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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14화 (114/621)

114화. 사필귀정(事必歸正) (2)

전에 한빈이 생각한 대로 마교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단지 잔혈마도만이 천산혈랑의 내단을 찾기 위해 중원으로 온 것일 뿐이었다.

봉문은 했지만, 자신의 재산이 달아났는데 그것을 수거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교는 그런 의미에서 잠시 움직인 것뿐이었다.

그때 무소율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꼭 찾으시길 바라요. 저도 가는 길에 적룡대협이란 분을 보면 꼭 소식을 전할게요.”

“감사해요, 무 소저.”

“그런데, 혹시 하남정가로 가는 길이 어느 쪽인지 아시나요? 제 일행들이 뱃길만 알아서요.”

“흠, 그럼 제가 사람을 붙여 드릴게요.”

“호의 감사히 받을게요. 무씨검가로 돌아가면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두 여인은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무소율은 정중히 포권한 후 배 위에 있던 수적을 보며 외쳤다.

“다 내려!”

그 말에 배 위에 있던 수적들이 사색이 되었다.

* * *

같은 시간 정백현의 선화 객잔 앞.

한빈은 객잔을 나서다 멈추고 귀를 팠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이상하네.”

“공자님, 요즘 너무 예민해지신 거 아니에요?”

질문을 던진 설화가 당과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웃었다.

“맞아, 요즘처럼 평화로운 때에 내가 너무 예민하긴 하지.”

“공자님, 평화로운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잔혈마도 일도 그렇고요.”

“에이, 그건 사파하고 적룡대협인가 하는 사람 얘기지,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잖아.”

한빈의 말에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지금 한빈의 표정은 누가 봐도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빈은 광개에서 서찰 하나를 건넸다.

“이건 내 사부님께 갈 서찰이니 잘 챙겨. 잊지 말고 최대한 빨리 전달해야 한다.”

“사부님이라고? 너 사부도 있었어?”

광개가 고개를 갸웃하며 서찰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무제자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북 일대에는 홍칠개가 나서서 제자를 들였다고 소문을 냈지만, 아직 하남까지는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구걸십팔보의 흔적에 대해 진작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광개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하고 아직 물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의 서찰도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광개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일이 얼마나 돈이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광개가 서찰을 접어 품 안에 넣자 한빈이 시선을 이무명에게 돌렸다.

“이 호위, 이번 일은 절대 겁먹어서는 안돼.”

“네, 주군.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산전수전 다 겪은 몸입니다.”

“참, 그 목걸이는 안 보이게 잘 숨기고.”

한빈은 이무명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옷 안쪽에 손수 넣어 줬다.

설화가 아까 한빈과 이무명의 다른 점을 말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이무명의 목걸이라고 했다.

이무명은 항상 자신의 성인 이(李)가 써 있는 나무토막을 목에 걸고 있었다.

그것이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무명도 한빈의 목을 가리켰다.

“주군도 그거 안 보이게 넣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마워, 이 호위.”

한빈도 목에 건 조그만 장식품을 옷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모두와 인사를 마친 한빈이 장자명의 어깨를 톡톡 쳤다.

“이제 출발하지요, 장 의원.”

“사 공자, 정말 우리 먼저 가는 겁니까?”

“네, 우리가 먼저 가야합니다.”

“위험한 일은 없겠지요?.”

“천수장에서 하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럼 위험한 일은 절대 없습니다.”

“좀 불안한데요.”

장자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빈을 바라봤다.

사실 조금 불안한 것이 아니라 많이 불안했다.

장자명도 의원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한빈도 그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본다면 두 명의 의원이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소문대로라면 하남정가의 가주는 점점 병세가 깊어지고 있다.

청명환의 운송은 이무명이 맡고 자신은 한빈과 함께 먼저 도착해서 가주를 진료한다는 것이 기본 작전이었다.

하지만, 장자명은 이번 계획이 왠지 꺼림칙했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장 의원, 저 못 믿어요?”

“아, 그건 아니고…….”

장자명은 말끝을 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못 믿는다고 할 수도 없었고 믿는다고 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못 믿을 사람을 한 명 대 보라고 하면 장자명은 말설임 없이 한빈을 말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자니 후환이 두렵고 말이다.

한빈이 피식 웃으며 앞장서자 장자명이 힘없이 발걸음을 떼었다.

둘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이무명이 설화를 잡아끌었다.

“이제 우리는 들어가자.”

“네, 이 호위님. 우리는 어차피 이틀 뒤에 출발해야 하니까요. 그동안 푹 쉬어요. 참, 당과나 좀 사가지고 들어가요.”

“허, 그러자꾸나.”

이무명이 고개를 끄덕일 때 광개가 다가왔다.

“저는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네, 살펴 가시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말씀하시지요.”

“혹시, 이 서찰에 적혀 있는 무제자라는 게 저희 개방의 홍칠개 어르신은 아니겠지요?”

광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무명의 대답을 기다렸다.

“홍칠개 어르신이 맞는데요.”

“아까 팽 공자가 분명히 사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무제자 홍칠개 어르신께서 최근에 거둔 제자가 바로 우리 주군이십니다.”

“네?”

광개는 눈을 크게 뜨며 한빈이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북팽가의 직계이면서 개방의 제자라?

그때 이무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명목상 제자입니다. 그렇다고 저희 주군이 개방 방도는 아니고요. 홍칠개 어르신께서 저희 주군의 재능이 탐나서 제자로 두신 것 같습니다.”

“허, 아무리 그래도…….”

광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품 안에 서찰을 다시 꺼내 봤다.

살짝 만져 보니 서찰 안에 뭔가가 있었다.

그것을 슬쩍 꺼내 본 광개는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개방의 매듭이 있었다.

붉은 매듭은 세월 때문인지 검게 보일 정도였다.

개방 원로의 매듭이 맞았다.

그것도 붉은 실이면?

서찰을 전해야 할 사람이 홍칠개가 맞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한빈이 구걸십팔보를 익히고 있는 것도 사실.

개방에서 자신의 나이대에 구걸십팔보를 익힌 자는 없다 들었는데…….

자신보다 더 어려 보이는 한빈이 익혔다니?

왠지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그것과는 별개로 붉은 실이 들어 있다면, 중요할 일일터.

개방의 명예를 걸고 이 서찰을 전달해야 했다.

눈매를 좁힌 광개는 둘에게 인사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사삭.

갑자기 사라진 광개를 본 이무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일까?”

“광개 소협께서 급하신가 보죠.”

“그게 무슨 말이냐? 설화야.”

“볼일이 급해서 저리 가는 게 아니겠어요.”

“하하!”

이무명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 설화가 싫지만은 않았다.

가만 보면 주군인 한빈과 닮은 구석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이무명은 당과를 파는 노점상을 향해 걸어갔다.

* * *

삼 일 후.

하남정가 앞에선 이무명과 설화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이무명은 중대한 임무를 앞둔 기분이었고.

설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살행을 앞둔 기분이었다.

그만큼 심장이 쫄깃했다.

각기 다른 결심을 하고 있지만, 빛나는 눈동자만큼은 똑같았다.

심호흡한 설화가 말했다.

“공자님, 한철 궤는 잘 챙기셨죠?”

이무명은 손에 든 한철 궤를 확인하며 답했다.

“그래, 설화야.”

“그럼 이제 들어가야죠, 공자님.”

설화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이무명은 기가 찼다.

지금은 완벽하게 한빈처럼 행동해야 했다.

사실 이무명은 두 가지 면에서 긴장했다. 하나는 하남정가 사람 중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모두 날렸다.

오기 전에 동경을 통해 확인하니 옷이 날개라고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기에 더해 머리 모양까지 바꾸자 완벽한 한빈이 되었다.

이대로 하북팽가로 돌아간다면 팽가에서도 한빈이라 믿을 정도였다.

그다음 걱정스러운 부분은 설화가 잘해 줄까 하는 점이었다.

지금은 그 걱정도 지울 수 있었다.

무위를 숨기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할지는 몰랐다.

이무명이 하남정가의 정문 앞에 서자 설화가 경비 무사에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희는 하북팽가에서 왔어요.”

설화의 인사에 경비 무사가 고개를 돌렸다.

“하북팽가라고?”

깜짝 놀란 경비 무사가 뒤쪽에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동료에게 달려가 속삭였다.

동료 경비 무사는 순삭간에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하남정가의 정휘지가 나왔다.

둘을 본 정휘지가 눈매를 좁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생했네, 사 공자, 그런데 천리 표국의 무사들은 어디로 갔는가?”

“오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명환만은 지켰습니다.”

“허, 우리가 진작 마중을 나갔어야 하는데, 내 불찰로 자네가 고생했군.”

이무명이 겨우 표정을 숨겼다.

정휘지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 때문에 목숨을 걸고 청명환은 호송하는데 하남 땅에 들어서도 하남정가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하남정가의 가주님을 위한 것이 강호를 위한 일이 아닙니까?”

생각과는 달리 이무명은 혀에 꿀을 바른 듯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이 한빈이 시킨 그대로였다.

정휘지가 답했다.

“어서 들어오게, 그러지 않아도 아버님께서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당장 영단이 필요하던 차였네.”

정휘지가 손으로 재촉하며 앞장서자 뒤를 따르던 이무명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어긋났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무명의 계산대로라면 한빈은 이틀 전에 이곳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리고 몰래 하남정가 가주의 상세를 살피고 치료를 마쳤어야 했다.

하지만 정휘지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무명의 심장이 점점 뛰기 시작했다.

하남정가 가주가 걱정인 것이 아니라 한빈이 걱정되어서였다.

검으로 우정을 나눈 지기이자 주군인 한빈이었다.

일이 틀어져도 한빈만은 무사해야 했다.

이무명은 옆을 힐끔 봤다.

그곳에는 설화가 통통 튀는 걸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었다.

이무명은 주군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설화도 주군을 저리 믿는데 자신이 한빈이 못 믿는다?

이무명은 보이지 않게 이를 꽉 깨물었다.

천천히 앞서가던 정휘지가 걸음을 멈췄다.

이무명은 힐끔 고개를 들어 현판을 봤다.

역시 가주의 처소가 맞았다.

쾌룡전(快龍殿).

하남정가에서 가장 화려한 전각으로, 가주의 처소다.

하남정가의 상징인 쾌검과 상서로운 용의 형상이 기둥에 음각되어 있었다.

정휘지가 손을 내밀었다.

“청명환을 이리 주게.”

“여기 있습니다.”

이무명이 보따리를 내밀자 때마침 의원이 달려왔다.

순간 이무명은 겨우 비명을 참았다.

달려오는 의원이 한빈이나 장자명이 아닌 다른 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군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이 불길한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무명은 겨우 표정을 수습했다.

달려온 의원이 대신 청명환이 든 한철 궤를 대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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