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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48화 (348/361)

348화

챕터: 햇빛이 드리울 때

해가 기울고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벨제부브의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테토가 옆에서 차 시중을 들어주겠다며 난리법석을 떨기에 홍차도 한잔 곁들이면서 말이다.

저벅, 저벅.

책을 두 권 정도 읽고 나서야 계단에서 인기척이 울렸다.

“와, 날이 벌써 이렇게 어두워졌네요!”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어슴푸레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벌써 해가 지네…….”

그 광경을 보며 에드문드가 잠시 넋을 뺐다.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어쩌면 멸망한 그의 고향을 떠올리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저녁은 어떻게 먹을까요? 저는 뭐든 좋아요! 오늘은 치팅 데이거든요!”

“뭐든 좋지. 배달시켜 먹을까? 밖에 나가긴 어려우니까.”

“좋아요! 치킨, 햄버거, 피자, 곱창, 짜장면…….”

정말 지구에 완벽 적응한 모양이다. 엘리사가 갖가지 배달 음식들을 중얼거리며 군침을 삼켰다.

“에드문드, 죽을 따로 준비해줄까?”

요 며칠 죽만 먹었던 그에겐 다소 무거운 음식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에드문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나도 먹어볼래. 이름들이 신기하네.”

“헉! 안 먹어봤어요? 치킨도?”

“닭튀김은 톨룩에도 있었는걸.”

“치킨은 완전 달라요! 훨씬 바삭바삭하고, 소스도 다양하고……!”

엘리사가 치킨의 맛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슬쩍 한발 뒤로 물러나서 벨제부브에게 물었다.

“에드문드한테 지구 음식 먹인 적 없어?”

“나는 모른다. 음식은 전부 테토가 담당하는데…… 생각해보니 전부 톨룩식이었군.”

우리의 시선이 테토에게 향했다.

그가 찻잔을 치우다 말고 펄쩍 뛰었다.

“저, 저는 지구 음식을 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뭐, 그럴 수밖에.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배달을 활용할 줄도 모르고 성실하게 음식을 직접 요리해 먹은 모양이다.

하긴. 톨룩에서야 요리사가 따로 있었으니 배달시켜 먹을 일은 없었겠지.

나 역시 톨룩인의 입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엘리사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 골라봐.”

카드를 건네주자 엘리사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많이 시켜도 돼요?”

“원하는 만큼 시켜.”

“꺄악! 너무 좋아요!”

엘리사가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깊게 좌절하긴 했지만.

“너무 외진 곳이라 배달 오는 가게가 몇 개 없네요…….”

벨제부브나 에드문드나 눈에 띄는 외모라 좀 구석진 곳에 집을 마련해주긴 했다.

그런데 배달도 거의 안 올 정도였나. 요즘 인터넷과 배달은 전국 어디든 다 있는 세상 아니던가.

“그래도 일단 되는 곳만이라도 시켜볼게요! 기본적인 건 있네요.”

엘리사가 잔뜩 열의에 가득차서 외쳤다.

“제가 꼭 이 맛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어드릴게요!”

결국 에드문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간만에 보는 미소였다.

벨제부브마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하하…… 고마워, 엘리사.”

“그럼요. 제 노하우를 전부 전수해드릴 테니까요!”

“그거 기대되네.”

여동생을 보는 것처럼 흐뭇한 시선이 엘리사에게 향했다.

그가 베아트리스를 대할 때 저렇게 다정했을까.

상냥하고 해맑은 엘리사가 에드문드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때, 에드문드 님께서 해주신 말이 제게 큰 힘이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엔 제가 에드문드 님을 도와드릴게요!”

엘리사는 그를 식도락의 길로 안내할 생각에 잔뜩 신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제법 잘 통했다.

“오……. 이거 맛있는데!”

에드문드는 그동안 굶었던 것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즐겁게 식사에 임했다.

옆에서 테토가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기도 했다.

“제가 만든 음식은 손도 안 대시더니……! 너무하세요!”

미안하지만 역시 MSG의 맛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다.

갑작스럽게 과식을 한 탓에 에드문드가 소화제를 먹어야만 했던 것만 빼면 아주 평화로운 저녁 식사였다.

***

덜컹.

매일 아침 우편함을 확인하는 건 이제 익숙한 일과였다.

주에 한 번씩은 편지가 날아오곤 했으니까.

손으로 우편함 안을 더듬거리자 익숙한 재질의 엽서가 만져졌다.

「보고 싶은 나의 자매에게.

귀찮은 일에 엮여버렸어.

이 편지가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잘 해결될 테니까.」

“흐음…….”

내용이 제법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엽서 끄트머리는 화약에 덴 것처럼 살짝 타들어가 있었다.

‘폭발물?’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 위치가 칠레였던 것 같은데. 지금쯤 그 근방 어딘가에 있으려나.

어쩌면 어딘가의 내전에 휘말린 걸지도 모른다.

걱정하는 마음도 잠시.

이사벨라부터가 혁명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나는 걱정을 덜었다.

게다가 이전에 왔던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총기 다루는 법, 응급한 환자를 다루는 법 등을 배웠다고 했으니까.

‘……어쩌다 그런 걸 배웠는지는 묻지 말자.’

괜히 알았다간 골머리만 썩을 것이다.

다른 고지서들도 챙겨서 안으로 들어가니 혜원 언니가 하품을 하며 머리를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저러고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리고 출근할 게 뻔하다.

“아, 서하야. 나 오늘 아침 안 먹고 간다고 연원이한테 전해줄래?”

“오늘은 일찍 출근하시네요.”

“어엉. 의뢰인이 일찍부터 움직여서.”

아직 눈가에 졸음이 한가득이다.

“머리는 안 말리고요?”

“같이 파견 가는 불 특화 마법사가 있어서. 말려달라고 하게.”

그렇다면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

“그럼 오늘은 좀 일찍 들어와요?”

“어…… 잘 모르겠다. 한 일곱 시?”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오고요.”

“참! 서호가 조만간 같이 식사 자리라도 갖자던데? 그 이운우랑 같이.”

전서호가 이운우 집에 눌러앉았단 얘긴 들었는데…….

뭐, 전부터 나오던 얘기였으니 나쁠 건 없었다.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요.”

“알겠어. 아, 오늘 출근하지?”

나는 고갤 끄덕였다.

일단 빌런대책본부의 ‘비밀요원’이 된 탓에 이운우가 호출하면 나가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뭔가 할 일이 있다기에 불려가는 참이다.

‘사고 친 거 수습해주는 대신 좋은 인력 하나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단 말이지.’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냥 수락하고 있지만 말이다.

용돈벌이도 되고.

“잘 다녀오고! 나 먼저 가볼게!”

“다녀오세요~.”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혜원 언니가 바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저 밖에서 조연호가 차를 대고 기다리는 게 보였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

“……그걸? 내가?”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어투로 되묻자 이운우가 고갤 끄덕였다.

단호한 어투로 뒷말을 잇는다.

“네가 적임자야.”

“내가 왜?”

“저번에 보니 최도윤 씨랑 꽤 친한 것 같던데.”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야.”

“우리가 다가가면 경계심이 심해. 반발도 크고. 일단 거대 길드라는 이미지가 있잖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게 서류까지 내어준다.

맨 앞에 쓰여 있는 게 최도윤의 프로필이었다.

몰래 찍은 게 분명한 사진 한 장과 그의 전투 스타일, 지금까지 잡은 범죄 조직 이력, 협력하는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 등등이 적혀 있었다.

한 장 넘겨보니 국지성 프로필까지 쓰여 있었다.

“이러니까 싫어하지.”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말했다시피, 우린 빌런 잡는 데 후발주자나 다름없어. 실력이 아무리 앞서 있어도 정보원들이 협력을 잘 안 한다고. 국가 기관이라 더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프리랜서나 다름없는 자경단들의 협력이 필요하단 거잖아. 나도 알아.”

“맞아. 우리 쪽으로 흡수하려고 했던 계획은 전부 실패했으니, 협력이라도 구해야지.”

이해는 간다.

블랙메일이라는 새로운 빌런 조직이 기존의 빌런들을 통폐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기존 빌런들의 움직임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정보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자경단들이 더 빠삭하다.

더구나 빌런대책본부는 국가 공식 기관이라 불법적인 루트의 정보원들 입을 열기도 쉽지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외부인인데. 나한테 이런 중요한 협상을 맡겨도 되는 거야?”

“최도윤은 자경단들 사이에서도 꽤 핵심 인물이야. 경력이 길어서 인맥도 넓고.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분명 쓸모가 많을 거야.”

“그렇기야 하겠지…….”

일반 주민들도 알 정도면 그 근방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을 테니.

빌런들을 하루 이틀 상대한 것 같지도 않았고.

“나쁠 것 없는 제안인데 왜 거절하는 거래?”

빌런대책본부는 현장 상황을 잘 아는 인물들이 필요하고, 자경단들은 강한 무력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은퇴한 일부 헌터들이나 헌터를 대상으로 등쳐먹던 이들이 지역 빌런으로 유입되면서 그 실력과 수준이 급상승해 애를 먹고 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그쪽에서 우릴 좋아하질 않거든.”

여러 케케묵은 이유들이 있겠지.

최도윤이 시민영웅으로 남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게이트도 게이트지만, 각성자 범죄를 해결하는 데 일반 경찰들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 보완을 위해 자경단들이 활동하고 있는 거고.

그러나 게이트에 투입되는 헌터들과 달리 자경단의 처우가 열악하기 그지없으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게이트 때문에 정부에서도 민간의 각성자 범죄를 소홀히 하긴 했으니까.”

이운우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게 게이트에 출입하는 헌터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서로 반목하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했다.

“우리라고 좋아서 게이트에 들어간 건 아닌데 말이야.”

그 안에서 스러진 목숨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운우가 비소를 머금었다.

결국 우리가 자경단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자경단도 게이트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취조 때 널 감싸준 걸 보면 너에 대한 감정이 나쁘지 않은 거 같거든.”

“처음엔 내가 누군지 몰랐을걸.”

“그게 첫인상을 좋게 심어주었을 수도 있고. 이유야 어쨌든, 악감정이 없는 걸로도 충분해.”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게다가 명목상이긴 해도 이운우는 지금 내 상사였다!

“자. 다녀와.”

그가 해사하게 웃었다.

“협상 결렬돼도 난 몰라.”

“우리 쪽에서 가면 만나주지도 않았을걸.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다면야 더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체념하고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대로 뒤돌아 나오려다가, 불쑥 드는 생각에 나는 슬쩍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전서호 길드장님하고 지내는 건 좀 어때?”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

“표정이 왜 그래.”

그가 이운우를 괴롭힐 것 같진 않은데. 꼭 괴롭힘이라도 당하는 것 같은 얼굴이지 않은가.

“……아니. 그게…….”

그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얽힌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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