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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21화 (321/621)

321. 생사논검(生死論劍) (3)

그 붉은 도기가 점점 한빈에게 다가왔다.

문제는 지금 피한다면 뒤쪽에 있는 제갈공영과 그 수하들이 다친다는 것이다.

그만큼 괴아의 거도가 뿜어내는 붉은 도기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빈은 이제 선택해야 했다.

아니면 힘을 드러내느냐? 아니면 끝까지 숨기느냐?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고민은 필요 없었다. 드러내되 보이지 않게 하면 되었다.

결심한 한빈이 재빨리 품 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고는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발광(發光) 가루가 있던 바로 그 가죽 주머니였다.

한빈은 그 발광 가루를 괴아를 향해서 뿌렸다.

일렁이는 도기를 넘어 날아오는 가루에 괴아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독이다!”

말을 마친 괴아는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 모습에 한빈이 눈매를 좁혔다.

부분적으로 금광불괴를 유지할 수 있지만, 독에는 약한 것 같았다.

한빈은 피식 웃으며 외쳤다.

“독이 아니라 흙이다, 이놈아!”

한빈이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받아치자, 괴아가 흥분해서 외쳤다.

“미친놈!”

“미친놈은 너고.”

“어떻게 무인이 대결 도중 상대에게 흙을 뿌린다는 말이냐?”

“그럼 뭘 뿌려?”

“상종도 못 할 비겁한 놈이구나.”

“얼굴을 보니 어렸을 적에 흙 꽤 파먹은 것 같은데……. 가만 보니 머리털도 없네.”

한빈이 손바닥을 머리 위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누가 봐도 놀리는 것이다.

물론 단순히 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설화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하지만, 한빈의 이런 행동은 괴아의 이성을 잃게 했다.

괴아는 얼굴만 헝겊으로 기운 것 같은 게 아니었다.

머리카락도 비슷했다.

문제는 정수리가 휑한 덕분에 동료에게도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

동료에게 놀림을 받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근본도 모르는 저런 놈에게 받는 모욕은 참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대머리라는 단어는 괴아에게는 역린 같은 존재.

괴아가 미친 듯 괴성을 질렀다.

“악!”

“미안!”

짧게 답한 한빈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괴아가 다시 한빈을 쫓았다.

넓은 지하 공간 속에서 뜻밖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한빈은 타원을 그리듯 도망치며 점점 괴아의 수하들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점점 밀리는 형국.

한빈이 마지막으로 밀린 곳은 뒤쪽으로 괴아의 수하가 있는 곳이었다.

쫓아오는 괴아가 외쳤다.

“제법이군! 배수진을 치는 것이냐? 그래도 상관없다. 네놈은 잠시 뒤에 죽을 테니까.”

“우리 괴아가 많이 컸네. 배수진도 다 알고. 머리카락이 없어도 머리는 좋은가 봐.”

그 놀림에 괴아의 거도에서 다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죽어!”

괴아가 황소처럼 돌진하며 도를 횡으로 그었다.

붉은 도기가 파도처럼 한빈을 향해 밀려왔다.

한빈의 눈앞까지 닥친 붉은 도기.

사사-삭.

한빈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붉은 도기가 허공을 가격하고 계속 뻗어 나간다.

뒤쪽에 있던 괴아의 수하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팡!

뒤쪽의 벽이 흔들흔들하더니 흙이 위쪽에서 떨어진다.

투두둑.

한빈은 계속해서 괴아로부터 도망쳤다.

하지만, 괴아는 모르고 있었다.

한빈이 도망치면서 계속해서 발광 가루를 그들의 수하에게 뿌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처럼 밝은 공간에서는 한빈의 말대로 그 가루도 흙처럼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한빈의 동작이 얼마나 은밀한지 누구도 한빈이 가루를 뿌리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그것을 보고 있던 암제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그도 한빈이 뿌리는 가루의 정체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저 호기심에 눈을 빛낼 뿐이었다.

그 가루가 독이든 아니면 화약이든 자신과 수하들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암제는 손자의 재롱을 보는 듯 재미있다는 듯 팔짱을 꼈다.

한편 한빈이 수상함을 느낀 괴아는 거도를 높이 올렸다.

상대를 포위하라는 신호였다.

점점 포위망을 좁히며 한빈이 빠져나갈 공간을 없애는 괴아와 그의 수하.

한빈은 고의로 도망가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포위하게 그냥 두었다.

한빈은 힐끔 제갈세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들과의 거리는 오십 걸음 이상.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생각한 한빈은 진각을 밟으며 월아를 뻗었다.

‘일촉즉발.’

월아의 검 끝에 푸른 검기가 일렁이며 뻗어 나간다.

월아와 하나가 된 한빈이 괴아를 향해 짓쳐 들었다.

괴아의 수하들이 입을 벌렸다.

“검기다!”

“산공독에 중독되지 않은 자가 있다!”

그들이 놀란 것은 한빈의 수법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제갈세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였다.

그게 아니라면 제갈세가의 식솔들이 산공독을 해독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였다.

하지만, 괴아는 아무렇지 않게 거도를 똑바로 세웠다.

그렇게 세운 거도는 마치 기둥을 세운 것처럼 굳건하게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괴아가 갑자기 앞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파바닥.

한빈과 괴아가 막 충돌하려 할 때였다.

휘익!

여기저기서 바람이 불더니 커다란 지하 공간을 비추고 있던 횃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팟. 팟.

연달아 꺼지는 횃불에 지하 공간은 이내 암흑으로 덮였다.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자, 괴아가 외쳤다.

“어서 불을 밝혀라!”

“존명!”

어둠 속에서 포권한 수하는 조심스럽게 바닥을 살피며 횃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억!”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괴아의 수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당했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네 몸에 묻은 게 뭐지?”

“너도 묻어 있는데!”

“너희 몸에서 뭔가 반짝이고 있어. 마치 야명주처럼……. 악!”

누군가가 대화 도중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묻은 발광 가루를 그제야 발견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은 몸을 내놓고 있는데 상대의 모습은 못 본다라?

이것은 목을 내놓고 기다리는 것과도 같았다.

그들은 웅성대며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피하자.”

“빨리 가루를 털어 내.”

그들을 발광 가루를 털어 내려 했지만, 털어 내려 하면 할수록 온몸에 번졌다.

당연한 것이, 발광 가루는 황금보다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진귀한 물품인 발광 버섯 가루보다 더 끈적였다.

천수장에서 잘 키운 극양지기 무의 진액이 첨가된 가루니 말이다.

아무리 털어 내도 몸 곳곳과 손에 더 심하게 묻을 뿐이었다.

순간 다시 수하 중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적이다!”

그 비명에 지하 공간은 더 난장판이 되었다.

그때 괴아가 말했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하지만, 그의 외침은 무용지물이었다.

괴아가 내공을 담아 다시 외쳤다.

“모두 제자리!”

그 외침에 자리를 피하던 수하들이 동작을 멈췄다.

그때였다.

괴아의 허벅지를 검날이 쓸고 지나갔다.

서걱!

괴아는 눈을 크게 떴다.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고통이었다.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부인 암제밖에 없었다.

고통을 느낀 괴아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 오늘은 즐겁겠구나. 내 너를…….”

괴아는 말을 맺지 못했다.

이번에는 한빈의 검이 복부를 훑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상대의 손에 빛을 내는 물질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빈의 손을 확인한 괴아는 재빨리 복부 쪽에 공력을 운용해서 금강불괴의 상태로 만들었다.

괴아는 눈을 크게 뜨고 내공을 안력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외쳤다.

“저놈의 손에도 야광 가루가 묻어 있다. 모두 저놈을 쳐라!”

순간 모두는 한빈의 오른손에 묻은 야광 가루를 보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구별이 가능한 것이, 괴아와 수하들에게 묻은 야광 가루는 양이 많았던 데에 비해 한빈의 손에 묻은 야광 가루는 반딧불처럼 크기가 작았다.

커다란 지하 공간의 내부는 금세 반딧불이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장관을 만들었다.

누가 보면 숲속에서 반딧불이 떠다닌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커다란 반딧불이 작은 반딧불과 엉켰다.

그때였다.

작은 반딧불 쪽에서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들렸다.

“호롱불을 향해서 달려드는 나방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한빈의 말이 끝나자 작은 반딧불은 사라졌다.

대신 어디선가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편이 공격한다!”

“나 아니라니까. 왜 나를 쳐! 이런 미친놈아, 너도 한번…….”

챙, 챙.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기 시작했다.

혼란이 생긴 이유는 간단했다.

한빈이 손에만 묻혔던 야광 가루를 다른 이들의 몸에도 묻혔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군과 적군이 구별이 안 되는 상태를 만들고는 그들의 목을 썰기 시작하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괴아의 눈이 떨렸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이제까지 그가 겪었던 싸움은 단순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누른다.

금강불괴의 몸을 보는 순간 적은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놈은 달랐다.

자신을 살살 약 올리더니 약점을 파고든다.

괴아는 몸에 난 상처보다 자존심에 난 상처가 더 아팠다.

상대보다 무공이 부족해서는 아닌데 단 한 명에게 밀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괴아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한 곳이 아니라 사방에서 동시에 울리는 비명에 괴아는 고개를 돌렸다.

앞쪽에서 들리더니!

“아악!”

뒤쪽에서도 동시에 비명이 터진다.

“왜 갑자기!”

야광 가루를 온몸에 묻힌 수하들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때 서늘한 예기가 괴아의 목덜미에 박혔다.

푸식!

하지만, 꿰뚫지는 않고 혈맥에 닿기 전에 멈췄다.

금강불괴의 기운을 목에 둘렀기 때문에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때 더 날카로운 예기가 심장을 향해 날아왔다.

슝!

목에 두른 금강불괴의 기운을 가슴으로 보내게 되면 목이 꿰뚫리게 될 형편.

그때였다.

어디선가 거대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슈슝!

그 파공성이 괴아의 심장을 향해 달려드는 검날을 쳐 냈다.

탕!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퍼져 나갔다.

그 굉음이 잦아들 때 손뼉 소리가 울렸다.

짝짝!

그와 함께 내공이 실린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은 여기까지. 야명주를 밝혀라.”

그 말과 함께 천장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천장에 장치한 야명주가 드러나자, 지하 공간은 다시 밝아졌다.

암제는 주변을 바라봤다.

괴아의 수하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 절명한 듯싶었다.

암제가 말했다.

“못난 놈.”

“죄송합니다. 목숨으로 사죄를…….”

괴아는 거도로 자신의 목을 그으려 했다.

그때 다시 파공성이 울렸다.

슈슝!

정체불명의 물체가 날아오더니 괴아의 거도를 쳐 냈다.

탕!

괴아의 거도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청강석으로 된 바닥에 박혔다.

푹!

괴아는 멍하니 암제를 바라봤다.

암제를 바라보던 괴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불이 꺼지기 전에는 사내놈 하나만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불이 켜진 지금 보니 백색 무복의 소녀가 단검을 들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괴아는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소녀가 괴아의 목을 뚫는 동시에 사내가 가슴을 노렸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암제가 구해 준 것이었다.

적은 야광 가루를 괴아와 그의 수하에게 묻혀 놓고 살육을 벌인 것이다.

괴아가 소녀를 바라보고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설화.”

“설화라? 강호에서 너 같은 어린년이 이렇게 검을 다룬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거늘……. 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우리 공자님이 비밀로 하래. 당과 하나 내놓으면 생각해 보고.”

“쌍으로 미쳤구나!”

괴아가 소리를 지를 때 뒤쪽에서 철판 긁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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