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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04화 (104/621)

104화 허장성세 (3)

그것은 사파 무인의 오른팔이었다.

잔혈마도를 향해 칼을 뻗었던 사파 무인의 오른팔은 칼을 쥔 채 바닥에 뒹굴었다.

잔혈마도의 움직임을 본 자는 이곳에 몇 명밖에 없었다.

바닥에 있던 한철 궤는 벌써 그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사파 무인의 칼질이 잔혈마도의 동작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었다.

잔혈마도는 다시 한철 궤의 뚜껑을 엄지만으로 열었다.

툭!

동시에 청명환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영약 같기는 한데……. 또 진짜라고는 확신을 못 하겠네. 내가 진짜를 먹어 봤어야 알지 않겠니?”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모두를 살핀 잔혈마도가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남은 청명환 있니? 있으면 가져와. 숨기면 죽는 거 알지?”

“…….”

모두는 말없이 잔혈마도를 바라봤다.

모두의 눈빛에는 의구심과 수치심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모두가 덤비면 잔혈마도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과 함께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하는 두려움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때 사파 무사 하나가 잔혈마도를 향해 짓쳐 들었다.

팍!

그와 동시에 잔혈마도의 파혈도가 가볍게 움직였다.

휙! 털썩!

달려가던 무사의 몸이 앞으로 허물어졌다.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로 말이다.

데구루루 구르는 머리를 바라본 같은 문파 무사가 달려 나갔다.

그들은 사파 중에서도 결속이 가장 끈끈하다는 백사문의 무리였다.

“와아!”

“저놈을 죽여라!”

그들이 동시에 달려드는 모습을 본 잔혈마도는 비릿한 미소를 띠며 오른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잔혈마도는 뻗던 오른손을 멈추고 파혈도를 거둬들였다.

동시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서는 잔혈마도.

달려드는 무사들에게서 몇 걸음 도망치는 모습이 되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거 생각 외로 허접 아니야?”

“우리도 달려들까?”

그것도 잠시 사파 무인들은 바로 숨을 멈춰야 했다.

잔혈마도의 주변에서 붉은 기운이 피어올랐으니 말이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붉은 기세.

붉은 기운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호신강기!”

그 뒤를 이어 다른 무사들이 하나씩 외쳤다.

“그렇다면…….”

“화경의 고수다!”

“저, 저자는 혹시 마교의 잔혈마도……?”

“맞아, 잔혈마도가 맞아.”

“스벌, 마교도가 왜 여기에 온 거지?”

“일단…….”

무사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잔혈마도가 피워 내는 기세가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 기세에 사파 무사들은 거미줄에 묶인 파리처럼 옴짝달싹 못 했다.

잔혈마도는 분노한 듯 이를 꽉 깨물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사파 무인들은 잔혈마도가 왜 저러고 있는지 고개만 갸웃할 뿐이었다.

물론 사파 무인 중에도 지금 상황을 아는 이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산서삼살의 흑의살풍이었다.

흑의살풍은 지금의 묘한 광경을 흐릿하게나마 보았다.

잔혈마도는 사파 무인을 향해 파혈도를 그었다.

막 사파 무인의 목이 달아나려 하는 순간이었다.

회색 무복의 사내가 잔혈마도의 뒤편에서 흐릿한 형체로 나타났다.

동시에 바로 사라졌다.

거기까지가 흑의살풍이 본 전부였다.

회색 무복의 사내라면 물론 한빈이었다.

한빈이 왜 사파 무인들의 목숨을 구한다는 말인가?

이것은 말도 안 되었다.

물론 이유는 간단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몸을 숨긴 한빈은 글귀를 확인했다.

[용안(龍眼)으로 초식을 확인합니다.]

[인급(人級) 구결 박(縛)을 획득하셨습니다.]

한빈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급 구결 세 개를 바라봤다.

[……]

[인급(人級) - 자(自), 자(自), 박(縛)]

한빈은 고개를 들어 잔혈마도를 바라봤다.

잔혈마도에게 보이는 진한 점 하나가 아직 남아 있다.

사실 지금 구결을 획득한 것은 순전히 운이었다.

잔혈마도가 사파 무인들은 만만히 보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없는 수법이었다.

한빈은 기척을 완벽하게 지운 뒤 바닥에 누워 기다렸다.

잔혈마도는 널브러진 시체로 느꼈을 것이었다.

잔혈마도가 사파 무인에게 손을 쓸 때 한빈은 구결을 나타내는 점을 향해 단검을 꽂았다.

동시에 구걸십팔보를 극성까지 운용해서 자리를 피했다.

이것이 잔혈마도에게 구결을 얻게 된 전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구결이 남아 있었다.

저 구결만 획득한다면 인급 초식 하나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경의 고수와 일대일로 싸운다?

그것은 개작두 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도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잔혈마도가 화경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초절정급까지의 무위는 초급에서 최상급으로 나뉘지만, 화경으로 가면 무위를 나누는 방법이 달라진다.

화경의 경지는 일 경에서 십이 경까지로 세분화된다.

이것은 선대 고수들이 나눠 놓은 것.

한빈이 아는 것은 화경의 초입인 일 경에서는 자신 주변의 한 걸음의 공간만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한빈은 잔혈마도를 이길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해 한빈은 자신 있게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빈은 잔혈마도에게 남은 구결을 획득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해서는 반반이었다.

용린검법의 초식 중에는 쾌검난마(快劍亂魔)라는 초식이 있었으니까.

마(魔)를 상대할 때 공격력이 십 할 증가하는 초식으로, 천산혈랑을 상대하며 효과를 봤었다.

지금도 그 효능이 발현된 상태였다.

물론 사파 무인들이 같이 움직여 준다면 조금 수월하게 구결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저들이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의문이었다.

한빈이 기척을 죽이고 있을 때 잔혈마도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허벅지에 꽂힌 단검을 뽑았다.

스윽!

순간 피 분수가 솟구친다.

쏵!

그것도 잠시, 잔혈마도는 내공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멈추었다.

그 상황을 바라보던 사파 무인 중 절정급 이하의 무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잔혈마도는 화경의 고수였다. 그의 허벅지에 단검이 박혀 있다니?

누가 잔혈마도에게 상처를 입혔는지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그중 하나가 슬금슬금 잔혈마도를 향해 다가갔다.

잔혈마도는 함부로 파혈도를 쓰지 않았다.

뒤쪽을 의식한 듯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앞선 무사는 뒤를 돌아보며 같이 공격하자며 턱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때였다.

쓱!

무사의 목이 떨어졌다.

잔혈마도가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장난질이니?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줄 알아? 남은 애기들은 곱게는 못 썰겠다. 야채 다지듯 잘근잘근 다져 줄 테니 기다려.”

잔혈마도는 이제 주변 상황에는 신경 안 쓴다는 듯 사파 무사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 자신에 비견될 고수의 기척을 찾지 못한 것이다.

허벅지에 단검이 박힌 것은 창피한 일었다. 하지만, 호신강기를 피워 낸 이상 더는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고 그 창피함은 이들을 모두 도륙한다면 세상에 알려질 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쓱!

잔혈마도의 파혈도가 허공을 가르자 누군가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압도적인 잔혈마도의 기세 앞에 무사들은 뒷걸음쳤다.

성난 고양이 수백 마리가 호랑이를 제압할 수 있을까?

물론 얕은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겠지만, 싸울 엄두를 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잔혈마도는 호랑이고 사파 무인들은 고양이에 불과했다.

터벅터벅!

잔혈마도는 발소리에 맞춰 파혈도를 휘둘렀다.

사파 무인 중 한 명의 목이 달아나려는 순간 어디선가 번쩍하고 검이 날아왔다.

물론 그 검의 정체는 한빈의 검, 월아였다.

한빈이 쾌검난마와 일촉즉발을 동시에 운용하며 마지막 남은 구결을 수확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 잔혈마도는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세에 황급히 몸을 틀었다.

탕!

잔혈마도는 한빈의 월아를 도신으로 막았다.

한 번의 격돌에 사파 무인들은 뒤쪽으로 주춤 물러나 넋이 빠진 듯 바라봤다.

잔혈마도의 허벅지에 단검을 박은 고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누군가 외쳤다.

“우리를 도와줄 대협이 오셨다!”

“그런데 누구지?”

“헉, 그러고 보니……. 저 몸놀림은……. 아까 우리를 공격했던 사람 중 하나잖아!”

“그런데, 왜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사파 무인들이 희망과 의문을 반반씩 섞어 외칠 때 잔혈마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한빈을 바라봤다.

“넌 누구니?”

“비밀이야!”

한빈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복면을 썼지만, 잔혈마도는 그의 눈빛만으로도 표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잔혈마도는 눈썹을 꿈틀대며 물었다.

“네가 내 몸에 단검을 박은 넣은 아이니?”

“아이는 아니고 어른.”

“그래, 내 몸에 상처를 낼 정도면 어른 대우를 해 줘야겠지.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사파?”

잔혈마도가 농담을 던지듯 묻자 한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도 비밀이야. 나는 싸우면서 입 터는 놈이 제일 싫더라.”

“아무래도 네 놈의 얼굴에서 입을 지워 준 후 얘기해야겠네. 자기야, 조심해.”

잔혈마도의 말에 사파 무인들은 몸서리를 쳤다.

잔인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중성적인 그의 태도가 더욱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한빈은 그의 모습이 아무렇지 않았다.

전생에도 잔혈마도와 싸운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때의 잔혈마도는 지금의 놈이 아니었다.

전생에 싸웠던 놈은 눈앞에 있는 잔혈마도에게 파혈도와 별호를 물려받은 후대의 잔혈마도였다.

경지는 놈보다 낮았지만, 전생에 마주한 잔혈마도는 더욱 징그러웠다.

어차피 초식은 비슷할 터.

화경이라 해서 쫄 필요는 없었다.

한빈이 외쳤다.

“어서 드루와. 헤벌쭉한 표정으로 날 보면 뭐라도 생기냐?”

동시에 잔혈마도의 파혈도가 움직였다.

이제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비웃던 표정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챙!

한빈의 월아가 그의 파혈도와 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어 냈다.

잔혈마도가 나지막이 외쳤다.

“오호라, 자기는 한 수가 있었구나!”

“또 모르지, 두 수가 있을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빈은 공력을 실어 그의 파혈도를 튕겨 냈다.

팍!

동시에 둘은 서로 한 발씩 물러났다.

한빈과 검을 마주한 잔혈마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상대의 경지를 파악했고 이제는 요리만 남았다는 자신감이었다.

챙! 챙!

그들의 격돌은 계속되었다.

사파 무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그들은 공방을 주고받았다.

산서삼살 중 빙혈서생이 외쳤다.

“저게 말이 돼? 저게 사 공자의 실력이라고?”

“허허, 우리와 싸우면서도 힘을 다 보여 주지 않은 것 같구나.”

흑의살풍이 나지막이 맞장구쳤다.

편육랑아는 실눈을 한계까지 치켜뜨며 둘의 격돌을 감상했다.

직접 본 무인 중에 저들보다 높은 경지의 무공을 지닌 이는 없었다.

사도련주라면 다르겠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었다.

물론 한빈이 잔혈마도와 검을 맞댈 수 있는 것은 용린검법 중 쾌검난마의 효능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챙!

한편 한빈은 잔혈마도와의 대결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쾌검난마가 주는 효능은 엄청났다.

공력도 속도도 두 배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빈의 착각이었다.

잔혈마도의 칼끝이 점점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쓱!

한빈의 어깨를 긋고 지나간 그의 파혈도.

하지만, 기본편 중 회복의 구결이 솟구치는 피를 막아 줬다.

그 모습에 잔혈마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봐도 내공으로 상처를 감싸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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