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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42화 (242/621)

242화. 범인은 바로 이곳에 (5)

그것은 대부분 적혈맹호대의 목소리였다.

즉, 안타까움의 탄성.

하지만, 그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무를 바라보고 있던 조호만은 눈을 빛냈다.

조호는 장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장삼의 형제보다, 그의 부모보다도 말이다.

그것은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장삼의 무공에 대해서는 조호가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 맞으니까.

살짝 옷자락을 스쳤지만,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거기에 장삼이 피한 동작이 묘했다.

단순히 무게중심을 아래로 두고 몸을 젖힌 것이 아니었다.

장삼은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신창양가의 무사에게 파고들었다.

사삭.

장삼의 무릎이 연무장 바닥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내공을 하체에 모아서 방아깨비 뛰듯 품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것도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이는 상태에서 말이다.

하지만, 무릎이 바닥에 닿은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아래쪽으로 바닥에 바싹 붙어서 마치 무릎을 꿇은 듯, 누워 있는 듯 보일 뿐이었다.

위쪽은 신창양가 무사의 창이 장악하게 내버려 둔 대신 아래쪽을 택한 장삼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일단 장삼의 선택은 맞았다.

도법을 펼칠 수 있는 간격 안으로 파고드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모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뒤쪽으로 몸을 젖힌 채 장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모두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장삼이 도를 바닥에 꽂았다.

팍.

청강석으로 된 바닥에 꽂힌 것은 아니지만, 가죽으로 감싼 덕분에 몸을 지탱하기는 충분했다.

뭐, 중심을 잡기에는 더 편해 보였다.

그 상태로 장삼의 다리가 상대의 하체를 향해 날아갔다.

쓰윽.

빗자루로 바닥을 쓸듯이 날아오는 장삼의 공격에 모두는 탄성을 흘렸다.

그만큼 장삼의 공격은 창의적이었다.

장삼과 맞서던 신창양가의 무사는 눈을 크게 떴다. 장삼의 공격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당장 저 공격을 못 막는다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장삼의 공격 방향은 미리 무게중심을 어떻게 옮길지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창양가 무사는 진왕마기의 초식으로 단번에 장삼을 제압하려 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신창양가의 무사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개구리처럼 뛰어올랐다.

장삼의 다리 공격을 피하고 반대쪽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이었다.

붕.

그의 몸이 장삼의 상체를 지나갔다.

순간 신창양가 무사는 등골이 오싹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무인으로서의 본능.

눈에 보이는 위협은 없었지만, 신창양가의 무사는 재빨리 창대를 힘껏 꼬나잡고 앞을 막았다.

그때였다.

굉음이 울렸다.

카-앙!

동시에 신창양가 무사가 날아오르던 방향 그대로 튕겨 나갔다.

쿵!

데구르르.

연무장 끝까지 구르는 신창양가의 무사.

장삼은 중앙에서.

신창양가의 무사는 연무장의 끝쪽에서 다시 몸을 세웠다.

누가 봐도 신창양가의 무사가 낭패한 모습이었다.

구경하던 신창양가의 무사 중 하나가 말했다.

“하북팽가의 도법 중 저런 초식이 있었습니까?”

“그러게, 나도 처음 보는군.”

신창양가 무력대의 대주가 답하자, 다른 무사가 끼어들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정말이군요. 저런 실력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대주.”

“맞네. 어찌 보면 우리가 산서 안의 개구리였던 것 같네.”

“누가 이길까요?”

“무공의 경지로만 보면 신창양가가 질 리 있겠나?”

“이렇게 당했는데도요?”

“잘 보게, 하북팽가의 저 무사는 호흡이 거칠어졌네. 이번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증거지. 앞으로 삼 합 안에 승부가 결정 날 것이야.”

하지만, 신창양가 무사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챙, 챙.

도신과 창대가 계속 맞부딪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연무장 바닥에 깔린 두 무사의 그림자마저 눈에 띄게 방향이 바뀌었다.

챙, 챙.

신창양가 무사들과 적혈맹호대 대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정도면 벌써 승부가 났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자세히 보면 둘의 창과 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 상태였지만, 그 기세만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장삼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그가 지금 펼치는 하북팽가의 초식은 모두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마음은 안정되었다.

마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펼치는 동작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깨달음의 끝자락일 것이라 장삼은 생각했다.

쿵. 쿵.

장삼의 심장이 더욱 빨리 시작했다.

가슴에서 속도를 붙인 피가 혈도를 타고 점점 빨라진다.

빨라진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천 리를 뛰어온 늙은 당나귀의 다리처럼 축 늘어졌던 근육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챙, 챙.

장삼의 도(刀)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신창양가 무사는 장삼의 모습을 하나로 평가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죽기 직전에 잠시 기운을 찾는다는 의미였다.

신창양가 무사는 이것이 상대의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했다.

그는 상대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사실 그는 신창양가 무력대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사였다.

그는 이제 자부심을 지킬 때라 생각했다.

모든 진기를 상체로 모으고 초식을 펼쳤다.

물론 친선 비무의 규칙대로, 창으로 진기를 내보내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상대의 칼이 일도양단의 기세로 날아왔다.

슝!

신창양가의 무사는 부드럽게 상대, 즉 장삼의 칼을 흘려보냈다.

그러고는 짧게 쥐었던 창을 길게 뻗었다.

모아 둔 공간만큼 창은 속도를 더해 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

장삼의 칼을 묘하게 방향을 바꾸었다.

신창양가 무사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길게 뻗었던 창을 빼내었다.

장삼의 칼이 그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팽가 도법의 기본인 왕자사도(王子四刀).

신창양가 무사는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창을 지그시 아래쪽으로 눌렀다.

붕!

탁!

연무장 바닥과 장삼의 도가 맞닿았다.

신창양가 무사가 승기를 잡은 듯 장삼의 가슴을 향해 창대를 밀어 넣었다.

그때 바닥에서부터 튀어 오르는 장삼의 도.

그때 장삼의 도가 멈췄다.

장삼의 가슴을 향해 나가던 신창양가의 창도 멈췄다.

신창양가 무사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음.”

하지만, 그 신음의 의미를 아닌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서로 멈췄지만, 신창양가 창날이 상대의 몸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멈춘 상태에서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이 대결의 마지막 장면을 되새김질하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장면에 모두는 침도 삼키지 않았다.

그때 유일하게 소리를 내는 이가 있었다.

그는 장오였다.

장오는 손뼉을 쳤다.

짝!

그러더니 조호에게 말했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어.”

상기된 장오의 표정을 본 조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당신의 형이 졌는데, 그리 기분이 좋나요?”

“그럼, 좋지. 내 형이 승부에서 지는 것은 당연한 거고 내가 이 내기에서 이긴 것도 당연한 일이지.”

장오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참 인생을 쉽게 사셨네요.”

“뭐라고? 네놈이 아무리 그래 봤자 내기는 내가 이겼다. 이건 내가 가지고 가지.”

장오는 조호가 내놓았던 전낭을 가져가려고 했다.

그때 조호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

“사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기냐?”

“잘 보시죠, 당신의 형님과 상대편의 모습을요.”

조호가 턱짓으로 연무장을 가리켰다.

장오는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이 장삼의 동생임을 상대가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이긴 내기 앞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모두는 장삼과 신창양가의 무사를 기다렸다.

그것이 이런 멋진 비무를 펼친 둘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창양가 무사였다.

그는 재빨리 창을 거두고 포권했다.

“졌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로지 팔짱을 끼고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홍칠개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이 지금의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던 것이었다.

모두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눈매를 좁혔다.

그때 연무장 중앙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오였다.

장오는 지금이 어떤 자리인지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자신이 어찌하여 홍칠개에게 끌려왔는지.

이곳이 신창양가와 하북팽가라는 무림세가가 비무를 하고 있는 연무장이라는 것도.

모두 잊은 채 달려갔다.

장오는 억울하다는 듯 신창양가의 무사에게 외쳤다.

“분명히 당신이 이겼는데, 왜 졌다고 하는 것이오! 지금 승부를 조작하려는 것이오?”

따지듯 묻는 장오의 모습에, 신창양가 무사는 창날을 돌렸다.

휙!

가죽에 덮인 창날이 장오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내공도 없고 기세도 실리지 않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온 창날에 장오는 석상이 되어 버렸다.

사실 창날이 날아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

눈 한번 깜빡한 사이 창날이 눈앞에 와 있으니 바로 얼어붙은 것이다.

문제는 상대의 의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장오는 자신의 행동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장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사 나으리, 제게 왜 그러십니까? 저는 무사 나으리를 응원했을…….”

장오는 말을 맺지 못했다.

신창양가의 무사가 창을 살짝 움직였기 때문이다.

쓱.

눈앞에서 돌아가는 창날에 장오는 입만 벌렸다.

순간 신창양가의 무사가 입을 열었다.

“벗겨 보시죠.”

“벗기다니…….”

“창끝의 덮개를 벗겨 보시지요.”

신창양가 무사의 말투는 정중했다.

장오는 가슴을 쓸어내린 후, 창날을 덮고 있는 가죽을 벗겨 냈다.

휘릭.

벗겨진 가죽 덮개가 힘없이 연무장 바닥에 떨어졌다.

낙엽처럼 떨어지는 덮개를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장오도 마찬가지였다.

창날을 바라보는 장오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창대에 고정되어야 할 창날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신창양가의 무사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이 창날을 빼면 장삼 무사님의 칼이 더 가까웠소.”

“…….”

“더 중요한 것은 이 창날이 부러졌다는 점이오. 창술을 쓰는 무사의 창날이 부러졌다라…….”

“…….”

“그것은 할 말 없는 제 패배입니다.”

말을 마친 신창양가의 무사는 장삼을 바라보며 포권했다.

그 모습에 장삼이 답했다.

“아닙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대협.”

“대협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신창약가의 무사가 손을 내젓자 장삼이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사실 정면으로 대결하기에는 제가 조금 부족했습니다.”

승부가 나자 둘 사이에 덕담이 오고 갔다.

동시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손뼉을 쳤다.

짝, 짝.

팽팽하게 당긴 끈이 한순간 풀리는 분위기.

하지만, 유일하게 고개 숙인 이가 있었다.

장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홍칠개와 조호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뒤쪽에서 장삼이 불렀다.

“여기는 웬일이더냐? 장오야.”

“내가 여기 오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오.

하지만, 장삼은 아무 말 없이 장오를 지나쳤다.

마치 아무도 없다는 듯 장오가 있는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장삼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오의 눈이 커졌다.

늙다리 무인으로만 생각됐던 형, 장삼이 태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장오의 눈빛이 사정없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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