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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시작이 게이트라곤 안 했잖아요-350화 (350/361)

350화

콰과과광!

닫힌 문 너머로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지나온 계단 쪽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국지성을 빤히 바라보자 그가 흔쾌히 대답했다.

“습격에 대비한 안전 장치 정도는 설치되어 있거든요.”

나야 이들의 안내를 받아 내려왔지만 저들은 그런 것도 아니니. 꼼짝없이 함정에 걸리고 만 모양이었다.

벽에 살짝 진동이 가해질 정도로 거센 폭발이었다.

“다른 탈출구는 없습니까?”

“있어요. 비상 탈출구. 그런데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네요.”

공간 간섭으로 살펴보니 저 문 너머에 아직도 사람이 드글드글했다.

함정에 걸린 걸로 봐서 실력이 아주 좋다곤 할 수 없지만, 저놈들이 폭탄이라도 이 안에 들이밀면 그대로 끝장이다.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의문은 머지않아 풀렸다.

철컥.

단단한 중문에는 최도윤의 석궁을 딱 끼워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나 있었다.

잠금 장치를 풀고 그 홈에 석궁을 끼워 넣자 완벽한 방어 태세가 완성됐다.

“우리가 왜 좁은 계단을 출입구로 만들었겠어요.”

타다다다닥!

석궁이 연속적으로 화살을 쏘아냈다.

“한 번에 많은 숫자가 몰려오지도 못하고, 앞의 놈들이 석궁에 맞아 쓰러지면 뒤에 있는 놈들도 옴짝달싹 못 하게 되거든요.”

슈슈슈슉!

최도윤의 석궁이 잠시 멈췄다.

‘공간 간섭.’

능력을 펼쳐보니 문 너머에 다리를 다친 빌런들이 바리케이드처럼 쌓여있는 게 느껴졌다.

좁은 길목이라 5명 정도가 그 앞에 쌓이자 뒤에 있는 수십 명이 그대로 진로가 막혔다.

“마음 같아선 저 위에 문도 닫아서 퇴로까지 막은 다음 불이라도 피우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도 범죄자행이라서요.”

국지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사태가 무척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빌런들이 자주 습격하나 보죠?”

“그런 편이죠. 그래도 여기는 꽤 오래 버틴 편이에요. 녀석들한테 쫓겨서 아지트를 옮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국지성이 지겹다는 듯 혀를 쯧쯧 찼다.

빌런의 습격이라.

분명 이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헌터 길드는 아예 도로 한복판에 대놓고 세워져도 아무도 습격하는 이가 없었으니까.

빌런들은 미치지 않고서야 만만한 일반인들을 두고 헌터를 공격하는 일이 없었고, 우리의 주적은 늘 게이트 안에 있었다.

‘게이트 밖은 잠정적으로 평화구역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들에겐 그런 것이 없다.

일상 생활에서도 늘 빌런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삶과 전쟁터의 분간이 희미하니, 이들이 타인의 접촉에 예민하게 반응할 만도 했다.

“저렇게 헤매는 사이에 우린 다른 탈출로를 통해 빠져나가면…….”

“그렇겐 안 될 것 같네요.”

안타깝게도 이들의 계획은 죄다 틀어졌다.

내가 그의 말을 끊어내자 국지성이 살짝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콰아아아아앙!

복도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리고, 놈들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중문이 덜컹거렸다.

문 바로 앞에 쓰러져있던 이들이 어떻게 됐을진 보지 않아도 뻔했다.

“폭발……?”

“헌터가 섞여 있네요.”

이 수법이 무척 익숙했다.

이건 빌런들의 방식이 아니다. 헌터의 방식이지.

국지성과 최도윤은 무척 당혹스럽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한 번 더 폭발음이 울렸다.

콰아아앙!

중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덜컹거렸다.

“이 안에 있는 자료들. 꼭 필요한 거예요?”

“사수해야 합니다. 백업하지 못한 자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앞에 동료가 있는데 어떻게…….”

국지성이 멍청한 소릴 했다.

자기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습격을 강행하는 게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말했잖아요. 헌터가 섞여 있다고.”

게이트 밖에서야 살인이 중범죄지만 게이트 안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 우리였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곳에서 지내다 보면, 동료의 목숨도 저울질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죠.”

내 담담한 대꾸에 국지성도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게이트에 들어가 본 적이 언제예요?”

“……16살 때.”

“국가 공인 헌터 적성검사였네요.”

인솔자를 따라 안전한 던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게 고작이다.

최도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 내 생각대로, 이들은 게이트를 모른다.

“헌터는 대략 3명 정도. 나머지는 그냥 머릿수 채우기용 같고요. 폭발 계열 각성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밀레니엄의 보스가 전해준 폭탄인 것 같네요.”

그들에게 상황을 브리핑해주는 사이 한 번 더 굉음이 울렸다.

“자, 다시 한번 제안하죠.”

공교롭게도 내게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저희랑 손 잡으시겠습니까?”

단둘이서 헌터 셋에 나머지 빌런들까지 해치울 수 있을까?

도망은 칠 수 있겠지. 정보를 죄다 버리면 가능하긴 할 거다.

“젠장. 당신 혹시 빌런이랑 한패 아냐?”

국지성이 매섭게 날 노려본다.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곧 저 문이 뜯어질 것 같으니까.”

나와 손을 잡고 정보를 지킬 것인지. 아니면 정보를 포기하고 맨몸으로 도망칠 것인지.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최도윤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날 응시했다.

“손을 잡으면 저들을 물리칠 수 있긴 합니까?”

“그건 장담하기 어렵네요.”

“뭐라고요?”

국지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다.

그러나 진심이었다.

‘물리치다’니. 그런 온건한 단어가 또 있단 말인가.

“말했다시피 우리는 죽고 죽이는 방식에 익숙해서요. 살려서 돌려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죄다 죽이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상대도 헌터면 절 죽일 작정으로 덤벼들 텐데. 자칫하면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내게 살기를 품고 달려드는 대상에게 손속에 자비를 두긴 어려운 법이다.

내 실력이 저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곤 해도 그건 반사적인 반응이다.

십 년도 넘게 벼려진 내 헌터로서의 반사 신경이다.

‘살기 없이 그냥 다가오는 사람들을 죽일 뻔한 적도 많은걸.’

등 뒤에서 접근하는 이에게 반사적으로 노이트를 겨눈 게 몇 번이었는지 모른다.

내 대답이 다소 괴이하게 들리긴 했는지 최도윤과 국지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래도 여기 자료는 최대한 피해 가지 않게 해줄 순 있죠.”

황급히 덧붙였다.

국지성이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골 때리네.”

“당신들은 헌터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어요. 우리가 자경단과 빌런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당신들도 게이트와 헌터에 대해 모르죠.”

“그래서?”

“보다시피 꽤 많은 헌터 출신 빌런들이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힘을 합칠 때가 됐어요.”

쾅쾅쾅!

문을 직격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놈들이 코앞이었다.

최도윤이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왔다.

“좋습니다.”

“최도윤!”

“필요한 일이야. 너도 느끼고 있었잖아.”

“하지만……!”

“이 편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옳은 방향이야.”

그가 반발하는 국지성에게 담담히 대꾸했다.

사적인 감정보다도 자경단으로서의 의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협력하겠습니다.”

탁.

그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이걸로 협상 체결이었다.

“자세한 사안은 이것부터 해결하고 얘기 나누도록 하죠.”

“가능하면…….”

최도윤이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가능하면 살인은 없었으면 합니다.”

“최대한 노력해보죠.”

나는 노이트 대신 단검을 꺼내 들었다가 잠시 멈칫했다.

단검으로 경추 사이를 파고들어 단번에 목숨을 끊는 건 내 전매특허기도 했다.

“혹시 몽둥이 같은 건 없어요?”

결국 새로운 무기를 구하기로 했다.

***

“거 더럽게 튼튼하네…….”

그는 욕지거릴 내뱉으며 한 번 더 쾅쾅 문을 두들겼다.

어찌나 단단한지 폭탄을 두어 방이나 맞았는데도 잔뜩 우그러질 뿐 나가떨어지질 않았다.

끼기기기긱!

특단의 조치로 쇠꼬챙이를 벌어진 틈새에 끼워 넣고 벌려보니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 어, 된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차 소리지른 다음 급격한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람.’

게이트가 망하면서 그는 강제로 헌터 일에서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 클리어팀으로 일하기보다는 던전을 돌며 마력석을 긁어모으거나, 다른 헌터를 죽여서 마력석을 빼앗는 일을 더 열심히 하던 이였다.

게이트가 사라졌다고 갑자기 개과천선할 리는 없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고, 다소 불법적이긴 하지만 벌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만족했다.

사람 두어 명 죽이는 것쯤이야.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젠장…….”

그런데 여기서 꼬챙이질이나 하고 있다니.

헌터로 일할 땐 그래도 대우가 훨씬 좋았는데.

‘지구가 망하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게이트나 잔뜩 더 생겼으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이 더 벌어져서 안쪽이 살짝 보일 정도의 틈이 만들어졌다.

힘을 잔뜩 썼더니 손아귀가 아파 왔다.

그는 다른 이에게 배턴 터치할 생각으로 뒤를 돌았다.

“이 정도면 충분……. 어?”

그건 거의 자동 반사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이가 갑자기 눈이 휙 돌아가더니 바닥에 쓰러지는 걸 발견했다.

저도 모르게 쇠꼬챙이를 사방으로 휘저은 것은 생존 본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촤악!

“허억……!”

쇠파이프?

그의 쇠꼬챙이와 맞부딪친 건 다름 아니라 쇠파이프였다!

공사장에서나 볼 법한 그 쇠파이프 말이다.

당황도 잠시, 순식간에 쇠파이프가 모습을 감추더니 이내 목 뒤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커헙, 컥…….”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는 바닥에 털썩 쓰러진 채로 흐려져가는 시야 사이로 한 인물을 발견했다.

어렵지 않게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가 또 있겠는가.

“한……서…….”

그는 뒷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채 한 번 더 머리를 가격당했다.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 한서하는 문 앞에 쌓인 이들을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사내가 쇠꼬챙이로 한껏 두드리던 틈새에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우드드득!

수십이 달려들어 낑낑대던 철문이 허무하게 열렸다.

단단하게 박혀있던 경첩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대충 정리 끝났어요.”

제 키보다도 더 큰 철문을 들고서 그녀가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도윤과 국지성은 어쩐지 잔뜩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문도 교체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열었는데. 괜찮죠?”

“아지트야 옮길 예정이니 상관 없지만…….”

최도윤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뒷말을 삼켜냈다.

‘그건 문을 열었다고 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툭, 내려놓은 철문엔 손가락 자국이 그대로 움푹 패어 있었다.

국지성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행동거지를 돌이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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