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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검술천재-333화 (333/621)

33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5)

한빈은 검 자루가 없는 검신을 맨손으로 쥐고 있었다.

검신의 정체는 사천당가에서 얻은 용린검의 반 토막이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검신을 잡은 한빈의 맨주먹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온다.

한빈은 자신의 손아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암제의 가슴에 검신을 박아 넣었다.

푹.

검신이 암제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손가락 굵기만큼 파고든 검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오려 했다.

이 반 토막짜리 검의 정체는 용린검의 반쪽.

한빈은 재빨리 검날을 쥔 손에 공력을 담았다.

한빈의 주먹 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제 실력편의 공력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지금은 본신 공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밀리면 기회는 없었다.

슉!

한빈의 검이 암제의 가슴을 조금 더 파고들었다.

깜짝 놀란 암제가 한빈을 노려봤다.

하지만, 암제는 방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빈을 끌어안고 있는 팔에 더욱 힘을 가했다.

한빈이 자신의 가슴을 못 뚫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자신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는 것보다, 자신이 그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투득.

한빈의 검이 그의 가슴뼈를 긁었다.

암제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 손으로 검신을 쥔 한빈의 손을 움켜잡았다.

한빈이 찔러 넣은 검신을 밀어 내는 동시에, 검날을 잡은 한빈의 손가락을 노린 수법이었다.

암제의 수가 통한다면 검날을 통째로 움켜쥐고 있는 한빈의 손가락은 성치 못할 것이었다.

검신을 쥔 한빈의 손과 암제의 공력이 그들 사이에서 충돌했다.

투두둑.

둘 사이에 무형의 기운이 피워 올랐다.

그것도 잠시, 한빈의 공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한빈의 내공이 희미해지자, 암제가 비릿하게 웃음을 지었다.

검신을 쥔 한빈의 주먹에서는 이제 피가 줄기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얼굴을 더욱 희멀거니 보였다.

출혈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암제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힘이 다 됐구나, 아이야.”

“…….”

한빈은 아무 말 없이 암제를 바라봤다. 굳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용린검법의 초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금의환향.’

금의환향은 구결과 본신 내공을 구 할 회복시킬 수 있는 수법이었다.

희미해지던 한빈의 내공이 단전으로 해일처럼 밀려 들어왔다.

스스슥.

밀려들어 온 내공은 한빈이 잡은 검신에도 전해졌다.

다시 한빈과 암제의 내공이 그네를 타듯 주거니 받거니 하자, 검신이 흔들렸다.

순간 암제의 눈이 커졌다.

분명 자신이 움켜쥔 악력은 검신을 쥔 한빈의 손가락의 세맥(細脈)을 토막 내놨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공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였다.

한빈이 쥔 손아귀에서 강대한 내공이 자신의 손에 밀려든다.

불길한 느낌이 암제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암제는 재빨리 손을 떼려 했다.

하지만, 암제의 손은 한빈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의 손아귀에 자신의 내공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암제가 한빈을 껴안았던 한 손을 놓고 일장을 날리려 할 때였다.

앞쪽에서 막대한 기운이 쏟아졌다.

쏴악!

노도처럼 밀려드는 상대의 기운에 암제는 금강소혼장으로 맞받았다.

금강소혼장은 금강역사를 소환하는 듯한 막대한 힘을 일장에 몰아넣은 암제의 수법.

그가 내뻗은 일장에는 금강역사가 현신한 듯한 투명한 기운이 일렁였다.

팡!

암제가 내뻗은 고강한 장력에, 한빈의 기운이 밀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보낸 기운이 되돌아온다.

‘이화접목의 수법이라?’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암제와 한빈의 내공은 마치 비무를 하듯, 마주친 서로의 손바닥에서 한바탕 결전을 치르고 있었다.

암제는 눈매를 좁혔다.

한빈의 장력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들이쳐 오는 한빈의 장력은 자신의 금강소혼장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

그렇게 넘어온 기운이 갑자기 변한다.

암제의 금강소혼장이 넓은 나뭇잎이라면, 한빈이 내뿜는 기운은 가시와도 같았다.

그 가시가 향한 곳은 손가락 굵기만큼 박혔던 검신.

한빈은 희미하게 웃었다.

한빈이 쓴 초식은 자승자박과 성동격서였다.

처음이라면 먹히지 않았을 성동격서였지만, 약해진 암제에게는 통했다.

성동격서로 금강소혼장을 피한 한빈의 기운이 일촉즉발의 기세로 검신으로 향한 것이다.

한빈의 기운이 검신에 적중하자, 마치 망치가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퉁!

그 소리와 동시에 용린검의 검신이 암제의 등을 뚫고 나왔다.

푹!

순간 한빈의 앞에는 글귀가 나타났다.

[용안으로 구결을 확인합니다.]

[천급 구결 지(地)를 획득하셨습니다.]

[천급 – 지(之), 역(易), 지(地)]

글귀를 확인한 한빈은 암제를 바라봤다.

순간 한빈의 눈이 커졌다.

암제의 정수리에서 빛나고 있던 황금빛 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빈은 힐끔 허공을 바라봤다.

기사회생을 써서라도 살려야 하나를 고민했다.

한빈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더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되었다.

중요한 것은, 암제는 한빈이 가지고 놀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마지막 깨달음이 없었다면 쓰러지는 것은 한빈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비틀거리던 암제가 입을 열었다.

“왜냐?”

짧지만 내공이 담긴 음성이었다.

심장이 꿰뚫린 상태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내공이 얼마나 고강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심장에서 역류하는 피를 남은 내공을 써서 조절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되물었다.

“뭐가?”

한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암제가 힘없이 물었다.

“나와 원수진 일도 없거늘, 왜 그렇게 목숨을 바쳐 내 일을 방해했느냐?”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영감이잖아.”

“내가 시비를 걸다니…….”

“영감은 하북팽가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사돈의 팔촌까지 그렇게 건드린 거야?”

“하북팽가라……. 정말 하북팽가의 자식이더냐?”

“아까 말하는 거 들었잖아.”

“하북팽가에서 그런 검술을 쓰더냐?”

“물론 하북팽가에서는 안 쓰지.”

“그런데 네가 하북팽가 사람이라고?”

“이래 봬도 자수성가한 사람이거든.”

“견부가 호자를 낳았군.”

“죽어 가는 양반이 말이 너무 기네.”

한빈이 턱짓으로 암제의 가슴에 박힌 검신을 가리켰다.

“뭐, 내가 죽는다고 해서 한번 쏜 화살이 멈추겠는가?”

“그건 무슨 말이지?”

“비밀일세.”

“비밀이라…….”

한빈이 말끝을 흐리자 암제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웃었다.

“하하, 그래도 마지막을 너와 함께할 수 있어 좋구나.”

“내가 왜 영감하고 같이 있어? 나는 나가서 할 일도 많은 사람이야!”

“과연 네 뜻대로 될까? 이제 여기는 완벽한 밀실이거늘.”

“과연 영감이 여기를 밀실로 만들어 놨을까? 천하무적인 영감이 탈출로도 없이 문을 다 막았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데…….”

“보기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다만은 그건 나만이……. 쿨럭!”

암제는 말을 맺지 못했다.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했기 때문이었다.

한빈은 아무 말 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암제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한빈은 알고 있었다.

탈출구는 이미 봐 뒀었다. 한빈이 퇴로도 확보하지 않고 싸우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암제가 뒤로 쓰러졌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암제의 몸이 잠겼다.

한빈은 암제에게 다가갔다.

암제의 가슴에 꽂았던 용린검의 반쪽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서서히 다가가는 한빈의 눈앞에 섬광이 번쩍했다.

한빈은 동시에 뒤로 한 발 물러서며 암기를 피했다.

암기의 정체는 소륜이었다.

물속으로 쓰러지면서 우연히 소륜 하나를 잡은 것 같았다.

휙!

소륜이 한빈의 귓가를 스치고 날아갔다.

이번에 피했어도 암제가 던진 소륜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한빈은 암제를 견제하며 뒤쪽에서 날아올 소륜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소륜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빈은 천장을 바라봤다.

소륜이 천장에 박혀 있었다. 그 주변을 자세히 보니 소륜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불꽃이 일어난다.

소륜이 내는 섬광이 아니라, 분명히 불꽃이었다.

불꽃의 정체는 분명히 심지.

한빈은 주변 상황을 살폈다.

만약 저기에 폭약이 설치되어 있다면?

지금은 용린검의 반쪽을 회수할 시간이 없었다.

후에 이곳을 파헤쳐서 저 많은 야명주와 함께 용린검의 반쪽도 찾으면 되었다.

본능이 이곳에서 빠져나가라고 외친다.

한빈은 재빨리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일촉즉발.’

한빈은 벽을 향해 날아갔다.

벽에 도착하자 한빈은 내공을 실어 다시 그곳을 박차고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한빈이 향하는 곳은 탈출구가 있다고 예상되는 장소였다. 그가 봐 둔 탈출구는 이전에 연기를 모두 흡수하던 구멍이었다.

한빈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흡수되었던 연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통로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

천장에 매달린 종 뒤에 있을 통로에 거의 도착했다.

남은 거리는 불과 열 걸음.

그때 뒤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껄껄껄.”

하지만 한빈은 오직 통로가 있을 종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는 불과 세 걸음.

그때 한빈의 눈앞에 번쩍였다.

이어서 들리는 폭음.

쿠아앙!

앞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한빈은 재빠르게 가장 이곳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보법을 전개했다.

그것은 구걸십팔보가 아니었다.

‘금선탈각.’

다시 한번 금선탈각을 쓰자 한빈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빈이 사라진 자리를 화마가 삼킨다.

화르륵.

연이어 들리는 폭음에 지하 공간이 흔들린다.

그냥 느낌이 아니라, 위쪽이 무너지고 있었다.

위쪽을 지탱하고 있던 벽돌이 조각난 채 비가 되어 쏟아졌다.

우두둑.

거기에 더해 수맥을 건드렸는지 천장에서도 물이 흘러나왔다.

쏴아악!

혼란스러운 소리에 섞여 암제의 웃음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껄껄.”

하지만, 그 웃음에 실린 기운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사그라든 것이 아니라 폭발음에 묻혔다.

꾸아앙!

쾅, 쾅!

위쪽에서 돌덩이가 비 오듯 쏟아진다.

가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야명주와 함께.

툭, 툭.

생각 같아서는 야명주를 모두 수거하고 싶지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손에 잡히는 야명주 몇 개는 품속에 넣었다.

‘구걸십팔보.’

‘전광석화.

한빈은 돌덩이를 피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위쪽에서 돌덩이와 물이 쏟아지고 아래쪽으로는 물이 빠지고 있었다.

한빈은 물이 빠지는 곳을 향해 최대한 내공을 실어 진각을 밟았다.

팡!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암반이 무너진 듯 사물들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쏴악!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가 지하 공간의 중앙에 생겼다.

암제의 시체가 먼저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빈도 그 소용돌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소용돌이는 이내 한빈의 몸을 삼켰다.

쏴아-악!

* * *

지하 공간의 위쪽에 있는 제갈공영은 우물 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한빈도 그렇지만, 그를 뒤따라간 현문도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불안한 것은 연달아 일어난 지진이었다.

땅이 꺼질 듯한 지진을 시작으로, 이곳 전체가 출렁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지진이 이어졌다.

이 정도의 지진이면 신선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불안한 눈으로 우물을 계속 바라보자, 정의맹 사천지부장 문주익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라네.”

제갈공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조용히 우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에서 일어난 암제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한빈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하기로 했다.

한빈이 속한 단체가 하북팽가일지 아니면 다른 정파의 조직일지는 모르지만, 그 존재 자체가 비밀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누군가의 비밀 병기를 다른 이들에게 까발리는 것은, 은인 혹은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것이었다.

제갈공영의 눈빛이 깊어질 때였다.

우물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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