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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06화 (106/621)

106화 허장성세 (5)

빙혈서생이 맞장구치자 흑의살풍이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빙혈서생은 북쪽을 가리켰다.

“고향이라면 혹시…….”

“네, 북해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 일을 겪다 보니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는 느낌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마무리를 짓고 오겠습니다.”

“험, 나는 같이 못 갈 텐데, 괜찮겠나?”

“네, 괜찮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

말끝을 흐리는 흑의살풍을 보는 빙혈서생의 눈이 촉촉해졌다.

흑의살풍은 따라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자리를 피해 주는 것임을 그도 아는 것이었다.

빙혈서생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옮긴 첫발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산서삼살은 그날 이후 산서이살이 되었다.

이제 남은 흑의살풍과 편육랑아는 고개를 돌려 한빈과 잔혈마도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셋째야, 나는 그들의 마지막 대결을 보고 싶구나.”

“형님, 몰래 따라가 보죠.”

둘은 집이 아닌 한빈과 잔혈마도가 한판을 겨룰 결전의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한빈은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잔혈마도를 겨우 따돌리고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제 남은 공력은 본신에 있는 내공까지 합쳐서 이십삼 년 정도가 남아 있었다.

본신의 내공 삼십 년에 용린검법 기본편의 공력 십 년.

그중 십칠 년의 공력을 소모한 것이다.

구걸십팔보를 극성까지 펼치는 바람에 속의 구결을 동이 난 지 오래였고 말이다.

한빈이 지금 있는 곳은 산자락의 끝이었다.

산자락 끝은 낭떠러지로 그 아래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빈이 이곳에 온 것은 만일을 대비해서였다.

만약 잔혈마도가 나타난다면 저 강물로 뛰어내릴 심산이었다.

그 이유는 마교인들 대부분이 물에 약하기 때문이었다.

마교가 위치한 천산 산맥은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물이 귀하기도 하다.

강물이 흐르긴 하지만, 그 깊이가 팔 척을 넘어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진한 혈향을 피워 내는 것으로 봐서 잔혈마도가 분명했다.

역시 화경의 고수는 대단했다.

만약 쾌검난마라는 초식이 없었다면?

한빈은 그와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빈은 씩 웃으며 수풀을 바라봤다.

“잔혈마도, 어서 나오시지.”

그 말에 잔혈마도가 천천히 걸어왔다.

“얼마 못 갔네? 난 또 자기가 멀리 도망간 줄 알았지.”

그의 장난에도 한빈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제는 잔혈마도에게 정보를 캘 때였다.

만일 역사가 바뀌었다면 나름대로 대책을 준비해야 할 터이니 말이다.

이것은 하남정가에서 벌일 계획만큼이나 중요했다.

한참 동안 미소를 피워 내던 한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교는 봉문 중 아닌가?”

“네가 어떻게 알았니?”

“그것도 비밀이야. 그런데, 넌 왜 하남까지 온 거지? 천산에서 하남이면 하루 이틀 거리도 아닌데?”

“흠, 뭐 곧 죽을 거니까. 가르쳐 주지.”

“그래, 말해 봐.”

“마교에서 키우던 늑대 두 마리가 도망가서 말이야. 우리 소교주한테 바칠 내단을 품고 도망갔지 뭐니.”

그의 말에 한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수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산혈랑이었다.

천산에 산다고 알려진 천산혈랑이 마교에서 키우던 마수?

그리고 자라나면 그 마수에게서 내단을 취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두 마리라는 것이었다.

한빈이 씩 웃으며 답했다.

“내가 한 마리의 행방은 아는데…….”

“네가 안다고?”

“한 마리는 황실에서 가져갔어. 그러고 보니 한 마리인지 두 마리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여기까지는 수소문하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묘하게 정보를 비틀었다. 이것은 적과의 대화에서 중요한 수단이었다.

사실에 거짓을 섞어 적을 교란하는 것은 강호 생활에 있어 필수였다.

“흠.”

잔혈마도가 당황했는지 헛기침했다.

무림 문파가 아니라 황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황실이야 관과 무림은 별개라고 하며 무림에 자치권을 주었지만, 황실과 적대시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빈의 일격에 당했을 때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한빈은 대충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만약에 지난번에 천산혈랑을 잡지 못했다면, 그 후 잔혈마도가 와서 그 마수를 잡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절호곡에는 천산혈랑의 흔적이 남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마교의 역사에 영향을 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마교가 봉문을 풀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말이다.

그때 잔혈마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과는 묘한 시선으로 한빈을 쏘아보는 잔혈마도.

한빈이 말했다.

“그 눈빛 부담스럽네.”

“너, 마교도 맞지?”

“무슨 말이야?”

“마교도가 아니고서야 역혈신공을 익힐 수는 없는 일이지.”

“역혈신공이라고?”

한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혈신공이라면 진기를 거꾸로 돌려 단시간에 공력을 폭발시키는 마교 고유의 무공 중 하나였다.

그것도 교주의 직속부대만 익힐 수 있다는 수법.

아무래도 아까 한빈이 시전한 허장성세의 효과 때문에 오해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잔혈마도가 파혈도를 앞으로 세워 한빈을 겨냥했다.

“왜 그렇게 모른 척하니? 직속부대 중 한 놈이 중원으로 도망쳤다고 하더니 그게 너구나.”

“…….”

한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턱 벌렸다.

어떻게 이런 오해를 할 수 있는지 잔혈마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 하북팽가의 사 공자라 까발려지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때였다.

한빈의 눈에 구결을 나타내는 점 하나가 더 들어왔다.

새로 생긴 건지 아니면 원래 있었는데 한빈이 못 본건지는 몰라도 구결을 보고 도망칠 한빈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화경의 고수.

인급 구결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한빈의 계획은 간단했다.

다시 한번 맞붙고 불리하면 강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에서 한 번 더 싸운다는 점만 달라진 것이었다.

한빈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월아가 중천에 뜬 태양 빛을 받자 예기를 발했다.

“드루와, 이 계집애 같은 놈아!”

한빈의 도발에 잔혈마도가 다시 달려들었다.

챙!

첫 번째 합에서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잔혈마도의 공격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이었다.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잔혈마도도 자신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공력을 너무 소모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며 한빈을 향해 달려들었다.

챙, 챙!

한빈은 전광석화 대신 새로 얻은 인급 초식인 자승자박을 선택했다.

전광석화로 인해 아무리 빨리 검을 쓴다고 해도 잔혈마도를 베지 못하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잔혈마도의 검이 느려진 만큼 그의 공격을 이용해 타격을 주자는 것이 한빈의 생각이었다.

자승자박의 초식을 쓰자 이제는 남은 공력은?

“십팔 년만 남았군.”

한빈이 낮게 읊조리자 잔혈마도의 눈썹이 꿈틀댔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감히 십팔 년이라니!”

오해한 잔혈마도가 거세게 달려들었다.

챙!

한빈의 검과 파혈도가 부딪치자 잔혈마도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보냈던 공력 중 일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잔혈마도가 뒤로 재빨리 물러나더니 외쳤다.

“이화접목?”

“맞아, 이화접목. 꼭 누구 애인 이름 같지?”

누가 봐도 놀리는 듯한 상황이었다.

“오늘 네놈의 목을 가져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네.”

잔혈마도가 웃음을 지웠다.

동시에 날아드는 그의 파혈도.

한빈은 방어에 신경 쓰지 않고 그의 가슴을 향해 월아를 날렸다.

슉!

그때였다.

잔혈마도의 파혈도가 묘한 움직임으로 월아를 감쌌다.

마치 구렁이가 똬리를 트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그의 성명절기인 금검일도.

검을 부수는 데 특화된 수법이었다.

한빈도 검에 변화를 주었다.

스륵!

잔혈마도의 파혈도가 커다란 구렁이라면 한빈의 월아는 날렵한 독사가 되어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잔혈마도가 뒤쪽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금검일도의 파훼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무식하게 달려들면 파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경의 고수 앞에서 무식하게 달려들 무인이 누가 있을까?

금검일도가 한빈에 의해 파훼되자 잔혈마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화경의 고수가 동요를 보인 것이다.

한빈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파파박!

한빈의 검이 쉴 틈 없이 잔혈마도의 요혈을 노렸다.

물론 구결만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한빈은 고의로 구결을 나타내는 점이 일렁이는 왼쪽 가슴을 노리지 않았다.

만약 그곳만을 노린다면 잔혈마도도 방어하기가 쉬울 터.

그런 쉬운 길을 한빈이 터 줄 리는 없었다.

챙! 챙!

산자락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병장기 소리 때문인지 사파 무인들도 한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앞장서서 흔적을 따라 한빈을 쫓던 여인이 멈췄다.

“저쪽에 있어요. 우린 대협의 검에 방해되지 않게 여기에서 지켜봐요.”

“네, 그럽시다.”

다른 사파 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는 한빈과 잔혈마도의 대결은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이 적룡대협이라 부르는 한빈은 사파 무인들을 위해 낭떠러지 근처에서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화경의 고수인 잔혈마도와 맞서서 말이다.

챙!

합이 거듭될수록 한빈의 입꼬리를 조금씩 올라갔다.

자승자박의 수법으로 잔혈마도 임길태는 내상이 쌓여 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모종의 이유로 몸 상태도 안 좋아지고 있었다.

파혈도를 휘두르던 임길태가 공격을 멈췄다.

탁!

뒤로 물러선 그가 물었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니?”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분명 이건 독이야. 검 끝에 독을 바르다니 비겁한 놈. 너는 이제 우리 자기도 아니야. 그냥 썩을 놈이지.”

“마음대로 생각해.”

한빈은 씩 웃었다.

오해하든 말든 자신이 얻을 것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빈이었다.

물론 월아에 독을 바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잔혈마도가 중독되었다고 확언하는 것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잔혈마도는 스스로 독을 복용했다.

그것도 한 알이 아니었다.

한빈이 보는 자리에서 먹은 것만 두 알이었다.

그 두 알이 바로 가짜 청명환이었다.

한빈은 가짜 청명환을 만들며 거기에 좋다는 영초를 넣었다. 하지만, 안쪽에는 백독문의 제자인 장자명만이 해독할 수 있는 골치 아픈 독도 넣은 것이다.

그것도 모두 다른 종류로 말이다.

장자명이 걱정하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가짜 청명환은 탈취당하기 위해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강호에 풀린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물론 한빈은 이 결과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청명환을 홈쳤다고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장자명 외에 이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백독곡에 있는 백독문이나 사천에 있는 당가일 것이다.

그때였다. 잔혈마도의 눈이 시뻘게졌다.

순간 한빈이 외쳤다.

“이 미친놈아, 누가 아무거나 주워 먹으래!”

한빈의 외침에도 잔혈마도의 눈은 점점 붉어졌다.

한빈이 보기에 잔혈마도는 역혈신공을 운용하는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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