 열심히 하나 봐?"

졸업시험에 힘쓰는 과목도 좀 있 는 모양이지.

아무튼 남이 방해할 수 있는 종류 의 시험이라면 아마 아까 들은 예절 실습 같은 과목도 시험을 보는 모양이다.

"밥은 좀 조용히 먹자. 웅?"

쾅!

틸난이 숟가락으로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자 페일이 잠시 움찔했다.

그러더니 휙, 뒤돌면서 위협적이지 않은 경고를 내뱉는다.

"이번엔 네가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 꿈도 꾸지 마!"

"저리 꺼져!"

틸난이 기어코 숟가락을 집어 던 졌다. 페일은 쏙 피해내더니 틸난을약 올리며 사라졌다.

"진정해. 털난."

"어유, 열 받아! 줄리아, 넌 대체 예전엔 저런 거랑 어떻게 친구 먹 고 지냈던 거야?"

내가 쟤랑 친구였다고?

"그러게……

"뭐가 그러게야. 아무튼 좀 싸워서 사이 틀어졌다고 몇 년째 저러고 있는 것도 꼴불견이야."

내 졸업을 몇 년 동안 방해했다면 저 녀석도 몇 년간 일부러 졸업을 미루고 있단 소린데, 과한 집착 같긴 했다.

"학원장 아들이라고 교사들도 설 설 기고…… 아주 지 세상이라니까. 여길 졸업만 하면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아하. 그렇다면 좀 이해가 갔다.

이 학원장 아들이라 이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넣은 듯하 니까.

이 달콤한 권력에 취해 세상 밖으 로 나가기 두려운, 뭐 그런 걸 수 도 있지.

'그나저나 학원장 아들까지 여기 있으면 이 스테이크에 뭔가 약을

탄 건 아닌 것 같은데.'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음식을 배 급하고 저 녀석도 여기서 식사를 마친 것 같으니까 말이다.

"혹시 학원장 아들한테만 더 좋은 음식을 따로 제공해주나?"

"그런 건 아닐걸. 그냥 급식 받아 먹던데."

그럼 이 고기엔 이상이 없다고 봐 야 하나.

왠지 모를 찝찝함에 나는 스테이 크를 뒤적거리다가 결국 포크를 내 려놓았다.

* * *

틸난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내 내 페일과 줄리아의 악연에 대해서 설명했다.

"작년 졸업시험 때는 일부러 실습 때 너희 조를 방해했고, 재작년에는 너한테 부정행위 누명을 씌웠고 또……

"올해는 어떻게 방해해올까?"

지금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졸업을 방해한 건 알겠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어떻게든 저 방해 공작을 뚫고 졸 업을 해내는 거였다.

"그러게. 슬슬 뭔가 움직임을 보일 텐데."

동아리 애들이 페일의 동선을 감 시하고 있으니 조만간 무슨 수법인 지 밝혀낼 수 있을 거라며 호언장 담을 한다.

그리고 기숙사 앞에 도착하자 사 감이 내 앞으로 온 편지를 내어줬 다.

편지봉투에는 '제시 홉스'라고 쓰 여 있었다.

"누구야? 네 동생?"

« o "

흐.

얼굴도 모르지만 일단 내 동생에 게서 온 편지였다.

기숙사 방에 도착한 다음 편지지 를 열어보니 내용이 꽤나 적나라했 다.

r……그래서 새어머니께서 나한 테 다신 눈에 띄지 말라고, 다락방 에나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어……. ……조만간 옷가지만 챙겨서 나가 라고 할 거라면서 웃는 소릴 들었어. 언니. 나 너무 무서워……. ……언제쯤 다시 언니를 볼 수 있 을까?

-언니를 그리워하며, 동생 제시 가-J

나는 편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책 상 위에 내려놓았다.

방 안에 놓인 거울을 찾아내 그 앞에 섰다.

" 역시나."

짙은 보라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특유의 나른한 얼굴까지.

"줄리아라고?"

언제부터 그렇게 평범한 이름을 가졌다고.

레 태흐태드.

부정할 수 없게도 앳된 얼굴의 그 녀가 거울 속에 비치고 있었다.

내가 왼손을 들며 어린 레태흐태 드도 따라 왼손을 든다.

줄리아가 곧 레태흐태드였다.

그래. 여긴 다름 아니라 레태흐태 드의 기억 속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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