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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핀 제비꽃-65화 (65/208)

00065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

샤를의 질문에 비올렛은 잠시 당황했다. 이 왕자님은 도대체 얼마나 궁금한 점이 많을까. 열 한살이라 그 질문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민감한 질문만을 쏙속 하고 있었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저렇게 말하는데 혹여나 말 실수를 하다간 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대로 납득하리라 생각했던 왕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건 아닌데.’

비올렛은 이 나라의 왕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비올렛의 생각으로 왕족들은 귀족들 보다 더 거만하고 더 혈통위주의 사람들일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왕이 그러했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체자레야 왕족이긴 했지만 그는 거의 다른 개념으로 이었다.

비올렛은 이 왕자가 낯설었다. 이 왕자는 비올렛과 똑같았다. 소심한 것도 자신에게 자신이 없는것도. 그러나 생각이 많은것도 비슷했다. 조금 더 온실속 화초같은 느낌이라는게 다른 점이라고 할까. 그러나 왕자는 어린 비올렛처럼 눈치를 보고 답변을 생각한다. 그것에 그녀가 대답하자 오히려 그가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하며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힐끔힐끔 바라보는게 무슨 다른 생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는 태어날때부터 당연한 왕자가 아닌가. 왜 에셀먼드나 다니엘 에이든 처럼 당당하지 못한 것이지? 그가 눈치를 보는게 아니라, 오히려 비올렛쪽이 그의 눈치를 보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

“혹 스승님의 기분이 상하실만한 질문을 한거라면 너무도 죄송합니다.”

게다가 사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했던 어린 그녀처럼.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닙니다. 누구나 다 호기심은 가지기 마련이고, 그 질문의 대상이 제가 되었다면 기쁩니다.”

그녀가 틀에 박힌 말을 하자 샤를이 조금 서운한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샤를은 어린 아이치고 소심했고, 소심한 만큼 예민한 편이었다. 소년은 바로 비올렛이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스승님은 제가 싫으십니까?”

“아니요, 제가 전하를 싫어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스승님이 좋습니다.”

“네?”

비올렛이 대답했다. 그러나 샤를이 호박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치며 말하는 것이다.

“저는 스승님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스승님이 나라의 심장이라는게 좋습니다.”

“........”

“그러니 스승님도 저를 좋아해주십시오. 스승님이 천민이라는 것 따윈 저는 모릅니다. 천민이어도 스승님이 심장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비올렛은 자신과 가까이 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지만 만약 그런 말을 하다간 또 울음을 터트릴지도 몰랐다. 시수일레도 그렇고 에이든도 그렇고, 이 왕자님도 그렇고, 왜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인가. 복잡한 마음에 조용히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노력해보겠습니다.”

어차피 좋아한다고 말해도 이 섬세하고 예민한 소년은 믿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하는게 옳았다. 그러자 왕자가 기분좋게 미소를 지었다. 똑똑똑, 거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벌써 시간인가.  설마 또 에셀먼드가 서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에셀먼드가 아니라 다른 인간이었다.

“전하! 수업은 잘 들으셨습니까!”

“.......”

문 앞에 서있는 에셀먼드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왕자의 방 안에 들어온 소년이 뭐라 말하자 그가 기쁜듯 뛰어갔다.

“에이든 경!”

둘째 날은 형제 둘인가. 그 다음 날은 다니엘까지 끼어있겠네? 그녀가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어제 우리 성녀님이 울렸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제 여동생이 조금 미숙합니다 막 눈을 세모꼴로 뜨고 전하를 노려보지는 않았습니까?”

“아니,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생글생글 웃으며 뭐라 나쁜 말은 하시지 않았고요?”

“성녀님이 그런 성격이십니까?”

비올렛은 기가막혀 에이든을 바라보았다. 하루걸러 형제들이 쌍으로 자신을 놀리려 드는 것인가. 사실 왕자의 방은 왕자의 것이 아니라 후작가의 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여긴 왜 오셨습니까 견습기사님?”

비올렛이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에이든이 말하는 것이다.

“봐보세요, 저런거 말입니다, 저런거.”

“전혀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아, 처음에는 조금 그랬지만.”

“역시!”

에이든이 소리쳤다.

“어쩌다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교사에게 걸려 이런 고초를 겪으십니까.”

그녀는 왕자도 얄밉기 그지 없었다. 좋아해 달라면 좋아할 만할 짓을 좀 했으면 좋겠다. 에이든 역시도 그랬다. 무슨 옛날처럼 돌아가는 것을 원하면서도 저런 태도는 뭐란 말인가, 아, 그래, 그는 옛날에도 이랬다. 비올렛은 문 앞에 서 있는 에셀먼드를 노려보았다. 왜 저녀석을 달고 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에셀먼드는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이었다.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견습기사이신 에이든 경?”

“그야 제가 이번에 전하의 호위 담당이니까요, 하핫. 겸사겸사 여동생의 얼굴도 볼 겸 들어왔습니다.”

일개 견습기사 따위가 왜 왕자의 호위를 맡는단 말인가. 에이든이야 사실 정식 기사 급의 검술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호위가 한명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에이든은 마치 이곳에 왕자의 유일한 이해자는 자신이라는 듯 뻐기며 비올렛을 비난하는 것이다.

아 정말 싫다. 비올렛은 생각했다. 저런 바보같은 말에 넘어간다면 에이든의 수작에 넘어가는 것이다.

“야, 어디가.”

“....왕자 전하의 앞입니다. 격식을 차리신게 어떠신지요?”

“우리 전하는 그런거 상관 안합니다 성녀님. 그렇지 않습니까 전하?”

“네, 아주 보기 좋습니다.”

왕자가 대답했다. 도대체 뭐가. 비올렛이 생각했다. 에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꾸 그녀를 부르는 것이다.

“나 오늘 이것만 끝나면 일이 끝나. 같이 가자.”

“.....싫습니다.”

“아니 왜? 내가 맛있는거 사줄게. 너 바깥에도 잘 못돌아 다니잖아. 나랑 같이 있으면......”

“너라서 싫습니다.”

비올렛이 말했다. 그러자 에이든의 얼굴이 또다시 상처받은 얼굴로 변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왕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심각해 보이던 그 얼굴에 미소가 서리자 왕자의 얼굴은 크게 달라졌다. 웃는 얼굴에는 볼우물이 패여 있어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에이든 경, 스승님을 그만 괴롭히십시오.”

“왕자님, 그사이 성녀님께 매수된 것입니까.”

“아니요, 정말로 싫어하지 않습니까.”

“........진짜요?”

에이든이 물었다. 그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 바보같은 대화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듯 문 앞에 서 있던 에셀먼드가 말했다.

“에이든 에르멘가르트 경, 제가 지금 지체된 시간을 알려야합니까.”

“아, 아닙니다.”

비올렛과는 다르게 에이든은 에셀먼드에게는 깍듯했다.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방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비올렛은 왕자를 바라보았다. 비올렛을 어려워 하는 것 같은 왕자는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이 어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가르쳐야 하는 왕자에게 불편함을 느낄 일은 없는게 좋은법이었다. 왕자는 따스한 황금빛 눈을 하며 그녀를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별로 좋은 스승은 아니다. 학식이 뛰어나지도 좋은 신분도 아니다. 그저 그녀가 내세울거는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것 밖에 없다. 그것도 신의 실수일지 모르는.

그는 어린 비올렛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다.

혼자서 퇴궁하던 비올렛은 궁을 돌아보았다. 참으로 평온했다. 저렇게 에르멘가르트 가 사람들이 속만 긁지 않다면 이런 생활도 견딜 만했다. 성력이 있다는게 들통날때까지는 그녀에게 시간은 있다. 이렇게, 이곳에서 서 있을 시간. 비올렛은 에이든과 에셀먼드, 그리고 왕자가 있을 연무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든은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했지만 언제나 그녀는 에이든의 말을 무시했다. 아마 돌아온 에이든은 무척이나 허탈한 얼굴을 하겠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야흐로 여름의 시작이었다.

*

비올렛의 성년때문에 그녀는 각국의 사신을 몇번씩 마주했다. 사실 접대를 하는 것은 외교관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되었다. 그녀는 나라의 얼굴이라는 그녀의 역할에 충실했다. 방문하는 국가들은 모두 같은 종교를 가진 국가였고, 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한 번씩 그녀를 살아있는 신을 취급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고, 천민이라는 그녀의 출신 성분을 알고 그녀를 관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왕자의 신학교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틈틈히 그들을 보았다. 왕은 그녀의 뜻대로 행동했다. 그녀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었고, 그녀 역시 그것에 맞추어 행동했다. 왕은 이제 비올렛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올렛을 무시하게 된다면, 그는 정말로 굴욕을 당한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초여름에서 한여름으로 넘어가는 꿉꿉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이었다. 태양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붉게 타올랐고, 비올렛은 시원한 궁중에서도 더위를 느꼈다. 왕자의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에셀먼드를 마주해야 했고, 제 아무리 수업을 빨리 끝내려 해도 그를 마주쳤기에 그녀는 어쩔수 없이 그것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그를 마주하는 것 이외에 비올렛에게 크게 신경을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조용히 살고싶다던 비올렛의 의지와는 반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것은 거의 이변중에 하나였기에, 왕실은 발칵 뒤집어지고야 말았다. 군나르족이 통치하는 구자르트에서 온 문서였다. 그것은 단 하나, 성녀의 성년을 축하하며, 말룸의 신화를 공부하기 위해 구자르트 카칸의 여덟번째 칸을 이곳에 파견한다고 하며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 신앙이 그들의 입장에서 납득될만한  것이고, 성녀가 진짜라면 그들의 나라, 소수민족 모두 ‘개종’하겠다는 문서를 보내온 것이다.

현 구자르트는 ‘제국’이라고 불릴만큼 비대화 되었으며, 소수민족들은 모두 흡수하여 나라라는 개념을 이루었다. 그들 백성하나하나가 무력을 지닌 전사였으며 피를 좋아하는 잔인한 민족이었다.

‘개종’이라는 카드는 너무나 강력하고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교황으로서는 이 나라를 종교적으로 지배하에 두는 것이었고 왕으로서도 아그레시아의 서남단에 위치한 이 위협적인 나라와 적대 관계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기회였다. 따라서 그들은 카칸의 여덟 번째 자식인 칸을 초대한 것이다.

그리고 비올렛은 그들을 맞이하기로 되어 있었다. 군나르 족과는 어렸을 적 인연이 있었다. 별로 좋지 않은 인연. 그들의 갈색 피부색을 생각하며 비올렛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시종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편채 최대한 오만한 얼굴로 그곳으로 들어갔다. 이국의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키가 큰 남자가 눈에 띄었다.

============================ 작품 후기 ============================

잘 돌아 왔어여! 기쁘죠! 기쁘시면 추천추천 추천을 하면은 행복해지고 저도 행복해지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님도 좋고 뽕도좋고?응?

여하튼 님ㄴ들 덕에 행복한 하루 보냈습니다 근데 생일날에 선삭비..흡...여튼 드디어 군나르 족을 등장할 계획이네요

사실 소설 스케일을 줄일생각이어찌만 점점 커지고 있답니다....이거 나중에 판타지란에 가도 될정도에여... 그래서 최대한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이고....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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