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사천으로 (3)
그곳에는 검은 상자, 즉 처음에 황보만청이 가져왔던 천궁 크기의 반쪽 정도의 상자였다.
한빈은 반쪽은 놔두고, 반쪽만 가져온 것이었다.
거기에 부러진 검 자루는 대체 뭐란 말인가?
마치 재미있는 수수께끼라는 듯 당과를 베어 물며 부러진 검을 바라보던 설화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과를 다 먹자 모든 신경이 부러진 검에 쏠린 것이다.
설화의 표정을 본 한빈이 재미있다는 듯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설화야.”
“네, 공자님.”
“궁금해?”
“사실 궁금해요, 공자님. 저게 대체 뭐예요? 비밀은 푸신 거예요?”
“풀긴 풀었지만, 맨입으로는 안 되지. 정 궁금하면 철전 다섯 닢.”
“아, 공자님, 당과값도 모자란데,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저기 있잖아.”
한빈은 마차의 뒤편을 가리켰다.
설화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지난번에도 비상금을 마차 뒤쪽에 숨겼잖아.”
“아.”
설화가 탄성과 함께 볼을 부풀렸다.
그 모습에 한빈이 검지를 펴며 말했다.
“공짜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이건 비밀이니까.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설화야.”
“네, 물론이죠, 공자님.”
“흠, 그러니까……. 알고 보니 이 천궁도 열쇠더라고.”
“열쇠라니요? 그러면 저 부러진 검은 뭐에요?”
“열쇠로 얻은 것이 바로 이 반쪽짜리 검이야.”
“그럼 보물 상자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것도 천수장에요? 대체 어디에요?”
“공짜 질문은 끝났다, 설화야.”
“…….”
설화가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궁금하면 하나씩……. 그리고 돈 내고 물어보렴.”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요.”
설화는 고개를 획 돌려 꾸벅꾸벅 조는 청화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청화를 깨우려는 모양이었다.
한빈은 조용히 옆자리에 있는 부러진 검을 바라봤다.
설화에게 한 말을 사실이었다.
천궁 속 지도는 두 군데가 황산에 녹아 내려 목표 지점이 어딘지가 불분명했었다.
하지만, 한빈은 지도를 연구한 끝에 녹아내린 부분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황산으로 녹아내린 것조차 안배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두 곳.
바로 천수장과 사천당가였다.
천수장에 있던 비밀 공간은 찾았고. 이제 남은 것은 사천 쪽에 있는 비밀 공간이었다.
물론 정확한 지점은 어딘지는 가서 알아봐야 했다.
사천당가에 가서 둘러보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천궁 자체가 열쇠이니 거기에 맞는 열쇠 구멍은 제법 클 터.
천수장에 있는 열쇠 구멍도 천궁의 반쪽이 들어갈 만큼 컸었다.
그렇다면 반쪽짜리 검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빈이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
아마도 반쪽짜리 검을 얻게 되면 그 수수께끼는 풀릴 것이었다.
한빈은 저 검이 용린검법이 남긴 신물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용린검법의 다음 단계로 가는 열쇠가 분명할 것이었다.
한빈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며칠 후.
그들은 드디어 장하의 나루터에 도착했다.
한빈의 마차가 멈춘 것은 장하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에 들어선 다루였다.
한빈이 막 다루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조호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주군, 큰일 났어요.”
한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선가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시원한 강바람만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다만, 조호의 얼굴만이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소상히 말해 봐라.”
“비둘기가 다 도망치고 없습니다.”
“비둘기라니?”
“전서구로 쓰는 비둘기 말이에요. 저기 보세요.”
조호는 떨리는 손으로 마차의 위쪽을 가리켰다.
마차 위에는 전에 하남정가로 갈 때처럼 비둘기를 넣을 수 있는 새장이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조호의 말대로 새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때 장삼도 헉헉대며 한빈에게 뛰어왔다.
“주군, 아무리 찾아봐도 도망간 비둘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장삼도 얼굴이 새파래져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한숨을 쉬었다.
“휴…….”
“죄송합니다. 저희를 문책하셔도 할 말이 없습…….”
장삼은 말끝을 흐렸다.
한빈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빈은 미간을 좁혔다.
“장삼, 조호, 잘 들어. 지금 가장 큰 죄는 너희의 죄가 뭔지를 모르고 있다는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장삼이 눈을 크게 뜨며 묻자 한빈이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
“네, 경청하겠습니다. 주군.”
“비둘기를 원래부터 없었어.”
한빈의 말에 장삼의 눈이 커졌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 비둘기는 원래 없었어. 천수장에서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잘 떠올려 봐.”
한빈이 마차의 위쪽에 올려진 빈 새장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장삼이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비둘기를…….”
한빈의 말에 반박하려던 장삼은 말끝을 흐렸다.
천수장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다가 의문이 떠오른 것이었다.
한빈의 말대로 비둘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었다.
새장을 위쪽이 올려놓고 검은색 천을 덮고 왔다.
새장을 올려놓은 것도 장삼이나 조호가 한 일은 아니었다.
설화가 직접 새장을 저 위에 올려놨다.
장삼은 새장 속에 비둘기가 있으리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장삼은 힐끔 고개를 돌렸다.
조호를 바라본 것이다. 조호는 장삼과 다르게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장삼은 재빨리 자신이 깨달은 바를 조호에게 전했다.
그제야 조호의 눈도 점점 커졌다.
“주군, 그게 정말이에요?”
“당연하지. 내가 왜 너희에게 거짓을 말하겠냐?”
“그런데 왜 빈 새장을 가져오신 겁니까? 주군.”
“그게 궁금하면 직접 알아봐야지, 조호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주군.”
“정답을 알아낼 때까지는 밥은 없다. 그게 내가 내리는 벌이다.”
“네?”
조호의 눈에 한계까지 커졌다.
그때 뒤늦게 소대섭이 달려와 한빈 앞에서 멈췄다.
“주군, 마차를 싣고 장하를 건널 만한 배는 내일 아침에나 있답니다.”
“수고했어, 소대섭 대주.”
“그럼 먼저 식사를…….”
“잠시만, 소대섭 대주.”
“네, 주군.”
“방금 조호와 장삼에게 문제 낸 게 있거든. 소 대주도 같이 남아서 풀어 봐.”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문제라니요?”
“자세한 설명은 조호한테 들어.”
말을 마친 한빈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은 설화와 청화를 데리고 다루로 데려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조호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에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죠? 장삼 아저씨.”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때 소대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장삼.”
“아, 대주님. 그러니까…….”
장삼이 소대섭에게 한빈과의 대화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소대섭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랬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건 우리의 실수다.”
“실수라니요? 안에 비둘기가 있다고 착각한 죄밖에 없는데, 그게 죽을죄입니까?”
“저 위에 살수가 잠복해 있었다면?”
“…….”
조호와 장삼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둘의 눈이 살짝 커졌을 뿐이었다.
“저 위에 벽력탄이 뒹굴고 있었다면?”
“…….”
둘은 입까지 살짝 벌렸다.
소대섭의 말에 자신들의 안일함을 깨친 것이었다.
소대섭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적이 저 위에 무슨 짓을 해 놨다면?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 맞다. 우리는 주군의 호위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더냐? 그렇다면 모든 것을 살폈어야 정상이다.”
“아, 생각해 보니 그게 맞습니다.”
장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섭의 말 중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자신은 한빈의 호위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어떠한가?
무슨 일이 벌어지면 주군, 즉 한빈이 나서 줄 것이라 생각하며 편안히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조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대주, 그런데 주군이 낸 문제의 정답은 뭐죠?”
“그것은…….”
소대섭이 살짝 말끝을 흐리자, 조호가 재촉했다.
“말씀해 주시죠, 대주. 그래야 저희도 밥을 먹죠.”
조호는 애처로운 눈으로 소대섭을 바라봤다.
그때 조호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조호의 배를 힐끔 본 소대섭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말을 마친 그는 조용히 마차 위에 빈 새장을 바라봤다.
한빈이 왜 빈 새장을 가져왔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저 새장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설화에게 들었었다.
새장에 가득 차 있던 비둘기는 분명 위협용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빈 새장을 가져왔을까?
혹시 저 새장에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는 것일까?
소대섭은 재빨리 마차 위로 날아올랐다.
휙!
마차 위에 선 소대섭은 새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범한 새장일 뿐, 아무런 특징도 없었다.
그때 소대섭의 배에서도 소리가 울렸다.
꼬르륵.
셋은 동시에 서로의 배를 바라봤다.
* * *
다루 안에 들어선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으로 올라선 한빈은 다시 삼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자기 집에 온 듯한 한빈에 행보에 안내하던 점소이는 깜짝 놀랐다.
“손님, 잠시만요. 그곳은 이곳 루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알아, 그러니까 가는 거지.”
한빈은 다시 몸을 돌렸다.
점소이는 다급한지 한빈의 소매를 잡았다.
그 모습에 뒤따르던 설화는 우혈랑검을 숨겨 놓은 허리에 손을 대었다.
여차하면 언제든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화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방금 점소이가 한빈의 소매를 잡은 수법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무림인의 금나수였다.
점소이는 한빈이 꼼짝할 수 없도록 묘한 움직임으로 소매를 잡았다.
일반인이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는 법.
그리고 점소이가 저런 무공을 가지고 있는 다루가 평범한 곳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옆에 서 있던 청화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옆에 있는 설화의 모습에 반응한 것이다.
누가 보면 당장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한빈의 성격을 보면 점소이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빈은 사람 좋은 얼굴로 점소이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점소이도 미안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손님,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곳에는 가시면…….”
“내가 누군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네?”
“내가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나를 막느냐는 말이지.”
“손님이 이곳의 주인일 리가 없는 일 아닙니까? 이곳의 주인은 분명히 삼 층에 계시니…….”
“루주 말고 더 높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점소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빈이 번개처럼 품속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 문서를 보는 순간 점소이의 눈빛이 떨렸다.
그때 위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의를 갖춰 모시거라.”
“네, 루주님.”
대답을 마친 점소이는 재빨리 한빈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잡은 손을 놓고 포권했다.
“죄송합니다, 대인. 제가 몰라뵈었습니다.”
“아니야. 누군지는 몰라도 일 잘하네. 나중에 보자고.”
한빈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삼 층으로 올라갔다.
중간까지 올라가던 한빈은 잠시 멈추고 설화를 바라봤다.
“너희는 이 층에서 잠시 쉬고 있어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여기 이분한테 부탁하고.”
한빈은 검지로 점소이를 가리켰다.
설화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거기 위험해 보이는데 왜 올라가시는 거예요?”
설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위에는 뭔가 찝찝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굳이 말하면 위에 있는 자는 설화의 동종 업계 종사자라고나 할까.
즉, 살수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