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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13화 (13/208)

00013  움트는 새싹  =========================================================================

"그런데 왜 제가 아가씨인가요? 저는 성녀인데.”

“그거야 당연히 이 집 딸이니 아가씨도 되고 성녀님도 되죠, 하지만 성녀님은 만인의 성녀님이고 이 집의 딸은 아가씨 한분이시니 아가씨는 저의 아가씨일 수 밖에요.”

뭔가 묘하게 아닌 것 같았지만 또 맞는 말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친근함이 물씬 풍겨오는 그 말에도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직도 그녀는 자신 때문에 핀이 쫒겨났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차마 울지도 못한 채로 바들바들 떠는 그녀의 모습을 앤은 다정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비올렛은 앤은 핀처럼 그녀의 눈물에 한숨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안심했다.

“오늘은 후작님이 쉬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자작 부인은 오늘 쉬나요?”

“음, 그 미친……아, 아니, 그 여자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젠 안 올 거예요 라이셀 백작 부인이 친히 도와주신다고 하셨답니다!”

백작, 그냥 듣기만 해도 무척이나 지체높은 호칭이었다. 그 단어를 듣고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백작 부인이……사실 평민들에게 있어서 남작, 자작은 그냥 귀족 나으리였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대규모 영지와 병력을 소유하고 있는 백작 부터였다. 백작, 후작, 공작. 이 세개의 작위를 가진 귀족은 얼마 없었으며 이 작위를 가진 사람들은 너무나도 높은 사람들이라 백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굉장했다.

“괜찮아요, 라이셀 부인은 무척이나 다정하신 분이랍니다. 그녀에게는 아가씨 나이 정도의 딸이 있다고 해요.”

“네…….”

“아가씨? 이젠 응, 이렇게 말해야죠.”

“으? 으으응.”

그녀가 수줍게 말하자 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앤은 마치 귀여운 것을 깨물어버리고 싶은데 그 작고 연약한 것이 망가질 까봐 참는 표정을 했다. 어쩐지 이상한 시선에 비올렛이 핫, 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웃었다. 이 하녀는 뭔가 이상하다.

“아가씨, 너무 불안해 하지 마세요.”

앤이 다정하게 말했다.

“다 잘될거예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친구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아직도 핀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녀는 사실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저 친근한 여자아이가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제, 우리 함께 후작가를 거닐어 볼까요?”

*

“으아, 으아아아악 앤이다!”

“바로 저기 보시는 망할 애새……아니, 도련님은 에이든 도련님이에요. 아직 열한살인데도 철이 드려면 먼 것 같아요. 지금 여기는 에이든 도련님의 방이구요. 뭐 아시겠지만. 입버릇이 거치시답니다.나중에 후작님과 에드 도련님께 말씀드려 크게 혼이 났으면 좋겠네요! 뭐 제 희망사항과는 별개로 진짜 그렇게 되겠지만 말이에요..”

“야, 너는……!”

에이든이 화를 냈다. 잠옷차림의 에이든은 갑작스러운 그 둘의 등장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앤은 가볍게 웃으며 발광하는 소년에 대해 설명했다. 마치 상품을 설명하는 상인처럼 성별, 나이, 성격등을 열거했다.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부으며 에이든이 뭐라고 더 말하려고 하자 문을 쾅 닫아버렷다. 얼떨떨해보이는 비올렛에게 미소를 지은 앤은 손을 이끌어 그녀를 잡아 끌었다. 그녀가 저기를 바라보며 여기는 부엌, 이라고 말해주었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아, 요리사 잭은 훌륭한 제빵사이기도 하죠. 남자만 있어서 실력 발휘를 못했지만 드디어 디저트를 만든다고 좋아하더군요.”

앤이 손을 흔들자 밀빛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비올렛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이고 성녀님!”

그는 허둥지둥 거리며 무릎을 꿇다가 비올렛의 만류로 하지 않았다. 한눈에도 당황한 듯한 그는 이것저것 찾다가 조그마한 파이를 상자에 담아 주었다. 달콤한 향이 풍기는 것을 보니 무화과 파이였다.

“성녀님이 좋아하는 과일을 찾다가 그래도 흔한 무화과라면 좋아할 것 같아서 만들었답니다.”

무화과라면 어디든지 심겨져 있는 나무였고, 열매도 그렇게 귀한 열매는 아니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지저분한 색깔과 모양을 가져 귀족들은 그런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올렛은 그런 것은 몰랐으며 그저 익숙한 무화과라는 소리를 듣자 미소를 지었다.

“지금 먹어봐도 돼요?”

만약 예법이 있다면 예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나 그녀가 원한다면 안될것도 없었다. 감히 성녀님께서 원한다는데 그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으랴. 그녀가 파이 조각을 한입 베어먹고 행복한 미소를 짓자 앤과 잭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서렸다. 성녀 라는 항목을 제외하고서라도 귀여운 여자아이가 파이를 먹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것을 싫어할 요리사는 없었다. 게다가 고귀한 성녀였다. 비록 인형과도 같은 얼굴이 아니었지만 그 조용한 얼굴에 서린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너무너무 맛있어요.”

그 말에 잭은 평소 과묵한 표정을 버리고 호탕하게 웃으며, 이미 한조각 먹었으니 다음 디저트는 수플레 치즈 케이크로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올려도 되겠냐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그녀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하며 들어갔다. 드디어 내 요리가 인정받았어!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앤은 식당을 갔다. 식당은 이미 가본 적이 있었다. 별로 좋은 추억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 졌다.

“나중에 예법을 다 익히면 아침에는 모두가 다 모여서 식사하실 수도 있으실 거예요.”

“싫어요, 아니, 싫어.”

그녀의 입에서 드물게 나온 부정적인 말에 앤이 놀랐다. 명백한 거부 의사에 앤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저는 혼자서 밥을 먹을거에요.”

“아가씨, 후작님이 많이 슬퍼하실 거에요.”

“어차피 저는 천민이고, 진짜 딸이 아닌걸요.”

그녀의 말에 앤이 얼굴을 찡그렸다. 비올렛은 자신이 아주 나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것은 후작이 명령한 일이기도 했으므로, 그녀는 거리낄게 없었다.

“그리고 저는, 첫째 도련님을 별로 보고싶지 않아요.”

비올렛의 말에 앤의 얼굴이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그녀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비올렛은 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다기 보다는 이 상황에 대해 파악하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아가씨, 첫째 도련님이라니요? 오라버니라 해야죠.”

“싫어요, 아니 싫어.”

비올렛이 누군가를 이렇게 단호하게 평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남을 좋다 싫다로 평가한 적이 없었다.

“에드 도련님은 좋은 분이에요. 때로는 잔혹하실 때 한없이 잔혹하기도 하지만 그게  도련님의 본성이 아니랍니다.”

앤의 설명은 비올렛의 인식을 바꿀만큼 그닥 설득력이 있지는 않았다.

“저에게는 아니에요.”

그녀는 고집스럽게 말했다. 다 미웠다. 핀을 쫓아낸 후작도, 그녀의 부탁을 거절해버린 첫째 도련님도. 게다가 그녀에게 드레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 그녀는 입기 편한 드레스 위주로 입고 있었다. 첫째 도련님은 만날 때는 언제나 불유쾌한 일이 일어났다. 앤은 그녀를 설득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게다가 그녀는 비올렛이 정말 강하게 의사를 표현할때는 존대가 아닌 반말을 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음은 저기, 후작님의 집무처랍니다.”

후작님은 수도 주변에 커다란 영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이 영지가 아니냐는 물음에 이곳은 그저 왕실에서 내린 저택에 기거하는 거라고. 진짜 영지는 따로있노라고 했다. 그녀가 살던 도시의 영주가 그라고도 했다. 후작 령의 면적을 따지자면 도시 몇개가 그의 영지였으나 아직 비올렛은 그 개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왕실에서의 일이 끝나면 후작님은 영지에 관한 일을 처리하러 저기서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마침 후작님이 들어오는 참이었다. 비올렛은 복도 너머에 이쪽으로 걸어오는 후작을 보았다. 검푸른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한 후작 역시 곧바로 서 있는 앤과 그녀를 알아보았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하지만 인사를 받은 비올렛은 겁에 질린듯 입을 꾹 다물고는 등을 돌려 다른곳으로 뛰어 갔다. 명백한 거부의 의사였다. 충분히 결례가 되는 것이었으나 비올렛은 이제 후작이 다른 귀족 나으리들과는 달리 그정도로 그녀에게 화를 내거나, 벌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을 깨닫다기 보다는 죽더라도 이런 반항을 하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녀는 후작이 싫었다. 매를 맞은 건 자작 부인이 말해서 알고 있을 텐데도 그저 그것을 내버려뒀다는 이유만으로 착한 핀을 내쫒았다. 에이든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은게 분명했다. 참 제멋대로인 사람들이다.

“아가씨~”

앤이 그녀를 쫓아 뛰어왔다. 그녀는 핀처럼 예의를 지적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으세요?”

한참을 뛰어 헉헉거리던 비올렛의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녀는 대답대신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앤을 보았다. 앤 역시 핀 대신이다. 하지만 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저 불만스러운 표정만 할 지을 뿐 이었다.

“후작님이 많이 놀라셨을 거에요. 대체 왜 그러신거예요?”

그 물음에 그녀는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첫재 도련님이 아닌 진짜 후작님을 싫다고 말하면 정말로 경을 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비올렛!”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니엘이 계단에서 내려왔다. 같은 저택에 사는데도 식사를 같이 하지 않으니 꽤나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다니엘의 품에 안겨 훌쩍였다. 다니엘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는 듯, 그녀를 토닥였다.

“성녀님은 내가 방까지 데려다 줄게, 너는 방에 돌아가 있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앤이 돌아갔다. 둘만 남자 다니엘은 그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 나는 네가 혼난 다는 것만 알았지 그렇게 맞았을 줄은 몰랐어.”

“아니야, 내가 말을 안한 잘못이야.”

착한 다니엘. 다니엘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많이 아프니? 걸을수는 있어? 아니, 이렇게 걸어도 되는거야?”

“약을 발라서 괜찮아. 봐, 이렇게 걸어다닐 수도 있는걸.”

그녀가 미소를 짓자 다니엘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마음이 따뜻한 색으로 물들었다.

“아끼는 하녀가 없어져서 슬프겠구나 비올렛.”

역시 그를 알아주는 것은 다니엘 밖에 없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 그래, 다니엘에게 부탁하자. 다니엘이 어쩌면 후작님께 부탁한다면 들어주실지도 몰라!

“그럼 오, 오빠가 후작님께 말해줄 수 있어?”

그 말에 다니엘은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희망에 찬 마음은 실망으로 얼룩졌다.

“아버지와 형은 한번 정하는건 절대 되돌리지 않는 성격이야.”

다니엘이 말했다.

“특히나 에드 형은.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지.”

별로 좋은 어조는 아니었으나 비올렛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다니엘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토닥였다.

“내 앞에서는 마음껏 울어, 나는 네 편이야, 비올렛.”

그의 말에 그녀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는 말은 마치 마법처럼 다시 멈춘 그녀의 울음보를 터트렸다.

“불쌍한 비올렛.”

그 말에 그녀는 더더욱 서글퍼졌다. 정말로 자신이 불쌍해보였다. 이곳은 너무도 삭막하고, 무섭고, 외로웠다. 정말로 너무 외로워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손을 뻗어 주었던 다니엘 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아 참, 다니엘에게도 말했냐 물어보는 부분은 비올렛이 이해를 못해서 고개를 끄덕인거에요. 지금 비올렛은 에셀먼드가 알았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딴소리를 하는걸 볼 수있음.

일단 맨날 넌 맞아야해, 라고 맞았던 애는  자기가 맞는게 비합리적인지를 모른답니다.

드디어 새 캐릭터 앤이 등장했네요. 아직 등장할 사람들은 너무나 많으나 유년기는

이런 캐릭터에요! 라는 느낌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음 편에는 우리 후작님 외전이 두편 준비되어 있으니 열두시에 꼭 와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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