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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08화 (208/621)

208화. 뜻밖의 보상 (3)

강유찬은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 가죽 주머니를 바라봤다.

한빈이 두 손으로 받았다.

“알겠습니다, 대인.”

한빈은 건네받은 가죽 주머니를 품속에 넣었다.

강유찬은 한빈에게는 용무가 끝났다는 듯 시선을 서재오에게 건넸다.

시선이 마주친 서재오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씩 웃은 강유찬은 나머지 주머니를 서재오에게 건넸다.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빈과 서재오는 막사에서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가죽 주머니를 주기 위해 부른 것 같았다.

막사를 빠져나오던 서재오가 한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가죽 주머니에 든 물건을 아느냐는 눈빛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한빈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른다는 뜻이었다.

적혈맹호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 한빈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에…….”

한빈이 주운 것은 이무명이 항상 목에 걸고 있는 나무 목걸이였다.

아무래도 줄이 낡아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한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화가 답했다.

“아까 급하게 자리를 피하면서 떨어뜨렸나 봐요.”

“흠, 그런가 보네. 이거 소중한 거라고 끔찍이 여기던데 말이야. 무명이 보면 전해라.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라고.”

“네, 공자님.”

설화가 목걸이를 품속에 넣었다.

한빈이 모두에게 외쳤다.

“이제 출발!”

* * *

삼 일 후.

오랜만에 하북팽가 내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한빈은 탁자 위에 물건 두 개를 펼쳐 놓았다.

한 개는 강유찬이 준 가죽 주머니에 든 물건이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호패.

전에 받은 붉은색의 만마 패와 모양은 같지만, 그 색이 황금빛이었다.

이것은 황룡 패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황룡 패는 개국 당시 백 개를 만들어서 개국공신들에게 나눠 줬다고 전해지는 물건이다.

한빈은 이 물건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

왕족에 준하는 면책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보물이었다.

강유찬이 혼자 있을 때 열어 보라고 한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왜 이걸 내게…….”

고민도 잠시, 한빈은 씩 웃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한빈이 내린 결론이었다.

다만, 서재오도 같은 물건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하북팽가로 오지 않고 적혈맹호대와 함께 천수장으로 갔다.

천수장의 빈객이지, 하북팽가의 빈객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한빈은 두 번째 물건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번째도 묘하게 황금색을 띤 물건이었다.

얼핏 보면 손톱만 한 바늘이었다.

그런데, 안력을 돋워 자세히 보면 열쇠 모양이었다.

“황금시(黃金匙)라…….”

황금시란, 간단하게 황금 열쇠를 말한다.

한빈은 말끝을 흐렸다.

이것으로 무엇을 열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황금시는 금 구슬 속에서 나온 물건이었다.

이것은 용린검법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 분명했다.

문제는 전생의 기억에도 없는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한빈은 황금시를 다시 금 구슬 속에 넣었다.

처음 열 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여닫는 것이 가능했다.

한빈이 황금시와 황룡 패를 막 정리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공자님, 가주님께서 찾으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설화였다.

한빈은 옆에 있던 보따리를 설화에게 던졌다.

획!

설화가 반사적으로 보따리를 받았다.

“묵직한데요, 공자님?”

설화는 묵직한 보따리가 자신의 성과라도 되는 듯 흐뭇한 표정이다.

설화가 보따리를 보고 있을 때, 한빈은 재빨리 가주전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걷던 한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설화 네가 왜 온 거지?”

“철노 아저씨가 많이 아파요.”

“흠, 철노가 아프다고?”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자 설화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공자님.”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렇지. 철노가 아픈 걸 본 일이 없었거든.”

“아, 그랬구나. 어쩐지…….”

“어쩐지라니?”

“목소리까지 힘이 없는 것이, 많이 아픈 것 같아서요. 원래 평상시에 안 앓던 사람이 한번 아프면 크게 앓잖아요.”

“철노가 그렇게 아파?”

“아마 제일 아픈 건 가슴일 거예요.”

설화가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재잘재잘 철노의 일을 털어놨다.

“그러니까…….”

뭐, 요약하면 철노가 좋아하던 수정이라는 여인이 편지 한 장만 남겨 놓고 떠났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 후유증이 심각한 것 같았다.

모든 얘기를 마친 설화는 한빈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공자님은 놀라지 않으시네요?”

“뭐,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누가 보면 공자님이 반로환동한 노인네인 줄 알겠어요.”

“하하, 그런가?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뭔데요?”

“수정이 줬다는 편지 내용은 뭐였어?”

“그게……. 조금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네요.”

“헉.”

한빈이 입을 떡 벌렸다.

그만큼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음식점을 하던 여인이 강해져서 돌아오겠다니?

장운현에서 고수들과 검을 겨누던 때보다 더 놀란 한빈이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헤헤.”

“왜 웃어?”

“그렇게 놀란 모습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

“흠.”

한빈은 헛기침하며 앞서 나갔다.

생각해 보니 전생에 철노와 헤어진 것이 이때쯤이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주전에 도착했다.

과거로 돌아와 처음 발길을 내디뎠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에, 한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가주전으로 들어가니, 각주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었다.

한빈은 천천히 가주 팽강위 앞으로 걸어갔다.

터벅터벅.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뭐, 못마땅한 시선이 아닌 질투가 섞인 느낌이었다.

한빈은 시선을 모른 척하고 팽강위의 앞에 서서 포권했다.

“지시하신 일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간단히 보고하라.”

근엄한 말투에 비해 팽강위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한빈과 적혈맹호대의 활약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던 바.

지금은 그 활약을 모두에게 보여 주기 위한 무대였다.

한빈이 설화를 힐끔 바라봤다.

설화가 들고 있던 보따리를 가져왔다.

한빈은 그 보따리를 바로 팽강위에게 바쳤다.

보따리를 건네받은 팽강위가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장운현에 있는 상인과 문파들에게 받은 계약서입니다. 간단히 말해, 장운현의 삼 분의 이는 우리 가문과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오호, 삼 분의 이라면, 장운현 상권의 대부분이 아니더냐?”

“네, 맞습니다.”

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각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던 거야?”

“그러게 말일세. 삼 분의 이면, 사파에 속했던 상인들도 우리와 거래를 하겠다고 했다는 건데…….”

“그러게 그게 말이 되는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단시간에 장운현의 민심을 돌이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사파와 결탁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에이, 경을 칠 소리는 하지 말게.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사파와 결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소문이지.”

아직도 한빈이 못마땅한 듯 몇몇 각주가 웅성거렸다.

그 술렁임을 잠재운 것은 팽강위였다.

팽강위가 내공을 실어 발을 굴렀다.

쿵.

탁자가 흔들릴 정도의 진동.

웅성거리던 이들이 바로 입을 닫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한 장면.

팽강위가 진지한 눈빛으로 한빈을 바라봤다.

“사파와 네가 관련 있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네가 직접 해명해야 할 듯싶구나.”

“원하시면 해명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 보따리에 든 서류 중 가장 아래에 있는 계약서를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서류라…….”

말끝을 흐린 팽강위는 한빈의 말대로 맨 아래의 종이를 꺼냈다.

계약서를 보던 팽강위의 입술이 실룩이기 시작했다.

한빈이 말한 서류를 모두 읽고 난 팽강위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팽강위가 왜 웃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 각주들의 표정은 모두 한결같았다.

팽강위는 옆에 있던 집법당주 팽대위에게 계약서를 넘겼다.

휙.

넘겨받은 팽대위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물론 계약서를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난독증이 있기에, 복잡한 문구가 쓰여 있는 계약서를 보기도 전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 것.

그 모습에 한빈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서류를 낚아챈 한빈은 각주들을 쓱 들러보다가 시선을 멈췄다.

그곳에는 정보를 담당하는 주작각의 각주 가기군이 있었다.

한빈은 계약서를 날렸다.

물론 계약서를 날린 수법에는 용린검법의 효용을 담았다.

‘백발백중.’

공력도 실리지 않은 종잇장이 가기군을 향해 날아갔다.

이 수법에 주작각주 가기군은 눈을 크게 떴다.

공력을 실어서 날린다고 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공력이 실리지 않은 서류였다.

정확도만 가지고 흐물거리는 종이를 열 걸음 밖에 있는 자에게 날린다라?

이것은 화경의 고수가 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확성과 사물의 성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수준.

경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한빈이 던진 계약서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가기군의 앞에 날아갔다.

가기군은 조심스럽게 계약서를 낚아챘다.

계약서를 손에 넣은 가기군은 한빈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감정은 놀라움 반 존경심 반이었다.

그만큼 한빈의 수법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가기군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계약서를 펼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계약서를 보다가 중요한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흑사문은 장운현에서의 모든 권리를…….”

가기군이 읽고 있는 것은 흑사문이 한빈에게 써 주었던 계약서였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계약서에 모두는 입을 떡 벌렸다.

흑사문은 저렇게 숙이고 들어올 문파가 아니었다.

강북 사파 중에서도 악랄하고 비겁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문파였다.

그런데 저리 숙인다라?

계약서를 모두 읽은 가기군이 한빈을 다시 바라봤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시선을 받은 한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작각주님께 들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결탁을 해서 저런 약조를 받아 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

한빈의 말에 답하는 이는 없었다.

한빈은 이번만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

가문 내에서 입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가문 내의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을 아예 없애기로 한 것이었다.

각주 하나하나를 쏘아보며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사파에게 고개를 숙인 것으로 보이십니까?”

“…….”

역시 답하는 이는 없었다.

“제가 팽가의 명예에 누를 끼쳤습니까?”

“…….”

“가장 악독하다는 흑사문이 무엇에 굴복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

한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모두가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듯 주위를 바라봤다.

어떤 각주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한빈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에게 가까이 간 한빈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들이 굴복한 것은 제가 아니라 팽가의 힘입니다. 팽가의 힘.”

“팽가의 힘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가주님, 제 뒤에 팽가가 없었다면 저들이 제게 굴복했겠습니까?”

“…….”

“제가 사파와 결탁했다는 의심을 품는 자는 저를 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리 말하는 것 자체가 팽가가 사파와 결탁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각 이후 그런 자가 있다면…….”

한빈은 살짝 말끝을 흐리며 다시 그들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월아를 뽑았다.

스릉.

동시에 한빈이 외쳤다.

“소가주 후보로서 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월아를 다시 검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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