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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49화 (349/361)

349화

“적응이 안 돼…….”

심각한 낯을 하고서 내뱉는 말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어떤 의미로?”

표정을 보니 나쁜 의미만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게다가 이운우의 집이라면 꽤 넓고 쾌적해서 둘 산다고 이리저리 부딪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자꾸 같이 아침밥 먹자 하시고, 이것저것 챙기려고 하시고……. 이번 주말엔 같이 놀이공원이라도 가자고 하시더라.”

“놀이공원을? 그건 좀 힘들 텐데.”

이운우나 전서호 역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터라 금방 정체를 들키고 말 거다.

“통째로 빌리겠대…….”

“아, 그건 좀.”

그의 복잡미묘했던 표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날 진짜 아들처럼 생각하시는 것 같아.”

그러면서 그는 ‘아들하고 놀러 갈 생각에 잔뜩 신난 아버지의 얼굴이었어.’라며 덧붙였다.

“싫지만은 않은 모양인데.”

“그야…… 그렇지.”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그가 이렇게 전서호에게 휘둘리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운우도 그게 마냥 거북하진 않은 것이다.

어쩌면 내심 즐거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전 길드장님이 혜원 언니랑 연원이한테 찾아와서 사이좋은 남매지간의 비법을 물어보고 간 일은 비밀로 해야지.’

혜원 언니가 박장대소를 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단 걸 알면 이운우가 수치스러움에 괴로워할 게 뻔했다.

‘아침밥 같이 먹는 거 보면 연원이의 조언을 잘 수용하신 것 같네.’

늘 위태롭게 버티는 것 같던 이운우에게 함께할 가족이 생긴다는 건 축하할 일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 취임식 때 내게 이야길 털어놓고 뭔가 다짐을 한 게 이것과 관련된 일이었나 보다.

“전청운 씨랑도 사이가 많이 좋아졌나 봐?”

“안 좋은 적은 없었어.”

“네가 일방적으로 좀 꺼려 했잖아.”

“그게 티가 났나? 표정 관리는 완벽했을 텐데.”

내가 그래도 얘랑 지낸 세월이 있는데.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이상하게 너는 나만 잘 읽어낸단 말이지.”

“눈치가 빠른 거라고 해줘.”

어디까지나 이운우 한정이긴 하다.

이 녀석 표정을 읽으려고 밤낮으로 연구한 보람이 있다.

회귀 후에도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조만간 큰 건이 하나 있을 거야.”

“블랙메일 쪽?”

“응. 아직 우리 쪽에선 제대로 파악을 못 했는데, 자경단은 무슨 일인지 알고 있겠지. 그때 우리의 전력이 필요하지 않냐고 협상해봐.”

“접수했어.”

그는 내게 협상 때 내놓을 수 있는 카드 한 장을 쥐여준 것이다.

가서 이걸로 뭐라도 시도해볼 순 있겠지.

***

최도윤은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해 걸어 들어온 이였다.

자경단의 어느 누가 안 그러겠냐마는. 특히나 최도윤은 국립 아카데미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것이 명확했다.

헌터의 길은 찬란하고 명예롭다.

게이트는 잔혹한 동시에 은혜로워서, 고난을 이겨낸 헌터에게 갖가지 금은보화와 아이템을 안겨주곤 했으니까.

던전화 된 게이트는 마력석을 채굴하거나 능력치를 키우기도 좋았으니. 거의 RPG 게임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자경단에 들어온 이들은 그런 호화로운 길을 마다하고, 스스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다며 자부했다.

최도윤은 그들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았으나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최도윤이 헌터가 됐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여유롭게 살고 있었을 테니까.

옆 구역의 동료가 입원실에 드러누운 것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비는커녕 입원비도 당장…….”

“……의식도 없고 사실상 뇌사 상태가……. 그럴 만한 여유가…….”

의료진과 동료의 가족이 이야길 나누는 소리도 얼핏 들렸다.

자경단은 돈이 안 된다.

현상금 사냥꾼, 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이상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긴 어렵다.

처자식이 있는 처지에 자경단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몰랐다.

“도윤아.”

국지성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작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가 저도 모르게 꽉 쥔 주먹이 희게 질려있었다.

“정신 차려. 태성이 형이 쓰러진 이상, 남은 가족들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알아.”

자경단은 빌런들의 원한을 한몸에 받는다.

그냥 경찰보다도 훨씬 성가시게 구는 데다가 국가의 비호를 받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표적이 되는 건 자경단 그 자신보다도 그들의 가족들이다.

최도윤은 그의 입원비나 수술비를 대신 내줄 형편은 안 되는 주제에, 그들 가족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아마 쓰러진 이도, 그 자신보다 가족을 더 챙겨주길 원하리라.

최도윤은 그들의 가족에게 당분간 빌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국가에 보호 신청을 하라고 권유하고, 개명이나 다른 지역으로 완전히 이주하는 과정을 돕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미 수없이 이런 일을 해왔기 때문에 거의 신분 세탁 전문가와 다를 바 없었다.

“감사합니다…….”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여인이 눈물 자국이 말라붙은 얼굴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 인사가 묵직하게 그의 가슴께를 짓눌렀다.

그런 의미에서, 한서하는 타이밍이 나빴다고 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쓰러진 전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탈력감을 느낀 그날.

한서하가 그들을 찾아왔다.

“또 보네요.”

이제는 익숙한 모자를 눌러쓴 채로 말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헌터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최도윤은 저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뭔가 응어리지는 것이 느껴졌다.

***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무슨 일이시죠? 여긴 어떻게 알고…….”

“일단 안에서 얘기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다짜고짜 빌런대책본부에서 왔다고 하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대꾸했다.

어쩐지 이전과 달리 둘 다 분위기가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최도윤은 잠시 날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들어오시죠.”

“도윤아. 괜찮겠어? 외부인을 안에 들이는 건…….”

“신분은 보장됐으니 괜찮겠지.”

여기로 오면 최도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더니. 본거지 주소를 알려준 모양이다.

그래. 빌런은 몰라도, 양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본거지를 이운우가 못 알아낼 리 없었다.

졸지에 침입자가 된 기분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덜컥.

“머리 조심해요.”

좁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불구불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간간이 머리 정도 높이에 달린 나무 판자들을 조심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제가 밟은 곳만 따라 밟으세요. 위험하니까.”

여기도 이런저런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오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종이들. 커다란 화면에 띄워져 있는 지도. 투명한 보드 위에 여러 빌런들의 사진과 인적 사항도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것 같네요.”

꼭 범인을 쫓는 형사들이 쓸 법한 소품들이 잔뜩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겠지.

휘황찬란하던 국립 게이트 연구소와 대비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뭐 내어드릴 건 없고. 냉수라도 드실래요?”

국지성이 주방이라 하기도 민망한 곳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용건은요?”

최도윤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나도 잔뜩 쌓인 종이 뭉치를 대충 치우고 소파 한편에 앉았다.

“보호가 필요해서 온 건 아닐 텐데요.”

“협력을 구하러 왔어요.”

“협력?”

그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빌런을 쫓는 일엔 관심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건물을 하나 태워 먹은 바람에 발이 묶여서요. 사정이 좀 달라졌어요.”

내 신변을 저당 잡힌 셈이니……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빌런대책본부. 그쪽에서 왔어요.”

“……그런 용건이면 돌아가주셨으면 합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일걸요. 조만간 전력이 필요할 때가 있잖아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일단 아는 척을 했다.

그게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는지 최도윤이 살짝 멈칫했다.

“그걸 어떻게…….”

“우리 쪽에도 정보원이 있다고 해두죠.”

“……정보가 불확실한 거군요.”

그가 정확하게 짚어냈다.

“정확한 정보면 우리한테 협력을 구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요.”

“……맞아요.”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단순히 헌터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러는 걸까?

최도윤이 그런 사적인 감정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설픈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데.

“협력을 거절하는 이유가 뭐죠?”

“그런 것까지 말씀드려야 합니까?”

“타협할 수 있으면 타협하는 게 좋잖아요. 이렇게 각자 행동하는 것보단 함께하는 쪽이 더 효율이 좋을 텐데요.”

“당신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최도윤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당장은 우리의 정보력이 필요해서 이렇게 손을 뻗지만, 필요한 거 다 빼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뻔히 보이니까요.”

“그건 지나친 억측…….”

“지금까지 이런 시도가 없었던 줄 압니까?”

아니,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심하다곤 말 안 했잖아.

“자경단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흐지부지됐고, 우린 중요한 시기마다 정부의 방치 아래서 빌런들이 커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부의 지난 실책들이 이들의 불신을 키운 모양이었다.

그런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던 탓에 나는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탁.

그때 겨우 그럴듯한 찻잔을 발견했는지 국지성이 내 앞에 물 한 컵을 내려놓았다.

“몰랐다는 눈치네요.”

그가 날 보며 살짝 웃는다. 친절함을 가장했지만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죠. 국가에서 우릴 나 몰라라 한 이유도 전부 게이트 때문이었거든요.”

그는 중요한 때마다 국가를 위협하는 게이트가 등장해 모든 걸 훼방놓았다고 덧붙였다.

그게 헌터의 잘못은 아닌데, 이들로선 게이트가 야속하기만 했겠지.

“헌터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힘, 명예 그리고 부까지 손에 넣을 때…… 우린 뒤에서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했단 말입니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자 나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헌터의 이미지가 이렇다는 건 알고 있다.

게이트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건 그 안에 있는 이들만 아는 법이다.

죽은 헌터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되는 이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이 보는 헌터는 그저 한순간에 부자가 된 졸부나 다름없으니까.

어린아이들의 장래희망 조사에서 헌터가 1위를 한 것도 그런 인식의 반영이었다.

헌터에 대한 꿈과 환상은, 헌터의 공급을 촉진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실시된 마케팅이었다.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듣기 거북했나요? 이거 죄송합…….”

“무기 들어요.”

국지성의 말을 끊어내며 차게 대꾸했다.

나 역시 한 손에 단검을 꺼내 들고 있었다.

“30…… 아니, 50명 정도.”

내가 말하는 걸 그들도 느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기서 홈파티라도 계획한 게 아니라면 이건 아마…….”

“습격입니다.”

최도윤도 개조한 석궁을 한 손에 장착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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