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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78화 (278/621)

278화. 누구를 위한 덫인가? (2)

한빈의 질문에 설화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설화가 말했다.

“죽일 것 같은데요.”

“누굴?”

“의뢰인을요.”

머릿속에 장면을 그리던 설화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한빈이 씩 웃으며 물었다.

“그건 왜지?”

“몸에 난 상처는 참아도 자존심에 상처 난 건 못 참는 사람이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말을 마친 설화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것.

그것도 모자라 한참 무시당하는 건 설화도 참을 수 없었다.

그 모습에 한빈이 말했다.

“이제 이해를 한 것 같구나.”

“네, 대충 이해는 했어요.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니 화살이 뇌물을 준 자에게 향할 거란 말씀이시잖아요. 그런데 그 정도로 자존심이 셀까요? 관리들은 장사꾼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장사꾼에게 자존심이 있을까?”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한빈이 웃었다.

“네 말도 맞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어.”

“그게 뭔데요?”

“관리는 그냥 장사꾼이 아니고 콧대 높은 장사꾼이지. 아마도 이곳의 현령은 흑천의 주인보다 자존심이 더 셀 것이 분명해.”

“흠, 이제는 확실하게 이해가 돼요. 관리의 자존심을 이용해서 이간계를 쓰신 거네요. 그러려면 정보를 알아야 하니 살막도 회유하신 거고. 뭔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에요.”

“다행이구나.”

“철전 다섯 닢이 아깝지 않은 강의였어요. 헤헤.”

설화는 해맑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것도 잠시 한빈의 손에 든 청자 보따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나머지 금화는 진짜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할 것 같니? 설화야.”

“남은 한 명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가는 들통이 날 것 같은데요.”

“아마 들통날 일은 없을 거야.”

“왜요?”

“나머지 한 명은 자존심이 더 세거든. 아마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신이 무시받았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지금 청자를 깬 현령도 마찬가지고.”

“아, 그렇다면 이제 안심해도 되는 건가요?”

“아직 하나가 남았으니 마저 처리해야지.”

말을 마친 한빈은 기분 좋게 관청을 빠져나왔다.

설화는 궁금했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 * *

한빈이 다음에 향한 곳은 동창의 칠음현 지부였다.

동창이란 환관들의 집단.

중앙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들이었다.

당문호가 보낸 남은 하나를 전달할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곳은 칠음현의 관청보다도 규모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남과 호남에 포진한 동창의 세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 세력에 비례해서 병권까지 쥐고 있는 집단이 바로 동창의 칠음현 지부였다.

하지만, 관청에 들어갈 때와는 달리 간단히 전언을 전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동창의 세력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었다.

중앙의 권력과 병권이 있는데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죄목은 힘없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이니 말이다.

경비병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한빈을 안내했다.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한빈은 동창의 칠음현 지부에서 나왔다.

설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함이 관청에서의 일과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묘하게 청자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동창의 칠음현 지부에서 빠져나온 설화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설화의 오른손에는 아직 하나의 청자가 남아 있었다.

설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뭐 하긴 뭐 해? 그걸로 당과하고 찹쌀떡 사야지.”

“네?”

설화는 입을 떡 벌렸다.

청자에 담겨 있는 금화로 당과를 산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어서였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서 그 뜻을 알았다.

금화는 다시 만금 전장에 넣어 놨다.

일을 마친 둘은 만금 전장에서 다시 나왔다. 설화는 아쉬운 듯 뒤를 돌아봤다.

당과가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에 입을 벌리고 있는 설화에게 한빈이 말했다.

“이거 받아.”

휙!

날아오는 것은 번쩍이는 금화였다.

재빨리 금화를 낚아챈 설화는 멍하니 한빈을 바라봤다.

“이게 뭐예요?”

“당과하고 찰쌀떡값. 오늘 수고했어.”

“아, 공자님…….”

“담아 갈 데 없으면 청자에 넣어서 가져가.”

“청자에요?”

“당과 꼬치 꽂기에는 딱이잖아.”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거에…….”

“에이, 누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깨는데 뭐.”

한빈이 씩 웃었다.

이 웃음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웃음이었다.

한빈이 깨려 한 것은 청자가 아니었다.

당문호와 그들 간의 신뢰였다.

* * *

다음 날 점심.

당기명이 다급하게 한빈을 찾았다.

“한빈 의원님!”

당기명은 습관처럼 한빈을 의원이라 불렀다.

한빈이 진득한 미소로 답했다.

“당 공자, 드디어 소식이 왔습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칠음현에서 곧 열릴 행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행사가 아마 연등회겠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때쯤에 열리는 칠음현의 연등회를 모르면 타국에서 넘어온 첩자로 오해받겠지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보통 연등회는 춘절과 맞춰 행해지는데, 칠음현의 행사와는 조금 달랐다.

다가오는 여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기원을 드리는 행사였다.

춘절에 버금가는 행사이기에 오죽하면 칠음현에는 춘절이 두 번 있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 춘절의 연등회보다도 지금 시기에 열리는 연등회가 더욱 화려했다.

삼십 년 전 이곳에 부임해 왔던 현령은 동쪽에 있는 해동성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 관리였다.

그는 해동성국의 연등회를 보고 감명받아 춘철에는 중원식으로.

오월을 앞둔 지금 시기에는 해동성국식의 연등회를 개회했던 것이다.

덕분에 해동성국식의 연등회는 칠음현의 명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당기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도 맞습니다. 그 행사에는 하남성주와 호남 성주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고관대작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렇겠지요. 민간이 아닌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이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행사를 위해서 다른 곳의 황실 출신의 명의도 다수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번 연등회는 황실의 인사들도 참석하는 바람에 초대받지 않은 인원은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난번 그 약속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녀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사천당가 사람만 참석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여기 있는 사천당가 사람 전체가 아니라 저와 당독대만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따로 참석해야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초대장 없으면 갈 수 없는 곳인데……. 혹시 몰래 잠입하시려는 건 아시겠죠?”

“개구멍을 노릴 만큼 한가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초대장을 들고 들어가야겠지요.”

“헉, 그게 정말입니까?”

“네, 곧 손에 들어올 예정입니다.”

“저도 당문호 숙부를 통해서 겨우 두 장을 얻었는데, 공자님, 아니 의원님은 어떻게 초대장을 받으셨습니까?”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빈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당기명은 조용히 한빈을 바라보다 포기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저는 행사 참석을 위해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당기명이 한빈의 방에서 나가자 옆에 있던 설화가 말했다.

“공자님, 무슨 준비를 해야 해요? 미리 말씀해 주세요.”

“밤에 바쁠 것 같으니 미리 자 둬야지.”

“네?”

“느낌에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아. 그러니 설화 너도 자 둬라.”

“저도 가는 거예요?”

“그럼 안 가려고?”

“아까 초대받은 사람만 갈 수 있다고 했잖아요.”

“나도 초대받았어. 아니 초대장을 얻을 예정이지.”

“네? 어떻게요?”

설화가 눈을 가늘게 뜨며 한빈을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빈이 따로 손을 쓸 틈이 전혀 없었다.

어제는 살막과 한판 붙은 후 해가 지고서는 두 곳에 청자를 선물하는 임무를 마쳤다.

그게 선물인지 덫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돌아온 것이 몇 시진이 안 지났다.

그런데 초대장을 받을 예정이라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설화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고 커다란 덩치의 악비광이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형님, 구했습니다. 딱 네 장입니다.”

“비광아, 정말 수고했다.”

“여기 있습니다.”

“응? 왜 세 장이지?”

“한 장은 제 것이니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악비광은 붉은색 봉투 하나를 자신의 품속에 게 눈 감추듯 집어넣었다.

마치 빼앗길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옆에서 보고 있던 설화는 악비광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악 아저씨, 그게 뭐예요?”

“연등회 행사 초대장이다.”

“네?”

고개를 갸웃한 설화는 한빈을 바라봤다.

그 눈빛을 이해한 한빈이 설명을 시작했다.

“설화야, 산동의 악씨 가문에 대해서 아느냐?”

“악가의 악룡비참을 모르는 무인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 나라의 입장에서 말이다.”

“구국에 충정을 바친 가문이요?”

설화의 말에 악비광이 어깨를 활짝 폈다.

“오호, 설화가 똑똑하구나!”

악비광이 흥분하자 한빈이 손바닥을 보이며 진정시켰다.

설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산동악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신창양가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셋 다 나라가 어려울 때면 몸을 아끼지 않고 전명에 나선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모두 강북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실 하북팽가와 산동악가는 본래 강남에서 파생된 무림세가였다.

하지만, 타국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전면에 나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방에 자리 잡게 된 것이었다.

산서에 있는 신창양가의 경우, 본래 강북에 자리 잡은 무림세가였다.

그런 이유로 산동악가의 대공자인 악비광이 초대장을 쉽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한빈이 신분을 밝히고 나선다면 초대장을 구하지 못할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신분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기에 악비광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넘겨준 것이었다.

설화의 말 때문에 흥분한 악비광을 보다가 한빈이 말을 이었다.

“그래, 산동악가의 배경이면 관에서 주최하는 연등회 행사의 초대장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거기에 악비광이라는 이름을 못 들어 본 이는 없을 테고 말이야.”

한빈은 말을 맺지 못했다. 옆에 있던 악비광이 얼굴이 벌게진 채 헛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흠.”

“비광아, 표정이 왜 그래?”

“형님이 그렇게 칭찬하시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말입니다.”

“칭찬이 아니라 사실이지. 그리고 지금 말한 것은 너에 대한 것뿐 아니라 산동악가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우리도 그렇고 악가도, 그리고 신창양가도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게 맞지. 거래는 거래니까.”

“앗, 그것도 거래입니까?”

“당연히 거래지. 희생을 나라에서 모른다면 토사구팽하는 사냥꾼과 다름이 없는 거지.”

“뭔가 감동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형님.”

악비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라를 위한 희생마저도 거래라 하는 한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때 한빈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은데, 오늘 연등회에 참석하려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뭡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말아라. 그리고 낯선 이를 조심해라.”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낯선 사람을 조심하다니요? 상대가 저를 조심해야죠.”

악비광의 말에 설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빈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강호에 나왔으면 자신의 목숨은 알아서 챙겨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 * *

한빈은 자신이 말한 대로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소면으로 끼니를 때운 한빈 일행은 객잔을 나와 저잣거리를 거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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