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92화 (92/621)

92화. 운수 좋은 날 (2)

수적의 두목 양악군의 눈은 마치 주판알이 튀기듯 빠르게 움직였다.

오죽하면 강물에 반사되는 빛이 모두 돈으로 보일까.

희미하게 미소 지은 양악군은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청명환을 약탈한다면 그는 수로채의 수하들과 나누지 않고 그대로 강호에서 잠적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하북팽가의 표행이 지금 막 도착한 것이었다.

양악군은 창밖에 펼쳐진 푸른 물결을 바라봤다.

오늘은 일생일대의 운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만 같았다.

영단에 서열을 매긴다면?

소림의 대환단이 으뜸으로 일존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다음이 화산, 무당, 곤륜의 영단이었다.

도가의 영단 중 최고로 치는 것이 곤륜의 연단술이 집약된 청명환이었다.

도가의 영단 중 가장 작은 청명환.

그만큼 자연지기를 잘 압축했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그 때문에 소림 대환단의 바로 뒤에 곤륜의 청명환을 논한다.

때로는 대환단과 비슷한 선상에 놓고 보기도 한다.

소림 대환단과 비견되는 영약이라?

그야말로 무림의 보물이 지금 눈앞에서 어슬렁거리니 양악군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양악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점소이가 차를 내왔다.

“여기 차 내왔습니다. 그런데 손님 어디를…….”

점소이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막 차를 다시 내왔는데 손님이 일어나자 잘못하면 돈도 못 받을 것 같아서였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추궁받을 것은 뻔한 일.

지금 상황을 보니 이전에 먹은 찻값도 안 내고 튈 모양새였다.

하지만, 점소이의 예상과는 달리 양악군은 활짝 웃으며 점소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양악군은 점소에게 주머니에 남은 은전을 탁자에 올려놨다.

탁.

점소이가 놀라 물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찻값치고는…….”

“그냥 넣어 둬!”

단호한 양악군의 말투.

점소이는 못 이기는 척 은전을 품속에 챙겨 넣었다.

양악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루를 나갔다.

그 뒤를 수하가 따라간다.

수하의 이름은 검오. 양악군의 오른팔이지만, 이 일이 끝나면 버림받을 사내였다.

검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노랑이라 소문이 난 두목의 행동이 이상해서였다. 하지만, 오늘 챙길 보물을 생각하는 검오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검오를 뒤로한 채 양악군이 여유 있게 나루터를 향해 걸어갔다.

누가 봐도 상단의 주인 같은 모습이다.

나루터 쪽으로 가는 갈대밭으로 들어서자 양악군은 번쩍이는 비단옷을 풀어 헤쳤다.

휘릭!

갈대밭을 나오는 양악군은 세월의 풍파가 드러나는 뱃사공으로 변신했다.

잠시 후.

뱃전에 서 있던 양악군이 눈을 빛냈다.

저 멀리서 목표물이 오기 때문이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상대는 하북팽가의 사 공자와 천리 표국의 표사 둘.

표사의 무공은 절정 수준이라 들었다.

그들이 안심하고 표행을 하는 것은 모두 하북팽가와 천리 표국의 명성 때문일 터.

그 명성을 지운다면 양악군이 이끄는 수적에게 한 입 거리도 안 되었다.

뭍에서 상대를 제압하고 청명환을 탈취한 뒤 배를 띄우면 끝이었다.

수하들도 두목 양악군의 의견에 모두 찬성했다.

수하 중 하나가 멀리서 오는 마차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놈들 참 먹음직스럽네.”

“쉿,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라.”

양악군의 오른팔 검오가 수하들에게 경고했다.

양악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신경 안 써도 이렇게 수하를 단속하는 검오의 행동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오와의 관계는 오늘 끝이었다.

청명환을 탈취하고 나서는 장하의 한가운데에서 사라질 양악군이었다.

이제 지금 잡고 있는 노를 들어 올리면 나루터의 일꾼도 뱃전에서 얼쩡거리는 선원도 모두가 목표를 향해 달려들 것이었다.

막 노를 들어 올리려던 양악군이 멈칫했다.

앞서 말을 타고 오는 이의 모습이 어딘가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과연 누굴까?

조금 더 가까이 오자 그의 외모가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산동악가의 악비광?

그가 왜 여기에?

의문도 잠시 양악군은 재빨리 노를 내려놓고 선상의 깃발을 올렸다.

평(平).

뱃사람에게 ‘평’자는 무난함과 평탄함을 나타내는 글자였다.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글귀 같지만,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뱃사람처럼 행동하라는 신호였다.

산동악가의 악비광까지 있다면 배 위에서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그때였다.

검오가 급히 달려왔다.

다급한 그의 표정에 양악군이 물었다.

“검오야, 왜 그러느냐?”

“큰일 났습니다. 악비광과 무씨세가의 장녀까지 오고 있습니다.”

“흠.”

양악군이 침음을 삼키며 악비광의 옆에서 걸어오는 여인을 바라봤다.

악비광에 무소율이라?

뭍에서 작업하지 않기로 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 검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악비광과 무소율도 산서삼살에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산서삼살?”

양악군은 고개를 갸웃하며 악비광과 무소율의 뒤쪽을 바라봤다.

그들이 걸어오고 있는 갈대밭 뒤로 커다란 덩치가 나타났다.

“허, 저건 편육랑아 아닌가?”

“네, 그 뒤로 빙혈서생과 흑의살풍도 같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애들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산서삼살이 하북팽가의 표행에 동원된 이들을 제압하고 모두에게 산공독을 먹인 상태라고 합니다.”

“청명환만 빼 간 게 아니라 짐을 달고 다닌다고?”

“몸값까지 생각하고 벌인 일 같습니다.”

“하하. 좋구나, 좋아!”

“왜 그러십니까? 산서삼살이면 어떤 비열한 수법을 쓸지 모르지 않습니까?”

“물 위에서 우리를 당해 낼 자가 있더냐? 아무리 산서삼살이라고 해도 놈들은 우리의 한 입 거리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청명환을 약탈했다는 악명을 뒤집어쓰는 것이 산서삼살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가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정파 모두의 적이 될 일만 남은 것이지. 산서삼살 중 하나는 꼭 살려 둬야 한다.”

“왜 살려 둡니까? 깨끗하게 죽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녀석이 우리 대신 쫓길 것이 아니더냐?”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래도 녀석들의 악명을 본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건 네 말이 맞다. 너는 가서 다섯 번째 계책으로 표물을 빼앗을 것이라고 전달해라.”

“네, 알겠습니다. 철저히 준비시키겠습니다.”

* * *

잠시 후.

한빈을 태운 마차가 대형 상선 앞에 도착했다.

가장 앞에 선 자는 산서삼살 중 덩치를 담당하는 편육랑아였다.

그가 낭아봉을 들며 외쳤다.

“뭐 하는 것이냐? 다들 표물과 포로를 배에 실어라.”

그 외침에 뱃사람들이 한빈 일행에게 다가왔다.

마차와 말을 분리해서 따로 배에 싣고 한빈과 설화 일행은 산서삼살에게 둘러싸여 배에 올랐다.

누가 봐도 한빈이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맞았다.

배에 오르던 중 한빈은 멀리 있는 뱃사공을 바라봤다.

그를 본 한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미소는 어느 때보다 짙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뱃사공에게서 어느 때보다 짙은 구결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저것은 인급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맞았다.

물론 그는 뱃사공이 아니라 양악군이었다.

양악군은 자신을 보자 급하게 고개를 숙이는 한빈을 보고는 조소했다.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

그에 대한 소문은 요즘 들어 중구난방이었다.

하북 최고의 겁쟁이가 하북 최고의 망나니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주화입마에 걸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하북 최고의 겁쟁이 그대로라는 것이 양악군의 결론이었다.

한빈이 양악군의 시선을 피한 것은 표정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그때 편육혈랑이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빨리 걷지 못할까! 빨리 구석으로 가서 찌그러져 있거라.”

편육랑아가 한빈을 거칠게 밀었다.

퍽!

한빈이 힘없이 배 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중간의 좋은 자리는 산서삼살이 차지하고 한빈 일행은 배 구석으로 몰리자 뱃전에 있던 양악군이 미소 지었다.

수하가 보고한 것이 사실이었다.

정파의 놈들은 산공독에 중독되어 힘을 못 쓰니 산서삼살만 제압하면 되는 것이다.

그때 편육랑아가 양악군 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양악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편육랑아가 씩 웃으며 속삭였다.

“형님들, 우리의 이름이 장하의 뱃길까지 퍼졌나 봅니다.”

빙혈서생이 조용히 편육랑아를 바라봤다.

“셋째야, 목소리를 낮추거라.”

“그게 맞지 않습니까? 형님.”

“그래, 그게 맞다 한들 뭐가 바뀌겠느냐? 그리고 아까 네가 한 행동 말이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사 공자를 밀칠 때 감정이 섞인 것 같더구나.”

“그야 사 공자가 시켰으니…….”

그것을 사실이었다. 만약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되면 철저히 포로로 대하라는 것이 한빈의 지시였다.

하지만, 뭔가 꺼림칙한 편육랑아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 사 공자의 눈빛을 봐라, 가만있을 것 같냐?”

빙혈서생이 슬쩍 한빈을 가리키자 편육랑아도 고개를 돌렸다.

“헉.”

편육랑아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늑대와도 같았다.

편육랑아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은 것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늘이 몰라주는 것만 같았다.

편육랑아의 꿈은 저 악랄한 놈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가 말한 놈이란 한빈이었다.

그때 설화가 한빈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속삭였다.

“왜 그러세요?”

“재미있어서 그러지.”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산서삼살의 연극이 재미있다는 말씀인가요?”

“놈들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놈들이 이 배에 쌔고 쌘 것 같아서.”

“흠, 저도 느끼긴 느꼈는데…….”

설화가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실제 수상하게 보이는 몇몇 상인들이 있었다.

설화는 그들이 이 배를 노리고 온 도적일지도 모른다며 경계하는 도중이었다.

설화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몇몇은 정말 수상하게 보여요, 공자님.”

“몇몇이라고?”

“왜 그렇게 놀라세요? 혹시 눈치 못 채신 거예요?”

“흠, 몇몇이 아니라 모두라고 해야 맞지.”

“네?”

“일단 목소리 낮추고 그냥 모른 척 경치나 구경하자고.”

한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강가를 바라봤다.

끝없이 흘러가는 장하의 물결은 마치 세월과도 같았다.

그 세월을 거슬러 온 자신.

자신을 과거로 돌려보낸 용린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한빈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씩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이번 생은 맘 내키는 대로 살아 보라는 하늘의 계시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왜 우리 마차는 못 싣는 거죠?”

무소율이 목소리를 높이자 뱃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 배에는 마차 한 대밖에는 싣지 못합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서 더 싣는다면 배가 버텨 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저 마차는…….”

뱃사람이 검지로 무소율이 가져온 두 대의 마차를 가리켰다.

한빈이 표행에서 사용한 마차보다 서너 배는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 한 대에는 식량이 가득 차 있었으며 나머지 한 대는 무소율의 처소를 그대로 옮겨 놨다고 할 정도로 꾸며 놓았다.

실랑이를 벌이던 무소율은 자신의 마차와 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마차를 싣기에는 무리였다.

고민을 마친 무소율이 마부를 바라보며 신호를 보냈다.

지시를 받은 마부가 무소율의 앞으로 뛰어왔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에서 대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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