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 검술천재-294화 (294/621)

294. 미령산의 수적(水賊) (3)

악비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궁세가와 도적들이 결전을 펼치는 중앙을 향해 창을 휘두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기세만 보면 여포가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악비광이 저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적들의 두령이 바로 악비광이 그렇게 찾아 헤맨 무소율이었다.

한빈이 말리지 않고 유심히 보고 있던 이유는 무소율의 수하들이 눈에 익어서였다.

그녀의 수하는 바로 한빈과 인연이 있었던 수적들이었다. 문제는 그 수적들이 무소율과 합격진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펼치는 합격진의 이름은 무씨검가의 백화검진.

백화검진은 한쪽이 갈라져도 옆의 꽃잎이 그 자리를 덮는다.

가르고 가르다 보면 점점 그 꽃잎이 드러나 상대를 지치게 하는 검진.

공격에서는 힘을 못쓰지만, 수비에서만은 그 어떤 검진에도 강력했다.

그에 맞서는 남궁세가는 세가 최고의 검진이면서도 기본검진이라 할 수 있는 창룡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창룡검진을 최고이면서 기본이라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검진을 구성하는 무사들의 경지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검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러 구성원의 각각의 무력에 더해 검진의 효력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창룡검진의 경우는 장점도 배가되지만 단점도 배가되는 검진이었다.

그런 이유로 무씨세가의 백화검진에 고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서로 한 수도 무를 수 없는 일수불퇴의 상황이었다.

조금 과장을 더한다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전생에도 백화검진과 창룡검진의 충돌은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한빈에게는 행운이었다.

이제 다 지켜봤으니 둘을 떼어 놓을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악비광이 검진의 소용돌이 속이 들어간 것이다.

한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뭐, 그의 생각은 간단했다.

‘이기는 편이 내 편!’

그런 생각으로 한빈은 월아를 뽑았다.

물론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둘 중 하나가 적이라면 저 검진의 파훼법은 간단했다.

검진의 뒤통수를 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남궁세가도 무가지회에서 알차게 이용해 먹어야 할 대상이니 말이다.

문제는 악비광이 검진의 소용돌이 가운데로 돌진했다는 것.

한빈은 천천히 중앙을 향해 걸어가며 상황을 살폈다.

남궁세가의 용이 여의주를 드러내며 무씨세가의 중심으로 짓쳐들어가고 있었다.

무씨검가는 꽃잎의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빠른 검으로 그들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 중간에 광룡 하나가 뛰어들었다.

뛰어들 때는 용이었지만, 지금은 지렁이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두 힘 사이에서 쭈글쭈글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창을 휘둘렀으니 지금은 자신의 몸을 향해 달려드는 검기를 막아 내기에 바빴다.

그야말로 죽기 직전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잠시 정신을 잃었는지 푹 쓰러졌다.

그것을 본 한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천만다행인 것은 바닥이 그나마 검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라는 점.

용과 꽃잎의 소용돌이가 아직은 힘이 넉넉한 이유로 위쪽에서만 대결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둘 수도 없는 것이 저들의 힘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검기는 아래로 몰릴 것이었다.

본래에는 두 검진이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가 고개를 숙인 후 말리려 했다.

하지만, 악비광이 저런 상태가 되었으니 둘을 떼어 놓는 것이 맞았다.

그때였다.

검진의 소용돌이 중간에 진청색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강력한 두 개의 검진이 충돌하자 화경급 이상의 무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한빈은 걸음을 옮겼다.

악비광 때문도 아니고 남궁세가와 무씨검거의 안위 때문도 아니었다.

이제는 구결 때문이었다.

조금씩 검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던 한빈은 힐끔 아래를 보았다.

아래에는 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한빈은 그 검을 잡았다.

‘부창부수.’

용린검법의 쌍검술 중 하나였다.

왼손으로 다른 무공을 쓸 수 있었고 지금 쓸 수 있는 것은 오호단문도였다.

‘전광석화.’ ‘부창부수.’ ‘오호단문도.’

용린검법의 세 가지 초식을 머리에 담았다.

한빈은 더욱 의지를 굳건히 다졌다.

저렇게 둘이 맞닥뜨렸을 때는 화경의 고수도 안위를 장담할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두 검진이 가장 약해졌을 때를 가늠해야 했다.

하나. 둘, 셋!

한빈이 검진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오호단문도가 백화검진의 꽃잎을 집어삼킨다.

그러고는 월아로 창룡검진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앗!”

기합 소리와 함께 거대한 파동이 한빈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한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앞을 보니 악비광은 넝마가 된 채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뭐, 한빈도 그리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렇게 검진 사이로 뛰어드는 일은 강호의 누구라도 섣불리 할 수 없는 일.

한빈도 자신이 과신했다는 것을 지금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검의 끝을 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용린검법의 비급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글귀가 나타났다.

[최강의 검진 사이에 몸을 던졌습니다. 용린검법이 깨달음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한빈은 눈매를 좁혔다. 글귀는 너무 당연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 놓은 무림인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새로운 깨달음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

한빈은 최대한 내공을 짜내어 현재 상황을 버텨야 했다.

힐끔 실력편의 구결을 확인하자 실시간으로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회복을 나타내는 구결과 내공을 나타내는 구결은 벌써 바닥을 보인 지 오래였다.

벌써 본신의 내공을 사용해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뺄까?

걸리는 것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악비광만이 아니었다.

용린검법의 깨달음을 찾고 있다는 글귀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실력편의 구결과 모든 내공이 소진되었을 때였다.

눈앞에 글귀가 다시 나타났다.

[용안(龍眼)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지급(池級) 구결 환(還)을 획득하셨습니다]

[지급(池級) 구결 향(鄕)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속으로 눈앞에 나타난 글귀.

[강호에 흩어진 용린검법의 초식을 발견했습니다.]

[지급 초식 금의환향(錦衣還鄕)을 획득하셨습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상단전의 기운으로 용린검법의 구결과 본신 내공을 구 할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필요 내공은 없습니다. 열두 시진마다 펼칠 수 있습니다.]

역시 이곳에 몸을 던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보통 깨달음이 아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사회생’과 함께 쓴다면 금강불괴에 가까운 능력을 지니게 된다.

구 할의 신체 회복 능력과 구 할의 내공 회복 능력이라?

한빈은 재빨리 금의환향을 펼쳤다.

‘금의환향!’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백회혈에서부터 시작해서 온몸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회복은 되었지만, 이 검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한 번의 기회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한빈은 모든 구결과 공을 오른손과 왼손으로 보냈다.

한빈이 펼친 양쪽의 초식에 막대한 힘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

동시에 한빈을 중심으로 은은한 파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누워 있던 악비광이 정신을 차리고 한빈을 바라봤다.

한빈이 나지막이 말했다.

“너와 내 중간에 창을 꽂아 넣어라. 반드시 악룡비참의 십 성으로 펼쳐라.”

굉음이 일었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말을 마친 악비광의 혼신의 힘을 다해 앞쪽에 창을 꽃아 넣었다.

‘악룡비참.’

팡!

온 힘을 쏟은 악룡비참이 세 힘이 맞물리는 곳을 꿰뚫었다.

딩!

마치 소림사의 종이 울리듯 병장기들이 동시에 청아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순간 한빈이 무릎을 꿇었다.

악룡비참을 쓴 악비광도 바닥에 꽂힌 창을 남겨 둔 채 뒤로 나가떨어졌다.

한빈을 중심으로 모두 추풍낙엽이 된 상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한빈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악비광.

“형님, 괜찮으십니까?”

여기저기 검기에 쓸려 군데군데 살갗이 보이는 녀석이 할 말은 아니었다.

“무식한 놈.”

“하하.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형님의 그 마지막 한 수는 뭐였습니까?”

“동귀어진이다 이놈아!”

“헉.”

그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서재오와 당기명이었다.

둘은 한빈이 있는 쪽으로 달려와 양옆의 쓰러진 무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서재오는 남궁세가 쪽을 보며 외쳤다.

“웬 놈들이냐 정체를 밝히거라.”

“저쪽은 남궁세가이니 검을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대협.”

서재오는 한빈의 말에도 검을 내려놓지 않고 쓰러진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경계했다.

이번에는 당기명이 외쳤다.

“정체를 밝혀라!”

“저쪽은 무씨검가의 식솔들입니다.”

“헉. 대체 무슨 일입니까? 팽 공자님.”

당기명은 당혹스러운 듯 주변을 둘러봤다.

한빈은 악비광에게 말했다.

“너는 네 사람을 빨리 챙겨라.”

한빈의 말에 악비광은 그제야 깨달은 듯 무소율을 향해 달려갔다.

한빈은 서재오를 바라봤다.

“매화검협께서는 남궁세가 쪽을 확인해 주십시오.”

“허. 알겠네. 사 공자.”

서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세가 무사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잠시 후.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산자락의 공터는 싸움이 벌어진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일단은 무소율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때 배 안에 남았을 때는 조금 황당했어요. 버리고 일단 앞서간 일행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고요. 그러니까······.”

무소율의 이야기는 간단하면서도 묘했다.

당시 배에 잠이 든 후 깨어나 보니 혼자만 남았다는 것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 후 수적들을 앞세워 하남정가로 가려고 했지만, 수적들은 육지의 지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도중 마주친 사파의 진세미도 안내해 주려는 도중 수하만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수하 또한 소집령이 걸린 후 그들만 남겨 놓고 사라진 상태.

그들의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중간에 지도를 입수한 그들은 산맥을 따라 하남정가를 향해 계속 걸었다고 한다.

그 결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거기까지 듣고 있던 악비광이 물었다.

“대체 왜 사람들이 수적이라고 하는 것이요? 무 소저.”

“그건 얘네들이 실수를 좀 했어요.”

“무슨 실수입니까?”

“사람들이 우릴 보고 산적이라고 소리치니까. 얘네들이 산적이 아니라 수적이라고 성질을 버럭 내더라고요. 뭐, 우습기도 하고 그냥 내버려 뒀더니 이상한 소문이 나서······.”

“하하.”

악비광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다른 사람도 허탈하게 웃었다. 모닥불 주변은 순식간에 웃음이 퍼져 나갔다.

뭐, 중간중간 황당한 이야기도 있었다.

무소율 일행은 한 번도 도적질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은자를 던져 놓고 가던가 음식의 재료를 바치고는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무소율의 자질을 가름해 봤다.

한빈이 주목하고 있는 자질은 다름 아닌 교관으로서의 자질이었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수적들을 단기간에 백화검진을 쓸 정도로 무공을 끌어올렸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한빈은 악비광을 슬쩍 바라봤다.

뭐, 악비광과 둘이 잘된다면 둘이 한데 묶어서 교관으로 쓰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당기명이 끼어들었다.

“대체 남궁세가와는 왜 싸운 것입니까?”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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