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
암제가 고개를 갸웃할 때 갑자기 앞쪽에서 울리던 폭발음이 더욱 커졌다.
꾸아앙!
연속적인 폭발에 암제는 금강현무의 초식을 삼 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앞쪽에서만 울리던 폭발음에 좌우로 퍼져 나갔다.
쾅! 쾅!
암제는 재빨리 금강현무의 초식의 범위를 넓혔다.
금강현무를 오 성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방금 느껴졌던 낯선 기운에 대해서는 기억에서 지웠다.
더는 그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있는 데다, 지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꾸아앙! 쾅!
지금도 사방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금강태륜으로 펼친 호신강기의 초식을 뚫고 화마가 덮쳐 왔다.
화르륵.
암제는 모든 힘을 다해 두 개의 태륜에 내공을 더 불어 넣었다.
우우-웅.
금강현무를 극성까지 끌어올리자 금강태륜이 울부짖듯 폭발음과 공명한다.
거대한 불꽃 속에 전설 속의 신수인 현무가 울부짖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금강현무의 기운이 일렁였다.
순간 암제가 온몸으로 느끼던 화마의 기운이 줄어들었다.
극성으로 펼친 금강현무가 폭발이 만들어 내는 화마를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암제는 자신도 모르게 낮은 침음을 흘렸다.
“음.”
암제는 눈앞의 참상을 똑똑히 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타고 있었다.
널브러져 있는 시체가 타면서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시체 중에는 분명 한빈의 시체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암제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대체 나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암제는 이 참상을 한빈이 만들어 낸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상대가 말한 마지막 초식은 분명히 동귀어진이었다.
지금 지하 공간은 하나의 화로가 되어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태우고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안전한 공간이라고는 금강현무를 펼친 간격의 안뿐이었다.
따따닥.
폭발음이 줄고 불씨들이 정리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이제는 그 소리가 점차 줄어들자 암제의 표정도 풀렸다.
그에게 닥쳤던 최대 위기는 이제 지나갔다.
자신의 몸을 덮쳤던 화마가 완벽하게 사라지자, 암제는 그제야 금강현무로 만들어 낸 호신강기를 거둬들였다.
암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휴.”
그 한숨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중에서는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 재목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그때였다.
옆구리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니 얼굴에 숯검정을 칠한 놈이 활짝 웃고 있었다.
암제는 재빨리 천지를 가를 기세로 금강태륜을 내리쳤다.
팡!
놈은 자리에서 사라지고 금강태륜은 뜨끈뜨끈하게 달궈진 청강석 바닥에 박혔다.
암제는 재빨리 금강태륜을 바닥에서 빼내어 들고 앞을 바라봤다.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 놈은 벌써 열 걸음도 넘는 곳으로 달아나 있었다.
“대체…….”
암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바라봤다.
상대는 물론 한빈이었다.
한빈은 얼굴에 묻은 검댕을 닦아 내며 말했다.
“영감, 왜 그렇게 봐?”
“네놈이 어떻게 살아남았단 말이냐?”
“다 영감 덕분이지. 고마워.”
한빈의 말에 암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한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 영감이 만든 거 아니지?”
“…….”
“만들었다면 여기에 그렇게 편하게 있을 리가 없겠지.”
“그게 무슨 말이냐?”
“역시 모르고 있었구나.”
한빈이 피식 웃자 암제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놈이!”
암제가 노호성을 토해 냈다.
하지만, 노기 띤 얼굴을 한 암제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허벅지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조각난 청강석 바닥을 적셨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공간에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자신이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 그를 고민하게 했다.
천하를 자신의 발아래 두기로 한 후, 처음으로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암제는 조용히 한빈을 바라봤다.
“혹시 황실에서 온 놈이더냐?”
암제는 한빈을 아래위로 살펴봤다.
암제는 그들의 대화를 대충 들었었다.
그는 사소한 것을 놓칠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세가 사람들과 한빈이 나눈 대화를 믿을 수는 없었다.
하북팽가의 직계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하북팽가에서 저런 초식을 쓰는 인간이 있던가?
범위를 조금 넓혀서 정파에서 찾는다고 해도 저런 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파가 어떤 인간이던가?
남몰래 남에 등에 칼을 꽂아도 앞에서는 군자인 척 가면을 쓰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대놓고 사악했다.
그렇다고 사파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사악함이 사파를 넘어서고 있었다.
암제의 걱정대로 만약에 황실에서 온 놈이라면?
암제의 계획은 모두 틀어지게 되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은 놈의 입을 막아야 했다.
암제가 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을 때 한빈은 조용히 바닥을 확인했다.
바닥은 깨진 쟁반 조각을 맞춰 놓은 것처럼 금이 가 있었다.
성한 곳도 있었고 가루가 된 곳도 있었다.
한빈은 조금 전 기억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토해 냈다.
“후.”
한빈은 이 바닥에 진천뢰가 깔린 것을 알았다.
벽력탄도 아니고 이런 대량의 진천뢰라?
바닥에 묻혀 있었기에, 한빈이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 공간의 비밀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빈도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닥에 진천뢰가 묻혀 있는 것도 알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까지 알았지만, 모든 바닥 전체에 이 정도의 양이 깔려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한빈은 앞쪽에서 폭발을 일으킨 뒤.
그것으로 시선을 끌고 암제에게 황금색 구결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성동격서로 암제의 옆구리에서 빛나는 구결을 취하기 직전, 한빈의 계획은 바뀌었다.
묻혀 있던 진천뢰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빈은 재빨리 기척을 죽이고 암제가 펼친 금강현무의 범위 안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기란 용린검법 중 반박귀진의 초식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암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이제야 상황을 알겠네. 황제가 보낸 것이 분명하군. 황실에서 내 계획을 알아챈 것이야.”
“역시 영감은 천재야.”
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아니라고 해 줄 필요는 없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한빈은 슬쩍 허공을 올려다봤다.
허공에서 빛나는 글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천급 구결 지(地)를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구결을 최초로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구결 획득 특권으로 일회용 초식 조삼모사가 추가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를 펼치면 내일 쓸 초식을 미리 쓸 수 있습니다. 최대 사 일의 초식을 미리 쓸 수 있습니다.]
한빈의 입꼬리가 소리 없이 올라갔다.
잘하면 이번 승부를 쉽게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치 놀리는 듯한 초식 같지만, 조삼모사의 효용은 생각해 보면 엄청났다.
조삼모사를 쓴다면 열두 사진 후에나 쓸 수 있는 초식 혹은 시간 제약이 있는 초식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력의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다.
대충 계획을 세운 한빈은 다시 암제를 바라봤다.
“자, 이제 잔챙이들은 다 정리됐으니 둘이서 붙어 볼까?”
한빈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월아를 앞으로 내밀었다.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궁수의 모습처럼 한빈은 월아를 겨눴다.
암제는 아직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진천뢰가 아직 남아 있을지 몰라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반명 한빈은 진천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암제에게만 집중했다.
한빈의 후각으로는, 남아 있는 진천뢰는 없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한빈만이 아는 정보였다.
이 정보의 차이가 무력의 차이로 이어지도록 해야 했다.
한빈은 재빨리 암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촉즉발.’
‘성동격서.’
‘전광석화.’
초식을 조합한 한빈의 월아가 암제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슝!
하지만, 암제는 한빈의 월아를 가볍게 쳐 냈다.
챙!
뒤쪽으로 밀려 난 한빈이 승냥이처럼 다시 달려들었다.
파바박!
월아와 금강태륜이 허공에서 얽히자 주변으로 파공성이 퍼져 나갔다.
팡!
둘의 움직임은 마치 모든 돌을 걷어 내고 새로운 판에서 바둑을 두는 것처럼 신중했다.
* * *
같은 시각, 통로를 빠져나간 제갈공영과 제갈공려는 눈을 크게 떠야 했다.
빠져나오고 보니 그 통로는 연무장, 연무장의 중앙에 있는 우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문제는 연무장을 적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챙. 챙.
올라오자마자 병장기 소리가 제갈공영의 귓가에 들렸다.
지금은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적들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들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제갈공영의 귓가에 울렸다.
“헉헉.”
“조금만 더 버텨라.”
먼저 나간 이들은 뒤를 따라온 가주를 기다리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갈세가 무사들을 포위하고 있던 것은 지하 공간에서 봤던 괴인들과 똑같은 고수들이었다.
그 수는 무려 넷.
거기에 복면인들도 스무 명 정도가 있었다.
지하 공간에서 봤던 숫자보다는 적었지만,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그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제갈공영은 천천히 심호흡했다.
암제와의 한 수에서 입은 내상이 아직 완벽하게 치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갈공려가 준 내상 약을 먹었기에 급한 불은 껐다는 점.
제갈공영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였다.
괴인의 거도가 제갈세가 무사의 목으로 날아왔다.
제갈공영은 재빨리 달려가 검을 뻗었다.
‘봉황태령검.’
암제에게 펼쳤던 봉황태령장과 맥을 같이하는 제갈세가의 독문절기였다.
그의 검이 은은한 황금색 빛을 발하며 괴인의 거도를 쳐 냈다.
채-앵!
제갈공영의 일 수에 괴인이 뒤쪽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순간 제갈공영이 다급히 입을 막았다.
쿨럭.
순간 입을 막았던 제갈공영의 오른손 사이로 선혈이 흘러나왔다.
순간 모두가 놀라 외쳤다.
“가주님!”
제갈공영이 도착했다는 기쁨보다는 그의 상태가 염려되었던 것.
제갈공영은 아무렇지 않게 소매로 입을 닦았다.
그의 소매에 화선지에 난을 그리듯 길게 선혈이 묻어났다.
제갈공영은 아무렇지 않게 외쳤다.
“이까짓 상처에 굴복할 제갈세가더냐? 모두 내 지시에 따라라!”
그것은 내공이 실린 외침이었다.
제갈세가 무사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적들을 바라봤다.
가주의 건재함에, 그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상황이 진정되자 제갈공영은 힘차게 외쳤다.
“모두 팔방진을 펼쳐라! 그리고 수와 명은 각각 북쪽과 남쪽을 맡아라. 공려는 서쪽을 맡고!”
제갈공영의 목소리에 모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주 일행이 각각 동서남북의 방위를 점하고 버티자 나머지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 괴인들이 각각 동서남북의 주축이 된 직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괴인의 거도를 제대로 받아 낼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멀쩡한 제갈공려밖에는 없었다.
제갈공려의 마음은 조금씩 급해졌다.
자신이 빨리 눈앞에 괴인을 처리하고 다른 쪽으로 합류해야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눈앞에 괴인이 휘청였다.
갑자기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괴인을 본 제갈공려의 눈이 커졌다.
그것도 잠시, 제갈공려는 그 틈을 노려 괴인의 복부에 검을 박아 넣었다.
푹!
괴인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털썩,
쓰러진 괴인의 뒤편으로 설화가 방긋 웃고 있었다.
“대체 언제 온…….”
제갈공려는 말을 멈췄다.
설화가 품에서 기다란 대나무 통을 꺼냈기 때문이다.
설화는 아무렇지 않게 대나무 통 아래에 있는 끈을 잡아당겼다.
순간, 대나무 통에서 동그란 물체가 하늘로 날아갔다.
피슝!
하늘로 올라간 폭죽이 하늘에서 터졌다.
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