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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165화 (165/621)

165화. 난공불락 (2)

웅성대던 이들 중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한발 뒤로 빼려는 건가?”

“한번 들어나 보자고.”

“에이, 사 공자가 하는 얘기는 뻔하지.”

모두가 웅성거리자 가주 팽강위의 시선이 한번 쓱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가주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팽강위가 한빈을 보며 턱짓했다.

“무슨 논의인지 말해 보아라.”

“네, 저는 포상도 중요하지만, 실패에 따른 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논의가 끝나면 장운현에 대한 관리는 제가 맡겠습니다.”

한빈의 말이 끝나자 원로와 각주 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실패했을 때 벌을 자청하는 한빈의 제안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가주 팽강위도 한빈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의 침묵이 이어진 후 가주 팽강위가 말했다.

“흑사문이 무서운 것은 그들의 힘이 아니다. 알고 있느냐?”

“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잃을 것이 없는 사파의 쓰레기다. 그것이 바로 장운현에 있는 사파고 그중 우두머리가 흑사문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가 장우현을//장우현을 관리하겠다고? 네가 그곳을 맡겠다고 하는 순간, 네 어깨에는 가문이 아닌 우리 가문과 연관된 상인의 목숨이 달리게 된다. 그들은 너를 물고 늘어지지 않고 힘없는 상인을 물 것이다. 마치 미친개처럼 말이다. 그래도 감당하겠느냐?”

“네, 감당하겠습니다.”

한빈이 한 발 앞으로 나서 포권했다.

그 모습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한빈의 행동은 스스로 수렁으로 한 발 내디디는 것이었다.

모든 상황은 한빈의 돌발 행동에 의해 정리되었다.

포상과 벌도 정해졌다.

포상은 한빈이 장운현에서 돌아와 요청하기로 했다.실패했을 시 벌로는 그 책임을 물어 즉시 소가주 후보의 직책에서 내리기로 했다.

가주전에 모였던 이들은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가주 팽강위가 힐끔 옆을 보고 말했다.

“한바탕 전쟁이 끝났군.”

“그렇습니다, 형님. 간만에 가문이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대답한 이는 집법당주이자 가주의 동생인 팽대위였다.

“자네는 막내가 성공할 것으로 보는가?”

“물론 실패 쪽이지요. 어떻게 관리하는 상점에서 불만 하나 나오지 않게 장운현의 구역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흠. 그럼 그 얘기는 이걸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 남은 백아주나 있으면 주지, 아우.”

“형님, 백아주는 누가 홈쳐 가고 없습니다.”

“홈쳐 갔다고?”

“그러게요……. 누가 홈쳐 갔을까요?”

“혹시, 아우는 날 의심하는 것인가?”

“제 눈을 피해서 백아주를 가져갈 사람은 우리 가문에서 형님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아우가 잠결에 한 잔 했을 수도 있는 거지.”

“참, 형님도……. 그걸 농담이라고 하십니까?”

“하하, 농담 아닐세.”

“그런데 말입니다. 흔적이 묘합니다.”

“무엇이 묘하다는 말인가?”

“보법이 묘합니다. 아무래도 무제자 어르신이 왔다 간 것은 아닌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 그렇겠죠. 그런데 아까는 왜 그러셨습니까?”

“내가 실수라도 했던가?”

가주 팽강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막내에게 오행 패에 대한 시험을 완수했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성공했으면 그놈이 가만히 있었겠나?”

“하긴 그렇죠. 성공했으면 황보세가에서 밀서가 왔을 테죠.”

“그렇지. 황보세가 가주가 아무 조건 없이 오행 패에 서명했을 리도 없고, 또 만약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막내가 그걸 숨길 리도 없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저도 형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건 그렇고 하북 회합이 다음 달이라죠?”

“그렇다네. 아우도 시간 되면 참석하게.”

“싫습니다. 돈 얘기가 오갈 텐데 거기에 제가 끼어서 뭐 합니까?”

“허허, 돈이 있어야 술도 마시지.”

“저는 형님께 뜯어서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보태시죠.”

집법당주 팽대위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벌렸다.

그 손위로 묵직한 전낭 하나가 올려졌다.

탁.

뜻밖에 상황에 놀란 팽대위가 물었다.

“이게 웬 떡, 아니 돈입니까?”

“달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도 갑자기 이러시니 걱정됩니다, 형님.”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첫째와 막내 놈의 행동이 과하다 싶으면 바로 내게 전하게.”

“이 돈의 정체가 수고비였군요.”

“수고비치고는 많이 넣었네, 아우.”

말을 마친 팽강위는 빠른 동작으로 팽대위의 허리에 있는 호리병을 낚아챘다.

획!

“아, 형님, 또 제 술을 왜 가져가십니까?”

“술값은 지금 줬지 않나?”

“지금 주신 건 제 술값이 아니라 수고비입니다.”

“실력 있으면 뺏어 보든가? 오랜만에 몸 좀 풀게.”

“좋죠. 형님.”

팽대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거도를 틀어쥐었다.

팽강위도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며 옆으로 가 병기대에서 아무 칼이나 잡았다.

챙! 챙!

몇 번의 합이 오간 후 가주전에서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가주전에서 나온 한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처소를 향해 걸어갔다.

한참을 걷던 한빈은 걸음을 멈췄다.

뒤에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만 나오시죠, 형님.”

한빈의 말에 팽혁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치가 빠르군.”

“제가 겁이 조금 많아서요. 그런데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한빈이 네가 선택한 일이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다.”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형들 중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건 첫째 형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말씀하시지요. 새겨듣겠습니다.”

“내가 아까 둘째가 장운현을 관리하지 않았다고 했지?”

“네, 그러셨죠.”

“왜 관리를 안 했는지 아느냐?”

“그야 귀찮아서가 아닐까요?”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뭐, 가문을 어떻게 집어삼킬지만 관심 있었던 정화 부인의 말에 충실했던 이 공자였다.

그가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상권이었던 장운현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한빈의 답에 팽혁빈이 살짝 웃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 하지만, 손댈 수 없어서 포기한 것이라고 본다. 즉 능력의 문제지.”

“능력의 문제라면…….”

“화경의 고수가 파리를 없앨 수 있을까?”

“흔히 하는 말로 파리 목숨이라는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화경의 고수까지 필요하겠습니까? 파리는 동네 아이들도 때려잡을 수 있죠.”

“그렇지. 하지만, 파리는 없애도 또 나타나지.”

“제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 싶으신 건가요? 형님.”

“사파는 파리와 똑같다. 정파야 우두머리 몇 놈만 족치면 설설 기기 마련이지. 그런데 사파는 우두머리 몇 놈을 족치면 우두머리가 그냥 바뀌고 끝난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네가 관리하는 장운현의 흑사문 놈들은 파리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파리다. 그놈들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사파뿐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조사한 내용이니 참고하거라.”

“감사합니다, 형님.”

한빈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게 팽혁빈의 말대로였다. 한빈은 팽혁빈이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만큼은 첫째 형의 진심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소가주 후보인데 이런 도움을 준다라?

한빈은 둘째 형과는 다른 첫째 형의 태도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것도 잠시 한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방금 해 주신 말씀 믿어도 되나요?”

“뭘 말이냐?”

“사파를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사파뿐이라는 말씀 말입니다.”

“뭐, 조사한 바로는 그렇다.”

“그럼 형님만 믿겠습니다.”

“뭘 믿는다는 말이냐?”

“그건 제 영업 비밀입니다.”

“하하, 재미있구나.”

활짝 웃는 팽혁빈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것도 잠시 표정을 수습한 팽혁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파리는 죽일 수 없다. 죽이고 나면 썩은 파리의 사체 때문에 더 많은 파리가 모여드는 법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형님의 강호행은 어땠습니까?”

“한마디로…….”

한마디로라는 단어로 시작했지만, 팽혁빈의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한빈은 강호행이란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해야 했다.

팽혁빈과 장시간에 걸쳐 대화를 더 나눈 한빈은 그의 시야에서 촘촘히 사라졌다.

그 모습에 팽혁빈은 눈매를 좁혔다.

“다쳐서는 안 되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것도 잠시 품에서 조그만 서책을 꺼냈다.

팽혁빈은 조용히 서책에 적힌 내용을 다시 살폈다.

이것은 친구 모용진우에게 받은 조사 내용이었다.

하북의 상황에 더해 막내 한빈에 대해 조사한 것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막내였다.

아니 평범하다기보다는 불쌍해 보였다.

팽혁빈이 강호행을 나가기 전에 가장 걸렸던 것이 막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수년간의 강호행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막내는 변해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청량한 하늘에 겹겹이 쌓인 구름만큼 팽혁빈의 의문도 늘어났다.

* * *

하북팽가 내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한빈은 문턱을 넘지 않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얼핏 본 사람들만 열 명이 넘었다.

홍칠개에서부터 천리표국의 윤 표두까지.

한빈의 방이 그리 작은 편은 아니지만, 지금 모인 이들 덕분인지 비좁게 보였다.

의문도 잠시 한빈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이 정도면 안개마을이라 불리는 장운현에서 자신을 도와줄 인물들이 어느 정도 추려지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한빈은 표정을 감추고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들 여기에서 뭐 하십니까?”

와글와글 수다를 떨던 이들이 한빈의 목소리에 멈췄다.

고개를 돌리고 한빈을 바라보는 이들.

그들과 시선을 마주친 한빈이 다시 물었다.

“사부님은 정의맹 일 때문에 바쁘시다고 하지 않았나요?”

“오호, 제자야. 이제 왔구나. 정의맹 일은 팔팔한 놈에게 맡겨 놨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그때 홍칠개의 뒤쪽에서 서재오가 슬며시 튀어나왔다.

“그 팔팔한 놈이 바로 접니까? 어르신!”

“하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온다더니…….”

홍칠개가 활짝 웃자 서재오는 억울하다는 듯 재빨리 그의 말을 잘랐다.

“저 아까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바쁜 사람입니다, 어르신.”

“누가 뭐라나?”

그들이 아옹다옹하자 한빈이 물었다.

“사질뻘 되는 서 대협은 여기에 왜 오신 겁니까? 검과 매화 패는 제가 설화에게 맡겨 놨는데요.”

“그러니까. 그 설화가 문제일세.”

“설화가요?”

한빈이 고개를 갸웃할 때 어디선가 설화가 쓱 튀어나왔다.

“공자님, 저 여기 있어요.”

“그래, 설화 왔구나. 지금 서 대협이 하는 얘기가 뭐지?”

“공자님께 허락받을 게 있어서요.”

“나한테? 당과 얘기는 아닐 테고…….”

“네, 당과 얘기는 아니에요. 제가 화산파 아저씨하고 한 내기가 있거든요.”

“내기라?”

“술래잡기요. 아저씨가 밤새 저를 못 잡으면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거든요.”

“그건 나도 기억나는구나, 설화야.”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지켜보던 홍칠개가 손뼉을 쳤다.

짝.

“그래, 그 약속은 나도 기억난다.”

뒤쪽에 있던 심미호와 소대섭도 고개를 끄덕이자 서재오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아, 그래서 당과 사 준다는데, 설화가 싫다고 하잖나!”

“제 소원은 당과가 아니거든요, 화산파 아저씨.”

설화가 고개를 흔들자 서재오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네가 당과 말고 소원이 어디 있어?”

“있거든요.”

마치 아이가 싸우듯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둘.

한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일단 그만하고 설화는 매화 패와 매화삼경을 사질뻘 되는 서 대협에게 내어 드려라.”

“네, 공자님.”

설화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서재오에게 백색 무명천에 싸인 매화 패와 검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서재오는 무명천을 걷어 내고 자신의 물건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드디어, 드디어…….”

서재오가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할 때, 한빈이 설화를 물어봤다.

“이제는 설화 차례지. 서 대협에게 요구할 소원을 말해 봐.”

“저게 가지고 싶어요.”

설화가 힘차게 팔을 들어 올려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순간 감격에 떨고 있던 서재오는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갑자기 부담스러운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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