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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51화 (251/621)

251화. 얘들아 손님 받아라 (1)

그 모습에 한빈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왜 잘 곳이 없고 쉴 곳도 없냐는 말이다. 산동악가가 망한 것도 아닌데, 왜 그 몰골로 여기를 어슬렁거리고 있냐는 거야. 혹시 정의맹에서 임무라도 떨어진 거야?”

악비광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대신에 당기명이 끼어들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산동악가가 건재하다니요? 망해서 이러고 다니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산동악가의 이야기가 나오자 악비광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산동악가가 왜 망해요?”

발끈한 악비광의 모습에 당기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망하지 않고서야, 이런 꼴로 다닐 리가 없지 않습니까?”

“허허, 왜 그런 판에 박힌 말씀을 하십니까? 망하지 않아도 거지꼴을 하고 다닐 수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화제가 비딱하게 돌아가려 하자, 한빈이 탁자를 쳤다.

탁.

제법 큰 소리가 객잔 일 층에 울렸다.

내공이 실린 소리는 한빈의 감정을 싣고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

그 소리가 뜻하는 것은 간단했다.

이 뜻을 못 알아듣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하던 동작을 멈추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물론 악비광과 당기명도 말을 멈췄다.

동시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한빈에게 쏟아졌다.

모두의 시선을 모은 한빈이 악비광에게 말했다.

“농담은 여기까지다. 죽을래? 아니면 말할래?”

“아, 형님. 이건 정말 개인적인 겁니다. 아무리 형님이라고 해도.”

“그럼 죽어!”

한빈이 품 안에서 좌혈랑검을 꺼냈다.

붉은빛이 감도는 검집을 본 악비광이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알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악비광은 자신이 그동안 겪었던 일에 대해서 털어놨다.

그의 이야기에 모두는 눈을 크게 떠야 했다.

뭐, 어찌 보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말인즉슨, 악비광의 불운은 영단산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빈은 하남정가로 가기 위해 장하를 건널 때를 떠올렸다.

악비광이 말한 사건의 시작은 그때였다.

영단산에 들어설 때 악비광은 무소율이 배에 남겨진 것을 깨달았다.

악비광은 배에 남겨진 무소율을 찾으러 가기 위해 한빈을 떠났다.

한빈은 그들이 잘 만났겠거니 했다.

하지만, 악비광은 장하에서 만난 수적의 무리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장하의 상류부터 하류를 뒤지기를 몇 개월.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쓰고 이 꼴이 되었다고 했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생략된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빈이 턱짓으로 나머지 거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들은 뭔데?”

“흠, 조금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말을 하려다 얼버무린 악비광은 뒤쪽에 거지를 불렀다.

악비광의 손짓에 그들 중 하나가 조용히 걸어왔다.

걸어온 이는 여자 거지였다.

한빈이 팔짱을 끼고 있자 여자 거지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씨검가의 시녀인…….”

여자 거지의 말에 한빈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무소율이 배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남았던 무씨검가의 식솔 중 하나였다.

그녀의 소개가 끝나자 이번에는 시커먼 사내 한 놈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악비광이 중간에 거둔 수적이라고 했다.

첫 번째 강도질도 하기 전에 악비광에게 발목을 잡혀 길을 안내하게 된 비운의 수적.

이 거지들의 구성을 보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슬픈 경극과도 같았다.

한빈이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악비광의 선택에 따른 비극이었다.

무씨검가의 식솔만 해도 포기하고 가문에 알리려고 했지만, 악비광이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며 막아섰다고 했다.

황당하게 모두를 바라보던 한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빈의 시선이 멈춘 곳은 악비광이었다.

“악가야, 내가 하나만 묻자.”

“네, 말씀하시죠.”

“대체 가문에서는 네가 안 보이는데 안 찾는 이유가 뭐냐?”

“흠.”

악비광은 헛기침으로 답을 대신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당기명만은 웃음 대신 안도의 한숨을 택했다.

산동악가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진 것이다.

하지만, 악비광에 대해서는 다시 평가해야 했다.

여자 하나 찾으려고 가문을 등지고 거지꼴로 기약 없이 나루터에서 대기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때 한빈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눈빛에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는 악비광이 이제는 삼광이란 호칭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악비광이 그곳에서 서성거린 의도를 대충 알 것 같다는 점.

한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악가야, 솔직히 말해 봐라. 내가 이곳을 지날지 알고 있었지?”

“아, 그게…….”

“솔직히 말하래도.”

“형님이 오신다는 건 못 들었어도, 사천당가가 귀빈을 모시고 간다는 건 들었습니다.”

“흠, 그랬구나.”

한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빈과는 다르게 당기명은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당기명이 물잔을 내려놨다.

탁.

탁자가 흔들릴 정도로 제법 큰 소리가 울리자, 악비광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봤다.

그 악비광은 뭐가 문제냐는 듯 당기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기명이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사천당가의 행로를 알고 계신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 공자, 지금 그걸 왜 나에게 따지는 겁니까?”

“지금,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하니 묻는 게 아닙니까?”

“주변에 물어보십시오. 사천당가가 남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있는지요?”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가 정보를 모으려고 해서 모든 것도 아니고. 주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것도 하루 만에요.”

“흠.”

“지나가는 거지들도 사천당가가 오니 조심하자고 눈치를 보더이다. 솔직히 사천당가가 여길 지난다는 것은 정보 축에도 못 낍니다.”

“어떻게 우리의 행로를 이토록 자세히…….”

당기명은 당황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악비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빨리 사천당가의 행로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는 것은 누군가 고의로 퍼뜨렸다는 거지요.”

악비광은 고개를 돌려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당기명이 한빈을 바라봤다.

“팽 공자는 범인이 누군지 아시는 듯합니다.”

“일단, 아까 적었던 계약서를 펼쳐 보시지요.”

“계약서라니 그게 무슨…….”

당기명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천당가의 행로를 예측해서 퍼뜨린 범인을 물었는데 난데없이 계약서를 펼치라 하자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빈의 재촉에 당기명은 아까 받았던 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서를 본 한빈이 말을 이었다.

“맨 아래부터 보시지요.”

“아래라면, 이 계약은…….”

“아니, 그거 말고 그 아래 작은 글씨 말입니다. 특약의 세 번째 조항입니다.”

한빈의 말에 당기명은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글씨가 깨알처럼 작았기 때문이다.

평소 시력이라면 자신 있던 당기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최대한 안력을 돋워야 했다.

당기명은 조항을 천천히 읽어 나갔다.

“이번 계약은 사천당가의 상황뿐 아니라 당금 강호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같이 맞서며…….”

당기명은 조항을 읽어 나가며 혀를 찼다.

모든 것을 한빈에게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정은 한빈이 하고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계약에 당기명은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정도에서 벗어난 내용은 없기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당기명이 말했다.

“네, 강호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 같이 맞서는 것에는 무조건 동의하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묻죠. 사천당가의 가주님이 앓고 계신 병이 자연스럽다 생각하십니까?”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면 대체…….”

“저는 독에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이라면…….”

“사천당가에서 제일 자신 있는 것이 독이기에 그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으셨겠죠.”

“…….”

“사천당가를 해코지한 세력이 있다면, 이번 병을 치료한다고 끝난 일일까요?”

“…….”

당기명은 계속 침묵했다. 한빈의 말은 얼토당토않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만약에 사천당가가 몰락하기를 바라는 세력이 있다면 우리가 향하는 길을 필히 막을 겁니다.”

“흠.”

당기명은 침음을 삼켰다. 한빈의 말에 점점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발등에 떨어진 불만 생각했지, 그 불이 집안 전체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빈이 그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당문 가주의 병환을 치료할 신의를 데리고 사천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으니까요.”

“헉, 그런 소문이 났단 말입니까? 팽 공자와 제가 만날 것을 어떻게 알고…….”

당기명은 적잖게 당황한 듯 살짝 숨이 거칠어졌다.

한빈은 그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은 바로 저니까. 내용은 확실할 겁니다.”

“앗.”

당기명은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툭, 데구르르.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지만, 당기명은 개의치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계약서의 한 곳을 가리켰다.

“지금 한 행동은 일반 계약 조항의 다섯 번째 사항을 위반한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놀란 상황에서 계약 위반이란 단어까지 나오자, 당기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계약 위반이라니요!”

“다섯 번째 조항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는다’이니……. 지금 모습은 누가 봐도 계약 위반이지요.”

“아.”

당기명은 탄성을 터뜨렸다.

아까 분명히 본 조항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조항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긴 것이다.

당기명의 탄성이 흐려지기도 전에 한빈이 말을 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계약을 파기하면 됩니다.”

“…….”

“단, 그때는 위약금만 지불하면 되지요.”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계약서를 가리켰다.

계약서를 본 당기명은 눈을 찔끔 감았다.

한빈이 가리킨 곳은 작은 글씨로 쓰인 특약 조항이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잠시 침묵이 맴돌자, 한빈이 설화를 바라봤다.

설화는 눈빛만으로도 한빈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안다는 듯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촤르륵.

설화가 지도를 깔끔하게 펼치자,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기명이나 악비광 모두 지도가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때 한빈이 사람 좋은 얼굴로 지도를 가리켰다.

“제가 소문을 낸 경로는 대충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한빈은 사천까지 가는 경로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순간 당기명은 입을 떡 벌렸다.

모든 것이 계획적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제 숫자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물론 주사위의 숫자가 몇 개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빈밖에는 없었다.

한빈의 설명에 당기명이 물었다.

“그럼 이 인원으로 팽 공자님을 보호해야 하는 겁니까?”

당기명이 힐끔 자신의 수하들을 바라봤다.

한빈은 기분 좋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장담컨대 이 인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하북팽가에서 나올 지원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럼 보충하시려는 인원은 어디 있습니까?”

한빈은 힐끔 악비광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악비광이 찔끔하며 몸을 틀었다.

고개만 돌린 것이 아니라 몸을 아예 돌린 것이다.

옆에서 대충 들어 보니 이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임무였다.

너구리를 잡으려면 군불을 피우면 된다는 간단한 원리였지만, 튀어나올 것이 너구리냐 호랑이냐는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태였다.

한빈은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설화는 지도는 그냥 둔 채 탁자 위에 지필묵이 든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한빈은 악비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악 공자님은 무소율 소저를 찾고 싶으신 게 맞나?”

“그건 그렇지만…….”

“뭐, 도와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

“정말입니까? 형님.”

악비광이 한빈의 옆으로 바싹 붙었다.

“…….”

한빈은 악비광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붓을 놀렸다.

사사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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