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26화 (326/361)

326화

까앙! 깡! 깡!

쇳덩이가 부딪히며 연신 날카로운 소음을 냈다. 어깨와 등허리가 뻐근 해질 정도로 연신 망치질만 하고 있었다.

"후우!"

송다정은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소처럼 작업하려고 애를 썼지만,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들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 데..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서 전투가 한창일 터였다.

이번 전투만 잘 끝낸다면, 이대로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한때를 맞 이할 수 있을 텐데.

"연원이 볶음밥도 먹고, 혜원 언니 하고 새로 만든 검 테스트도 하 고!"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그녀에게 언제나 방향성을 제시해주던 한서 하가 떠올랐다.

"……서하랑 같이 유명한 디저트 가게도 가고."

늘 바쁘기만 했던 서하와 그런 일 상을 함께하고 싶었다.

뭣하면 이젠 자신이 돈을 버니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편히 푹 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하가 돌아오면 꼭 얘기해봐야 지."

송다정은 애써 불안감을 삼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 * *

- 삐이 이 I

"욘석아! 제대로 안 해?"

-삐삐! 삐이이이이!

파이로가 갑자기 불을 붙이다 말 고 한눈을 판다. 손이석이 버럭 소 리를 질렀는데도 정신이 딴 데로 쏠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

- 삐삐삐! 삐이이!

"너는 아군들한테도 피해를 주니 까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부르지 않겠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그 러니 얌전히 있어야지!"

파이로는 답답하다는 듯 길게 울 부짖었다.

- 뻬이 이 이이!

손이석은 결국 파이로의 반항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주인을 닮아 그런가. 아주 고집불 통이라니까!"

그러곤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손을 뗀 뒤에도 불이 한참을 타닥타닥 타올랐다.

"오늘따라 영 불길이 시원찮구만."

그는 애써 그렇게 둘러댔다.

손이석 역시 다른 곳에 신경이 곤 두선 것은 마찬가지였다.

- 삐 이 이 이.

파이로가 구슬프게 울었다.

그는 무언가를 느낀 듯했다.

"오늘은 이만 할 테니 너도 들어 가서 쉬거라. 나도 이제 은퇴할 때 가 된 모양이야."

손이석이 굳은살로 가득한 제 손

바닥을 잠시 내려다보고 고개를 들 었을 때.

파이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 었다.

"……파이로?"

삐이이, 하고 들려왔어야 할 대답 이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바람결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만 울렸다.

"대체 무슨 일이……

손이석은 파이로가 한서하의 소환 수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아서 파이로 가 소환된 것일까? 그도 아니면 한서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그 만…….

아니. 손이석은 애써 고개를 내저 었다.

"그럴 리가 없어."

-누가 저 죽었다고 말해도 믿지 마세요. 장례식까지 했다가 돌아와 서 행정 절차 밟느라 고생했거든요.

-그러니까 저 사라져도 최소한 반 년은 더 기다려보세요.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럴 리가'

* * *

이운우는 번쩍 눈을 떴다.

막 코앞에서 셀이 그려낸 문이 완 성되기 직전이었다.

무장한 혁명군들이 그 안으로 들 이닥치려고 하는데 이운우는 아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왜 그래요?"

이사벨라가 그에게 물었다. 이운우

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력이……

다른 이들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마력의 흐름에 민감한 이운우에겐 똑똑히 보였다.

'마력의 흐름이 뒤엉키고 있어.'

그걸 자각하자마자 이운우는 마법 사 군단에 재빨리 무전을 넣었다.

"마법 중지! 마법 중지! 당장 시전 하려고 하는 마법을 중단하라!"

-무, 무슨 일입니까!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러면 마

력 손해가 너무 심합니다! 일부 마 법사는 역으로 내상을 입을 수 두_ I

"당장 취소해요!"

이운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서호에게서 개인적인 무전이 왔다.

-치직. 운우야. 하늘 보이지!

"네. 안 그래도 마법 모두 중단하 라고 말해뒀습니다."

-잘했어. 톨룩 측의 술수인가?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이운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톨룩

측 마법사가 섣불리 마법을 시전하 려고 시도했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허공에 잠시 그 형상을 갖췄다가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쨍그랑!

마력의 흐름이 갑작스레 요동쳐서 마법사들이 제대로 제어할 수가 없 었다. 마법이 강제로 캔슬되기까지 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죠?"

"공기 중의 마나 왜곡 현상은 보 통…… 거대한 마법이 시전될 때

그 인근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운우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인근이요? 하지만 지금은……

"네. 게이트 내부 마력이 전부 요 동치고 있어요."

그만큼 거대한 마법이 발동하려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운우는 아득히 멀리 한서하가 있을 곳을 응시했다.

'성공한 거야?'

과연 크로노스를 손에 넣은 게 한 서하일까? 그래서 모든 오염이 되 돌아가려고 이러는 건가?

"셀의 마법도 일그러지고 있습니 다!"

올리버가 이사벨라에게 외쳤다.

이사벨라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만 해도 온전한 문의 모습 을 띠고 있던 것이 울퉁불퉁 휘어 있었다.

시전이 완료된 것 같긴 한데…… 이래서야 그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다.

"이 혼란 속에서 완성한 것만으로 도 대단하지만, 위험성이 있으니 들 어가지 않는 게 낫겠어요."

"그럴 순 없어요!"

이사벨라가 이운우의 말에 거세게 저항했다.

"셀은 우릴 위해 문을 열어주려고 저 안에 끌려들어간 거라고요! 우 리가 가지 않으면 적진 한복판에 서...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공간 마법은 그 위험성이 매우 높 은 마법 중 하나였다. 이런 불안정 한 마법을 믿을 순 없었다.

"두 손 두 다리로 들어갔다가 나 을 땐 팔다리 위치가 바뀌어 있을

지도 모르는 게 공간 마법입니다!"

"그럼 죽게 내버려두란 말이에 요?"

이사벨라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우린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일 뿐.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릴 순 없어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아직 혁명군 은 정식으로 지구에 속한 이들도 아니었으니까.

"자원하는 자만 날 따라온다."

이사벨라가 혁명군을 한차례 훑었 다.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선택 을 하든 존중하겠다!"

그녀는 일그러진 문 바로 앞에 섰 다.

"내 의지에 동의하는 자들은 뒤따 라오도록!"

벌컥!

이사벨라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 었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이어 올리버가 그녀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군들 중 일 부가 그 뒤를 쫓았고, 또 몇몇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던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은 두려 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탁.

마지막 혁명군까지 사라진 다음에 야 문이 닫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아아아악!

하얀 빛이 세상을 감쌌다.

* * *

[알림: 성물 '크로노스'가 시간의 축을 뒤틀기 시작했습니다!]

[알림: 세계의 흐름을 뒤집는 거대 한 힘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알림: 세계 '지구' 중 '오염의 정 도'에 대한 정보가 리셋됩니다. 정 보 초기화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됩 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시온이 당혹스레 소리쳤다.

그러나 온통 하얀 빛으로 둘러싸 여 있는 상황에 변하는 건 없었다.

"또 무슨 조악한 술수를 쓰려는 게야!"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른 다음에 불 현듯 치미는 공포감을 느꼈다.

"다니엘!"

습관적으로 그의 기사를 찾았다.

"어디 있느냐, 다니엘! 날 지키지 않고 뭘 하는 거야!"

시온은 사방으로 팔다리를 휘저었 다. 물컹, 하고 뭔가 잡히길래 끌어 당겨 보니 이름 모를 기사의 시신이었다.

휘익!

"우욱."

그는 헛구역질을 하며 허리를 푹 숙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는 잘 모 르겠지만 그가 완전히 생뚱맞은 장 소에 홀로 떨어진 것은 아닌 듯했 다.

'제국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어.'

그러니 여긴 시온이 아까까지만 해도 서 있던 그곳이 맞았다. 단지 한 치 앞도 보기 어렵게 변했을 뿐이다.

"다니에에엘!"

소름끼치는 정적이 흘렀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온은 두어 발자국 앞서 걸으면 서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금 방이라도 혁명군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신자가 그의 등을 칼로 찌 를 것만 같았다.

미로 같은 안개 속을 헤매면서 시 온은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 고, 두어 번은 구역질도 할 뻔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충직한 기사

를 만났을 때 시온은 거의 기진맥 진했다.

"다니엘!"

" 폐하!"

시온이 냉큼 소리부터 질렀다.

"대체 어디 있었던 거야! 날 지키 지 않고!"

"저 역시 폐하를 계속해서 찾았습 니다."

다니엘의 목소리가 무척 부드러웠 다.

그와 함께하니 더 이상 두려울 것 이 없었다. 시온은 다니엘에게 서둘러 그 짜증 나는 마법사를 찾아내 라고 명령했다.

"그 녀석을 죽이기 전까진 여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 다!"

시온은 이미 으름장을 놨다.

왜냐면 다니엘이 그에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말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주 예상 밖의 이야길 꺼냈다.

"움직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온은 문득 다니엘의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들렸는지 의아한 마음 이 들었다.

"다......니엘......?"

생각보다 눈치 빠른 그가 어딘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을 땐.

이미 다니엘의 검이 그의 복부를 찌른 다음이었다.

"커……헉……

불에 덴 것처럼 홧홧한 통증이 치 고 올라왔다.

"..왜?"

시온의 머릿속이 두 가지 의문으 로 가득 찼다.

첫 번째 의문은 어째서 그의 충직 한 기사 다니엘이 자신을 배신했는 지였고.

둘째는 땅의 가호가 있는 자신이 어째서 상처를 입었는지였다.

우드득!

검이 더욱 선명하게 그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덕분에 시온은 거의 다니엘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했다.

쿨럭!

누군가 피를 토했다.

시온의 것은 아니었다.

시온이 흐려지려는 시야를 겨우 붙잡고 고개를 들자, 그 객혈이 다 니엘의 것임이 더욱 명확해졌다.

그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내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하'아'.. 하'아".

다니엘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로노스의 힘이 강한 때를 노렸 는데도…… 반발이 크군요. 폐하."

기이하게도 다니엘의 말투는 평소 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쿠르륵, 시온은 목구멍을 타고 울 컥 역류하는 핏물 때문에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쿠, 홉.... 왜. 대체 왜 ……?"

시온이 겨우 소리를 내어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은 작게 웃었다. 하 하,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모르셔도 됩니다. 하아…… 영원 히, 모르실 겁니다……

처음 황제를 배신한 것은 로스 가 문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 다음 대 황제를 찌른 것은…… 그가 애타게 찾던 누이, 로젤리타의 복수 때문이었고.

하지만 시온은 로스 가문이 왜 멸 문당했는지, 로젤리타가 누구인지. 또 로젤리타가 어쩌다 이사벨라가 됐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시온은 영문도 모른 채 자 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 다.

털썩!

시온이 숨을 멎은 다음 다니엘 역 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로노스로 인해 약해져 있는 때 를 노렸다곤 하지만 땅의 가호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힘이 아니었 다.

덕분에 다니엘은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고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핏물 을 삼켜내려고 애를 써야 했다.

그는 자신의 손끝이 싸늘하게 식 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느끼는 순 간...

"다니엘!"

그의 시야에 익숙한 붉은 머리카 락이 담겼다.

죽은 줄만 알았던 이사벨라가 그 의 앞에 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