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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282화 (282/621)

282.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 (2)

삼절추혼독.

이 독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사천당가의 사람들은 용의자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당기명은 다시 의녀를 확인했다.

중독 증상이 손끝과 목 그리고 눈 밑에서만 확인되고 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삼절추혼독이 맞았다.

만약 이 독이 사천당가에서 나온 것이라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당기명은 힐끔 황족이 있는 자리를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달빛을 받아서 그런지 얼굴이 더 하얗게 보이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현비라는 여인이었다.

백옥같이 희고 고운 피부에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총명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알려진 그녀의 특징이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음을 정확히 나타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팔공주가 있었다.

그들이 북경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칠음현까지 온 것은 이곳의 연등회가 그리도 화려하다는 소문 때문에, 황제에게 조르고 졸라 온 것이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이곳에서 위험한 일을 당했다면?

때에 따라서는 멸문지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기명은 강호에 처음 나온 애송이가 아니었다.

이 독이 삼절추혼독이라는 것은 사천당가 사람만 아는 법.

적당히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그때 문득 당문호의 존재가 기억났다.

독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당문호라면 삼절추혼독에 대해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안다고 해도 가문을 위한 일인데 협조해 주리라 생각했다.

일단은 둘러대고 그다음에 범인을 찾으면 되었다.

당기명은 힐끔 고개를 올려 당문호를 바라봤다.

당문호와 눈빛을 마주한 당기명의 눈이 커졌다.

묘하게 뒤틀린 그의 입꼬리를 발견한 것이다.

웃음을 감추려는 듯 입꼬리를 살짝 떠는 당문호의 모습은 덫에 걸린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당기명은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당기명과 당문호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둘의 눈빛이 많은 대화를 품고 오갔다.

치열한 눈싸움 속에 당기명은 이 일에 당문호가 관여되었음을 깨달았다.

슬쩍 옆을 보니 저 멀리서 보고만 있던 황궁의 현비가 고수를 대동하고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궁에서도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는 그녀라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친히 나서는 것을 보면 직접 사건에 개입할 모양이었다.

당기명은 속으로 한숨을 삭였다.

‘휴…….’

모든 것이 자신을 덫에 몰아넣기 위한 포석 같았다.

점점 아득해지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팽한빈이라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만이 유일한 동아줄이 될 것 같았다.

당기명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한빈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뭐지?’

당기명은 적잖게 당황했다.

한빈이 있던 자리는 휑하기만 했다. 그곳에 있던 설화도 없어졌다.

위험을 감지하고 자리를 피한 것일까?

당기명이 당황하고 있을 때, 당문호가 군장 장후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장후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허허,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르겠군.”

“무슨 이야기인데 그러십니까?”

“이 의녀가 당한 독은 삼절추혼독이라 하는 묘한 독일세.”

“삼절추혼독이라……. 처음 들어 보는군요.”

장후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당문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여기서 삼절이란 세 번의 변화를 말하네.”

“그럼 추혼은 뭡니까?”

“혼을 몰아낸다는 이야기지. 이 의녀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닐세. 아직 혼이 나간 것은 아니지만, 하루가 지나면 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그렇다고 해서 완벽히 빠져나간 것도 아니네. 그전까지는 살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의녀가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르신.”

“아직 죽지는 않았네. 하지만, 마지막 단계까지 가면 살릴 수가 없지. 그런 이유로 삼절이란 말을 붙인다네.”

“그럼 바로 죽이지 않고 이런 독을 쓴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언가 원하고 있겠지. 하나의 생명으로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협박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 삼절추혼독이 최종적으로 노리고 있는 것은…….”

당문호는 말끝을 흐리며 옆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황제의 후궁인 현비가 두 고수를 대동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장후는 같이 고개를 돌렸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조용히 덮으려 했지만, 지금 현비가 끼어들게 되면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게 된다.

순간 의녀를 둘러싸고 웅성대던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터벅터벅.

현비와 두 고수의 발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발소리가 멈추고 단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러세요? 계속해 보시지요.”

순간 침을 삼키던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현비 마마를 뵈옵니다.”

“현비 마마를 알현하옵니다.”

모두가 무릎을 꿇자 현비가 말했다.

“계속해 보시지요. 저도 듣고 싶습니다.”

“마마, 이곳은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아닙니다. 나라의 백성이 해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뒷짐 지고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독살을 시도한 사건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계속하시지요. 저는 조용히 듣고만 있겠습니다.”

“…….”

장후는 고개를 숙인 채 힐끔 현비의 호위를 바라봤다.

호위 중 연장자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비의 뜻대로 하라는 신호였다.

장후는 마치 독약이라도 씹은 표정으로 당문호를 바라봤다.

“어르신께서 설명을 계속해 주시겠습니까?”

장후의 말에 당문호는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삼절추혼독의 출처가 문제네.”

“대체 어디기에 그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이 독은 당가에서만 만들 수 있는 독이네.”

“헉, 당가라면 어르신이 있는 사천당가라는 말씀입니까?”

“맞네. 사천당가 말고 또 어디가 있겠나?”

“그렇다면…….”

장후는 조용히 당기명을 바라봤다.

당기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독은 사천당가의 독입니다. 누군가가 홈친 것이 분명합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었으니 정공법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당문호가 말을 끊었다.

“삼절추혼독은 가주가 직접 관리하는 서른아홉 가지 독 중 하나일 텐데, 안 그런가?”

“……맞습니다.”

“가주님이 불편하시더라도 가주 대행이 관리하고 있을 테고.”

“네, 그것도 맞습니다.”

“서른아홉 가지 중 하나를 가지고 나가려면 그건 당가의 직계만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어르신도 직계가 아닙니까?”

당기명은 반격하듯 쏘아붙였다.

하지만, 당문호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당문의 무공과 독공은 익히지 않았어도 직계는 맞지.”

말을 마친 당문호는 상의를 벗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에 있던 의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왜 가문 내부에서 싸우는 거지?”

“당문호 어르신은 충신이잖아. 가문보다는 나라가 먼저라는 뜻 아니겠어?”

“그럼 저 당가 사람이 독을 쓴 거야?”

“그건 모르지. 그런데 가주가 관리하는 독이라 하니 죄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

“그러게 말일세. 가문을 희생해서라도 진범을 밝혀내려는 신하야말로 충신이지, 충신.”

“그런데 왜 상의를 벗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왜 상의를 벗어?”

둘의 대화에 다른 의원이 끼어들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자신은 독을 안 썼다는 것을 증명하시려고 하는 거잖아.”

“아, 그렇군.”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당문호가 벗은 상의를 장후에게 건넸다.

“조사해도 좋네.”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후는 옷을 툭툭 털었다.

나오는 것은 먼지뿐.

그 모습을 본 당문호가 장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 몸도 조사해 보게.”

“…….”

“일이란 정확해야 하지 않는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장후는 당문호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끝난 장후가 모두에게 외쳤다.

“당문호 대인의 몸에서는 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옷을 다시 말끔히 입고 난 당문호가 말했다.

“우리 가문의 모든 사람을 조사해서 가문에 쏠린 의심을 지우고 싶네.”

말을 마친 당문호는 힐끔 당기명을 바라봤다.

시선을 받은 당기명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르 떨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외통수였다.

여기서 상의를 벗어 젖힌다면 자신이 남자로 변장을 했다는 것을 들키게 된다.

그럴 경우 왜 가문이 자신을 남자로 키웠는지 변명까지 해야 할 상황이었다.

변명을 해서 무마될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자칫 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할 수 없는 법.

멸문지화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당기명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조용히 자신의 상의를 만졌다.

당기명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힐 심산이었다.

자신의 옷을 만지던 당기명의 눈이 커졌다.

허리 쪽에서 느껴지는 낯선 촉감은 분명히 독을 넣어 둔 호리병이었다.

황족들과 고관대작들이 즐비한 이곳에 암기나 독을 들고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기명은 분명히 독이 든 호리병은 미리 숙소에 두고 왔었다.

그런데 허리 쪽에서 호리병이 만져지는 것이었다.

정체 모를 호리병이 왜 여기 있다는 말인가?

당기명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착각이 들었다.

그때 당문호가 물었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이냐?”

“…….”

당기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점점 올라가는 당문호의 입꼬리에 반해, 당기명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였다.

그들의 주변에 이상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사-삭.

그 바람은 실로 기묘했다.

강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옷자락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압도적인 기세를 내뿜는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에 청아한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하나의 그림자가 달빛을 가리며 당문호와 당기명 사이로 떨어졌다.

동시에 모두는 몇 걸음 더 물러났다.

그 사이로 현비를 호위하던 적색 장포의 무사 둘이 칼을 빼 들고 다가왔다.

그들이 그림자의 주인을 보며 외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나는!”

그림자의 주인이 첫마디를 외쳤다.

그 외침에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물론 현비를 호위하던 두 명의 고수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상대가 자신이 마주할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안 것이다.

그림자의 주인이 뱉은 첫마디는 사람을 옭아 넣는 사자후였다.

물론 그는 한빈이었다.

한빈은 푸른 장포를 입고 수염까지 붙이고 나타났다.

한빈이 말을 이었다.

“청운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무명소졸이외다.”

“…….”

하지만, 한빈의 앞에 있는 호위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모습에 씩 웃은 한빈이 현비를 바라봤다.

“명성이 자자한 현비 마마를 뵙게 되어서 영광이올시다.”

이번에 뱉은 음성은 따뜻함을 품고 있었다.

허장성세에 담겼던 기세로 굳어 있던 현비였다.

그런데 묘하게 부드러운 음성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청운사신이셨군요. 강호에 자자한 위명은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저를 아십니까?”

“요즘 무림에는 적룡과 청운이라는 신진 영웅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청운사신은 푸른 구름을 몰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달빛을 몰고 다니시는군요.”

말을 마친 현비가 웃었다.

현비의 입에서는 마치 기름을 발라 놓은 것처럼 말이 술술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강호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무림인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그녀가 보통 인물이 아님을 의미한다.

상대의 무위로 봐서 화경에 들어선 지 한참 된 자였다.

그런 자가 이곳에 나타났는데 아직 자신의 목이 붙어 있다는 것은 아군이라는 뜻.

거기에 더해 그녀가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사파의 영웅인 적룡과 정파의 영웅인 청운과는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다.

만나고 싶은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것은 그 신진 영웅들이 문파에 속하지 않은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문파에 속하지 않은 고수와 연을 맺어 두는 것은 절대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현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 청운사신으로 변장한 한빈이 말을 이었다.

“이 일에 내가 개입해도 되겠소이까? 마마.”

마마라고 높여 불렀지만, 마치 하대하는 듯한 말투.

하지만, 현비는 기분 나쁜 표정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계속 구경하겠습니다. 대협께서 이 일을 도와주신다면 그것은 저도 바라는 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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