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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19화 (319/621)

319. 생사논검(生死論劍) (1)

제갈공영이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외쳤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냐!”

“보면 모르나? 제갈세가의 명성도 다 헛된 것이었군. 자네가 지면 자네 아들의 팔은 없을 것이네. 두 팔이 다 없어지고 나면 무엇을 걸어야 할까? 다음은 다리? 다리 다음은 어디일까?”

“…….”

제갈공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암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은 목을 내놔야 할 것이야.”

“이런 악랄한…….”

“그 말은 내가 전에 제갈세가를 향해서 했던 말 같군. 역시 세상을 돌도 도는 게 이치지.”

“차라리 날 죽여라.”

“어차피 마지막에는 네가 죽겠지. 너는 이곳에 모인 네 자식과 수하들이 모두 죽는 걸 봐야 할 것이다. 그럼 삼 초를 양보하겠다는 허튼소리는 집어치우고 먼저 들어가겠다. 화산의 매화이십칠수 중 매화난검(梅花亂劍)으로 네 가슴을 노린다.”

순간 제갈공영은 재빨리 호흡을 가다듬었다.

논검은 내공을 통한 승부가 아니라 논리로 싸우는 대결.

분명 승산이 있었다.

암제가 약속을 지켜 준다면 시간도 지키고 적의 전투력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암제의 눈빛을 보니 약속은 지킬 것이 분명했다.

설령 제자의 팔이 날아가더라도 말이다.

암제가 말한 매화난검은 화산파의 절기 매화이십칠수.

그중에서도 다수의 적을 상대로 전개하기 적합한 초식이다.

매화 꽃잎이 소나기처럼 꽂히는 광경을 보고 창안한 무공.

일정한 형식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받아칠 수 있을까?

고수에게 정답은 말해 보라고 한다면?

받아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태반일 터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초식을 받아치는 순간 틈이 생긴다는 점이다.

제갈공영이 외쳤다.

“나는 무영보라 좌로 세 걸음 매화난검의 간격에서 벗어나겠소!”

“흠, 좋구나, 좋아! 그렇다면 나는 매화난검에서 승룡풍운(乘龍風雲)으로 바꾸마.”

암제가 소매를 휘휘 저었다.

동시에 소매를 타고 상서로운 기운이 제갈공영의 우측 세 걸음을 스친다.

순간 제갈공영의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그가 보여 준 한 수는 곤륜의 승룡풍운을 형상화한 것이다.

소매로 기의 흐름을 보여 주면서 경고하는 여유를 부리는 암제.

검 끝에 풍운이 일며 승천하는 용이 날아드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의 한 수였다.

제갈공영이 말했다.

“나는 천근추의 수법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며 승룡풍운을 흘려보내겠소. 그러고는 바로 내 검에 제갈가의 은화살광(隱花殺光)을 실을 것이요.”

제갈공영은 마치 검을 쓰듯 한 치 앞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암제가 입꼬리를 돌렸다.

승룡풍운을 썼을 때 세 걸음 옆으로 움직인 제갈공영을 따라잡아 용의 발톱으로 그의 상체를 가격한 상태.

그 상태에서 몸을 뒤쪽으로 젖히며 검을 휘두른다면 비록 제갈공영의 피부는 상할 테지만, 중상을 입지는 않을 터.

어찌 보면 아주 좋은 역습이 된다.

거기에 더해 은화살광이라면.

은은한 국화 향기 속에 살기를 싣는 제갈가의 검술.

살광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한 걸음!

화려한 수법은 아니지만, 적절한 수법이었다.

암제가 말했다.

“그럼 나는…….”

그들의 논검은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논검을 주고받던 제갈공영이 눈을 빛냈다.

“……그 수법을 낙화유수(落花流水)로 받겠소.”

이곳에 와서 처음 짓는 미소.

그 미소가 제갈공영의 입가에 맴돌았다.

암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역시 제갈세가야!”

“그럼 내가 이긴 것이오?”

“그래, 자네가 이겼네.”

말을 마친 암제는 손뼉을 쳤다.

짝짝!

그 소리에 탁자 옆에 작두를 잡듯 칼날의 손잡이를 쥐고 있던 수하가 손에 힘을 주었다.

획!

칼날이 예기를 번뜩이며 괴아의 팔뚝으로 향했다.

챙!

묘한 소리에 제갈공영은 눈을 크게 떴다.

힘껏 내리쳤는데 괴아의 팔뚝으로 향했던 칼날은 멈춰 있었다.

자세히 보니 칼날의 이가 나갔다.

“헉, 저건!”

“괴아는 금강불괴라네.”

“…….”

제갈공영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금강불괴라니!

저 나이에 이건 말도 되지 않았다.

여긴 괴물이 모여 있는 집단이 분명했다. 정의맹에서도 감지하지 못한 사이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집단을 키울 수 있다니?

제갈공영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의맹에 배신자, 아니 문파와 무림세가에 배신자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암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너의 낙화유수를 해남파의 만파격우(萬派擊牛)로 밀쳐 내면 어떻게 됐을까?”

“그건…….”

제갈공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난화유수는 꽃잎이 떨어지듯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수법.

분명 외통수라 생각하고 짜낸 초식이었다.

하지만, 만파격우라면?

해남파의 만파격우는 파도 같은 기세로 상대의 초식을 누르는 수법.

파도도 알고 보면 물.

만파격우도 부드러움을 추구한다.

다만 부드러움이 여러 개 모여 황소를 반 토막 낼 수 있는 날카로움으로 변화시키는 수법이다.

낙화유수에는 완벽한 천적.

가장 무서운 것은 암제가 이 수법을 알면서도 고의로 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제갈공영은 암제의 다음 말에서 알 수 있었다.

희미하게 웃고 있던 암제가 말했다.

“내가 왜 져 줬는지 궁금하겠지. 그것은 완벽한 절망을 선물하기 위함일세.”

“완벽한 절망이라…….”

제갈공영은 말끝을 흐렸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괴아라는 적이 금강불괴인 이상, 이 승부는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거기에 논검으로도 승부가 안 된다.

“내가 느꼈던 것을 천하 십대세가, 아니 강호 전체도 느껴야겠지. 그 첫 번째가 제갈세가이니 영광으로 알게. 그럼 다시 시작하겠네. 나는 첫수로…….”

그렇게 다시 두 번째 논검이 시작되었다.

제갈공영은 이 승부가 모두의 팔다리 그리고 목이 달아나야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시간을 끌어야 기회가 있다고 확신했다.

계속되는 논검.

암제가 미소를 지었다.

“청룡탐조(靑龍探爪)의 수법으로 자네의 단전을 노리겠네.”

청룡탐조란 몸을 비틀어 검을 위로 돌려 상대를 노리는 수법.

제갈공영이 공중으로 몸을 띄운 상태에서 그 자리에 들어가 검을 위쪽으로 세운 것이다.

아래쪽에서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고 기다리는 형국.

공중으로 몸을 띄운 제갈공영은 상대의 초식에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논검의 결과는?

이것이 실제 대결이라면 아래쪽에서 향하는 적의 검에 꼬치가 될 것이었다.

“…….”

제갈공영의 침묵이 계속되자 암제가 말했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는가? 계속 대답을 안 하겠다면 열을 세겠네. 그동안 대답이 없다면…….”

암제는 슬쩍 눈짓했다.

그의 눈짓에 칼을 잡은 수하가 조용히 포권한다.

“네, 알겠습니다.”

“저들은 내가 열을 세면 집행할 것이네.”

“…….”

제갈공영은 답하지 못했다. 지금 그의 머리는 초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암제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제갈공려가 이를 악물었다.

조카의 팔이 반 토막 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공려는 다리에 공력을 집중시키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너와의 약속을…….”

제갈공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한빈이 없어진 것이다.

제갈공려가 주위를 둘러보니 옆에 있던 현문이 검지로 논검이 이루어지는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암제는 계속해서 천천히 숫자를 셌다.

“일곱, 여덟…….”

그가 여덟까지 셋을 때였다.

어디선가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검파일적(劍把一寂)으로 청룡탐조를 제압하면 어떻겠습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한빈이었다.

한빈이 외쳤지만, 암제는 한빈을 제갈세가의 식솔 중 한 명이라 가벼이 여겼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암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검파일적은 검과 검이 오가는 생사결에서 쓸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검파, 즉 검의 손잡이로 적을 제압할 때 쓰이는 초식이다.

검파로 한순간에 적을 조용하게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난 고수가 하수를 다치지 않게 제압하기 위한 수법.

그것을 지금 생사결에서 쓴다니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암제의 눈빛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검을 뻗을 수 있는 여유는 없지만, 검파로 아래쪽에서 버티는 검을 밀어 낼 수는 있었다.

그때 한빈이 말을 이었다.

“창에는 방패로 대응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당신이 청룡탐조로 이빨을 드러냈다면 나는 검파일적으로 당신의 검 끝을 무력화시킬 것이요. 당신의 검은 살짝 떨리겠지요. 그 틈을 타서, 청룡강하를 쓸 것이요.”

암제의 눈빛이 더욱 흔들렸다.

청룡강하(靑龍降下)란 청룡이 여의주를 찾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는 형상을 초식으로 만든 것.

자신이 처음 전개했던 청룡탐조를 청룡강하로 마무리 짓는다?

마치 상대를 농락하는 듯한 전개였다.

게다가 청룡탐조와 청룡강하는 둘 다 북천문의 청룡비검(靑龍飛劍)의 초식 중 일부였다.

당황도 잠시 암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너는 대체 누구냐? 누구이길래 가주보다 낫다는 말이냐? 내 너 같은 제갈가의 인재는 들어 본 적이 없거늘. 낭중지추를 몰라보다니, 제갈세가의 가주도 보는 눈이 없구나!”

암제는 슬며시 제갈공영을 바라봤다.

그 입가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어찌 저런 인재를 다른 식솔들과 섞어 놨냐는 말이었다.

논검은 뒤로하고 제갈세가가 보는 눈이 없음을 비웃는 광오한 암제의 태도.

하지만, 제갈공영은 눈만 크게 뜨고 답하지 못했다.

지금 암제와 자신의 논검 도중 끼어든 젊은 사내가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쪽에서 덜컥 나왔으니 자신의 행렬에 딸려 온 제갈세가의 식솔 중 하나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상한 것이, 제갈공영은 떠나기 전 들어온 하인 하나까지 모두 머리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저 젊은 사내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한빈이 이곳에 온 과정은 은밀했다.

구걸십팔보와 한빈 특유의 기척을 숨기는 능력 덕분에 순식간에 이곳에 있던 자들과 동화되었다.

그 덕분에 한빈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이곳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암제가 한빈을 바라봤다.

“제갈세가의 가주 대신 네가 나와 논검을 할 테냐?”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이요?”

“말투가 당돌하구나!”

“당연하지 않소? 당신과 나는 적이거늘 어찌 존대를 바란단 말이오.”

“그 기백 받아 주겠다!”

“나도 당신의 오만함을 받아 줄 것이요. 내 너그러운 도량으로 말이오.”

한빈이 씩 웃자 암제가 피식 웃었다.

“하하, 기백 하나는 제갈세가의 가주보다 좋구나. 내 너를 친히 갈아 마시겠다.”

“칭찬 감사하오. 우리 신나게 입이나 털어 봅시다.”

“허허, 한 번도 지려고 하지 않는군.”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하겠소. 나는…….”

그렇게 한빈과 암제의 논검이 이어졌다.

물론 몇 걸음 물러나 논검을 지켜보던 제갈공영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자신을 대신에 논검에 참여한 젊은이가 누군지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저 젊은이가 자신도 생각 못 할 묘수로 계속해서 암제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상대보다 한발 앞선 상태로 논검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무림삼존 중 일인이 내놓을 법한 발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저 젊은이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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