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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37화 (337/361)

337화

이름, 김민혁. 나이 35세.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점심시간에 잠깐 들른 은행에서 강도 사건에 휘말린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자꾸만 명을 재촉하는 학생 하나를 말리다가 강도범의 심기를 거스르기까지 했다.

“사, 살려주세요.”

그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아~니. 요즘 일반인들은 말이야. 아무리 게이트 시대라곤 하지만 너무 자기 목숨 내놓고 다니는 것 같다니까?”

툭, 툭.

이름 모를 빌런이 작게 발을 굴렀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였다.

김민혁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느껴졌다.

방금까지 그의 한 줄기 희망이었던 최도윤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으니,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제발 살아서 돌아가게 해주세요!’

개 같은 박 부장 얼굴이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아까부터 자꾸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학생이 툭 대꾸했다.

“당신 정도 실력이면 나이트워커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실력이 아깝네.”

김민혁은 떡 벌어지는 입을 감추질 못했다.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단 말인가?

김민혁은 스스로 앞가림하기도 바빴지만 도의적으로 어린 학생의 객기를 모르는 체할 수만은 없었다.

“하하하! 이, 이 녀석이 말버릇이 왜 이래?!”

그는 고개를 빳빳하게 든 학생의 머리를 푹 눌러 강제로 숙이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성인 남성인 그가 아무리 힘을 줘도, 학생의 목은 굽을 생각을 안 했다.

흡사 돌덩어리를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당혹스러움을 애써 감추며 황급히 뒷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애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거니 제발 목숨만은…….”

“요즘 애들은 진짜 겁도 없다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뚫린 입이라고 잘도 내뱉는 거 봐.”

그러더니 대뜸 단검을 학생의 목덜미에 닿게 들이대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힘주면 바로 이 목을 잘라버릴 수도 있다고. 어? 알아들어?”

그의 협박에 김민혁은 잔뜩 얼어붙었다. 그는 태어나서 식칼이나 과도 말고는 칼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후우…….”

이제야 제 상황을 인식한 것 같은 학생이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것 봐라? 진짜 이게……!”

다음 순간, 모든 일은 아주 빠르게 일어났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고 또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흐름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김민혁의 시야에 똑똑히 잡혔다.

학생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놈의 손목을 가격했다. 덕분에 단검이 부웅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그 다음, 학생의 신형이 사라졌다.

다시 눈을 깜빡하자 허공을 날고 있던 단검마저도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한 번 더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학생은 더 이상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놈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쉬이. 움직이지 말고.”

“허억…….”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놈은 거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녀를 위협하던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너, 너 뭐야……!”

“움직이지 말고. 잘못하다 목을 베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자신이 내뱉었던 협박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 헌터야? 나이트 워커 소속이냐?”

“저기요. 죄송한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네? 저요?”

김민혁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놈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신랄하게 무시했다.

“이놈을 구속할 만한 게 필요한데. 저 사람이 쓰던 개조 석궁 좀 살펴봐요.”

그 말에 김민혁은 졸지에 기절해 누운 최도윤의 무기를 더듬거리며 살피게 됐다.

석궁이라곤 하지만 완벽하게 기계화된 무기였다. 정확한 조작 방법은 몰랐지만 두어 개 만져보니 그물 모양이 화면에 떠올랐다.

“된 것 같아요!”

김민혁이 석궁을 그녀에게 건네려 시도했지만 최도윤의 팔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여의치가 않았다.

“그냥 이쪽으로 쏴주세요.”

“네? 같이요?”

“상관없어요.”

그는 잠시 주저했지만 일단 그녀의 말대로 그물을 발사했다.

촤아악!

그물이 둘을 휘감는다. 아니, 휘감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그녀는 감쪽같이 그물 밖으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눈앞에서 마술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에 김민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강도들에게 경고한다! 인질들을 풀어주고 투항하라!

그때 바깥에서 한 번 더 경찰들이 확성기로 외치는 소리가 거창하게 울렸다.

그들의 비장한 외침이 무색하게도 안은 이미 상황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남은 건 그물에 휩싸인 빌런들과 기절한 최도윤뿐이었다.

그래. 그들뿐…….

“응?”

“사라졌어…….”

“갑자기 그냥 사라졌어! 뭐야!”

김민혁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허공을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던 이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탓이었다.

“허어…….”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단검이 그녀의 존재를 암시할 뿐이었다.

정말 기묘한 일이었다.

***

-최근 각성자들의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정부에서 새롭게 대안으로 내놓은 ‘각성자관리법’이 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

-……에서 벌어진 은행 강도 사건의 용의자들은 모두 같은 조직 소속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가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상금 사냥꾼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고 사라졌다는 것인데요. 관련 진술을 종합해…….

삑.

나는 황급히 TV를 껐다. 혜원 언니가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요즘 범죄자들이 많네요.”

애써 다른 화두를 던졌다.

“그러니까 우리 회사가 이렇게 번창하는 거지. 각성자들을 막으려면 각성자를 쓴다, 이게 기본 원칙이니까.”

다행히 혜원 언니는 별생각 없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헌터가 아니라 이젠 히어로라고 하던데.”

“히어로요?”

“응. 범죄 조직이 빌런이잖아. 그러니까 빌런의 반대편은 히어로지.”

“현상금 사냥꾼에서 꽤 거창한 칭호로 변했네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해야 할까. 더 이상 현상금 사냥꾼들은 단순히 그 자체로 남아있기가 어렵게 됐다.

“이제 와서는 어느 정도 자치 기구의 역할도 있는 거지. 물론 정부 기관도 있지만 걔네들은 강력한 빌런 집단을 표적으로 해서 움직이니까.”

청사나 홍염 같은 최상위 헌터 길드를 모아 만든 ‘빌런대책본부’는 일종의 각성자 전용 FBI 같은 존재였다.

좀 더 스케일이 큰 범죄를 상대하다 보니, 실제 시민들이 더 친숙함을 느끼는 건 현장에서 활동하는 로컬 현상금 사냥꾼들이었다.

“하여간 재밌다니까. 히어로라니.”

혜원 언니는 그 이름이 좀 촌스럽지 않냐며 웃었다.

나는 내가 봤던 유일한 ‘히어로’인 최도윤을 생각해봤다.

힘은 다소 부족하지만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몸 바치는 그 자세만큼은 히어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

「친애하는 전우에게.

오늘은 돌고래를 봤어.」

이사벨라의 편지는 점점 더 간소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수중에서 촬영한 것 같은 사진이 동봉되어 있어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직까지도 재밌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사각, 사각.

뚝!

“아…….”

힘 조절에 실패해서 목이 똑 떨어진 나무 조각을 잠시 내려다봤다.

최근에 조각을 연습 중이었는데, 초보자용으로 비누조각을 도전했다가 죄다 뭉개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비교적 단단한 나무로 다시 시도한 건데. 이것도 영 시원치 않았다.

‘돌을 구해봐야 하나.’

처음부터 석상이라니. 너무 어려운 게 아닌가 싶지만 어쩔 수 없다.

내게 물체를 입체적으로 보는 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3D 프린트의 도안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구현한 것을 현실로 불러오는 과정은 여전히 실패의 연속이지만 꽤나 재밌었다.

모처럼 흥미를 붙인 취미에 혜원 언니나 표연원도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두어 번은 셀의 친구를 다시 만나 조언을 듣기도 했다.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기도 한데.’

아직까지는 혼자서 소일거리로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다.

좀 더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지면 따로 레슨을 받아도 좋으리라.

사각, 사각, 사각.

잡념을 지우고 조각에 몰두했다.

조각칼을 다루는 것도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종류를 불문하고 내게 칼을 다루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슥슥슥.

정성스럽게 사포질까지 마치면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가 된다.

광택제를 발라도 좋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노이트.’

눈을 감고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나의 파트너.

나무로 만든 리볼버가 투박하게 손아귀에 쥐어졌다.

[알림: ‘노이트 리볼버’가 자신을 닮아 무척 멋진 리볼버라고 칭찬합니다.]

***

최도윤은 늦은 시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달칵, 달칵.

그가 클릭하는 소리가 고요한 밤에 울려 퍼졌다.

“뭐야. 아직도 그러고 있어?”

그때 막 집 안으로 들어온 국지성이 그를 보며 놀라며 물었다.

“아, 그 CCTV?”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뭔지 알겠다며 흐음, 하고 콧소리를 낸다.

최도윤은 그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충 물었다.

“순찰 보고는?”

“특이 사항 없음~.”

“이 이후로 밀레니엄 놈들이 조용하단 말이지…….”

국지성은 냉장고 문을 벌컥 열고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후. 걔네도 그 여자 찾고 있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걔네가 답지 않게 우정은 좀 끈끈하잖냐.”

국지성은 아직까지도 그 정체 모를 히어로를 찾고 있는 최도윤에게 작게 충고했다.

“너도 그냥 포기해. 그 CCTV로는 아무것도 못 찾았다며.”

“그렇지…….”

화면 속에선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한창 다투다가 바닥을 나뒹구는 최도윤.

앞에 있던 이들과 두어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순식간에 제압당하는 밀레니엄의 어쌔신, 임조훈.

화면을 멈추자 까만 모자에 마스크까지 낀 여자가 단도를 손에 쥔 채 임조훈을 위협하는 게 보였다.

“……헌터 출신인가?”

“그래 보이지 않냐? 요즘 헌터 출신 빌런들도 엄청 늘어나서 골치라니까. 물론 현상금 사냥꾼 쪽에도 많이 늘긴 했는데, 비율이 안 맞잖아. 비율이.”

건실한 헌터 중엔 헌터 일을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은 반면, 나쁜 놈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착실하게 살진 않기 때문이다.

“근데 그 사람은 찾아서 뭐 하려고?”

국지성의 물음에 최도윤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아마 밀레니엄 놈들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거야. 네 말대로.”

그리고 그 조직은 생각보다 규모가 꽤나 컸다.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더 수상한 정황들이 하나둘 발견되고 있었다.

밀레니엄의 뒤에 더 거대한 조직이 있을 거라는 추정이 아주 허황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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