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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27화 (327/621)

327. 생사논검(生死論劍) (9)

청화의 당돌한 말에 괴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따위 독이 내게 통할 것 같으냐? 그 어떤 맹독도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괴아가 양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손등과 팔뚝에 돋아난 힘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괴아의 거도가 청화가 만들어 낸 독기의 장벽을 점점 뚫고 들어왔다.

그때였다.

투명한 기운이 괴아의 거도를 타고 괴아의 손에 흘러 들어갔다.

괴아의 꿈틀거리던 힘줄의 색이 변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때 청화가 말했다.

“이건 너희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준 선물이야. 다시 가져가.”

그 말뜻을 알아듣는 사람은 이곳에서 설화밖에는 없었다.

청화가 뿜어낸 독 기운은 사천당가의 가주를 중독시킨 악랄한 독이었다.

하지만 괴아는 그 독의 정체를 모르는 듯 비웃었다.

“하하, 아무리 독인이라도 목이 달아나면 아무 소용 없…….”

괴아가 말을 맺지 못했다.

묘한 기운이 양팔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 기운은 심장부터 시작해서 진천뢰가 폭발할 듯한 기세로 몸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이 독은 성질상 공력과 비례했다.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고수일수록 더 심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사천당가의 가주도 그렇게 고전하지 않았던가.

독이 뇌수에 침투하자 괴아의 눈이 벌게졌다.

그러고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사천당가 가주보다 더 심한 발작 증상을 보이는 괴아.

이유는 간단했다.

한빈의 연막탄과 지금 흘러 들어간 독이 상호작용을 했기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드드득!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금빛 원이 괴아에게 날아왔다.

금빛 원의 정체는 암제가 던진 금륜이었다.

금륜의 기세는 이전과는 달랐다.

몇 배는 더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으며 날아왔다.

금륜이 괴아의 등을 파고들었다.

푸-아앙!

철판으로 덧댄 것같이 단단하던 괴아의 몸을 파고든 금륜이, 가죽 북 터지는 소리를 내며 복부에서 나왔다.

팡!

괴아의 뱃가죽을 뚫고 나온 금륜은 청화를 향해 덮쳐 왔다.

금륜은 청화의 독기를 단번에 무력화시켰다.

그때 옆에 있던 설화가 외쳤다.

“독기를 거둬!”

“…….”

청화는 말없이 독기를 거뒀다.

청화의 앞에 설화가 백색 무복을 펄럭이며 나타났다.

그러고는 우혈랑검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제갈공영와 제갈공려도 힘을 보탰다.

이어서 제갈공영의 두 아들까지 합세하자 암제의 금륜을 겨우 튕겨 낼 수 있었다.

튕겨 나간 금륜은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암제에게 돌아갔다.

일련의 모습을 본 설화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할배가 이제까지는 봐준 거였네요.”

“그런 것 같구나.”

제갈공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공영은 침통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그는 여한이 없었다.

사천당가에 가 있는 동생 제갈공민과 이곳에 없는 큰아들 제갈휘가 남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제갈세가의 식솔 대부분이 밖으로 몸을 피한 상황이었다.

가문을 이어 나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지금 암제의 무위를 보면 바위에 달걀을 치는 것과 똑같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갈공영은 이곳에서 암제의 팔 하나라도 가져가기로 했다.

자신의 수하까지 주저 없이 버리는 저 모습은 그 어떤 마두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제갈공영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휙!

몇 개의 턱을 한 번에 뛰어내린 제갈공영은 바닥에서 검 하나를 더 주워 들었다.

그 모습에 한빈을 향해 다가가던 암제가 의자를 돌려 제갈공영을 바라봤다.

“제갈세가에서 쌍검이라……. 말로만 듣던 제갈세가의 쌍검인가?”

“네 금륜도 두 개니 내 검도 두 개가 되어야 맞겠지.”

제갈공영은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당당하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말을 마친 제갈공영은 왼손에 든 검을 바닥에 꽂았다.

푸른 진기를 머금은 검이 청강석으로 된 바닥을 뚫었다.

푹!

그러고는 바로 옆으로 가 다시 바닥에 굴러다니는 검을 주워 들었다.

그때 제갈공려도 아래로 내려와 제갈공영과 똑같이 검을 주워 들어 바닥에 꽂았다.

마치 꽃꽂이를 하는 듯한 둘의 모습에 암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푹. 푹.

계속 울리는 소리.

그들의 검은 일정한 문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암제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바라봤다.

문양이 거의 완성되어 갈 때 암제가 입을 열었다.

“나는 쌍검술인 줄 알았는데 실망이군. 제갈세가답게 진법을 쓰는군.”

암제는 피식 웃으며 검을 바닥에 꽂고 있는 제갈공영을 바라봤다.

“너무 일찍 들켰군.”

제갈공영이 멋쩍게 웃자 암제가 말했다.

“하던 거 마저 끝내도록 하지.”

“…….”

제갈공영은 적잖게 당황했다.

이 진법의 이름은 천근오행진(千斤五行陣)이었다.

천근오행진은 오행 중 하나의 발을 묶을 수 있는 진법이었다.

제갈공영이 펼치려고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금의 기운을 묶는 쇄금진(鎖金陣)이었다.

쇄금진을 펼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암제의 특성 때문이었다.

쇄금진을 펼친다면 암제의 금륜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그가 앉아 있는 나무 의자를 움직이는 쇠바퀴도 영향이 있을 터였다.

그야말로 손과 발을 묶는 완벽한 수법이었다.

그런데 암제는 도리어 계속해 보라고 한다.

오만일까?

아니면 자신감일까?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모르겠기만, 불길한 예감이 제갈공영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일단 시작한 일이었다.

제갈공영은 마지막 검을 바닥에 꽂았다.

푹!

순간 암제를 중심으로 한 공간이 일그러진다.

손에 든 금(金)의 속성, 즉 철 성분의 모든 것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손에 든 검의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졌다.

일그러진 감각에 제갈공영은 재빨리 자신의 검을 바닥에 버렸다.

쨍그랑.

제갈공영과 제갈공려가 암제를 향해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나갔다.

밖에 있던 설화도 쇄금진 안으로 들어왔다.

설화가 우혈랑검을 꺼내자, 제갈공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검은 버리고 박투술로 싸우는 게 좋을 것이야.”

“저는 괜찮아요.”

“아니다. 내가 펼친 것은 쇄금진이다. 금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라면 방해만 될 뿐이야.”

“이건 쇠가 아니거든요.”

설화가 우혈랑검의 검신을 손가락으로 쳤다.

팅!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제갈공영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눈매를 좁혔다.

그때 청화도 쇄금진 안으로 들어왔다.

청화와 함께 제갈공영의 두 아들도 들어왔다.

현문은 석상 모양의 문을 막고 있기에 합류를 하지 못할 뿐, 모두가 암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제갈공영은 이제 승부는 반 정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천하의 고수라도 자신의 병기를 사용 못 하게 된다면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마련이었다.

거기에 자신의 발까지 묶인 암제와의 승부였다.

승기는 제갈공영의 쪽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제갈공영이 걸음을 멈췄다.

암제가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힘을 들인 것도 아니고.

그냥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체…….”

“놀랐나?”

“어떻게 두 다리로 서 있을 수가…….”

“내가 언제 못 걷는다고 했나?”

“…….”

“언제 다리가 불편하다고 한 적이라도 있었나?”

“…….”

제갈공영은 답하지 못했다.

앞선 질문과 이번에 던진 질문 모두 암제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보고 판단한 것은 모두 자신이었다.

제갈공영은 주변을 살폈다.

암제에게 다가가던 모두가 멈췄다.

그들은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암제가 아무렇지 않게 금륜을 바닥에 던졌다.

푹!

청강석으로 된 바닥에 금륜이 박혔다.

별다른 힘도 쓰지 않았는데 바닥에 박히는 금륜.

이 말은 암제의 금륜은 쇄금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설화의 단검과 마찬가지로 쇠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는 뜻.

제갈공영은 한 방 얻어맞은 표정을 암제를 바라봤다.

그때 암제가 진득한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애병(愛兵)이 언제 금륜이라고 했나?”

말을 마친 암제는 팔을 걷었다.

암제의 팔에는 검은색 줄기가 감겨 있었다.

암제는 그 줄기를 풀었다.

줄기를 풀자 안쪽에 손잡이가 나온다.

손잡이와 검은색 밧줄처럼 보이는 기다란 형태.

그것은 누가 봐도 채찍이었다.

암제가 다시 말을 했다.

“이게 내 두 번째 애병인 화룡편(火龍鞭)일세. 전설에 의하면 화룡의 수염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내 금륜보다도 더 단단하지.”

말을 마친 암제는 화룡편을 휘둘렀다.

예비 동작도 없이 바로 뻗어 오는 화룡편에 제갈공영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쫘악!

제갈공영이 있던 자리에 기다란 선이 생겨났다.

화룡편에 실린 내공도 느끼지 못했는데, 청강석으로 된 바닥이 둘로 갈라지다시피 한 것이었다.

제갈공영은 그제야 제 꾀에 제가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제갈공영이 외쳤다.

“다들 쇄금진에서 물러나라!”

말을 마친 제갈공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쇄금진의 경계로 달려갔다.

그때였다.

제갈공영의 눈앞에 싸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암제가 활짝 웃고 있다.

다행인 것은 채찍을 휘두르기에는 간격이 좁다는 것이었다.

제갈공영은 오른손을 펴서 암제의 가슴으로 내뻗었다.

제갈공영이 내뻗은 손은 마치 날개를 활짝 편 새 같았다.

사실 제갈공영은 이 한 수에 남아 있는 내공을 모두 담았다.

제갈세가의 절기인 봉황태령장(鳳凰太靈掌).

이 한 수는 제갈세가를 나타내는 상징인 봉황의 영혼을 담은 초식이었다.

모든 내공으로 봉황의 형태를 무한으로 뽑아내는 봉황태령장은 이 정도 간격 안에서라면 구대 문파의 장문인이 온다 해도 막을 수 없었다.

제갈공영의 봉황태령장이 무수히 불어나며 암제를 덮쳤다.

그때였다.

갑자기 봉황태령장의 기운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중심에는 암제의 손가락이 있었다.

암제는 제갈공영의 손바닥 중심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고 있었다.

암제가 진득한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역시 제갈세가는 재미있어. 내가 원수인 제갈세가의 무공을 연구하지 않았다고 봤나? 봉황태령장의 약점은 간단하지. 봉황의 목을 비틀면 날갯짓을 못 한다는 점이야. 뭐, 모든 새는 똑같겠지만……. 참새나 봉황이나 목을 비틀면 울지 못하는 건 똑같지.”

말을 마친 암제는 막았던 손가락을 슬며시 떼더니 주먹을 쥐고 바로 제갈공영의 가슴을 가격했다.

팡!

암제가 제갈공영의 가슴을 가격하자 그는 바람에 날려 가는 풀잎처럼 힘없이 열 걸음 뒤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

암제가 외쳤다.

“다음!”

그 말에 제갈공려가 움찔하며 상체를 기울였다.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암제의 기세에 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

기세를 완전히 드러낸 암제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벽과도 같았다.

그때 설화가 제갈공려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제갈 언니, 저자의 상대는 따로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제갈공려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 모습에 설화가 손을 저었다.

“여기 우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말고 누가…….”

제갈공려는 말을 맺지 못했다.

구석에서 붉은색 무복이 펄럭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모두는 설화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암제도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빈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영감, 그런데 틀린 얘기가 하나 있어.”

“…….”

“참새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거든.”

말을 마친 한빈은 몸을 풀 듯 어깨를 휘휘 돌렸다.

마치 이제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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